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 짝사랑 시점
프롤로그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잔잔한 음악 소리를 한참 듣고 있는가 하면, 잠시라도 시끄러운 세상의 소리를 잊을 수 있어서
어쩌면 혼자 있는 시간을 가장 싫었던 내게 그것이 다시 익숙해져버린 순간 나는 깨달았다. 아 … 지훈이가 정말 날 떠났구나. 우리는 이별했다고.
* * *
"야, 김미연한테 고백 받았다며. 그래서 어떻게 하기로 했냐?"
"어디서 듣고 왔는 진 모르겠… "
지훈이의 말이 뚝 끊겼다. 아마도 책상 위에 부딪힌 나의 가방소리 때문일 것이라 짐작했다. 구 남친과 같은 교실을 쓴다는 건 꽤나 불편한 일이다.
특히 짝꿍이 되었을 땐 더더욱. 애초부터 둘 밖에 몰랐던 연애라, 차마 누구에게 바꿔달라 하기도,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기도 어려웠다. 그저 우린 아무 일 없이 어서
한 달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어 사귈거야. 김미연이랑"
"뭐? 진짜?"
"어"
순간 나를 보며 대답하는 지훈이와 결국 눈이 마주쳐버렸다. 나도 모르게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김미연 …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었다.
아, 생각났다.
"야, 우리반에 진짜 예쁜 애 전학왔다. 김미연이라고"
"별로 안 궁금한데"
"아 진짜 예쁘다고!"
김도연이 작년 이맘 때쯤 자기네 반에 예쁜 전학생이 왔었다고 그랬었는데 …. 걔 이름이 김미연이었나. 예쁜 애. 예쁜 애. 도연이의 말이 귓 속에 맴돌았다.
그냥, 나도 모르게 신경이 쓰여서. 벌써 새 여자친구가 생긴 박지훈이 괘씸해서.
"박지훈이랑 김미연이랑 둘이 사귀면... 야 너네 비주얼 끝장난다!"
애초부터 난 너에게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으니까.
* * *
박지훈을 처음 만난 건 작년 연말쯤이었다. 엄마 몰래 그림을 그리다, 그만 마지막으로 남겨져있던 붓까지 다 망가져버리고 말았다. 서러움에 집 밖으로 뛰쳐나와
사람들이 쳐다보는 줄도 모른 채, 세상이 떠나가라 울고 있었을 때. 누군가의 걸음이 내 앞에 멈추어섰다. 그리고 고개를 올렸을 땐, 나와 같은 학교의 교복에
[박지훈] 이라는 명찰이 눈에 보였다.
"나도 갑자기 무슨 오지랖인지 모르겠는데, 너 지금 되게 서러워 보여서 그러니까 …"
" 끅, 끅."
"나도 갑자기 무슨 오지랖인지 모르겠는데, 너 지금 되게 서러워 보여서 그러니까 …"
"흐 …윽. 끅"
내게 휴지를 건네는 손이 너무나도 따뜻해서. 그만 난 거기서 처음 보는 박지훈의 품에 안겨버리고 말았다. 펑펑 우는 날, 박지훈은 그냥 아무 말 없이 받아주었다.
때로는 모르는 사람에게 나의 속내를 털어놓는 것도 괜찮다고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게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