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턴트 연애 B (- 들으시면서 읽으면 더 좋아요) B-1 좋아하는 사이의 간격은 언제나 바뀔 수 있는 것 그 날 이후 내 일상에 바뀐 점이 단 하나 존재했다. 김동현과 나의 사이, 나는 김동현과의 접점이 생겼다. 누가 짜놓은 듯 그 날 이후 자리를 바꾸자 마자 붙어본 적 없던 우리는 짝지가 되었고, 또 매일 같이 턱을 괴고 날 쳐다보는 김동현이 직접 접점을 만들어줬다. 김동현은 그 날 이후 날 좋아한다. 어떻게 아냐고? 내가 임영민을 보는 눈이랑 다를 게 하나도 없거든, 근데 받아줄 순 없었다. 왜냐고? 좆 같게도 아직까지 임영민이 좋아서 예전에 친구들끼리 모여 이야기를 꽃피우다 그런 얘기가 나온 적 있었다. 너희는 널 좋아해주는 남자를 만날 거야 아님 네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날 거야? 라는 질문, 당시 임영민을 짝사랑 중이었던 내게 그 답은 굉장히 간단한 일이였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물론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도 좋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 두 가지의 선택지가 너무도 임영민과 김동현 같다는 생각을 했다. 김동현은 직접적으로 내게 고백을 하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아침부터 야자시간까지 계속 나만 보고 있거든, 언제 한 번은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서도 지적하실 정도였다. - 동현아, 칠판은 여주가 아니라 여기거든. 한 번에 시선이 집중 됐던 날 나는 김동현을 원망할 수 밖에 없었다. 김동현은 인기가 많았다. 아무래도 잘생긴 얼굴 덕이 컸다. 그리고 성격도 적당히 재치 있고 착했으니까, 당연히 주변에는 사람이 끊이질 않았고 김동현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았다. 당장 내 친구들 중에서 김동현을 좋아하는 애가 3명이나 있었으니 말이다. 덕분에 나는 쉴 새 없이 사람들 입에 올랐다. 영향력이 큰 임영민과 잘생긴 김동현 덕에 나는 생선이 되어 도마에 올라 내려올 생각을 못했다. 하지만 김동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 김여주 - ... 뭐 - 아직도 임영민 좋아해? 그리고 최근에 김동현의 대놓고 구애가 시작됐다. 그게 전쟁에 서막이 될 줄 몰랐었지 난, - 그게 왜 궁금한데? - 내가 널 좋아하니까. 김동현에 말에 사례가 걸렸다. 켁켁 거리다가 김동현을 쳐다보니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도마 위에 오른 나를 지켜보는 눈들은 차고 넘쳤다. 이미 복도에는 뉴스타임이 시작된 후였다. 임영민한테 차인 김여주, 벤츠 김동현이 오는 건가라는 타이틀을 건 기사들은 급속도로 빠르게 퍼지고 있었다. 학교에 이슈를 손에 쥐고 있는 기분은 참 좋지 않았다. 김동현의 직접적인 고백은 처음이었지만 막 그리 크게 놀란 건 아니였다. 알고 있던 사실을 확인 받은 정도, 근데 김동현의 파급력이 크긴 컸나 복도에는 우는 여자애들도 있었고, 날 보고 있는 임영민도 있었으니까. B-2 희망고문은 누구의 탓일까 임영민은 나와 헤어진 뒤 달라졌다. 이건 나만 느낀 게 아니였다. 나도 내 친구들도, 전교에 모두가 느낀 사실이었다. 임영민은 나와 헤어지고 가볍게 만나던 연애를 때려쳤다. 옆자리는 항상 공석인 상태로 말이다. 그리고 주변 여자를 끊었다. 그건 SNS 친구 목록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그 많은 사람을 삭제하기도 힘들었을텐데 임영민의 SNS 친구 목록엔 온통 남자 이름 뿐이었다. 솔직히 좀 많이 의아했다. 고작 나랑 헤어졌다고 이럴 애가 아니란 건 내가 잘 알았다. 좆 같지만 내가 걔한테 그 정도로 큰 존재가 아니란 건 내가 가장 잘 아니까, 근데 왜 그 SNS에 나는 끊어내지 않은 건데? 왜 복도에서 한 번씩 서서 날 쳐다보고 가는 건데? 왜 내 친구들한테 내 소식을 묻는 건데? 던져진 의문들에 난 희망을 품으면서 하면 안되는 걸 알아도 또 기대하게 되는 내가 한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희망고문임을 깨달았지만, - 임영민이 언제부터 여자 많이 만난 지 알아? 김동현과 임영민은 친했다. 잘생기고 성격 좋고 주변에 사람 많고 운동도 좋아하고, 둘의 공통점이 많았다. 그러니 당연히 친해질 수 밖에, 그런 김동현이 내게 갑작스레 임영민에 대해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에 멍청하게 아, 고등학교 때부터? 라는 대답을 했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말을 이어가는 김동현이였다. - 걔가 정말 좋아하는 누나가 한 명 있었거든? 김동현이 꺼내는 말의 서론을 듣자마자 무슨 말을 할 지 예상이 가서 벌써부터 듣기가 싫었다. 누가 봐도 내가 완벽히 들러리가 되는 기분울 느끼게 만들 말이라서, 벌써 절망적인 기분이라서 듣고 싶지 않았지만 원망스럽게도 김동현은 말을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 그 누나가 남자를 가볍게 만났어. - ... 안 들어도 될 거 같아, - 걔가 중학교 때부터 그 누나를 좋아했는데 고등학교 1학년 때 고백해서 사귀게 됐거든? 근데 임영민을 만나는 6개월 동안 계속 바람을 폈었대. 남자가 몇 번이고 바꼈대, 임영민을 좋아한 적은 없었대, 그냥 자기 좋다고 따라다니는 게 귀여워서 만났대, 6개월을, 이어지는 김동현의 말은 완벽히 내 패배를 알리는 소리였다. 그래 내 기분은 광장히 비참했다. - 결국 헤어지고 한동안 힘들어하다가 상처 받기 싫다고 가볍게 여자 만나고 다니더라, - ... 그래서 네가 말하고 싶은 게 뭔데? - 너도 그 중 하나라고, 사실을 명확히 되짚어주는 김동현이 못됐다고 생각했다. 궁금하지도 않은 에피소드를 자꾸 풀어주는 김동현이 미웠다. 근데 이걸 듣고 힘들어했을 임영민을 생각하는 내가 더 미웠다. - 너한테 갑인 임영민도 누군가에게 을이야, 그 누나가 자기 안 좋아해도 계속 사귀겠대. - ...... , - 그 누나한테 저번주에 연락와서 연락하던 여자들이랑 연락도 다 끊고, 매일 그 누나만 기다리고 있더라, 이어지는 말소리가 너무도 싫었다. 덕분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이걸 굳이 나한테 말해주는 김동현이 이해가지 않았다. - 그러니까 착각하지마, 김여주 - ... 야, - 너 그냥 임영민한테 아무것도 아니잖아, 네가 걔한테 굽히고 들어가는 거 별로 보고 싶지도 않으니까 그냥 좀 잊어, 김동현의 목소리가 귀에 와닿지 않았다. 난 그냥 그저 이 와중에도 임영민을 걱정하는 내가 우스워 헛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B-3 그래도 괜찮으니까 하루가 길었다. 너무 피곤했다. 감정은 썩을 것 같이 망가졌고, 복도를 지나가면 빽빽히 흐르는 말소리들이 나를 겨냥했고, 친구들은 김동현과 임영민에 관한 것밖에 물어보지 않았고, 내 머릿 속에는 임영민 밖에 들어오지 않았고 과부화가 걸려 정말 죽을 것만 같았다. 상처를 받았다. 2년 간 짝사랑을 해오면서 임영민이 어떤 여자를 만나도 담담했었다. 왜냐면 가볍게 사귄다는 걸 알았으니까, 근데 자기를 위해 가볍게 여자를 만났다는 사실에 상처를 받았다. 완전 이용 당한 기분이였으니까, 근데 나 계속 이용 당해도 상관 없단 생각을 했었다. 야자가 끝난 뒤 조용히 일어나 가방을 집어 들었다. 복도에는 날 기다리는 김동현이 있었다. 아 언제부터였지 김동현이 날 기다리고 매일 집에 데려다주기 시작했던게, 걔가 나한테 직접적으로 고백했을 때였던 거 같다. 매일을 그러는 게 미안해서 단호하게 거절했었지만 괜찮다고 웃어보이는 모습이 너무나도 나랑 똑같아서 더 이상 안된다고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오늘은 정말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미안한 말이지만 오늘은 김동현의 감정까지 생각해줄 여력이 없었다. 나는 지금 나 조차도 너무 버겁고 힘들어서 이대로 같이 갔다가 되려 화풀이를 할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들었다. - 동현아, 오늘은 - 오늘은 혼자 가, 위험하면 전화하고 - ......, - 혼자 있고 싶을 거 아냐, 아 그리고 아까 나쁘게 말한 거 미안. 들려오는 김동현에 음성에 날 배려해주는 게 너무나도 선명하게 들려서 금방이라도 뜨거운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작은 배려가 너무 벅찬 기분이었다. 날 위해주는 게 또렷해서 고마웠다. - 그냥 임영민이 너한테 했던 것처럼 너도 나 이용해도 된다고, 그렇게라도 이용 당해져도 상관 없다고 그래도 괜찮다고 임영민이 그 여자한테, 내가 임영민한테, 김동현이 나한테 이어지는 행동이 너무나도 똑같아서 더럽게도 서러웠다. 꼬인 실밥을 푸는 시간은 얼마나 오래 걸릴까, 누군가는 얼마나 상처를 받을까 B-4 착각하게 만든 건 너잖아 김동현과 헤어진 후, 나는 골목길 중간에서 쭈그려 앉아서 펑펑 울었다. 쉴 새 없이 울어도 속이 풀리지 않았다. 무엇인가 체한 듯한 답답함과 저릿한 마음이 해결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무엇인가 밀려오는 듯한 감정엔 죄책감과 서러움이 공존했던 거 같다. 생각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정말 생각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이제 임영민을 잊어야지 하는 순간 임영민을 만났으니까, 또 반복되는 악순환이었으니까. - 김여주 - ......., 진짜 되는 게 하나도 없어 - 왜 울어, 다정한 목소리를 내는 게 너무도 싫었다. 자꾸 착각을 하게 되고 욕심이 들었다. 고작 그 14일이 뭐라고, 천성이 다정한 사람이라 잘해준 거일텐데 나만 홀로 안간힘 쓰던 그 2주의 시간이 자꾸 잔상에 남아서 차라리 짝사랑으로 끝냈으면 더 빨리 끝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임영민한테 거짓으로라도 좋아한다는 말을 들어서 그래서 자꾸 맴돌아서 포기가 안 되는 게 너무도 싫었다. 정말이지 감정은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니였다. - 왜 자꾸 나타나는 거야, 잊을라고 하잖아. - ... 울지 마, - ... 자꾸 착각하게 만드는 거 너잖아, - 미안해 여주야 - 좀 묻자, 너 나랑 헤어지고 왜 자꾸 잘해주는 건데? 자꾸 내 얘기 왜 친구들한테 묻고 가는 건데, 왜 자꾸 나 혼자 착각하게 만들고 왜 매일 복도에서 나 보고 가는 건데? 다른 여자는 sns에서 다 삭제했으면서 난 남겨두는 건데? 왜 자꾸... - ... 네가 나랑 너무 닮아서 그래서 자꾸 눈에 밟혔고, 걱정이 됐어 - 그래서 더 상처 받았잖아, 괜히 헛된 기대 만들어 놓고 결국에 너 나 이용했잖아,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손으로 닦아냈다. 임영민의 표정이 슬퍼보였다. 자기를 보는 눈으로 바라보는 게 느껴졌고 다시 한 번 정말 난 그 정도구나 하고 느꼈다. 근데 빌어먹게도 포기가 안됐다. - 김동현한테 들었어, 네가 좋아하는 여자가 있었고 넌 널 위해 나를 비롯한 애들이랑 가볍게 만나고, 정신 차린 이유도 다시 그 여자 때문이라고 - ... , - 넌 근데 그 여자가 했던 짓 나한테 그대로 가했었고, - ... 그래서 후회했어, 그대로 너한테 했던 행동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나쁜 짓인지 잘 알아서 너랑 헤어지고 종일을 후회했어. - ......, - 적어도 다른 애들이랑 만날 땐 그런 적은 없었는데, 네가 나를 2년동안 좋아했단 말을 듣고 내가 누나랑 똑같이 그러고 있더라, - ..., - 어쩌면 그러고 싶어 했나 봐, 날 이렇게까지 좋아해준 사람이 없었거든. 그래서 더 갑인 척 하고 싶었고 그래서 다른 여자랑 키스하고, 반항 했나 봐. 화풀이를 너한테 한 거야 내가, - ....., - 근데 네 표정을 봤는데, 나 뭐하고 있나 싶더라. 이렇게 임영민이 날 오래 바라봤던 적이 있었던 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득히 눈을 맞추고 있는 게 처음인 거 같단 우스운 생각도 했다. 하긴 그럴 수도 있겠다. 어릴 적은 기억도 안 나고, 연애라고 하긴 뭐해도 사귈 때 동안 나만 임영민을 눈에 담았었으니까 - 김동현이 뭐라고 전했을 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정신차린 건 누나 때문이 아니라 너 때문인 건 맞아. - ......, 넌 진짜 나쁜 놈이야. - 알아, 그래서 미안해, 특유의 처진 임영민의 눈꼬리가 오늘따라 더욱 처진 거 같이 느껴졌다. 왜 난 임영민을 좋아하는 가, 처음엔 임영민이 다르게 느껴져서 좋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나는 임영민이 무엇을 해도 좋았던 거 같다. 그래서 임영민이 나한테 가하는 행동도 좋았던 거 같다. 날 착각하게 해도, - 이만 가자, 너무 늦었네 데려다 줄게. 연애할 때보다 더 다정한 것도, - 아 이거 말할까 했었는데 김동현 그렇게 좋은 애 아니야, - ... ? - 그러니까 걔 만나지 마, 자꾸 헷갈리는 말만 늘어놓는 것도, 그냥 임영민의 성격이라고 더 이상의 착각은 안된다고 그렇게 묘한 기류만을 남겨놓은 긴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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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댓글이 한 개도 안 달릴 줄 알았는데 읽고 재미있다고 말씀해주셔서 감사했어요 댓글들 보고 넘 기분 좋아서 부족한 글 올리고 가요 좋은 말씀들 과분히 잘 받았습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예쁘게 읽어주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