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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이름 변경 적용

상편부터 먼저 보고 오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뉴이스트/프로듀스101/김종현] 최면술사 (中) | 인스티즈


최면술사(中)

"눈 감고, 셋만 세면 다 잊어버리는 거야."

w. 랑두



내일도 와도 되냐고 물었지만, 나는 그 천막에 다시 갈 수 없었다. 하긴 예상을 못했던 것도 아니었다. 옥상에서 이를 갈고 있던 녀석들은 내가 그대로 학교 밖으로 나가 버렸다는 걸 알고는 정말로 화가 머리끝까지 뻗친 모양이었다. 다음날 등교를 하자마자 나는 양팔이 붙잡힌 채로 끌려가야 했고 그 무리 중에서도 가장 우위에 있는 남자애 앞에 강제로 무릎을 꿇어야 했다. 뺨 두 대 정도는 차라리 약한 축에 속했다. 얼굴에서부터 복부를 지나 다리까지, 그야말로 나를 마구 짓밟은 녀석들은 간신히 붙잡고 있던 정신을 놓기 직전에야 폭행을 그만뒀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뼈가 부러지진 않아서 깁스까지 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 딱히 움직이는 데 불편함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이 상태로 김종현 얼굴을 보기가 싫었다. 그 사람은 필요 이상으로 다정해서 분명 어쩌다 이렇게 다친 거냐고 물을 게 뻔했고, 그러다 보면 분위기에 휩쓸려 딱히 얘기하고 싶지 않은 것까지 떠벌릴 것이 분명했다.



[뉴이스트/프로듀스101/김종현] 최면술사 (中) | 인스티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를 다시 만나게 된 건 걔들한테 불려가서 엄청 맞은 후로 딱 일주일이 지난 날이었다. 점심시간이 지난 이후로 갑작스레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나는 우산이 없었다. 수업이 끝나고도 비는 그치기는커녕 더 굵어지기만 했고, 아이들이 부모님께 전화하거나 친구 우산을 같이 쓰고 교실을 뜰 동안 나는 창밖을 쳐다보며 멍하니 내 자리에 앉아 있기만 했다. 엄마는 새벽에 나가서 밤늦게 들어오니까 부르지도 못하고. 차라리 이럴 때 형제자매라도 있었으면 아냐, 쓸데없는 생각 관두자.


종례가 끝난 지 한 시간이 조금 넘어갈 때쯤에도 비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자 결국엔 그냥 맞으면서 가기로 했다. 가방을 머리에 이고 뛰어봤자 젖는 건 똑같으니까 그마저도 포기했다. 머피의 법칙에 딱 맞아떨어지게도 교통카드도 안 가져오는 바람에 삼십 분이나 되는 집까지의 거리를 작정하고 뛰는 수밖에 없었다. 그 법칙 만든 사람 이름이 정말 머피인지는 모르겠지만 욕이라도 한 바가지 퍼부어주고 싶다. 이를 악물고 빗속으로 뛰어나갔다. 차가운 물이 쏟아졌다.


*


"00야?"


하필이면. 속으로 온갖 비속어를 내뱉으며 아랫입술을 잘근 씹었다. 푹 젖은 머리카락 끝에서 수도꼭지처럼 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교복 입은 채로 샤워라도 하고 나온 듯한 차림새였는데, 우산 쓰고 매우 뽀송한 상태로 걷고 있던 김종현과 마주쳤다. 그는 당황한 듯 내 모습을 한 번 훑고는 곧바로 다가와 머리 위로 우산을 씌워줬다. 대체 그쪽은 왜 내가 가장 초라한 모습일 때만 나타나는 건데요. 것도 똑같은 장소에서. 하도 억울해서 그렇게 따지고 들고 싶었는데 목구멍이 꽉 막혔는지 말도 제대로 안 나온다.


[뉴이스트/프로듀스101/김종현] 최면술사 (中) | 인스티즈

우산 위로 비가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더 이상 내 머리 위로는 물이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는 반면에, 우산을 내게 씌워주고 있는 김종현은 점점 젖고 있었다. 대체 내가 이사람 앞에서 고개를 제대로 들 날은 언제가 될지 모르겠다. 뭐라도 말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했다. 안 와서 미안하다고 변명이나 할 걸 그랬나.


"감기 걸리겠다. 가자, 따뜻한 거 타 줄게."


그간 일부러 천막을 찾지 않았던 게 무색해질 정도였다. 여전히 다정한 말투에 결국은 그의 옷자락을 꼭 붙잡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니까 꼭 일주일만이었다.


*


천막으로 들어가자마자 김종현은 말없이 커피포트에 물을 받더니 곧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코코아를 내 앞에 올려놓았고, 수건을 들고 와서는 젖은 머리카락 위에 덮었고, 어깨에 담요까지 둘러 주고는 내 맞은편에 털썩 앉았다. 그제야 내 얼굴을 제대로 마주한 그가 갑자기 놀란 눈을 하더니 곧 표정이 굳어 가기 시작했다.


"왜 만날 때마다 상처가 심해지는 거야, 대체."

"맞아서요."

"넌 그 말이 그렇게 쉽게 나오냐."

"그쪽한테만 쉽게 말하는 거거든요?"


확실히 천막 속은 아늑했다. 우리 집에 이 소파 하나만 가져다두고 싶네. 어제 잠도 못 잔 데다가, 오늘도 여러모로 피곤한 일들이 겹쳐서 그런지 푹신한 소파에 앉아 코코아를 홀짝대고 있자니 스르륵 잠이 쏟아진다. 자꾸만 졸다가 깨기를 반복하는 날 보며 한숨을 폭 내쉬던 김종현이 반쯤 내려간 담요를 다시 끌어올려 덮어 줬다.


"좀 자."

"싫어요."

"억지로 눈 뜨고 있지 말고 자, 괜찮으니까."

""


이럴 거면 집에 가서 잤지. 김종현은 흐트러진 내 머리카락을 몇 번 정돈해 주고는 컵을 챙겨 일어났다. 생각해보면 어제 늦게 잔 이유도 엄마가 그날따라 늦게 퇴근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평소 퇴근 시간도 이르진 않았지만 무슨 일인지 평소보다 서너 시간은 더 늦어졌다. 아무도 없는 텅 빈 집안에서 혼자 잠드는 게 싫어서 커피까지 타 마셔가면서 기다리다가 결국 새벽 네 시쯤에야 간신히 잠들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나는 그만큼 혼자 자는 걸 싫어한다.


"옆에 있으면 안 돼요?"


염치도 없는지 설거지하러 가려는 그의 옷자락을 꽉 붙잡은 채 하는 말이 이거다. 내 부탁을, 어쩌면 나뿐만 아니라 누구의 부탁일지라도 잘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을 알았기에 더 대담해졌다. 예상대로 그는 나를 잠시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너 잠드는 거 보고 일어날게. 그 말에 비로소 안심하고 눈을 감을 수 있었다.


*


죽었다고? 진짜?

김00랑 쟤랑 원래 사이 안 좋았잖아.

나 사실, 그날 교과서 가지러 왔다가 김00가 옥상 올라가는 거 봤어.

헐. 그럼 진짜 옥상에서 밀었다는 거야?

그때 수위 아저씨가 미는 거 봤다는데 사건 터지고 얼마 안 돼서 학교 관뒀잖아.

그 아저씨 김00네 부모님한테 뇌물 받고 잠적한 거라며?

진짜? 그 아저씨도 감방 들어가야 되는 거 아냐?

걔네 집 돈 존나 많잖아. 돈만 있으면 만사 오케이지, 씨발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팔뚝에는 소름이 돋았다. 귀신은 나오지도 않는데 가위라도 눌린 듯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애들이 마녀 같은 목소리로 날 보며 비웃었고 손가락질했다. 얼굴은 보이지 않고, 시커먼 색의 형태가 찢어질 듯한 목소리로 웃고 있는 걸로만 보인다. 요즘은 잘 안 꾸던 꿈인데 왜 갑자기


"- 아 차거!!"


못 깨어나서 끙끙댄 게 무색하게도 나는 곧바로 눈을 떴다. 잠 깨는 데는 찬물이 최고라더니, 김종현은 저놈의 아이스티를 생각보다 잘 활용하는 것 같다. 잠깐 닿았다 떨어졌을 뿐인데 볼이 얼음이라도 닿은 듯 서늘했다. 그는 유리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더니 고의는 아니었다며 킥킥 웃었다.


"악몽 꾸는 것 같길래. 너 식은땀 장난 아니었어."

""

"괜찮은 거지?"


얼이 빠진 내 표정을 살피더니 저렇게 묻는다. 아직도 꿈속에서 들었던 음성이 귓바퀴를 따라 메아리치듯 울리고 있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쩐지 열도 나는 것 같았다. 내 상태가 좋지 않은 걸 눈치챘는지 김종현이 손을 뻗어 이마를 짚었다. 그 손이 너무 차갑게 느껴지는 걸 보니 확실히 열이 나긴 나는 모양이다.


"감기 걸렸나 본데. 그러게 왜 그 장대비를 다 맞고 와."

"우산 없는데 어떡해요, 그럼."

"나 안 만났으면 큰일날 뻔했네 아주."

"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줘요?"


감기약을 찾는 건지 구급상자를 뒤적거리던 그가 축 가라앉은 내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아파서 아무 말이나 내뱉는 건지 아니면 진심인지 나조차 구별이 가지 않는다. 하던 행동을 멈추고 무슨 뜻이냐는 듯 빤히 쳐다보길래 나는 묻지도 않은 말을 주절주절 내뱉었다.


"우리 오늘 겨우 세 번째 만나잖아요. 근데 벌써 익숙해져 버린 것 같다구요. 앞으로 내가 그쪽을 계속 볼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데 왜 자꾸 잘해줘요. 시발, 얼굴도 기억 안 나는 학교 앞 편의점 알바생도 지나다니면서 열 번은 넘게 봤겠다."

""

"나 학교에서 살인자 년이라고 불려요. 정 확 떨어지지 않아요?"

"계속해 봐."

"네?"


처음 듣는 차가운 목소리에 놀라 할 말을 잊어버리고, 쳐다본 그의 얼굴 역시 목소리 못지않게 서늘했다. 순간 위축되는 기분이 들었지만 어쨌든 한번 시작한 거 끝을 봐야지 싶었다. 표정 보니까 김종현이랑도 오늘로 마지막이겠구나. 어쩌면 차라리 이게 나을지도 몰랐다.


"길 가다 우리 학교 교복 보이면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요. 나 모르는 사람 있나. 우리 학교에서 소문 제일 안 좋은 사람이 나일걸?"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그쪽한테 정 다 줬는데 갑자기 없어져 버릴까 봐 무서워요. 그렇게 될 바에야 차라리 안 보는 게 나을지도 모르잖아요."


[뉴이스트/프로듀스101/김종현] 최면술사 (中) | 인스티즈

""


이런 종류의 침묵은 어색하다. 하고 싶은 말을 다 쏟아내고 나니 뒤늦게 감정이 밀려왔다. 정작 말할 때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해놓고 마지막 한마디를 뱉을 때부터 목소리가 조금씩 떨려서 나오기 시작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손끝만 만지작거렸다. 오 분쯤 지났을까, 갑자기 내 얼굴 쪽으로 천천히 뻗어오는 손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


"가보자."

"?"

"난 뜬소문 안 믿어,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그러니까 네 과거로 한번 가보자고. 내가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김종현이 눈앞에서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고, 천막 안에 선명한 딱 소리가 울려퍼졌다.


***


"앞으로 계속 얼굴 마주하고 살 사이니까 얘기 많이 나눠 봐, 알았지?"


2년 전이다. 그러니까 부모님이 이혼하신 지 꼭 3년 만의 일이었다. 엄마는 아빠와 이혼하자마자 다른 남자와 연애를 시작했고, 나는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딱히 말릴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엄마가 그 아저씨의 손을 잡고 앞으로 네 새아빠가 될 사람이라고 소개했을 때는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리고 싶을 만큼 싫었다. 왜 연애는 반대하지 않으면서 결혼은 반대하냐고 묻는다면, 한마디로 나는 그 사람이 호적상 내 '아빠'가 된다는 게 죽도록 싫었다고 말하겠다.


아저씨는 내 또래의 아들과 함께 우리 집에 들어왔다. 나랑 동갑이지만 생일이 몇 달 느리다는 이유로 엄마는 나더러 그 애를 '친동생처럼 잘' 챙겨주라고 말했었다. 나로서는 당연히 그 애가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원치도 않던 남동생이 생긴 것도 싫었을 뿐더러, 가장 큰 이유는 그 애도 처음부터 나에게 적대적인 감정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짐작하건대, 아마 걔도 나처럼 이 결혼을 집이 떠나가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울며 반대했을 것이다.


"뭘 봐 씨발."

""

"재수 없게 진짜…"


그 애와 내가 서로를 싫어하는 방법은 다소 차이가 있었는데, 그건 대화만 봐도 드러났다. 온갖 육두문자를 섞어 가시돋친 말로 그 애를 마구 찌르는 나와는 달리 걔는 행동으로 날 엿먹이는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모르는 사람이 우리의 대화를 들으면 그 애가 일방적으로 당하는 입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날 보는 서늘한 눈빛이라던가 실수인 척 벌이는 고의적인 행동 등을 눈치챘다면 누구든지 서로에 대한 악감정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미운정도 정이라고, 나는 점점 그 애한테 일종의 유대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장마철, 도로에 물이 고일 만큼 이례적인 폭우가 쏟아진 날이 있었다. 공부벌레였던 그 애는 아마도 학교 독서실에 있었을 터였고 나는 친구들과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아침에 우산 안 갖고 나가던데. 그 새끼는 왜 우산도 안 들고 나가서 짜증나게 하고 난리야. 비 온다는 일기예보도 같이 봤으면서. 집에 와서도 한참 서성거리던 나는 결국 우산을 두 개 챙겨서 학교로 향했다.


-


독서실은 마지막 층인 5층에 있었다. 지정 좌석제로 운영되는 독서실은 학기단위로 신청해야 사용할 수 있었고, 덕분에 그 애의 자리를 독서실 게시판에 붙은 좌석표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정작 사람은 없고, 가방과 걔가 쓰는 노트 몇 권, 교과서와 펜 등이 어질러져 있을 뿐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책상 위에다 우산을 놔두고 펼쳐진 공책 끄트머리에다 성의 없이 몇 자를 휘갈겨 적었다. 엄마가 너 갖다 주래. 물론, 엄마 얘기는 핑계였다.


중앙계단을 지날 때 난 윗층에서 들려오는 소음에 귀를 기울였다. 소리를 지르는 것 같기도 하고, 뭐가 쿵쿵거리기도 하고. 잠깐 그 자리에 서서 소리를 듣던 나는 뭐 별일 아니겠지, 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멈춰 있던 발걸음을 뗐다. 몇 걸음을 옮겼을 때 내 발걸음이 다시 멈추게 된 건 귓가에 선명하게 들려온 그 애의 이름 때문이었다. 들고 있던 우산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 상황을 판단할 새도 없이, 미친 듯이 몸을 돌려 뛰었다.


[뉴이스트/프로듀스101/김종현] 최면술사 (中) | 인스티즈


옥상은 시끄러웠다. 계단을 두 개씩 뛰어 올라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문고리를 당겼다. 누군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는데 빗소리와 섞여 소음으로만 인식될 뿐이었다. 녹슨 문은 그냥은 열리지 않았다. 손에 힘을 실어 힘껏 잡아당겼을 때야 문이 소름 끼치게 삐걱거리다가, 이윽고 덜커덩 열렸다. 문이 열리자 빗방울이 학교 안으로까지 튀어 바닥에 선명한 자국을 남겼다. 그리고 내 눈에 보인 건, 물에 흠뻑 젖은 채 옥상 난간에서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수위 아저씨와 그 애였다. 커다란 문이 열리자 비로소 아저씨가 고래고래 소리치는 소리가 귓바퀴에 감겨들었다.


"학생 미쳤어?! 뭐 때문에 이러는 거야!?"

"씨발, 좀 놔요!!"

"내려와서 얘기해!!"


그 장면은 내게 엄청나게 충격적이었다. 이제껏 그 애가 그렇게 큰 소리로 소리치는 것도 보지 못했고, 이런 끔찍한 일을 벌일 생각을 하려고 했다는 건 더더욱 상상도 하지 못했다. 문이 쾅 열리는 소리를 듣고 그 애와 수위 아저씨는 동시에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고, 내가 잔뜩 흔들리는 눈동자로 그 둘을 번갈아 보는 사이에, 그래서 그 애를 붙들고 있던 수위 아저씨의 손에서 잠깐 힘이 빠져나갔을 때, 그 애는 날 아주 잠시 동안 응시하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난간 밖으로 몸을 던졌다.


-


"지병이 있었네요. 부검 결과 간에서 종양이 발견됐어요. 간암 말기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의사는 그렇게 말했다. 우리 가족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가족 중에 아무도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는 걸 우리는 부정하려 했지만 의사는 확실하게 못을 박았다. 학생이 고통을 호소하거나 하지는 않았습니까? 이 정도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고통스러웠을 텐데요. 엄마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그 애는 항상 독서실에서 가족이 다 잠든 시간에 귀가해서 알 도리가 없었다'고 대답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애가 대체 무슨 상처를 품고 있었기에 그렇게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건지 아직도 알 도리가 없다. 그러나 그 사건 이후로 반 애들이 나를 보는 시선 자체가 달라졌다. 차가운 눈빛, 쟤 뭐야? 하는 정떨어지는 눈빛. 같이 다녔던 친구들은 점점 날 멀리하더니 어느 순간부터 다른 애들과 똑같은 눈빛으로 날 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일주일 후부터 우리 학교에는 이상한 소문이 떠돌았다.


근데 죽은 애랑 김00랑 사이 존나 별로였잖아. 혹시 걔가 옥상에서 민 거 아냐?

이렇게 카더라로 시작된 소문은 점점 변질되어 날 향한 욕과 손가락질로 바뀌었고, 나는 그때부터 모든 아이들에게 왕따당하기 시작했다. 누가 주도하거나 그럴 것도 없이 전교생이 날 싫어했고 책상에는 누가 넣어 놨는지 모를 쓰레기로 가득 찼다. 때때로 압정이나 바늘을 넣어놓는 녀석도 있었다.


"…아!"


종례가 끝나고, 가방을 챙기기 위해 책상 속에 손을 넣었다가 곧바로 다시 뺐다. 손가락에 피가 새어나왔다. 순간 눈물이 나왔다. 우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 가방도 제대로 챙기지 않고 교실을 빠져나왔다. 한참 뛰어서 인적이 드문 놀이터에 도착하고 나서야 마음 놓고 울 수 있었다. 그래, 그 애가 죽은 그 순간부터 난 우는 것까지 애들 눈치를 봐 가면서 해야 하는 사람이 된 거다.


"00야."


그 자리에 서서 쪽팔린 것도 모르고 목 놓아 울었다. 내 이름이 불리는 것도 깨닫지 못했다. 손가락에 미처 닦지 않은 피가 가득 고여 바닥에 방울방울 떨어졌다. 내가 인기척을 눈치챈 건, 익숙한 체향과 함께 누군가 살며시 안아 올 때였다. 너무 놀라 눈물은 멈췄지만 우느라 불규칙해진 호흡은 아직 그대로였다. 한참을 날 안고 토닥여 주던 그 사람이 이윽고 입을 열었다.


"고생했어."

""

"돌아가자, 이제."


깰 시간이야. 깨면 아무것도 기억 안 날 거야. 그가 내 머리를 끌어안은 채 조그맣게 말했다.


***


눈을 떴다. 천막이다. 대체 그놈의 최면으로 날 어디까지 데려갔던 건지, 뺨을 따라 눈물자국이 나 있었다. 그래도 한숨 자고 일어나니 몸은 개운한 것 같다. 저번에는 깼을 때 김종현이 아이스티 타 줬는데, 이번엔 왜 보이지도 않아. 푹신한 소파에서 폴짝 뛰어내려 주위를 둘러봤다. 항상 앉던 소파에 왜 없나 했더니, 긴 의자에 꽤 불편한 자세로 누워 자고 있었다. 와, 김종현 자는 거 처음 봐. 천천히 다가가 고개를 숙이자 작게 뒤척인다.


[뉴이스트/프로듀스101/김종현] 최면술사 (中) | 인스티즈

""


와 어떡해. 진짜 자나 봐. 하긴 이 사람도 지칠만 하다. 소파 앞에 기대어 앉아 자는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평소에는 잘 몰랐었는데 이렇게 보니까 새삼 잘생겼다. 잠시 동안 그 상태로 있다가 담요라도 덮어주려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잠결이었는지 그가 내 손을 살짝 붙잡았다.


"자요, 나 담요만 덮어주고 갈게."


중얼거리듯 말한 거였는데, 내 말을 들은 건지 감긴 눈이 천천히 떠졌다. 잠시 동안 나른하게 날 쳐다보던 김종현이 그대로 내 목을 당겨 안는다. 순간 심장박동이 미친 듯이 빨라져 그대로 굳어 있는데 내 뒷머리를 몇 번 쓰다듬은 그가 잠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뜬소문은 안 믿는다고 했잖아."

"?"

"너 살인자 아니더만."


그 말을 듣고 머릿속의 사고회로가 정지된 듯 잠깐 멍해졌다가 천천히 밝아진다. 오늘 갔다온 곳이 2년 전 과거구나. 일단 직감적으로 그거 하나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김종현은 위로라도 해주려는 듯 날 한참 동안 안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방법은, 어떤 미사여구를 가져다 붙인 위로보다 훨씬 효과가 좋았다.






중편에 담아야 할 내용은 다 담은 것 같지만 행여나 지루할까 불안하네요8ㅅ8 저번 편 읽어주신 분들 댓글 달아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ㅠㅠ! 암호닉 신청은 댓글로 정말정말 감사하게 받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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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알림뜨자마자 보러왔어요 안자고 있길 잘했네요ㅠㅠㅠㅠㅠㅠ오늘도 여주는 안타깝고 종현이는 다정하고 멋있고 다 하네요ㅠㅠㅠㅠㅠㅠㅠ
6년 전
랑두
늦은 시간이었는데 읽어주셔서 고마워요ㅠㅠ❤
6년 전
독자2
안녕하세요 돼지바임댜 읽다가 눈물 흘릴 뻔 했어요 ㅠㅅㅠ 브금이랑 글이랑 어울려서 더 감정이 ㅠㅠㅠㅠㅠ 여주 과거 너무 찌통이에요.,. 마음 고생 엄청 심했을 것 같고 지금도 심하고... 여주가 숨을 쉴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종현이가 있는 곳이네여 ㅠㅠ하 ㅠㅠ 종현이가 직접 가보자고 했을 때랑 다녀오고 나서 담담하게 말하는 거 진짜 멋있고 설레고 그래요... 힐링되고... 안아주는 것도 그렇고 ㅠㅠ 글이 진짜 종현이랑 너무 잘 맞아서 작가님 있는 방향으로 큰 절 한 번만 올리고 가겠슴댜 하ㅏ핫 이렇게 힐링되는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밤에 깨어있어서 너무 행복한 수요일이에요... 작가님 좋은 밤 보내시고 조녀니 꿈 꾸세요!!(((o(*゚▽゚*)o)))♡ 내일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6년 전
랑두
헉 돼지바님 저번에도 그렇고 긴 댓글 항상 감사합니다ㅠㅠㅠ 저야말로 큰절 하고 싶네요,,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6년 전
독자3
헉ㅠㅠㅠㅠㅜㅜㅜㅜㅜㅜ내용이 너무 슬프고 짠하네요 ㅠㅠ 보는 내내 전혀 지루하지않구 재미있었어요 !! 다음편도 기대할게요 :)
6년 전
랑두
헉 걱정했었는데 다행이예요ㅠㅠ!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6년 전
독자4
악 너무 좋아서 신알신했어요ㅠㅠㅠㅠㅠㅠ뭔가 글읽는데 저까지 위로받는 것 같네요....다음편 너무 기대됩니다!
6년 전
랑두
헉 신알신..♡ 읽어주셔서 감사해요ㅠㅠ 뺘른 시일 내에 하편 써서 가져올게요!
6년 전
독자5
여주한테 저런 사연이 있었군요ㅠㅠㅠ 확실하지 않은 정보로 이상한 소문이나 만들고 진짜 너무하네요ㅠㅜ
여주에게 다시 좋은일만 있었으면 좋겠어요ㅠㅠ

6년 전
랑두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껄껄,, 읽어주셔서 감사해요ㅠㅠ❤
6년 전
독자6
하루...ㅜㅜ 저 피자길이에요 오늘도 종현이는 대바기네요... 흑흑 과거까지 품어주는 쏘 스윗...❤
여태까지 여주 불쌍해서ㅜㅜ 대입돼서 너무 속상했던것... 최면술사 부기 만나서 다행ㅠㅠ 종현이가 안아줄때 읽는 저마저 안정감 들구 좋아요 ㅠㅜ

6년 전
랑두
부족한 글 보면서 그렇게 생각해주셔서 고마워요 정말로ㅠㅠ 사랑합니다,,❤
6년 전
독자7
종현이 쏘스윗....ㅜㅜㅜㅠㅠㅠ아 여주도 참 안타깝고 그러네여ㅜㅜㅜㅜㅠ으어어엉ㅜㅜㅜ잘 보고갑니당
6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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