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민의 철벽이 또라이한테 통할 것인가? E 꼭 재생하시고 읽어주세요! E 그런 날이 또 있을까 싶었다. 마냥 당황스러운 일들의 연속, 그 때는 그저 놀람에 시간을 흘렸지만 돌아보고 홀로 생각하게 만드는, 역시나 오늘도 나는 임영민으로 돌아가는 하루를 지냈다. 여전히 임영민의 생각으로 하루를 시작해, 임영민으로 밤을 지샜다. 영민이는 그런 존재였다, 내 하루의 전부. 한 발 멀어지려고 하면 잡아버리는, 알다가도 모를 놈이었다. 그리고 난 항상 모른 척 잡혀줬다, 근데 이젠 그 붙잡힘이 얼마를 버틸까. 여전히 임영민이 좋지만 1년이 지난 지금의 난, 조금은 바뀌어 가고 있었다. 사랑 받는다는 감정을 느껴서, 박우진이 날 자꾸 바꾸려고 해서. E-1 요새 나의 음악 플레이 리스트를 틀어보면 이상하게도 달달한 노래보단 묘한 분위기를 띄는 노래들이 가득했다. 밝은 척을 가장한 어둡고 쓸쓸함이 잔뜩 묻힌 가사들, 그리고 그 노래를 듣고 있는 오늘, 굉장히 우울했다. 나 스스로 우울하다고 생각하면 더 우울하단 걸 알지만 오늘은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오늘은 우리 엄마의 기일이었다. 이번이 6번 째 기일이었다. 변함 없이 아빠는 엄마의 기일에는 관심이 없었고 익숙한 나는 늘 홀로 중학생 때부터 나는 납골당을 다녔다. 아침에 눈을 뜨고 담담하게 준비를 했다. 오늘은 평소 입던 옷과 달리 검정 와이셔츠와 단정한 검정색 치마를 입었다. 가방도 검정 크로스백을 챙겼다. 가만히만 있어도 어두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의미 모를 한숨을 내뱉으며 가방에 전공책과 지갑, 파우치를 챙겼고 곧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한 발자국을 걸을 때마다 이유도 없이 코 끝이 찡해졌다. 하루를 시작하기 전부터 울고 싶었던 감정들을 눌렀음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울컥하는 감정이 치솟았다. 제어가 안 됐다, 난 6년 째 엄마에게 언제나 어린 중학생이였으니까. 수업을 듣는 둥 마는 둥,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오늘 하루가 그랬다. 김동현이 애써 걸어주는 장난에도 난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김재환의 놀림에도 아무런 감정이 없었고, 세운이의 물음에도 아무런 답이 없었고, 광현이의 걱정 어린 목소리에도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내가 이상하단 걸 진즉 눈치 챈 애들은 날 풀어주려고 노력을 했고, 임영민은 그저 나를 바라봤다. 오늘 하루는 이상하게도 내내 그들과 붙어 있었다. 평소에도 놀자고 졸라도 놀아주지 않던 다섯 놈들이 이상하게도 혼자 있고 싶은 날에만 이래왔다. 다시 정체 모를 한숨이 나왔다, 그저 바닥만을 보고 길을 걷던 중이었다. 그렇게 회색 아스팔트 바닥만을 바라보며 생각 없이 걷던 와중 누군가와 부딫혔다. 작은 신음을 내며 나는 넘어졌고, 상대는 아이스크림을 들고 있었다. 덕분에 찐득한 하얀 크림이 검정색 와이셔츠에 묻어났다, 아 내 옷 어떻게 해 짜증 나, 아 진짜 이러고 엄마한테 어떻게 가란 건데..., 아침부터 어렵게 참아왔던 눈물이 결국 터졌다. 그 때의 난 넘어졌다는 핑계로 삼키던 울음을 뱉었다. - 김여주, 일어나. 아이스크림을 흘린 사람은 하나의 사과도 없이 뭐야, 왜 저래... 라는 말만을 남겨둔 채 갈 길을 갔다. 아니 내 잘못도 있지만 사과는 해줘야 되잖아, 나 옷도 다 버렸는데 서러워 그래서 우는 거야, 라며 같잖은 이유를 핑계 삼아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답답함에 몸부림 치는 눈물임을 알면서도 스스로 만들어낸 핑계를 앞세워 서럽게 울고 있었다. 사실 이렇게 울고 싶었다, 그래야 풀릴 거 같아서. 다만 갑작스런 나의 울음에 같이 있던 놈들은 당황스러웠는지 다가오지도 못한 채 뒤에서 어버버 거리면서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도 못했고, 놈들 중 임영민이 다가와 내 앞에 섰다. - 일어나라고, - ....., - 야 안 일어나? - ..... 알아서 할 거니까 신경 쓰지마. 난 꼭 말이 이렇게 밖에 안 나갈까 뱉고도 후회를 했지만, 오늘은 네가 날 이해해주기를 바랐다. 내가 너에게 늘 졌으니까, 오늘만은 네가 나한테 져주기를 바랐다. - 너 오늘 대체 왜 그러냐, - ....., - 아니 씨발 그러니까 누가 그렇게 땅만 보고 걸으래? - ... 왜 소리를 지르는 건데, 임영민이 갑자기 소리를 치길래 그게 또 서럽다고 다시 울면서 말을 했다. 나도 넘어지고 싶어서 넘어진 게 아닌데 왜 나한테 화를 내는 건데, - ...아, 김여주. - 아 또 뭐, 그냥 꺼져. 다 보기 싫어, - ... 소리 지른 건 미안, 그니까 일단 일어나. 너 무릎 다 나갔다. ... 왜, 이상하게 다정한 네가 이렇게 슬플까. - 세운아, 소독약이랑 밴드 좀 구해다 줘. - 아, 그래. 다녀올게, 왜 오늘은 모든 게 평소 답지 않은 걸까, - 그리고 김동현 너 김재환이랑 이광현이랑 그냥..., 그래 얘 먹을 거나 좀 사와, - ... 어? 뭐 뭐 사올까, - 만드는데 엄청 오래 걸리는 음식으로, 되도록이면 오지 말라는 뜻이야. 알지? 평소 답지 않은 임영민의 장난 어린 웃음도, - 아 빨리 왔네 세운아, - 응, 약국이 앞에 있어서. 여기. - ... 고마워, 근데 나 얘랑 둘이. - 영민, 나 카페 좀 다녀올게. - ... 아 그래, 평소 답지 않게 빠르게 빠지는 정세운도, - ...야 나한테 잘해주지 마, 그냥 다 너무 슬퍼서, - ... 뭐? - 이런 거 하지 말라고, 야 너 내가 재미있냐? 진심 아닌 말들을 내뱉으며, - .... 야, - 이런 거 하나에 넘어가니까, 끝낼 거 같다가도 네 말 한마디에 쉽게 넘어가니까. - ....., - 너도 내가 좆같지? 근데, - ...., - 나보다 내가 좆 같을까, - ......, - 모른 척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넌 내가 우습지, 그래 우습겠지. 나도 내가 그런데 너라고 안 그러겠냐. - ....김여주, - 아니면 씨발 도대체 왜 헷갈리게 그러는 건데. 난 나를 보호했고, - 야, - 인류애가 샘 솟니? - 말 진짜 존나 예쁘게도 하네, 씨발. - 안 그래도 조금만 건들이면 눈물 날 거 같은데, 왜 오늘따라 앞에 나타나서 화를 내게 만드는 건데. - 걱정한 내가 병신이지, - ......, - 그래 그렇게 좆 같으면 서로 그만해, - 야, 서로라고? 말은 바로 하자. 네가 그만할 게 뭐가 있어. - ...., - 나 혼자 시작하고 나 혼자 끌어가는 감정이잖아, 아.... - 됐어, 그래 씨발. 결국 이렇지 뭐, 그래 이런 게 우리랑 어울릴 리가 없잖아. - ...., - 간다. 알아서 붙혀. 차가운 말을 뱉고도 손에 밴드를 쥐어주고 가는 따뜻한 임영민의 손의 온기까지 사라진 후, 난 보호막 속에서 혼자 남겨져 엄마를 잃은 애 마냥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 임영민이 떠난 벤치에 혼자 남겨졌다. 없는 눈물을 쥐어짜낸 덕에 더 이상 눈물도 안 났다. 남겨진 내 모습에 사람들은 한 번씩 날 쳐다보고 갔다. 가방에 있는 거울을 꺼내서 얼굴을 보니 살짝 번진 메이크업과 흰색 아이스크림이 묻은 와이셔츠, 그리고 손에는 밴드를 들고 무릎에는 굳은 피와 상처까지 한 번쯤은 쳐다볼 법한 모습을 띤 채 앉아있었다. 그저 한숨만이 나왔다, 다 울고 나니까 뭔 짓을 쳤는지 자각을 했다. 준 떡을 받아 먹지도 못했던 거지 지금 내가, - 김여주 미친년, 아 졸라 싫다. 멍청하게 혼잣말을 내뱉고는 임영민이 건네고 갔던 밴드를 뜯어 상처 위에 조심이 붙혔다. 끈적한 아이스크림 덕에 망가진 옷은 다시 복구가 불가능했다. 앉아서 화장이라도 수정을 해야겠단 생각으로 파우치를 꺼냈다. 한 손에 거울을 들고 대충 화장을 수정해냈다. 슬슬 우울함의 끝인 종착점을 가야할 시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가는 길이 무서웠다, 한숨을 쉬고 일어나서 걸음을 떼려고 할 때 쯤에 갑자기 손목을 잡는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아봤다. - ... 어? - 야, - ... 임영민? - 갈아 입고 와. 들고 있던 쇼핑백을 앞으로 건네는 임영민의 얼굴을 쳐다보다 쇼핑백을 받았다. 안에는 지금 입고 있는 옷과 굉장히 유사한 옷 하나가 들어있었다. 그 날은 그랬다. 정말 이런 날이 또 있을까 싶은 일들의 연속, - 영민아, - 야 내가 생각을 해봤는데, - ...., - 이해가 안 가서 그래. - ....., - 네가 생각하기에도 우리가 이런 관계가 안 어울려서 말 그딴 식으로 하는 거냐? - ....., - ... 말로만 뭘 어떻게 좋아한다고 하지 말고, 무슨 일이 있으면 말을 좀 하라고 말도 안하고 알아주길 바라는 거 진짜 존나 이기적인 거니까. - ... 영민아, - 너 하나 때문에 오늘 나를 포함한 애들이 다 안절부절 거린 거 뻔히 알면서도, 넌 너 좋자고 애들 냅두고 네 감정만 신경 썼잖아. - 너는 나를 친구로써 도와주는 거야, 그 이상인 거야? - ....., - 갑자기 이렇게 대하니까 조금 헷갈려서 그래, 기대가 생겨서 실망을 하게 돼. - 김여주, - 영민아, - ...., - 오늘만, 딱 오늘 하루만. 1년 중에 한 번만 나한테 좀 져주라. - ......, - 그 정도는 친구로써도 해줄 수 있잖아. 돌아보면 헷갈리게 만드는 그런 상황들, - 이해 못 해, 못 져줘. - ...., - 해주길 바라지 마, 우리 친구 아니잖아. - ...., - 너 나 친구로 안 보잖아. 돌아보면 생각을 하게 만드는 말들, - 그러니까 나한테 상황도 모르고 너 다 이해하라고 하지마, - ...., - 난 너 친구라고 생각 안해. 꼭 생각을 하게 만드는 넌 임영민이였다. E-2 하루가 흘렀다. 어제는 임영민 덕분에 울어서 엄마 앞에서 처음으로 울지 않은 유일한 날이었다. 그리고 지쳐 쓰러져 잘 수 있었던 유일한 날, 항상 그 날은 밤을 지샜던 날임에도 불구하고 잘 자고 일어났다. 공강인 덕에 부은 눈도 그닥 신경 쓰이지 않았다. 익숙하게 폰을 집어 들어 카카오톡에 들어갔다. 폰에는 어색하고 어색한 말투들의 연락들이 넘쳐났다. 김동현 김재환, 그리고 정세운과 이광현의 연락들. 그리고 역시나 임영민의 연락은 오지 않았다. 위에서부터 차례차례 답을 해냈다. 놈들은 날 배려한다고 한 건지 아무도 어제의 일에 대해 직접적으로 묻지 않았다. 그냥 어제는 괜찮냐고, 그게 어제 아이스크림 사건을 두고 말하는 건지 아님 하루 종일 우울의 극치를 달리던 나를 두고 말하는 건지는 내가 가장 잘 알았지만 아주 평범히 말을 돌리면서 아이스크림 다시는 안 먹겠다고 장난을 담긴 말들을 가득 적어냈다. 그리고 마지막 김동현 톡을 보는 순간 오늘의 부은 눈은 글렀다고 생각했다. 홍건 새끼 [ 어제는 네가 신경 쓸 거 같아서 아주머니한테 못 다녀왔어, 그래서 지금 납골당 가는 중이야. 어제 안 괜찮았겠지만 난 네가 조금은 덜 슬퍼했으면 한다. 그냥 왜 자꾸 억지로 더 슬퍼하려고 해 안 그래도 되잖아] am 4:30 [ 그리고 어제 임영민 네 걱정 존나 많이 함 그니까 그냥 평소처럼 대해 그게 너희 화해 방식이잖아 ] am 4:30 [어쨌든 오늘은 6명 회식 날~~~ 저녁에 7시까지 안 나오면 뒤진다.] am 4:31 * 김동현과 나는 어릴 적부터 친한 친구였다. 지랄 맞은 내 성격에도 유일하게 웃어주는 몇 없는 친구, 꿈도 비슷해서 어릴 적부터 같은 동네 같은 학교 같은 학원의 루트를 타온 단짝 친구라고 할 수 있었다. 어릴 때는 여자랑 남자랑 친구라면서 놀리는 여럿 애들도 있었지만 그땐 그랬다. 그게 뭐가 어때서? 김동현은 내게 여자인 친구 역할을 다 해줬고, 나는 김동현에게 남자인 친구 역할을 다 해줬다. 그리고 여자랑 남자의 구분을 나누는 것도 웃겼다. 사실 난 우리가 정말 같은 대학까지는 올 줄 몰랐었다, 장난식으로 대학도 같이 가면 대박이겠다. 뭐 아싸는 안 되겠다라는 농담 따먹기 식의 말은 많이 했지만, 서로 지겹다는 말 뒤에는 다행이라는 감정이 뒤따라 다녔으니까. 동현이는 엄마가 돌아가신 후 아빠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큰 사람이었다. 동현이랑 동현이네 어머니랑 아버지가, 많이 거둬주셨다. 아빠의 사업이 망하고 빛에 쫓겨 다니다가 엄마는 숨을 거두셨다. 스스로, 아빠는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모든 잘못의 화살을 엄마와 나로 돌렸다. 가장을 믿어주지 않는데 내가 성공할 수 있겠냐고, 아빠도 아빠 나름대로 힘들었을 건 알아서 그땐 그냥 참아 넘기려고 했지만 아빠는 술에 홀리셨고 나에게 손찌검을 한 이후로 동현이는 절대 아빠와 나 단 둘이 만나게 두지 않았다. 그 날의 행동은 아빠의 실수인 걸 알아 딱히 원망은 하지 않는다. 아빠도 그 날 이후로 나를 만나려고 안하니까, 그저 전화로 돈은 재촉하지만 그냥 그 정도로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빠는 내게 아빠가 아니였으니까, 정말 작은 정도 없으니까. 또 내겐 부모님만큼 따뜻한 두 분이 계셨고 가족 같은 김동현도 있었으니까, 난 정말 괜찮았다. * 김동현의 카톡을 확인하고 눈물이 잠깐 핑 돌다가 급히 정신을 차렸다. 아 잠깐만, 6명 회식이라면 당연히 임영민이 있다는 거잖아...? 급히 숟가락을 냉동고에 넣고 화장실로 들어가서 씻었다. 아 빨리 임영민한테 사과를 해야지, 맘이 좀 무거웠다. 사실 임영민 입장을 생각해보면 당황스러울만 하기도 했다. 지 좋다는 애가 온종일 우울해서 자기 딴에는 위로를 했는데 개지랄하고, 하지 말라고 하고 친구가 맞냐고 그 이상이냐고 묻고, 갑자기 울고 꺼지라고 하고, 이유도 상황 설명도 없이 그냥 네가 져줘 오늘 하루는 네가 져! 이러는데 성격 참도 고운 임영민이 네! 알겠습니다! 하고 받아주겠다... 그래도 어제 임영민은 많이 참은 편이였는데 그거에도 난 별 지랄 다했었지? 넉넉한 통장 사정은 아니지만 어제를 돌이켜보니 내가 민폐란 걸 새삼 깨달았고, 새삼 김동현에게도 고맙고 겸사겸사 애들한테도 미안하고 그래서 그냥 선물이라도 사야겠다고 맘 먹고 급히 준비했다. 약속 시간까지 널널히 시간도 남으니까 애들 줄 선물이나 쇼핑해야지, 설렌다. 단순한 난 애들한테 줄 선물을 산다고 생각하니 급 기분이 좋아지고 설레서 준비를 서둘렀다. 어제와 달리 굉장히 화사하게 꾸미려고 힘썼다. 얼마 전에 구입한 샤랄라한 점프수트를 입고 고데기로 머리에 웨이브를 넣고, 오렌지 컬러 블러셔를 사용하고 립도 화사하게 쉐도우도 화사하게 화장을 정돈했다. 흰색 크로스백에 지갑과 파우치, 거울과 이어폰을 챙기고 신발을 신고 집을 나섰다. 4월의 끝자락, 벚꽃은 지고 있었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아 난 기분파가 틀림없다. 왜 이렇게 어제랑 상반되게 기분이 좋지, - 아 좋다, 익숙한 시내에 도착해 선물을 하나씩 골랐다. 오늘은 모았던 돈 한 번에 날리는 날, 가벼운 발걸음으로 백화점을 들어가 남자 향수 코너를 갔다. 하나씩 향을 맡으며 임영민과 가장 잘 어울리는 향을 찾았다. 한 12개 정도를 맡아보다가 코가 마비가 될 거 같았다. 아, 독하다. 인위적인 향들이 넘쳤다. 코를 한 번 잡고는 다시 향수 하나를 집어 들어 향을 맡았다. 헐, 완전 이거, 완전 임영민, - 저기, - 네, 고르셨어요? - 이 제품으로 주세요. - 아 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향수의 이름은 서툰 표현이였다. 이상하게 향도 이름도 너무 임영민이 떠올라서, -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이용해주세요. - 넹 감사합니다, 안녕히계세요. 생각만으로도 너무 심장이 떨렸다. E-3 아 월급이 텅텅 털린 기분이었다. 아니 털린 기분이 아니라 털렸다. 곧 새로운 알바를 하나 찾아야지, 간만의 쇼핑에 생각 없이 지르다보니 손에 늘어나는 쇼핑백에 같이 사라지는 월급이 애잔했다. 사실 사면서 간만에 옷도 좀 장만하느라 더 돈이 들었던 건 비밀이지만, 그래도 굉장히 신났으니 만족했다. 원래 돈을 쓰라고 있는 거고 아끼다가 똥 되니까 그래 게임 머니라고 생각하고 쓰지 뭐, 밥 좀 굶고 그냥 뭐 알바 좀 더 하고 잠 좀 안 자면 되지...., 어차피 이번 생은 알바 인생이었잖아? 씁쓸한 합리화를 하며 손에 들린 쇼핑백을 보니 그래도 뿌듯했다. 이광현이 그렇게 가지고 싶다고 노래 부르던 트레이닝복 세트랑 김재환이 언제할 지도 모르지만 세일하면 사야겠다고 찜해놓은 신발과 정세운이 입 벌리고 감상했던 셔츠를 구입했다. 죽일 놈의 기억력, 크 김여주 개멋져. 꽤나 가격이 나갔지만, 밥 좀 얻어 먹으면 되니까라 생각하고 뿌듯하게 길을 나섰다. 김동현에게는 그냥 그간 받은 게 많아서 충동적으로 졸라 질렀다. 완벽히 내일 후회를 할 걸 알지만 내가 김동현네 집에서 숙박비 밥값 다 안 내고 지낸 거 생각하면 이건 진짜 세 발의 피였으니까, 얼마 전 봤던 지갑이 많이 낡았던 게 생각 나서 브랜드 지갑 하나 장만하고 동현이 어머니 아버지 선물까지 샀다. 아, 이건 진심 레알루 뿌듯, 센스 쩔어. 김여주 최고다. 그리고 영민이한테는 향수랑 목걸이, 목걸이 뒤에 글을 새길 수 있다고 하셔서 내가 남기고 싶은 말을 남겼다. 나의 청춘을 떠올리면 온통 너 뿐이야, * 시계를 보니 6시 45분을 가르키고 있었다. 쇼핑백이 너무 무거워서 택시를 타고 싶은데 돈을 아껴야할 거 같다는 생각이 너무 절실히 들어서, 걸어갔다. 오늘 회식은 얻어먹고 와야지. 아 근데 이게 다해서 얼마일까..., 아냐 굳이 생각하지 말자, 생각했다가 전부 반품하러 갈 수도 있을 거 같아. 낑낑거리며 들고 있는 쇼핑백 가운데 박우진의 선물도 하나 자리 잡았다. 그냥 굳이 사줄 생각이 없었는데, 이광현 트레이닝 복을 사다가 보니까 옆에 박우진이랑 잘 어울리는 하얀 백팩이 있길래, 나도 모르게 계산했다. 사고서 내가 이걸 왜 샀지 싶었지만 반품하기도 귀찮고, 곧 과외 알바 하는 거 우진이가 소개 해줬으니까. 여러 합리화들의 반복 끝에 항상 가던 장소에 도착했다. 아니 우리는 어떻게 가는 루트가 항상 학교 근처냐, 나 그래도 오늘 공강인데..., 5분 정도 지각한 나에게 김재환이 뭐라고 말하려던 순간 어마어마한 양의 쇼핑백을 봤는지 어버버 거리며 이게 뭐냐고 물었다. - ...뭐냐 이 많은 짐들은? - 어린 양들을 위한 누나의 선물이랄까, 조공템이다! - 김여주 아파? - ... 나도 사고 후회 했으니까 빨리 받아 가는 게 좋을 걸? 당장 환불하러 갈 수도 있음. - 고마워, 난 무조건 받을게. 재빠른 김재환의 발언에 김동현도 살며시 말을 했다. - 나도 받을게 고맙다. - 여주, 나도 고맙게 받을게. - 나도 주면 완전 고맙지, 예스굳! 정세운과 이광현도 차례대로 말을 했다. 짜식들 역시 선물 앞에선 작아지는 구나..., 난 생각했다, 내가 돈을 많이 벌어야지. 역시 사람은 돈이 많고 봐야 해. 김재환에게 쇼핑백을 건네고, 정세운에게도 건네고 이광현한테도 건네고, 김동현한테는 세 개를 건네니 10개의 눈동자가 한 번에 집중이 된 걸 느꼈다. 김재환의 찡찡거림이 귀를 파고 들었다. - 뭐야 뭔데, 왜 김동현은 세 개인데! - 시끄러워, 말이 많네 이게. 선물 도로 뺏어? - ... 아니, 미안. - 근데 여주, 왜 김동현은 세 개인데? 정세운이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건넨 쇼핑백을 아주 소중하게 잡아들고서는, - 몰라도 되거든, 왜 불만있어? 너도 선물 뺏어 줘? - 아니, 줬다 뺏는 게 제일 치사한 거랬어. 정세운의 말에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임영민을 바라봤다. - 야 임영민, - ... 어, - 너는 왜 달라고 안 해? - ...., - 그래 내가 오늘도 진다. 임영민 내가 어제 진짜 졸라 미안. - ......, - 제발 내 사과를 받아줘, 나 이거 너 사주려고 시작했다가 판 커진 거니까. 사과 받아 줘라. 너 내 사과 안 받으면 쟤네 선물 다 뺏을 거야. - 야 받아라, 무조건 받아라 임영민. - 안 받으면 임영민 데스노트 적을 거임. - 영민, 받아. - 나 이 트레이닝 복 진짜 가지고 싶었는데 영민아..., 김재환 김동현 정세운 이광현의 순서로 임영민에게 말을 이었다. 임영민은 무표정이던 표정을 풀고 고개를 살짝 숙이고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날 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 나한테 주려고 판 벌렸으면, 나만 주지 떨거지들까지 왜 챙기는데. - 야 저 새끼 말 심한 거 봐라. 임영민과 김재환의 투닥이는 소리가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늘 익숙한 사람들과 쌓아가는 추억 하나 하나가 버겁게도 행복했다. - 그래서 뭐 내 사과 받아줄 거야? - 응, - 아 돈 쓴 보람 쩐다. - 앞으로는 쓰지 마, - 어? - 너 월요일마다 알바 때 진상 얘기 하면서 힘들다며, 하루 종일 서있잖아 너. 그니까 그냥, 폰 만지느라 안 듣는 줄 알았는데 다 듣고 기억하는 널 어떻게 안 좋아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 그냥 이런 거 하지 않아도, - ....., - 하루 지나면 아무 일 없단 듯이 구니까, 우리. 근데 임영민이 언제부터 나랑 너를 우리라고 묶어 칭했지, - 안해도 된다고. 그래도 선물 고마워, - ....., - 자 술이나 마시자. 그 날 밤은 정말 더럽게도 좋은 사람들과 행복한 날의 향연이었다. E-4 아, 죽을 거 같아. 어제 나 또 얼마나 달린 거지, 그래도 집은 잘 들어와서 화장도 잘 지우고 잤네. 아 근데 내가 전에 술 또 마시면 김재환이랑 김동현 동생이라고 한 거 같은데, 아 몰라 동생하지 뭐. 알콜은 끊을 수 없는 거라고, 알콜 끊으면 내 인생을 끊는다. 화장실로 들어가 칫솔에 치약을 짜고 입에 물은 채 다시 방으로 들어가서 폰을 집었다. 반쯤 감긴 눈으로 공강인 김재환에게 문자를 보냈다. [ 해장 ㄱㄱ 난 재환이가 사줄 거라 믿어 ㅎㅎ ] 다시 화장실로 들어 가 입을 헹구고 세수를 했다. 찬물을 얼굴에 묻히니 어느 정도 잠이 깬 기분이었다. 씻으면서 어제 산 옷을 입어야지 생각하며 기쁘게 다 씻고 나와 다시 충전기에 꼽힌 폰으로 다가가면 김재환한테 와야할 문자가, 왜 박우진한테 온 건대? [ 선배 저 우진인데... 저라도 괜찮으면 제가 사드릴까요? ] - 17 박우진 [ 아니 제가 사드릴게요] - 17 박우진 아, 나는 정말 답이 없다. * 그래 어차피 박우진을 주려고 가방을 사긴 했으니까, 만나지 뭐. 근데 그걸 뭐라고 하면서 주지. 네가 해장국을 사니까 내가 널 위해 가방을 샀어? 아니 너무 구리잖아, 뭔 연관성이야. 지나가다가 네 생각이 나서 샀어, 아니 왜 생각이 나. 오해할 만한 말이잖아........, 그렇다고 오다 주웠어는 넘 에바적인 거 같고, 한숨을 푹 쉰 채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 한 쪽에는 쇼핑백을 든 채 학교 앞에서 만나기로 한 박우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 선배! - 아 우진아, - 많이 기다리셨어요? - 아니 나도 방금 왔지, - 다행이다, 그럼 가요. - 응, 아 근데 우진아. - 네? - 아 아니야, 가자. 아니 그래서 가방을 어떻게 주지, 아니 근데 이게 뭐라고 내가 고민을 하는 거지? 나도 내가 왜 이 가방을 박우진에게 주는 지도 모르겠고 주면서도 왜 고민을 하는 지도 전혀 1도 모르겠는 사항이었다. 그냥 그래 그냥 어 주면 되지, 씨발... 왜 소심해져가지고는 걷고 있다가 망설이는 내가 이상하다는 결론을 내고 난 후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박우진의 팔목을 잡았다. - 우진아, - ... 네? - 자, 가져. - .... 네? - 가지라고, 너 주려고 샀어. - 저요? - 그냥 내가 친구들한테 고마운 일이 있어서 걔네 선물을 사다가 너랑 그 가방이랑 너무 잘 어울려서 샀어. - ... 아, - 근데 오해는 마, 널 위해서 산 건 아니고 그냥..., 겸사겸사? - ... 감사합니다, 근데요 선배. - 어? - ... 저 이러면 자꾸 착각하는데, - ......, - 아닌 거 알면서도 기대하는데, - ... 아, 어설픈 탄식에 어설픈 미소를 띤 박우진이 얼마 전의 나와 비슷하다고 느꼈던 건, - 그러니까, 너무 좋긴 한데 저 아 그니까..., - ...., - 기대를 하면 실망도 하게 되서요. 내가 임영민에게 향하는 사랑의 크기가, - 근데 그게 싫진 않아서, - ...., - 선배가 곤란 할 수도 있으니까 티를 안 내려고 해도, - ......, - 선배 좋아해요. - .... 아, - 이렇게 말하게 되요. 네가 나에게 주는 사랑의 크기가, - 진심으로 좋아해요, - ....., - 선배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요. 비슷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지만 말이다. 더보기 | 안녕하세요! 일단 1일 1연재 어제 못 지켜서 죄송해요 어제 현생에 치이고 몸도 안 좋아서 제가 1일 1연재 안되도 최대한 빨리 오겠습니다! 저는 철벽글을 쓰면서 서서히 영민이가 바뀌는 감정선을 나타내고 싶었는데 그게 나타났을까 싶어요,,, 한 번에 바뀌기보단 서서히 맘을 알아차리고 열어주는 철벽을 보고 싶었는데 그리고 최대한 철벽을 더 끌고 싶었지만 제 필력이 넘 부족해서 넘 부족하게만 나타나네요, 그리고 저는 여주가 밝은 것보다 이렇게 저렇게 사정 사정이 한 화 한 화 담겨서 조금 보시는데 답답하시진 않을까 걱정도 되요,,, 저도 여주 성격 참 좋아하는데 그 여주 성격을 극대화 시키지 못해서 넘 죄송하고 또 동현이와 여주의 관계성도 되게 깊은 친구라는 걸 넣고 싶었는데 횡설수설 거리면서 표현이 될까 싶네요 넘 부족하지만 그래도 매번 초록글 올려주시고 예쁜 말씀 적어서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해요. 저 하루에 한 번 이상 꼭 독방에 한 번씩 서치해보는데 늘 언급해주시고 추천해주시는 분들 감사합니다 늘 원동력이 되요♥ 그리고 스토리가 좀 부족하고 내용이 부족하고 글이 부족하더라도 애들이 좋아서 쓰는 글이니까 너그러운 맘으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댓글이랑 추천 너무너무 감사하고 또 항상 과분한 말씀들 늘 감사해요 그리고 제가 더 사랑해여,,, ♥ | ♥ | [갓제로] [별별] [유자청] [수 지] [국산 비누] [숨] [영민 천사] [윙지훈] [임금] [돌하르방] [참새] [짱요] [0226] [고구마] [허니콤보] [토마토] [예니] [1102] [마이쮸] [620] [망냐뇽] [옹뇽뇽] [털없조 알파카] [0703] [짹짹이] [모카] [영미니] [0621] [조리pong] [참새짹짹] [어어] [디어] [강단] [깅깅] [0404] [숙자] [참새쨍] [챰새] [흥흥] [응] [솜사탕] [사용불가] [0228] [키드오] [행주] [작가님 내거야] [삐까] [파파] [666666] [살사리] [몽글] [030901] [디눈디눈] [애넨] [미묘] [푸푸파카] [뿜뿜이] [1015] [다별] [참새2] [콩이] [메리크리스마스] [녜르] [밍] [309] [뚜기] [윙꾸] [샐라인] [뽀뇨] [발렌] [마이관린] [포뇨9] [새우] [나로] [깻잎사랑] [931] [몽구] [남고] [짭짤이토마토] [빙구] [동그라미] [ㅇㄱ39] [초코공주] [널] [자몽사탕] [미니민이] [임녕민] [새우] [7579] [valeny] [퍼지네이빌] [황귤] [1225] [풋토마토] [토마툐] [꼬꼬] [햇살] [파카앞길짱짱] [칸타타] [넌내희망] [헬로] 늘 감사해요 덕분에 큰 힘이 됩니다 항상 사랑해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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