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야,호바
태형은 새벽에 혜진이 반듯하게 다려놓은 교복을 입었다. 먼지가 내려앉은 거울 앞에 선 태형은 몇 번이고 옷 매무새를 정돈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히려 초라해 보였다. 교복 바지 무릎은 닳아 있었다. 넥타이는 얼룩져 있었고, 와이셔츠는 오래 입어 색이 탁해져 있었다. 3년 전 옆집에 살던 형에게 물려받은 교복이었다. 태형은 얼룩진 넥타이를 한참 바라보다 검정 후드집업을 턱 끝까지 잠궜다. 그때 혜진이 태형을 불렀다.
"교복 입은 거 오랜만에 본다."
"이상해."
"왜, 멋있는데."
"누나 눈에만 그래."
태형의 말에 혜진은 소리없이 웃었다.
"오늘 졸업식이지?"
"응."
"조금있다 학교에 도착하면 전화할게. 열시까지 맞지?"
"응, 밖에 추우니까 따뜻하게 입고 와."
태형은 신발을 신기위해 상체를 구부정하게 숙였다. 신발끈을 조이던 태형이 말을 덧 붙였다. 누나 우리 오늘 짜장면 먹자.
텅 빈 교실에 도착한 태형은 후드집업 겉에 입고 있던 교복 마이를 벗어 쓰레기통에 던졌다. 마이는 한 치수가 작았다. 팔과 어깨가 뻐근했다. 태형은 익숙하게 사물함을 열었다. 숨겨둔 담배를 찾기 위해서였다. 태형은 철제 필통을 꺼냈다. 필통안에는 샤프나 지우개 대신 나이에 맞지 않게 담배가 들어있었다. 태형은 필통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창가로 몸을 돌렸다. 바지주머니를 뒤적거리던 태형은 짧게 욕을 내뱉었다. 씨발. 바지 주머니에 작게 구멍이 나있었다. 태형은 입에 물었던 담배를 창가에 비벼 부러뜨렸다.
그때 교실 문이 열렸다. 지민이였다. 태형은 지민을 무표정으로 응시했다. 두 달 사이 지민은 몰라볼 만큼 달라져 있었다. 유난히 까맣던 머리는 밝은 갈색빛이 돌았으며, 살이 많이 빠져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순하기만 했던 눈매가 깊고 서늘해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어느새 자신의 앞까지 다가온 지민이 라이터를 흔들며 말했다.
"야, 이거 찾냐?"
독한 담배 연기가 동시에 흩어졌다. 후- 길게 연기를 내뱉던 태형은 담배 연기에 기침을 뱉는 지민의 모습에 인상을 구겼다.
"담배 꺼. 피지도 못하는 놈이."
"너도 좋아서 피는 건 아니잖아."
"버려. 너까지 이러는거 싫어."
태형의 한마디에 지민은 씩 웃으며 밖으로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창 밖으로 힘껏 던졌다. 지민이 말했다.
"태형아, 윤기형 찾았데."
"...."
"석진이형한테 전화왔었어. 자기 병원에 입원했다고."
태형은 지민을 따라 창밖에 담배를 던졌다. 그리곤 말 없이 지민을 응시했다.
"죽으려했데?"
"어?"
태형이 말했다. 죽으려 했냐고. 그렇게 죽고싶었데? 살고싶다고 도망친 새끼가 병원에 입원은 왜 해 왜. 태형이 말할때마다 하얀 입김이 허공으로 흩어졌고, 열린 창문 틈 사이에 걸쳐진 커튼이 날릴만큼 강한 바람이 불었다. 그때 태형의 두눈을 덮고있던 긴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려 흩날렸다. 진한 눈썹이 드러나고, 긴 속눈썹이 보일때쯤 지민은 태형을 끌어안았다. 들어올린 발꿈치가 뻐근했다. 지민은 태형의 뒷머리를 말없이 쓰다듬었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을거야.
*
어,불었네. 태형이 의자를 뒤로빼며 말했다. 그러게 그냥 가서 먹자니까. 불어터진 짜장면 두 그릇을 식탁에 내려 놓기가 무섭게 태형이 가져가 버렸다. 식탁 구석에는 꽃다발이 놓여져 있었다. 생화가 아닌 종이비누를 겹쳐 만든 꽃다발이였다. 혜진의 투정에도 말없이 짜장면을 먹던 태형은 혜진의 그릇에 단무지를 얹으며 말했다.
"새롭고 좋은데 뭘."
"저녁엔 밥이랑 같이 고기 먹을까?"
"그냥 엄마 보러가자. 엄마 보고싶어."
태형은 고개를 푹 숙이고선 다시 짜장면을 집어 들었다. 오늘은 태형의 졸업식이자, 기일이였다.
늦은 밤. 열기가 가득한 화장실 안 지민은 욕조에 들어가 몸을 늬였다. 촤악- 욕조에 가득 차있던 물이 넘쳐 흘려내려 가는 소리가 적막한 화장실을 채웠다. 바닥이 흥건히 젖어있었다.
물기가 가득한 화장실 안 어린 소년이 몸을 웅클이고 있었다. 지민이였다. 밖에선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겁을 먹은 지민은 욕조 안으로 들어가 숨었다. 욕조 안에서 지민은 무릎을 감싸 안고선 작은 손가락을 몇번이고 접었다 폈다.
"231..232...233..."
전화가 세차게 울렸다. 엄마 전화 받아야되요! 지민은 전화를 받으려 손을 뻗었다. 시끄럽게 울리던 전화벨 소리가 멈췄다. 그때였다. 지민의 손에 들린 전화기에 시끄럽게 들려오던 말소리가 끊긴 것이. 말리기도 전에 전화를 받아든 지민에 여인은 급하게 전화선을 뽑아 들었다. 엄마.. 왜그래요? 지민의 물음에도 여인이 말이 없었다. 벌벌 떨기만 할뿐이었다. 잠시 후 여인은 지민을 불렀다.
"지민아, 지금부터 엄마랑 재밌는 놀이 할거야."
"응응 지민이 재밌는 거 할래요!"
"숫자 1000까지 셀 수 있지? 전에 엄마랑 같이 숫자공부 했잖아"
"응! 할 수 있어요!"
지민은 여인의 손을 잡았다. 따뜻했다. 기대에 찬 발걸음은 얼마가지 않아화장실 앞에서 멈춰 섰다. 엄마.. 지민이 말했다. 아무리 불러도 대닶없는 여인을 바라본 지민은 기다렸다. 여인이 자신을 불러 줄 때까지. 잠시 후 다 갈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민아. 엄마 한번만 안아주라."
여인의 부탁에 지민은 싱긋 웃으며 주저없이 여인을 끌어안았다. 여인은 지민의 작고 까만 뒷 머리를 몇번이고 어루어 만졌다. 여인은 지민에게 말했다.
"다 셀때까지는 절대 나오면 안돼. 알겠지?"
지민은 말없이 꼬개를 끄덕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화장실 문은 굳게 잠겼다.
지민은 젖은 머리를 쓸어올리며 익숙하게 담배를 물었다.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교복 바지 주머니를 뒤적거리던 지민은 라이터를 꺼냈다. '담배 꺼. 피지도 못하는 놈이.' 태형이 생각났다. 불을 붙인 지민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지잉-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다름아닌 석진이였다.
"형."
'어, 지민아. 목소리 듣고싶어서 전화했어.'
"농담이죠? 소름 돋았어 방금."
석진이 호탕하게 웃었다.
"보고싶어서 그래. 아, 이건 진담."
"진담도 농담같아요. 형은."
"그게 내 매력이야. 나이에 비해 젊게 살잖아."
"나이 많은게 자랑은 아닌거 알죠?"
"야. 너 전정국이냐?"
"전정국은 전화도 안 받았을 걸?"
정국의 험담을 늘어놓으며 석진이 씩씩대는 사이 지민은 다리사이에 떨어진 담뱃재를 털었다. 그때 석진이 말했다.
"오늘 졸업 했다며. 왜 말 안했어?"
"그냥 뭐, 형 바쁘니까."
"동생 졸업 축하해 줄 여유 정도는 있어."
"...."
"지민아, 졸업 축하해."
짧아진 담배를 바닥에 비벼 끈 지민은 낡은 소파에 등을 기댔다. 그리곤 다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담배는 또 다시 새까많게 타들어 갔다. 지민아. 석진의 부름에도 지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지민은 손에 들린 핸드폰을 바닥에 내려두었다.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석진의 목소리가 희미해졌다. 지민아. 석진이 자신의 이름을 부를때마다 자신의 품안에 안겨 울던 태형을 떠올렸다. 지민아, 박지민. 지민은 또 한번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입안이 텁텁했다.
"형. 난 우리가 너무 불쌍해요. 하나같이 다 바닥이야."
"......"
"태형이가 울었어. 그것도 너무 서럽게. 그래서 사실대로 말 못 했어요. 근데 이제와서 내가 뭐라고 말해. 윤기형은 자살시도에 김여주 살아있다고? 못해요 나는."
짙은 담배 연기를 내 뱉으며 담배를 바닥에 지져 껐다. 두어번 담배를 지져끈 바닥은 검게 그을러져 있었다.
"걔 오늘 지 엄마 기일이야. 오늘만큼은 걔도 나도 축하 못 받아요."
석진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끊을게요. 전화를 끊은 지민은 또 다시 담배를 꺼냈다. 라이터를 키던 손길이 분주했다. 탁탁, 몇번이고 챗바퀴를 돌렸지만 불이 들어오질 않았다.
기름이 떨어져있었다. 지민은 입안에 담배를 문 채 서랍장에 새 라이터를 꺼내 들었다. 그때 또다시 진동이 울렸다.
"어 태형아."
'뭐해?'
"책보고 있었어."
지민은 타들어가는 담배를 바라보며 말했다. 사방엔 연기가 자옥했다.
'나 엄마 보고 왔어. 여전히 곱더라 울 엄마.'
지민은 묵묵히 태형의 이야기를 들었다. 술을 마신 듯 했다. 발음이 잔뜩 뭉개져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그거 다 못 말 했어. 시간낭비잖아. 어딜가든 빚쟁이들이 쫓아오는데, 엄마 보는 앞에서 잡히면 어떡해. 생각만해도 끔찍해.'
태형이 말했다.
'꿈에선 김여주가 자꾸 나와. 잡으려고 손 뻗으면 이미 한발치 멀어져 있어. 꿈에서도 도망쳐 걔는. 한번쯤은 잡혀주지 좀.'
그후로 태형은 말이 없었다. 태형아 자? 지민이 물었다. 조용했다. 태형아. 김태형. 지민은 허공에 대고 태형의 이름을 불렀다. 숨소리만 들려왔다. 창가에선 달빛이 드리웠다. 어두운 방안에 비춰진 그림자는 한없이 초라했다.
전화를 끊은 지민은 창밖을 바라보며 담배를 다시 입에 물었다.
"졸업 축하해. 김태형."
2년 전, 아니쥬 뮤비를 배경으로 썻던 글이에요. 불안하고 위태로운 일곱의 청춘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봐주세요.
분명 이 아이들이 행복해질거라 믿어요. 화양연화.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언제고 찾아 올거에요. 우리에게도, 태형이 그리고 지민이에게도 아직 나오지 않은 5명에게도. 각자의 아픔을 안고 있는 7명의 아이들을 응원해주세요. 그럼 분명 이겨낼 날이 올겁니다. 어쩌면 아주 자연스럽게, 이겨내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이제 시작입니다. 여주는 글 스토리상 천천히 나올 것 같아요. (최대한 빨리 등장시켜 몰입도를 높여드릴 예정이니까 걱정은 노노행..ㅎㅎ) 글을 쓰기엔 턱 없이 부족한 실력이라, 걱정부터 앞서지만 그래도 이 글을 쓰는 저에게도 좋은 날이 올거라 믿어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꾸벅)_(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