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고스러지다. 작가: 젤리탱 ※무단 배포 금지, 공유 금지, 커플링, 내용 수정 금지. 출산일은 가까워졌고 그에 따라 미영은 신경 쓸 일이 이전보다 많아졌다. 먹는 양이 줄어들어서 근래에는 잘 먹지 못했다. 태연은 꼬박꼬박 집으로 들어왔고 서재에 틀어박혀서 살다시피 했다. 때문에 미영과 태연은 같은 집에서 살기만 할 뿐 말 한 번 섞지 않았다. 태연이 서재에만 있다면 미영은 하루의 절반을 아기 방에서 보냈다. 힘든 가사 일을 하고 아기 방에 들어가면 모든 피로가 사라졌다. 애정을 쏟고 아끼는 방이었기에 태연이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아기 방 벽면에는 초음파 사진을 날짜순으로 예쁘게 꾸며 붙여 놓았다. 다른 날과 별 다를 바 없이 지내던 미영은 아까 청소하다 태연의 서재에 폰을 놓고 온 게 생각났다. 아침에 피가 보이기에 산부인과에 전화하려던 참이었다. 서재 문을 살짝 열고 빼꼼 고개를 내놓은 미영은 태연이 거슬리지 않게 조심하며 들어갔다. 태연이 안경 쓴 모습을 망부석처럼 서서 지켜보다 태연의 책상 위에 놓인 폰을 집어 들었다. 태연은 시선 하나 주지 않고 무신경했다. 서재를 나가던 미영을 바닥에 널려진 옷가지들이 붙잡았다. 지금 안 치우면 태연은 손도 안 댈 게 뻔해서 미영은 옷가지들을 챙겼다. "뭐하는 거야." 태연의 질문에 미영은 바로 대답하려고 했으나 밀려오는 복통에 한 박자 쉬었다. 태연은 뜸을 들이는 미영이 짜증났다. "옷 치우려고요." "내가 알아서 해. 놔 둬." 미영은 태연의 말을 듣지 않고 태연의 서재를 둘러봤다. 일주일 전에 입었던 옷이 방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미영은 이왕에 들어온 거 태연이 아무 곳에나 던진 옷을 찾기로 했다. 그래야 다음에 입으니까. "놔두라는 말 못 들었어?" 이상하게 처음엔 참을만 하던 복통이 심해지고 있었다. 태연이 뭐라 뭐라 말하는데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손에 쥐고 있던 옷들이 떨어졌다. " 내 말 듣고 있는 거야?!!" 태연의 호통과 함께 미영은 바닥에 쓰러졌다. 손으로 배를 부여잡았다. 누가 뱃속을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고통이었다. 극심한 복통에 미영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태연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천천히 미영에게 다가갔다. 정신을 잃은 미영을 흔들어 깨워보려 했다. 일어나지 않자 태연은 미영의 이름을 외쳤다. 그리고 무릎에 느껴지는 축축함은 불길했다. 미영은 복통을 호소한 것도 모자라 하혈하고 있었다. 제 무릎을 축축이 적시는 게 피라고 하니 태연은 뒷걸음질 쳤다. 태연은 당황스러워서 갈피를 잡지 못했다. 쓰러진 미영, 피. 무서운 와중에 태연의 뇌는 핸드폰을 찾으라고 끊임없이 명령했다. 뇌의 명령을 알아듣지 못했던 몸이 한참 후에야 반응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119에 신고했다. 태연은 119가 올 때까지 미영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 몸이 떨려왔다. 고요했던 주변이 사이렌 소리로 가득 찼다. 태연 귀에는 미영이 낮게 내뱉는 신음과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이명 같이 맴돌았다. 구급대원들이 도착해 미영을 들 것에 싣고 나서야 태연은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다. 구급차 안에서 태연은 이유 모를 눈물을 흘렸다. "보호자 분, 환자가 임산부인가요?" "ㄴ...네? 네." "절박유산 같은데...하혈을 심하게 하네." 구급대원은 급하게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태연은 구급대원이 말한 적나라한 단어에 놀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유산?' 태연의 머릿속이 웅웅 울렸다. 소리를 질렀는데 미영이 쓰러졌다. 그 자체로도 태연은 미영이 이렇게 된 게 제 탓 같아서 괴로워졌다. 모든 게 꿈이었으면 좋았겠다 싶을 정도로 끔찍했다. 미영에게 막 대했을 때는 몰랐는데 주마등처럼 스치는 지난 날 제 악행이 떠오르자 태연은 엉엉 울었다. 미영은 아기를 품으면서도 저에게 피해 끼친 일 하나 없는데 난 대체 무엇을 얻고자 미영에게 나쁘게 대한 걸까. 미영이 병원에 도착해 응급실에 실려 가고도 태연은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미영의 부모님은 응급실 로비에 서 있는 태연에게 다가갔다. 태연은 눈물이 앞을 가려서 소매로 눈물을 닦아냈다. 미영의 엄마가 태연을 때리면서 욕을 했다. 태연은 밀어내지 않고 맞고만 있었다. 미영의 아빠가 겨우 말리고 나서야 욕이 멈췄다. 시간이 좀 흐르자 의사는 태연을 찾아 미영의 상태가 어떤지 알려줬다. "...유산입니다. 혹시 보호자께서는 산모 분이 복통을 호소하시는 걸 모르고 계셨습니까?" "네. 못 들었는데요..." "빨리 오셨으면 유산을 막을 수도 있었을 텐데 안타까운 일이에요. 환자 분 일어나시면 잘 말씀 드려주세요." 미영의 엄마는 의사의 말을 듣고 실신 해버렸다. 태연은 침대에서 곤히 자는 미영을 지켜봤다. 그토록 아기에게 알 수 없는 증오를 하고 멀리 했는데도 유산이라는 단어에서 나오는 생동감과 현장감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미영이 하혈하던 그 광경을 지금 상기 시켜보면 손이 덜덜 떨리는 일이었다. 파리해진 미영의 손을 잡았다. 손이 차가웠다. 따뜻하게 해주려고 손을 꽉 붙들었다. 얼마 안 가 네가 일어날 테지만 네 모습은 영영 못 일어날 것 같이 안색이 좋지 못하다. 머리가 복잡해져서 고개를 숙였다. 난 대체 너를 그렇게 몰아 붙여서 뭘 얻으려고 했던 걸까. 태연은 마음 정리를 하려고 잡았던 미영의 손을 놓고 응급실을 나섰다. 마음정리를 한참 한 후에 응급실로 돌아왔다. 응급실 안으론 이제 막 깨어난 듯 눈을 찌푸리는 미영이 보였다. 태연이 한달음에 달려갔다. 상황파악을 하지 못한 미영은 태연에게 알지 못하겠다는 눈빛을 보낼 뿐이었다. 태연이 보조의자에 앉았다. 경계를 내비치는 미영을 이해한다는 듯 일정 거리를 유지했다. 미영은 태연이 왜 제 곁에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또 제게, 아기에게 욕을 퍼붓고 상처를 내려고 와 있는 건가. 그런데 태연의 모든 것이 그러려고 곁에 있는 게 아니라고 말을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차마 입이 떼어지지 않았다. 미영에게 사실대로 말해야 하는데 유산의 원인이 다 자신 때문인 것 같았다. 좀 쉬게 했었더라면, 착하게 대했었더라면, 상태가 어떤지 확인을 했더라면 이런 후회들이 잔상에 남아 태연을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었다. 난 이유 없이 미영이 오메가라는 이유 하나로 미영의 아기이자 제 아기를 싫어했다. 분명 난 미영에게 다가간 의도는 가까워지고 싶다는 선의였는데 평소 하대하는 습관이 나와 틀어졌다. 그리고 오메가였다는 걸 알자마자 난 어느새 미영을 인간 이하라고 무의식적으로 인지해 버렸다. 죄스러워져 더더욱 말하기가 꺼려졌다. 미영은 제 배를 쳐다봤다. 배가 불러 있어야 했는데 이상하게도 빠져 있었다. 미영이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태연과 눈이 마주쳤다. 태연은 마주 잡은 제 손에 힘주었다. 미영은 눈물을 참지 못하고 쏟아냈다. 왠지 모르지만 울어야 할 것만 같았다. 태연은 눈물을 참아 내려고 했다. 미영은 참지 못하고 버럭 화를 냈다. “무슨 일이에요!!” 아기의 행복을 바랐다. 사라진 게 아니라 나와 같이 있어야 했다. 내가 정신을 잃고 병원에 온 건 그래 단지 몸이 너무 약해져서. 약해져서 연이 잘 보라고 회복 차원에서 온 걸 거다. “미...영 씨...” 미영이 헛웃음을 흘렸다. 미영의 동공이 좀처럼 초점을 잡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앞이 흐리게 보였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이 기분 나쁜 기운이 제발 거짓이기를. “...... 어떻게 된 거냐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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