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
나는 네가 거슬렸다. 네가 처음 내 귀언저리에 가라앉았을 때부터.
***
사람이 왜 싫냐 물은다면야 말할 이유도 많을 것이고, 제 나름대로 둘러댈 핑계도 많을 것이다.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요. 언제 한번 제 기분을 상하게 했거든요. 너무 이기적이에요. 답답하잖아요. 형식적인 대답들은 쌓이고도 쌓였다.
난 눈이 펑펑 내리는 학원가 앞에서 신발 앞코를 땅에 세번 쿵쿵쿵하니 찧어냈다. 쌓인 눈 위로 자국이 나며 그 위로 다시 눈이 쌓였다. 올해 들어 눈이 가장도 많이 내린다며 지나가는 사람들이 떠들어댔다. 난 눈만 끔뻑였다. 눈꺼풀 위로 눈송이가 내려앉았다가 곧 녹아버린다. 기다림은 꽤 길었다. 내가 걸어와던 눈길위로 다시 눈이 사박하니 쌓일무렵, 학원 안에서 뛰어나온 네가 호들갑을 떨며 내 앞으로 자리한다. 남순아!
오늘도 정말 힘들었다. 문제가 정말 어려웠거든. 재잘재잘 난리도 아닌 네 위로 우산을 펴들며 난 끄덕였다. 떡볶이 먹으러갈까? 난 끄덕였다. 눈 계속 왔으면 좋겠다. 내일 학교 안가면 좋잖니. 그렇지? 난 끄덕였다. 연달은 끄덕임에도 넌 지치지않고 떠들었다. 그러다 내가 입소리를 내게 된것은 네가 닥달을 하던 떡볶이집 바로 앞에서였다. 내 왼쪽 어깨위로 눈이 조금 쌓여있었다.
“나 친구 하나 소개받았다.”
“.............어?”
“잘생겼다지뭐야. 냉큼 받았지. ”
“.................누군데.”
내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에, 어이없다는 목소리로 너는 대답했다.
“어디서 정색이야. 네가 상관할바는 아니잖니.”
“........................”
“넌 그냥 소꿉친구잖아. 내가 그런 것까지 다 말해줘야해?”
“......................”
뱃속에 있었을때부터 친구였다는 우리는 없다. 결혼은 누구와 할꺼냐 장난스럽게 묻는 부모님께 너무 쑥쓰러워 말하지못한 내 어린 시절이 눈과 함께 네 등 너머로 묻어간다. 같은 중학교가 되어 좋아하던 과거도. 같은 고등학교에 가겠다며 눈에 불을 키고 공부하던 지난 밤날들도. 장난스럽게 휘는 네 눈에 묻어간다.
박흥수. 알아? 7반이라던데. 걔가 나보구 친해지고 싶다고 소개시켜달라그랬데.
부끄러운지 머리를 베베꼬며 팔랑팔랑 떡볶이집으로 냉큼 들어가버리는 너. 난 조금 화가났다. 그리고 듣도보도못한 박흥수가 싫었다. 그냥.
***

넌 오늘 내게 데리러오지말라했다. 그 문자를 받은 난 핸드폰을 끄고 고개를 묻었다. 일어나라며 출석부로 머리를 툭툭건드는건 무시했다. 묘한 배신감이 저 밑에서 치고 올라왔다. 속이 다 울렁거릴 정도였다.
난 박흥수가 누군지 궁금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물어보진않았다. 주위로 기웃거리는 반 아해들은 내게 물었다. 야 남순아 너 오늘 무슨 일있냐? 난 별 쓰잘데기도 없는 자존심에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오늘따라 왜이렇게 기운이 없어. 얘 걔랑 싸운거 아냐? 그 오반에 있잖아...고남순 주인님. 그 여자애 있잖아. 얼굴 요만해서는.
지들끼리 떠들으라지. 난 상관쓰지않았다. 저희들끼리 배를 잡고 웃으며 상황극을 쓰는게 웃기기 짝이 없었다. 내 신경은 온통 네가 보낸 문자였고, 박흥수였으며 이 어이없기 짝이 없는 내 감정이었다. 턱을 괴었다. 낄낄 난리도 아닌 아이들을 등지며 창 밖을 내다보았을때.
아직도 눈이 펑펑하니 내리는 광장으로 네가 보였다. 활짝 웃고있는 네가. 손에는 우유 두어개를 쥔 네가. 심장이 저만치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런 네 앞에 서있는 것이.
“........뭐야. 저거 고남순 주인님아냐?”
“어? 맞는데? 얼레...박흥수잖아. 둘이 사겨?”
“얘. 남순아, 쟤랑 박흥수랑 사겨?”
난 자리를 박차고 나섰다. 우르르 쏟아지는 책걸상에 아해들이 질겁하며 물러섰다. 난 옥상으로 향하며 핸드폰을 꺼냈다. 그러곤 유치하게도 거칠게 문자를 쳐내고 마는것이다.
「아는 척 하지마.」
열여덟의 나는 어리다. 첫사랑이 내 눈 앞에서 다른 아이와 있는 모습을 관대하게 용서하고 지나갈만큼의 아량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으며 그럴 여유는 더더욱 없다. 난 박흥수가 싫었다. 듣고 본거라곤 이름과 뒷통수뿐이었지만, 지독하게도 싫었다. 곧 욕과 함께 옥상 문을 열어제끼는 난 솔직히 말해 죽고싶은 심정이었다.
박흥수가 싫고 네가 싫다. 입김이 뿌옇게 흩어져가는 옥상에서 난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가진거라곤 서툰 마음밖에 없었던 난 창피하게도 울었다. 그러나 조금도 나아지지않았다. 난 늦은 사춘기가 너무 싫었다.
***
네가 아는 척을 했다. 감기에 걸려 목도리를 하고 콜록거리며 지나가는 내 소매를 붙잡고 물었다. 너 감기걸렸니?
그 하룻밤 새 너는 조금 예뻐져있었다. 그저께 보았을적 없었던 여드름이 볼에 빼꼼하니 고개를 내밀고있었지만, 예뻤다. 난 대꾸하지않았다. 어제 문자에 당황했다며 머쓱해하는 널 등돌렸다.
결국 네가 열을 바락바락내며 날 쫓아와, 야 고남순. 내가 뭘 잘못했니? 당돌하게 따지기 시작할때 난 입을 열었다.
“......지랄 좀 하지마.”
“.......뭐? 고남순 너 미쳤......”
“............미친년.”
아무렇지도 않게 나가는 말에 난 아이러니했다. 얼빵한 표정과 함께 넌 곧 눈시울이 붉어졌다. 난 애써 모른 척했다.
개새끼! 넌 개새끼야 고남순!
등뒤에서 악에 찬 목소리는 모른척 하려해도 모른 척 할 수 없었다. 반에 곧장 들어온 난 엎드렸다. 무슨 일있냐며 다시금 수근거리는 아해들을 지워냈다.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고남순 말야..오반에 그 여자애있잖아, 고남순 주인님. 싸웠다는데? 쌩깠다더라.
점심시간무렵 그 소문은 질린듯 가라앉았고, 모든게 지겨워진 난 아프다는 핑계로 계속 엎드려있었다. 배는 고프지 않았고 잠만 주구장창 자고싶었다. 결국 집에나 가는게 좋을 성 싶어 고개를 들어보자면, 쾅하니 내려쳐지는 책상에 머리가 다 울렸다. 난 위를 올려다보았다. 주변은 소란스러웠다. 난 내 앞에서 무표정으로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있는 것이, 처음 보는 얼굴이지만 누군지 알수있었다.
“야.”
“.........”
“네가 고남순이냐.”
박흥수. 왼쪽 가슴께로 떨어질랑말랑한 명찰이 위태로웠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난 곧장 둔탁한 소리와 함께 고개가 돌아갔고, 그 짧은 점심시간 동안 죽어라 맞았다. 쿨럭하니 피가 입으로 터져나오고, 그만하라 소리를 지르는 네가 달려왔을때. 박흥수는 내 마이 위로 침을 뱉어냈고, 넌 그런 박흥수를 따라 나갔다. 아해들이 내게와 물었다. 괜찮니? 피 많이난다 남순아.
아무렴이었다. 속이 다시원했다. 정말.
***

야자를 하지않았다. 담임이 내 얼굴을 본다면야 뭐라 할까 싶어, 종례가 끝나자마자 학교를 나섰다. 야, 오반 걔가 너보고 할말있다구 기다리라는데. 반 애의 전달은 무시했다. 털털 빈 가방을 매고 교문을 나서, 버스 정류장에 자리했다. 잔뜩 얻어터진 얼굴이 쓰리고 아렸다. 정말 개 패듯 때렸구나. 박흥수 개새끼. 겉으로 내뱉지못한 말을 난 혼자 삭혀냈다. 이쯤되면 박흥수를 죽이고 싶어졌다.
버스가 왔고, 내 얼굴에 기겁하는 버스 아저씨께 꾸벅인사해보이곤 맨 뒷자리에 탔다. 그러면 곧 아저씨 잠깐! 하는 소리와 함께 허겁지겁 타는 것이 있었다. 난 한숨을 쉬었다. 박흥수였다.
그 애는 날 보자마자 씨발. 욕과 함께 내 쪽으로 껄렁껄렁하니 걸어왔다. 난 모른척했다.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고 이어폰을 꽂았다. 그러면 박흥수는 내 옆에 자리했다. 제 가방을 내 무릎위로 훽하니 던지고는 내가 꽂은 이어폰을 거칠게 빼냈다. 그러곤 건들건들하니 묻는다. 야. 너 오반 걔한테 욕 왜했냐?
난 대답하지않았다. 박흥수는 기찬 웃음을 뱉어냈다. 그러곤 자기가 장식을 거하게도 해놓은 내 얼굴을 요리조리 돌려보며 감탄해 못지않았다.
“죽인다 죽여. 이렇게 깔끔하게 때려놨냐. 그렇지?”
“......................”
“말 좆나 없다 너. 고남순. 씨발 이름 봐. 고남순...”
난 다시 이어폰을 꽂았다. 그러면 박흥수는 다시 빼냈다.
“새끼가 재수없게 굴지마라. 좆나 짜증나니까.”
박흥수는 투덜거렸다. 난 피곤했다. 죽이고싶은 박흥수의 투정까지 들어줄만큼의 참을 인은 마음속으로 새길 수없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박흥수의 투정은 잦아들었다. 한참을 대답없는 내게 욕을하던 박흥수는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그러곤 게임을 하는가 싶더니, 곧 잠이 든 박흥수는 참 재수없게도 내 어깨위로 머리를 달랑거렸다. 조금만 있었다간 내 어깨위로 놈의 고개가 얹어질 판국이었다. 난 죽어도 그런 그림은 싫었다 박흥수는 정말 죽이고 싶은 새끼니까.
하지만 나도 피곤했다. 결국 내가 잠깐 존 사이로 박흥수의 고개는 내 어깨 위로 올라왔다. 아이러니했다. 내 첫사랑의 파괴자와 나란히있다는 것 자체가. 버스는 잘 달렸다. 십분여가 지날 무렵, 아무것도 모른다는듯 일어나 내리는 박흥수가 어이없었다. 버스 창문밖으로 박흥수와 눈이 마주쳤다. 박흥수는 내게 가운데 손가락을 날렸다. 그럼 나는 양손으로 가운데 손가락을 올렸다. 곧 씨발! 하는 소리가 울렸고, 난 조금이나마 통쾌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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