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적 평화롭게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표지훈이 다시 8월 4일로 돌아가고 나서도 벌써 나흘이 훅 지나 어느새 8월은 8일이나 완성되어 있었다. 8일이 완성되다, 뭔가 좀 웃긴 표현같다는 생각을 했다. 거창해보이기도 하고. 어쨌거나 완성되고 있는 것은 맞았다. 우리는 미완성인 틀어진 시간을 다시 만들어 완성시키려고 하는 거니까.
표지훈이 처음으로 호출기를 쓴 게 내 뇌리엔 꽤 강렬하게 박혔나 보다. 그 짧은 시간 속에 나는 호출기를 손에 쥐고 다니는 버릇이 생겼고 하루종일 화면 위의 빨간 점을 노려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표지훈에게서 호출이 온 적은 없다. 나도 먼저 연락을 취한 적도 없고. 어쨌거나 이제 고작 8일이다. 그 짧은 시간 안에 사람은 쉽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으며 나는 하품을 했다. 옆에 있던 박경은 조금 피곤한 얼굴로 커피를 마시고 있고.
"있지, 우지호."
"뭐."
"내가 생각을 해 봤는데, 커피를 마시는 건 우리한텐 자살 행위인 거 같아."
자살 행위? 내가 살짝 눈을 크게 뜨며 뭐냐는 듯한 표정을 짓자 박경이 사뭇 진지하게 말한다.
"하루 8시간 근무. 우리는 잠이 와서 커피를 먹어."
"어."
"그리고 정작 자야 하는 시간엔 카페인 때문에 잠을 못 자지."
듣고 보니 왠지 설득력 있네. 내가 '어?'하는 반응을 보이자 박경이 씨익 웃었다. 어떠냐, 이 박경 님의 통찰력이. 그리곤 곧바로 손에 들린 커피를 원샷해버리는 모순적인 모습에 나는 "근데 지금 왜 커피 마셔?"하고 물으니 하는 말이, 그래도 안 마시면 피곤하니까. 결국 박경은 카페인의 노예의 길을 선택하고 있었다. 저건 바본가.
잠시 박경 때문에 한눈을 팔았다. 나는 다시 화면 위의 빨간 점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루종일 빨간 점만 보니 저걸 화살로 쏘기라도 해야 될 것 같은 기분. 내딴엔 열심히 그 빨간 점을 노려보며 표지훈의 보호(나름대로)에 착실히 착수하고 있었는데, 남들이 보기엔 그냥 멍 때리는 걸로 보이는 모양이다. 김유권은 하루에도 열두 번은내 뒤를 지나가며 '우지호 집중해'를 외쳐대니. 아니다. 김유권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건가? 내가 이렇게나 눈을 부릅뜨고 있는데. 멍청한 생각들을 하며 빨간 점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보니 오늘은 예보 그래프를 확인 안 했네.
옷 안주머니에서 돌돌 말려 있는 예보 그래프를 꺼냈다. 책상 위에 펼쳐 다시 말리지 않게 양 끝을 손으로 살짝 누르고 오늘 날짜를 보니, 8월 8일. 속도 오류 가능성…매우 큼? 나는 꿈벅거리며 예보 그래프를 내려다 보다가 옆에 있는 박경을 툭툭 건드렸다. 아, 왜. 이거 좀 봐.
"이게 뭐?"
"뭐냐니. 오류 일어날 거 같다니까."
"시간은 어차피 맨날 속도 바뀌는 거 알면서 뭘 그렇게 구냐."
그리곤 하품을 하던 박경은 그 큰 입을 쩍 벌린 채로 잠시 멈추었다. 야, 그러면, 표지훈은?
"그래. 내 말이 그 말 아니냐. 표지훈은 낙오자니까 시간이 빠르게 가고 느리게 가는 걸 그대로 느낄 수 있잖아."
"난감하게 됐네. 지금 몇 시지?"
일곱 시 사 분. 한 시간 뒤면 교대 시간이다. 이거 정말 난감하게 됐네? 박경이 아하하 웃고 나는 주머니에서 호출기를 꺼냈다. 그리고 버튼을 꾹. 신호는 가고 있지만 반응은 오지 않는다. 아, 이 새끼 진짜. 말 지지리도 안 듣는다. 엉? 박경이 옆에서 난리를 피우고 나는 혓바늘이 돋은 혀를 괜히 내밀었다 집어 넣으며 호출기 버튼을 계속 눌러댔다. 시간이 아침이라 그런 거겠지. 지난 번에 헤어질 때 표지훈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표지훈을 감싸주니 박경은 '아이고!'하며 놀라는 시늉을 한다. 어쨌거나 아무리 호출을 해도역시 반응은 없다. 나와 박경은 표지훈을 부르는 것을 포기했다.
"대충, 오류 일어날 시간은?"
"어디 보자."
7시 58분. 다시 한 번 시간을 보니 어느새 아까 시간에서 2분이 지나 있다. 그걸 확인한 박경의 표정이 긴장으로 조금 굳는다.
"일단 오류 일어나면 그건 그 때 가서 해결하면 되는 거니까 좀만 더 기다려 보자. 괜히 걱정하지 말고."
"나 지금 손 떨리는 거 보이냐."
후. 한숨을 내쉬었다. 예보 그래프를 확인한 이민혁네 팀원들이 여기저기 얘기를 해댔는지 벌써부터 사령관실은 조금 술렁이고 있다. 그리고 물론 가장 바쁘게 된 건 오늘도 나다.
"우지호 씨, 오류 대비해. 낙오자한테는 연락 취했어?"
"네? 아, 그게. 연락이 안 되네요."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하다가 이내 웃음기를 싹 지웠다. 웃어도 되는 상황인가? 불안함은 자꾸 커져간다. 믿을 테니까 실망시키지 마요. 그 말을 들은 지 얼마나 됐다고…. 오류가 생긴 후 표지훈의 냉담할 반응이 벌써부터 겁난다.
"57분."
"네가 말 안해줘도 알거든?"
삼 분 뒤 면 교대 시간. 그리고 일 분 뒤는 아마 오류가 일어날 시간. 긴장으로 손에서 땀이 배어 나왔다. 십 초, 구 초. 여기저기서 초를 세는 소리가 들린다.
"58분."
띡. 빨간 전자 시계의 분 자리가 58로 바뀌었다. 우리의 시선은 모두 커다란 화면에 박혀 있었고, 화면은 너무도 평화롭게 흐르는 시간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우리는 잠시 숨을 죽이고 60초를 더 기다렸고 58은 쉽게 59로 바뀌었다.
"야, 됐네. 됐어."
여기저기서 안도의 숨소리가 들리고 괜한 걱정을 했다는 듯한 반응이 쏟아져 나온다. 다행이네. 괜히 힘이 빠지고 곧 교대 시간이 되었다. 나도 박경도 자리에서 일어나 터덜터덜 걸어 나가고 미리부터 오류 생각에 급히 나와 있던 컨트롤러들은 빈 자리로 들어가 앉는다. 박경은 하품을 쩍쩍하며 '난 화장실 좀 들렀다 갈란다. 너 먼저 가라'하곤 사라진다.
항상 교대 시간 직전까지는 정신이 어느정도 멀쩡하다가 딱 교대 시간을 알리는 부저가 울리면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몽롱한 정신으로 비틀비틀 좀비마냥 걸어가는 다른 컨트롤러들을 보며 나도 그 뒤를 따랐다.
아무 일도 없겠지. 내 방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 입으며 계속 생각했다. 예보 그래프는 틀릴 수 있다. 맞아. 오늘도 틀린 거야. 너무도 쉬운 결론이다. 7시간 30분 뒤로 알람을 맞추고 나는 침대에 누웠다. 이제 눈을 감고 있으면 잠이 오겠지, 뭐….
그리고 뜬 눈으로 두 시간을 보냈다.
"아, 씨. 진짜."
왜 잠이 안 오지. 결국 몸을 일으키니 머리가 띵하다. 분명 잠을 자야 하는 건 맞는데 왜 잠이 안 올까. 침대 속은 따뜻하고 이불은 부드럽다. 빛도 없으니 딱 자기 좋은 최적의 조건인데 왜 잠이 안 올까. 관자놀이를 손목뼈로 꾹꾹 누르다가 아무렇게나 던져둔 옷 위에 올려진 호출기가 눈에 들어왔다. 자야 되는데. 벌써 두 시간이나 지났다. 다음 타임엔 어쩌려고 이래. 호출기가 금방 시야에서 벗어나고 나는 한숨을 내쉬며 천장을 올려다 보았다. 그리고 그 때였다.
정말 옛날에 그런 가사도 있지 않았나.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나는 방 안에 울리는 경보음을 듣자마자 흰 가운과 호출기만 들고 재빠르게 방을 나섰다.
-시간이.
표지훈의 목소리가 사령실에 울렸다. 다들 긴장한 얼굴. 약간 떨리는 감이 있는 목소리가 낮게, 속삭이듯 들려온다. 호출기로 전송된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모두에게 들리고 있었다.
-시간이, 너무 빠르게 가요.
너무 빨라요. 표지훈의 말대로였다. 현재 시간은 약 1.7888배 빠르게 움직이고 있으니까. 어떻게, 못 늦춰? 내가 표지훈에게 들리지 않도록 마이크를 살짝 손으로 덮으며 묻자 다른 쪽에서 여자 한 명이 팔로 엑스를 만들며 고개를 젓는다. 아, 진짜. 지금 상황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지금쯤 당황스러워할 녀석을 생각하니 눈이 가늘게 뜨인다. 당황스럽다 못해 무섭지 않을까.
지금 시간은 열 시 사 분. 표지훈은 보충 수업을 듣기 위해 학교에 가 있었고 시간은 오류를 일으켰다. 갑자기 나를 제외한 주변의 모든 것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칠판에 필기를 하는 선생님의 손이 빨라지고 옆에서 떠드는 아이들의 입이 모터를 단 듯 빠르게 움직인다. 시계 초침마저 고장난 듯 빠르게 째깍째깍. 나는 짧게 신음하며 눈을 감았다.
"표지훈. 나 우지호야."
-….
"지금 어떤지 알아. 어떤 상황인지 알아. 그런데 지금 당장은 시간을 똑바로 흐르게 할 수가 없어. 기술팀도 그렇고 다들 작업에 착수했으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야 해.
-그럼, 그럼 어쩌라고요.
"손 들어."
뭐라고요? 표지훈의 어이없다는 듯한 목소리와 거의 동시에 누군가가 '찾았습니다!'하고 외친다. 사령실의 가장 큰 모니터에 화면이 떠올랐다. 학교? 용케도 찾았네. 제멋대로 여기저기 퍼져 있는 시간의 잔재가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한 교실이었다. 모든게 빠르게 움직이는 와중에 혼자 가만히 앉아 있는 맨 뒤에 앉은 덩치 큰 남학생. 분명 표지훈이다. 다행이다. 뭐가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지도 모른 채 나는 그저 그렇게 숨을 내쉬었다.
"손 들어. 선생님한테 보이게."
-….
"아파서 엎드리겠다고 해. 아픈 척 해야 돼. 지금 그렇게 꼿꼿하게 서 있는 것보단 훨씬 괜찮을 거야. 그냥 엎드렸다가 선생님이나 주변 애들이 깨우기라도 하면 곤란하니까 일단 내가 시키는 대로 해.
내 말에 표지훈은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화면에 나오는 것은 표지훈의 뒷모습 뿐이었다. 아무 말 없는 표지훈의 뒷통수를 바라보았다. 오른손엔 펜 대신 꽉 쥐고 있는 호출기. 분명 내 목소리는 저기서 작게 나오고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듣지 못하겠지만 표지훈만은 확실히 들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계속 화면을 응시하던 도중, 표지훈이 왼손을 들어올리는 것이 보였다. 나는 '말을 조금 빠르게 해'라고 말하고 표지훈의 목소리가 스피커로 울렸다. 선생님.
-선생님.
그 말에 앞에서 책을 읽던 남자 선생이 고개를 들고 표지훈은 말을 이어갔다. 몸이 안 좋아서 그런데 엎드려 있어도 될까요. 그 말에 남자가 미심쩍은 얼굴을 하고 그 모습을 화면을 통해 바라보던 누군가는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아, 애가 아프다는데 그냥 좀 그러라고 해! 그 신경질적인 외침에 주의를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그와 별 다를 바 없는 심정으로 화면을 바라보고, 한 여자는 기도라도 하 듯 두 손을 모으고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라. 선생이 그렇게 말하고 사령실은 순간 술렁였다. 짧게 환호하는 사람도 있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사람도 있고, 갑자기 키득키득 웃는 사람도 있다. 표지훈이 책상에 엎드리는 모습까지 보고 나서야 나는 몸에 긴장이 풀려 천천히 의자에 주저앉았다.
"잘했어."
-….
"이제, 이제 그냥 눈 감고 아무것도 듣지 마. 그냥 그러고 있어. 한숨 자도 돼."
-…예.
"잘했어, 표지훈."
신경에 잔뜩 날을 세운 듯한 목소리에 나는 조금 불안해졌다. 믿겠다는 소리를 들은지 얼마나 됐다고. 힘들게 얻게 된 그 믿음을 다시 잃을까봐 조금 불안해졌다. 힘없이 호출기를 그러쥐고 있던 와중에 스피커에선 소리를 한껏 낮춘, 어린아이가 투정을 부리는 듯한 말투의 목소리가 다시 한 번 들려왔다.
-놀랐잖아요. 하여간.
그와 동시에 통신이 끊겼다. 표지훈이 먼저 끊은 것이다. 호출기를 책상 안으로 넣는 표지훈의 모습을 보며 나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후 한숨을 내쉬었다. 옆에서 누군가가 먼저 말을 건다. 방금 건 좀 애다웠네요. 그동안 하도 까칠해서 곤혹이었는데. 그 말에 나는 허허 웃고 말았다. 어쨌거나 저거, 지금 화는 안 난 거 맞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나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군가가 '수고했어요'하고 말하는 소리가 들리고 나는 '네'하고 말하며 천천히 사령실을 나섰다. 오른손엔 여전히 호출기를 꽉 쥔 채였다.
| 더보기 |
급 마무리...ㅎㅎ분량도 쉣인건 안비밀...근데 이거 쓰는데 일케 오래걸린건 비밀... 오랜만에 글 쓰려니까 막 손이 다 떨리네여ㅋㅋㅋㅋㅋ놀램ㅠㅠㅠ사실 뒷부분은 전에 써뒀던 거 다듬으면서 써서 좀 더 빨리 썻네요... 맞다 님들 이제 2014년이에옄ㅋㅋㅋㅋ2014년ㅋㅋㅋㅋㅋ근데 지훈인 2013년ㅋㅋㅋㅋ우리는 미래인... 제가 예전엔 여기다 뭔 헛소리를 지껄였죠...?더보기를 누르고 사담 늘어놓은건 기억이 나는데 대체 뭔 얘기를 썼었을까...일단 뭐라도 써야될거같으니까 쓸래요 저 오늘 점심 불닭볶음면 먹음/진지/ 님들은여?^0^ 아맞다..글구 독방에서 제 나이 언급하지 말아주세여...ㅁ7ㅁ8별건 아니지만 저도 원해서 제 나이 인티에서 일케일케 그...밝히다?아무튼 그런게 아니어서 슬펑... |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없음


인스티즈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