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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꽃> 김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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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말린 꽃으로 만든 책갈피를 꽂아 넣은 태형이 그대로 책을 덮었다.
늦은 밤, 아직까지 끄지 않은 스탠드 불빛이 그의 방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 옆에 읽던 책을 올려둔 태형이 그대로 불을 끄려다가 고개를 돌려 창가를 바라본다.
창가에 놓인 화분. 그 안에 홀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꽃 한 송이, 아니, 꽃 봉오리.
오묘한 빛을 띄는 그 꽃봉오리는 열릴 듯 말 듯 태형의 마음을 들뜨게 만들었다.
주위가 온통 어둠에 잠겼다.
태형은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내일은 널 볼 수 있기를.
잘 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