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만 열면 있는 학주에 겁이나 401호를 탈출한다며 좋아했던 1분 전의 나는 어디가고 없고, 일단 정말 찌질하게 다시 신발을 벗으며 어정쩡하게 신발장 앞에 서있었다.
당연컨데, 나는 이번 수학여행이 끝나면, 아니 지금 이 순간부터 401이라는 숫자를 떠올리지도 않을거다. 정말 환멸이 날 것 같다는 말이 이런 상황에 쓰이는구나 싶었다.
지금 이 상황을 정리해보자면.
1. 문을 열면 학주가 있다. = 401호에서 한발짝도 나가지 못한다.
2. 안형섭은 내가 이 숙소에 있는지 모른다. = 만약 여기서 잔다고 해도 걸리면 X되는 거다.
3. 새벽 5시부터 지금 12시까지 한 숨도 자지 못했다. = 등이 바닥에 닿이면 그대로 잠 들거다.
" 나 어디서 자. 존나 잠와. 짜증나!!! 헙. "
남자는 예쁜 말을 쓰는 여자에게 더 끌린다는 근거없는 이야기를 듣고 나와 욕을 쓰지 않기로 약속한지 두 달째, 이 약속을 오늘 하루만 무효처리하자고 합리화시켰다.
순간적으로 열이 뻗친 나는 짜증난다고 방에서 박지훈이 재워준 안형섭과 밖에 있는 학주의 존재를 잊고 소리를 지를 뻔한 걸 두 손으로 간신히 막았다.
난 이럴려고 수학여행을 온 게 아니라고... 버스에서 친구들과 숙소에서 하자며 짠 리스트가 불현듯 생각이 나고 난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 으라어럊더리ㅏㅓ리ㅏㅓ니ㅏㅓ!!!!!! "
박지훈 방으로 뛰어들어와 이불을 뒤집어 쓰고 이불 안에서 베게를 세차게 때리는 걸로 모자라 누워서 이불에 하이킥도 날렸다가 잽 훅으로 막 쳤다가 파운딩했다가 이불 쥐어뜯고 아주 그냥 생난리를 쳤다.
" ... "
" 여긴 왜!!!! 올라와서!!!!! "
박지훈도 이러다간 내가 이불, 베개로는 모자라 메트릭스도 뜯어먹겠다 싶었는지 급하게 달려와서 팔딱거리는 나를 두 손 걷고 말리기 시작했다.
" ... ##진,진영아.. "
" 나가지도!!!!!! 못하고!!!!!! "
" 이, 일단 진정하고... "
" 흙끍흙ㅅ쓰흘ㅋㅅ끅 "
" 자 진정하고, 들숨.. "
" 흙끍흘ㅋ끅.. 들숨.... "
" 다시 날숨... "
" 날숨.... 흑ㄹㅋ끅.... "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뭐 이런 병신 둘이 있나 싶다. 하지만 그 정체모를 들숨날숨을 하고 나니 이성이 다시 돌아오는듯 했다.
그건 둘 째 치고, 안그래도 얼마남지 않은 체력을 남용했는지 방전돼가기 일보직전이었다. 두 눈을 점점 감겼고, 손에 꽉 쥐고있던 이불도 스르륵 풀려나갔다.
" 아, 여기서 자면 안되는데... "
'당장 일어나서 어떻게 빠져나갈지 궁리해!!' 라며 세차게 내 뺨을 때리는 이성을 무시하고 나는 눈물이 고여있는 그대로 골아떨어졌고, 내 기억은 이까지다.
내가 이 수학여행에서 얻어가는 교훈은, 사람은 이성보다는 본능에 충실하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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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깐만, 쟤 지금 자는거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갑자기 홀린듯이 침대위에 뛰어들어가 이불을 들쑤시는 배진영이 신기해 계속 쳐다보고 있는 중, 정신차려보니 베개커버가 뜯겨 나가고 있었다.
저 이성 잃은 짐승을 그대로 두었다가는 숙소가 무너지겠다는 판단이 내려 진영이를 진정시켰다.
다시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싶었을 때, 침대위에 엎어져 더 이상의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일 년전이나 지금이나 변한게 없었다, 배진영이는.
이불을 다시 펴서 자고 있는 진영이 위로 덮어준 뒤, 바닥에 앉아 침대에 얼굴을 걸치고 자고 있는 배진영을 관찰했다.
" 그래도 반년만에 보는 얼굴인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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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났다. 설마 나 여기서 잠든거니?
" 어, 일어났다. "
" 야. 너 지금 안내려가면 이제 진짜 여기 갇혀있어야 해. "
" 안형섭 일어나기 전에 빨리 챙기고 내려가. "
" ...아! 응.. "
여기서 잠이 든 나도 참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 전혀 당황하지 않은 척하며 화장실로 걸어 들어갔다.
" 꺄아아악!!!!!!!!!!!!!!!!!!!!!!!!!!!!!! "
화장실로 들어가서 세수를 하려고 거울을 본 순간, 웬 몰골상태의 여자도 남자도 아닌 사람이 나를 마주보고 있었다. 아니야, 설마 저게 나야?
지금 저얼굴로 명색의 구남친 앞에서 태연한 척 하고 걸어나온거야, 설마? 그래도 전 남자친구인데... 전 남자친구.. 남자.. 친구..
지금 이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은 자살 뿐.
거울을 보고 경악한 뒤 멍하니 거울을 보며 현실을 부정하고 있을 때, 자다 깬 안형섭이 눈을 비비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 지훈아, 꼭두새벽에 무슨 일이야.. "
나는 그 자세 그대로 얼어있었고, 내 소리를 듣고 급하게 달려온 박지훈이 열려있는 화장실 문 앞에서 다가오는 안형섭을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다.
왜냐하면, 우리 둘 다 너무 당황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거든...
" 으아악 아아아악!!!!!!!!!!!!!!!!!!!!!!!!! "
" ...... "
" ...... "
" ...저기, 누구... 세요...? "
" 어... 그러니까... "
" 야 안형섭 진정하고 우리가 설명 해줄게. 오해하지말고 들어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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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박지훈과 나는 내가 당황해서 엘레베이터 층수를 잘 못눌러 4층에 들어온데서부터 지금 화장실에 있는 이 상황까지 자초지종 설명해주었다.
" 근데 배진영이면 지훈이 네 전 여자친구 아니야? "
안형섭과의 일이 모두 다 풀렸다고 생각하고 일어나려고 할 때 아주 해맑은 얼굴로 박지훈과 나를 번갈아가며 쳐다보면서 물었다. 그 한 마디에 숙소 분위기가 다소 어색해지고, 박지훈과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얼버무렸다.
박지훈이 복화술로 분명 안형섭에게 욕을 한 것 같았는데, 기분 탓인가?
" 아.. 그럼 잘가 진영아... "
기분탓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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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돌아오니 밤을 새던 친구들이 나에게 어디서 무슨일이 있었냐며, 얼굴은 또 왜이렇게 초췌하냐고 (...) 꼬치꼬치 캐물었다.
사실 3층으로 가는 (천국행) 엘레베이터 안에서 누가 들어도 오해를 안하고는 베길 순 없는 상황이니 말을 할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지만, 내 친구들은 예상대로 정말 그 상황을 그대로 받아주는 단순한 친구들이였다. 그래도 이게 소문으로 퍼지면, 나나 박지훈이나 둘 다 곤란한 상황이 올 것 같아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다행히도 친구들은 그저 금천남고의 두 얼굴천재들과 함께 있었다는 사실만 새겨듣고 나머지들은 다 흘려버린지 그저 부럽다고만 계속 말해댔다. 아무리 박지훈이라도 이런 만남은 싫다. 그것도 구남친이라면 더욱 더. 거기에다 아주 후리한 모습으로 만난 거라면 훨배 더.
어쨋든 다시 눈 좀 붙여볼까 하고 침대에 누워 시계를 보니 새벽 4시 반이였다. OMG. 시간 순삭이잖아..
다시 잠자리에 들기에는 너무 애매한 시간이라 거실에서 티비를 보고 있는 친구들을 보며 진심 대단하다는 표정으로 박수를 쳐주고 화장실에 들어와 샤워를 했다. (샤워하는 내내 거울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 아, 나 준비 다했는데도 6시야. 진짜. "
샤워라고 포장 된 목욕을 하고, 머리를 말리고, 옷을 입었는데도 6시 밖에 되지 않았다. 다들 화장하느라 바쁜 것 같아 한 시간동안 쪽잠이나 잘까하고 쇼파로 가는데, 친구가 불러세웠다.
" 배진영, 너 그거 준비 다 한거 맞음? "
" 거기 배진영 어린이. 언니 앞에 앞머리 까고 얌전히 앉으세요. "
" 아, 아니.. 난 진짜 괜찮ㅇ "
평소 화장을 잘 하지 않는 나에게 수학여행까지와서 생얼로 다니는 것은 우리나라같은 동방예의지국 국민으로써의 의무를 수행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정말 개논리를 펼쳤다.
민영이 앞에 앉으니, 옆에 있던 지희까지 가세해 내 얼굴에 무려 두 명이나 붙어 치장해주었다. 아이고 이렇게 감사 할 수가 ^^...
7시도 가까워지고 화장도 마무리 되어갔다.
" 배진영 화장 끝~! "
" 야, 뭐야 진짜 어색해. 눈은 또 왜이렇게 무거워 또! "
" 설마 눈 무겁다고 하는 거 마스카라 한 거 때문은 아니지? 님아 화장 처음한 티 좀 내지마. "
기초 화장은 자주 했으나 이렇게 힘을 주고 꾸며 본 것도 손 꼽을 만큼 적어서 아직도 거울 앞의 내 모습은 어색했다.
간단한 짐을 챙기러 방을 나가니 나머지 두 명도 화장을 처음한 날 보고 앞으로도 제발 이러고 다녀달라며 등을 퍽퍽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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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식을 먹기 위해 금천남고와 남일고가 공식일정으로써 처음 자리를 함께 했다. 수학여행 가기 전 부터 금천남고가 한동안 화젯거리였던게 지금 뼈 저리게 느껴지고 있다.
학예회나 체육대회 때 볼 수 있는 화장보다 모두 더 진하게 분칠을 하고서는 눈웃음을 치며 아침밥을 오물오물 다들 참 조신하게 먹고 있었다.
" 꼭 저렇게까지 해야하나 싶다. "
" ㅋㅋㅋ 그래도 지금 4대 천황들 아직 안와서 이정도지. "
" 그니까. 난 실물 보는 건 네 명 다 처음임. 존나 긴장 돼. "
" 니가 왜 긴장이 돼. ㅋㅋㅋㅋㅋㅋ . "
" 야. 미친. 다 조용히 하고 남쪽으로 시선 집중하길 바란다. "
" 와.... 저 얼굴 손바닥만한 사람 혹시 배진영이라는 애임? "
" 와 입장 시작이다. 옆에 팔짱 낀 애 안형섭이고요. "
" 그 뒤에 후광 나는 애 혹시 박지훈? "
친구들은 물론 나도 배진영, 안형섭, 박지훈이 들어오는 모습을 아무생각 없이 보고 있었다.
+ epiloge. 박배안(박지훈, 배진영, 안형섭)이 조식을 먹으러 갈 때.
배진영을 보내고 한 숨도 자지 못해 피곤한 몸을 잠시 침대에 맡겼더니, 언제 들어왔는지 모를 배진영과 안형섭 둘 다 합세해 조식시간까지 30분 남았다며 나를 흔들어 깨웠다.
배진영 때문에 잠도 못자고 피곤해 죽겠네, 진짜.
조식을 먹으러 가는 엘레베이터 안에서 여자앞에서 쑥맥이 되는 배진영(남중-남고출신)은, 자기도 그걸 아는지 여자애들이랑 같은 장소에서 밥을 먹는데 시선처리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안형섭에게 물어보며 거울을 보고 연습하는데 아주 또라이가 따로 없었다.
" 야 안형섭, 딱 봐봐. 지금 이렇게 살짝 웃는 거 어때? 어색해 보여? "
" 어. 완전. "
" 그럼 이건? "
" 아까랑 뭐가 다른건데? "
" 입을 더 작게 하고 웃는거야. "
" 어, 그래 진영아. 완전 살인미소. 하나도 안 어색해. 그러니까 이제 그만. "
안녕하세요! 교블리입니다. 자주 오기로 했었는데 많이 늦었죠ㅠㅠ 오늘은 생각보다 너무 오래 걸려서 6시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쓰고 지우고 반복하다 보니 지금 올리게 되네요. 큐큐. 왜 항상 제가 쓴 글은 쓰레기통으로 꽂아버리고 싶을까요 (흙끅) 오늘도 부족한 글 읽어내려와 지금 제 주저리를 읽어주시는 여러분들! 세상체고예요 ~~
오늘은 꽤 많이들 물어보신 암호닉 신청을 받을까해요!
댓글 다실 때 꼭 사담 앞에 '❤신청하실 암호닉❤' 이렇게 적어주세요! (알아보기 쉽게ㅎㅎ)
+ 보고싶으신 지훈이나 여주의 모습 등등.. 소재들도 언제나 환영이예요 ^ㅁ^ (아이디어 고갈)
제가 댓글에 신청 마감선을 그을 때까지가 그만입니다! (신청 마감선은 다음 화 올리기 몇 시간 전 쯤 그을 거예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