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미치도록 새파랬다. 그것이 난 지독하리만큼 원망스러웠다.
- K -
Caution
W. 반다이
02
" 정호석 대위라."
"............"
" 오랜만에 보는 첫인사치곤 맘에 썩 들지는 않네."
" 그러라고 한 거야. 불편하라고."
" 그 동안 행적은 왜 감춘거야?"
행적이라. 지민이 여전히 단맛이 전혀 가시지 않은 입술을 손끝으로 쓸어담았다. 보고할 이유는 없는 것 같은데. 그리고선 호석의 말이 웃기다는 듯 느리게 히죽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럼에도 호석은 기분이 나쁘지 않은지 그를 가만히 응시했다.
" 드러낼 필요도 없잖아."
" 생존여부 정도는 알려줬어야지."
" 관심 끄고 홍콩이나 왔으면 쇼핑이나 하다 가."
" 쇼핑 따위로 내가 홍콩에 왔을 거란 생각은 너한테 어울리지 않아."
자신의 의도를 다 알아챘음에도 부러 빙빙 돌려 대답하는 지민이 마음에 들지 않은 지 처음으로 호석이의 여유로운 낯빛이 점차 평온함을 잃어갔다.
" 그러니까 별 쓸데없는 오지랖 그만 부려."
"..............."
" 적어도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안다면."
"..............."
" 이 정도쯤은 다 눈치채고 있잖아."
손에 들린 막대 사탕을 보란듯이 판자 위로 내던진 지민이 호석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꺼지라고요, 대위님하고 숨 쉬는 이 순간이 난 저기 쪽방에서 자는 일보다 더 치욕스러우니까. 울분을 토하듯 말을 내뱉으며 주먹을 말아쥐던 그의 두 손이 가엾게 떨려지는 모습을 본 호석이 고개를 아래로 떨구었다.
" 알아. 명목 없다는 거."
" 알면 좀 - "
" 네가 필요해서 그래. 이건 상사가 아닌 형으로서 부탁하는 일이야."
" 무전을 너무 많이 들으셨나. 꺼지라는 말 못 알아들었어요?"
" 알아, 네가 정국이를 얼마나 의지했는지-."
" 시끄러."
" 이번 일은 네가 꼭 필요해."
"..............."
"아니, 꼭 네 손으로 처리해줬으면 좋겠다."
주구장창 바닥을 내려다보던 호석이 이내 끝이 나버린 마지막 문장과 함께 지민을 올려봤다. 그의 간절한 부탁을 조용히 듣고만 있던 지민이 순간적인 감정을 추스리지 못하고서 옆에 있던 테이블을 힘껏 발로 찼다.
" 형만 아니었어도 우리가 군인이 되진 않았어. 그럼 정국이가 죽을 일도 없었겠지."
"................"
" 형이 원하는 게 뭐든 간에 평생 죄책감 안고 살아요."
"..............."
" 우리 절대 용서 안 해."
호석의 가슴께를 두드리며 단호하게 내뱉던 지민이 그의 왼손에 들린 차키를 매섭게 뺏어들어 길을 앞장섰다. 그러자 그의 행동을 지켜보며 유유히 뒤를 따르던 호석이 머지않아 지민의 손에 아슬하도록 매달린 차키를 다시 손아귀에 집어넣었다. 가벼워진 손에 놀랐는지 이어 지민이 뒤를 돌아 호석일 쳐다봤다.
" 운전대 잡은 지도 오래된 놈이 무슨 운전을 한다고."
" 생각해주는 척 하지마. 역겨워."
" 마지막으로 하나 더."
".............."
" 용서라는 말은 함부로 담는 게 아니야."
"............."
"그 말 만큼 위험한 일은 세상에 없거든."
".............."
" 명심해."
가자. 말을 끝낸 호석이 지민을 지나쳐 먼저 배 위 갑판을 내려왔고 그의 발자취를 따라오던 지민이 끝내 차문의 손잡이를 당겨버렸다.
Macau(마카오). Hongkong.
pm. 18 : 00
NIS 본부.
" 그럼 브리핑을 시작하도록 하겠-"
철컥- 스크린을 화면에 띄어놓은 어두컴컴한 회의실 안으로 환한 햇살이 잠시 드리우다 곧바로 문을 닫아버린 두 명의 인영으로 인해 회의실은 다시 어둠 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 호석이야. 브리핑 다시 시작해, 김남준."
볼펜을 입에 물며 심각한 낯빛을 비추던 윤기가 회의실로 들어오는 호석일 짧게 쳐다보며 손짓했다. 그의 뒤에 겁먹은 아이마냥 몸을 숨긴 지민이를 보지 못한 것도 아니면서 그는 무심하게도 고개를 다시 스크린으로 돌렸다.
" 계속해서 현재 다국적 기업으로 정식 명칭은 골드락, 외신에서는 Ghost corp이라고 불려지고 있습니다. 표면적으론 각종 증권, 은행, 부동산 재테크로 국제 금융권을 휘어잡으며 큰 명성을 이어나가고 있지만 실상 내면으론 마약 밀매, 인신 및 성매매 조직적으로 아주 치밀한 범죄에 연루되어 있습니다."
" 하여튼 기업 새끼들 중에 뒷거래 안하는 인간들이 없어요. 주요 인물들은?"
" 왼쪽 사진으로 보이는 인물은 골드락의 현 재무이사로 장남 김태형, 그리고 오른쪽으로는 골드락의 비서실장 김석진입니다. 워낙 뒤에서 움직이는 기업이다 보니 이름 외엔 다른 정보가 존재하지 않아요."
끝이야? 윤기가 아쉽다는 제스처를 취한 채 고개를 작게 위 아래로 끄덕거리며 입을 달싹였고 그런 윤기의 말에 남준이 리모컨을 급히 넘겼다. 잠깐 쉬었다가 하죠. 그리고 화면이 뒤로 넘겨지던 동시에 무슨 이유인지 호석이 옆에 있던 지민의 손목을 붙잡고서 자리를 박차며 일어섰다. 어디 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브리핑을 중지시키는 호석일 어이없게 쳐다보던 윤기가 눈을 느리게 꿈벅거리다 이제야 상황 파악이 돼가는지 의자에 반은 걸치고 있던 몸을 일으켜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커피 마시러요. 그럼에도 호석은 자신의 손을 빼내려는 지민의 손목을 다시 그러쥐며 그들을 뒤로 한 채 회의실의 문을 세게 열었다.
" 뭐하는 짓이야."
" 밑에 가서 커피 좀 사와."
호석의 말이 끝나자마자 조용한 복도에 간결한 비웃음이 울렸고 대답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한 지민이 비열한 웃음소리와 함게 호석을 지나쳤다. 사오는 게 좋을 텐데, 언제까지 탈영병으로 살 순 없잖아. 호석이 자신에게 등을 돌리던 그를 향해 나즈막하게 읊었다. 반박할 수 없는 사실에 순간 입술을 확 깨물어버린 지민의 입에 비릿한 피맛이 감돌기 시작했고 이윽고 그가 회의실이 아닌 엘리베이터로 발걸음을 되돌렸다.
" 왜 이렇게 변한거야."
여전히 그에게 눈길을 주지 않은 채 앞을 걸어가던 지민이 호석일 낮은 목소리로 불렀다. 역시나 대답이 없던 호석으로 인해 알 수 없는 정적이 이어졌고 지민이 멈춰섰던 발걸음을 떼었다.
" 12 Americanno please.(아이스 아메리카노 12잔이요)"
주문을 끝내고서 한숨과 함께 머리를 헤집은 채로 지민이 근처에 있던 창가 자리에 앉았다. 그래서 오늘 몇 시에 올 건데요? 들려오는 간질한 목소리에 옆을 보던 지민이 해맑게 아이처럼 웃어보이는 옆 자리의 여자를 유심히 지켜봤다. 여태 애인과 통화를 하는 건지 입가에 미소가 떨어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괜히 심술궃은 마음에 운동화 앞코만 까딱거리던 지민이 조금씩 퍼지는 가스 냄새에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도 맡지 못한 건지 사람들은 여전했고 지민이 카운터로 가기 위해 조심스레 의자를 밀어냈다. 그 순간, 주변에서 굉음의 폭발음이 울렸고 순식간에 카페 안은 화재 연기로 가득해졌다. 앞이 보이지 않던 카페 안은 먼저 밖을 나가려는 사람들에 의해 풍비박산이 되어갔고 근처에 있던 폭발음의 여파인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던 지민의 옆으로 한 쪽 손이 뻗어나왔다. 목걸이. 내 목걸이. 목걸이를 찾는 건지 바닥을 더듬거리던 손목을 지민이 급하게 움켜쥐었다.
" 뭐하는 겁니까. 당장 나가요."
" 먼저 가세요. 이거 찾아야 해요, 저."
죽으려고 환장했어요? 연이어 터져나오는 굉음에 지민이 무작정 그녀를 제 품으로 끌어당겨 연기와 재로 가려진 식당 앞 문으로 걸어갔다. 이윽고 현장으로 구급대원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밖을 나온 지민이 제 품에 안긴 그녀와 함께 바닥으로 쓰러졌다. 고마웠어요. 들려오는 소리에 바닥 위로 누워있던 지민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옆으로 돌리다 연신 고마움을 표시해오는 여자에게 먼저 가본다는 말만 남겨놓고서 지민이 다친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그러자 여자가 지민의 팔을 급하게 잡아세웠다.
" 제 번호에요. 보니까 한국 분이신 것 같은데 감사했어요."
" 이런 거 필요없어요."
" 제가 불편해서 그래요. 전화번호 주세요."
" 필요없다고요."
있어요, 저한테는. 다른 메모지와 펜을 건네며 말을 걸어오는 여자에 지민이 거슬린다는 듯 펜과 종이를 세게 뺏어들었다. 됐죠. 갈게요. 이내 지민이 자신에게 쥐어준 메모지를 구기며 여자에게 대충 인사를 건낸 채로 급히 자리를 벗어났다.
"미쳤어, 다 죽을 뻔했잖아."
윽박을 지르며 대뜸 회의실 문을 열어제끼던 지민에 윤기가 일어서 회의를 잠시 중지시켰다. 잠깐만. 정호석, 무슨 수작이야. 자신을 부르는 윤기에 호석이 그의 어깨를 아프지 않게 눌렀다. 이는 그가 알아서 하겠다는 의미를 내포하기도 했다. 이를 모를리 없던 윤기가 어두웠던 회의실을 밝게 키워냈고 잿더미로 온 몸이 뒤덮여버린 지민의 형상에 미간을 남몰래 찌푸렸다.
" 살아 돌아왔네."
" 헛소리 집어쳐."
" 뭐가 문제야."
" 귀뜸이라도 해줬어야지."
" 전화 받아. 곧 있음 연락 올거야."
호석이 지민의 손에 들린 메모지를 향해 텃짓했고 지나지 않아 몇 초간의 진동이 적막한 회의실을 조심스레 울리며 끊겼다. 이윽고 설명이 필요한 얼굴을 가득 담아넣은 채 지민이 호석의 시선을 마주했다.
"우연을 가장한 만남."
".........."
" 물었었지. 내가 변한 이유."
" ..........."
" 지키지 못했으니까."
"..........."
" 새겨놔."
".........."
"언더커버 제 1 수칙."
"..........."
"사사로운 감정 따위에 휘둘리지 않는다."
그렇게 호석이 지민의 어깨를 툭툭 털어댔고 이와 함께 메모지가 바람에 힘없이 흔들려버렸다.
♥ 고마우신 저의 사랑분들 ♥
[스케치] [슝아] [톰보2] [컨태] [무네큥] [민피디] [밀테는비냉] [핑쿠릿] [박지민] [꾸꾸스]
안녕하세요. 반다이입니다.
잘 지내셨어여ㅠㅠㅠㅠㅠㅠ 제가 바로 찾아뵙는다구 했는데ㅠㅠㅠㅠㅠ 정말 죄송해요ㅠㅠㅠㅠㅠ 이제부턴 항상 좋은 모습으로 빨리 빨리 찾아뵐게여!!!
제가 댓글로 바로 찾아뵙지 못했었는데 암호닉 신청해주신 분들 한 분 한 분 꽉 안아드릴만큼 너무 감사합니다ㅠㅠㅠㅠㅠㅠ 항상 부족한 저의 글을 읽어주셔서 너무너무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언제나 저의 감사한 독자님들에게 좋은 일만 가득하셨으면 좋겠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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