“안녕, 로이.”
뿌연 연기 사이에서 눕듯이 앉아 익숙하게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여기서 모순이 있다면 난 그를 모른다는 것쯤일까. 매캐한 연기가 차있는 곳은 이미 나에게 기분 나쁜 장소와 불안감을 만들어 주는 장소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긴 유명한 명문대의 최고의 모범생이 이런 곳에 올 리가 없겠다고, 생각하겠지.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모던한 스타일의 옷차림새와 누구에게나 상냥하고 밝고, 심지어 돈 많은 집안. 이런 이미지의 내가 이런 곳을 올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하겠냐고…. 고개가 숙여지고 살짝 웃음이 터져 나왔다. 오는 이유는 한 가지밖에 없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내 연인이 여기 있을 테니까.
인생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하면서 연인을 챙기는 비굴한 모습이라니. 나도 참 많이 변한 것 같다. 내 애인은 나보다 나이도 많으면서 마치 어린애를 대하는 것처럼 행동하게 한다.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시선을 거뒀다간 물에 휩쓸려 버릴까 봐 어느샌가 나 같지도 않은 행동을 하고 있다. 11시 이전에 들어오지 않으면 불안하고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고. 그래서 그를 만난 걸 후회하느냐고 묻는다면 난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겠지. 얻은 것보다 잃은 게 많지만 그 잃은 것보단 지금의 내 애인이, 준영이 형이 더 소중하다. 그래…, 후회는 없다.
다시 내 귀로는 '안녕, 로이.'라는 인사가 들려왔다. 자동으로 바닥을 보던 내 시선이 인사가 들려온 곳으로 향했다. 붉은 조명을 받아 더 반짝거리는 벨벳재질의 의자에 늘어지게 앉아 고개를 뒤로 살짝 꺾은채로 날 비웃듯이 바라보고 있는 그는 사람에 관심이 없던 내가 봐도 익숙한 얼굴이었다. 아, 그래. 그는 준영이 형의 친구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형만 친구로 생각하고 있는 거겠지만.
천천히 그에게로 다가가 옷깃을 잡아챘다. 상체가 살짝 의자에서 떠올랐다. 기분 나빠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뭐가 그리 좋은지 킥킥대며 웃었다. 그리고는 손에 들려있던 마리화나를 입에 가져다 대고 깊게 빨아들이고는 연기를 내 얼굴을 향해 내뱉었다. 인상이 찡그려졌다. 조롱이다. 이건.
“어딨어.”
“로이, 초면에 반말은 나빠.”
“…어딨냐고.”
“우리 가게 구조를 너무 모르는 거 아니야? 한 두번 와보는 것도 아니면서. 끝까지 들어가 보지도 않고 나서 그렇게 물어보는 건 실례야, 로이.”
손에 힘이 풀렸다. 이 이상 물어도 대답해주지 않을 것이다. 기대도 안 했다. 그저 정말 내 예상대로 형이 이곳에 있기나 할까. 그런 의심이 들어 물어본 것뿐. 여기 있다고 치면 이 넓은 곳 중 어디에 있을지는 이미 전부 짐작하고 있었다. 매일 같은 위치에 앉아있었으니까. 사람들이 많은 무대를 중심으로 오른쪽 코너의 구석에 매일 차가운 바닥에 혼자서, 아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닐 텐데도 매일 혼자 앉아있었다. 그러다가 자신의 앞에 선 날 보면 몽롱한 눈빛으로 부드러운 그 한국어로 인사해줬다. 안녕, 로이. ……내 본명은 김상우인데, 형 때문에 본명이 로이가 돼버린 것 같다. 그건 그저 여기서 지낼 때만 쓰는 이름인데. 이곳 사람들이 전부 날 '안녕, 로이.' 라고 인사하는 이유는 형이 그렇게 인사하기 때문이 5할, 나머지 5할은 동성애자에 대한 비웃음? 어찌 됐든 좋다. 내 목적은 그저 형을 찾으러 온 것뿐이니까.
형이, 보인다. 신발코에 옷자락이 밟혔다.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 어제 집에서 나갔을 때 입었던 옷과 다른 옷을 입고, 잠을 청하고 있었다. 역시 내가 예상한 그 자리에서. 살짝 고개가 왼쪽으로 기울여진 채로 불편하게 잠들어 있었다. 어제 입고 나간 옷은 블랙 스키니진에 자주 입던 네이비색 가디건. 오늘은 내가 처음 보는 옷. 외박에 모자라 마약, 거기에 입고 나간 옷과 다른 옷? 이렇게 나올래요, 형? 자켓을 벗고 무릎을 꿇어 형에게 덮어주려던 순간 내 눈에 스쳐간건, 깊게 파인 네크라인으로 쇄골이 보이고 그 쇄골위에 빨간 자국들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아, 이런. 한국에서도 쓴 적 없었던 것 같은 욕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나랑 뭐하자는 거에요.
강아지마냥 끙끙대다가 인기척이라도 느낀 것인지 겨우겨우 졸려 무거워진 눈꺼풀을 들어 올려 눈을 뜨고 날 바라봤다. 여전히 내 표정은 아무런 감정도 담고 있지 않았다. 붉은 조명에 가려지기라도 했는지 형은 내 얼굴을 보고 오히려 더 밝게 웃었다. 보는 사람이 웃음이 나올 정도로 환한 웃음을. …뭐가 그렇게 즐거운 걸까, 무슨 좋은 일이 있었길래 2달 만에 여기까지 와서 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렸던 약까지 해가면서 날, 이렇게….
형은 또 그렇게 인사하겠지.
안녕.
“안녕."
로이야.
“상우야.”
아, 그래서 형이 바라는 게 뭐에요. 뭘 바라고 이런 지랄 맞은 짓을 하는 건데, 내가 잘못했어요. 형. 집에 가요.
생각이라도 읽은 걸까, 묘한 표정을 짓고는 나를 껴안았다. 자주 쓰던 샴푸와 짙은 대마초 향이 섞여 역한 냄새가 풍겼지만 상관없었다. 바닥에서 질질 끌리며 어쩔줄 몰라하던 손을 들어 메마른 등을 토닥였다. 웃음소리가 내 귓가에 맴도는 것 같았다.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리면 그때의 그 순간의 형은 날 사랑하고 있을까. 난 이대로 죽어도 그 순간만큼은 형을 생각할 것 같은데. 웃음소리가 멈추고 속삭이듯이 날 불렀다. 로이야. 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사실은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대로 현실의 나와 형이 전개를 이어나갔을 때의 미래가 두려웠다. 그저 난 이 상황을 유지하고 싶었다. 그건 내 마지막 감각이 말하는 답이었다. 하지만…, 미래는 찾아온다. 어떻게 해서든지.
“로이야.”
“…왜요, 형.”
“로이야.”
“…….”
“로이야.”
“…….”
형은 내 이름을 곱씹다가 가녀린 팔에 힘을 주어 으스러지게 날 껴안았다.
뭘 말하고 싶은 거에요. 말하지 않으면 안 돼요? 중요한 얘기에요? 작은 바램이 몸 안에서 메아리친다. 밖에선 들리지 않는 메아리.
“나….”
하나뿐인 나의 연인은 그 메아리를 듣지 못하고,
“한국 다녀올…게.”
날 내팽개쳤다. 날 버렸다. 난, 버림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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