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청이는 한국말 잘 못해요
사실 여주는 '니하오' 라는 단 세글자를 뱉어놓고는 오만가지 생각들로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내 발음 혹시 많이 구렸으려나. 세글자 밖에 안되는데 발음 구려봤자 뭐 표시라도 나겠어 ? 근데 얘는 왜이렇게 나를 빤히 쳐다보는 거... 아 혹시 내 발음이 너무 구려서 내가 지금 인사한건 줄도 모르는 건가...? 홀로 단정지은 결론으로 민망해진 여주는 금방이라도 얼굴이 달아오를 것만 같았다.
" 你好 (nǐhǎo) "
교환학생 친구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여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마터면 못하겠다고 자리를 박차고 나갈 뻔했는데 정말 다행이었다. 학년부장 선생님은 이 일이 여주의 시간을 많이 빼앗지도 않을 것이고 여주의 진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왠지 이 상황을 합리화시키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 참고로 여주의 희망진로는 서비스직종이다. ) 그리고 중국어선생님은 또 이걸 굳이 교환학생 친구에게 통역해주고 있었다.
" ...조기, 한구어... 할 주 알아. "
" ...으응 ? "
" 아, 이 친구가 한국어를 아주 조금 할 줄 알거든. 잘은 못하고 기본적인 거만 좀 할 줄 알더라고. "
" 아뇽. 나 동스청. 반가어. "
" 아아... 헉 다행이다... 내 이름은 김여주야 ! 잘 부탁해. "
한국어를 조금 할 줄 안다는 스청의 말에 여주가 또다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말이 어느정도 통하니까 나를 붙여놨겠지, 둘다 아무것도 모르는데 이랬겠어 ? 마음이 가벼워진 여주가 활짝 웃으며 스청에게 악수의 의미로 손을 내밀었다. 더 활짝 입꼬리를 올린 스청이 여주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학년부장 선생님이 이제그만 교실로 가자며 여주와 스청의 등을 떠밀었다. 여주를 바라보는 스청은 연신 싱글벙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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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반에다가 옆자리.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사실 애초부터 이게 여주의 비즈니스 아니었는가.
스청은 중국에서 온 교환학생이라는 것 만으로도 반 친구들의 충분한 관심거리를 갖추고 있었지만 그에더한 수려한 외모 덕에 다른 반, 다른 층에서까지 구경을 올 정도로 이목을 끌어모았다. 하지만 아는지 모르는지 오직 여주에게만 해바라기 같은 순정을 보이는 바람에 여주는 다른 친구들의 눈치가 보였다.
" 여주 ! 나 하교 궁그매. "
" 응 ? 아 ~ 학교 구경 시켜 달라고 ? "
" 구... 굥...? "
" 음 그러니까 학교를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거야 ! "
" 요기조기... 돌아다녀...? "
" 응... 하... 음, kàn xuéxiào ! 오케이 ? "
" 아아 ~ 응응 ! 고마어 ! "
혼신의 힘을 불사르며 작년에 중국어 수업을 듣던 때의 기억을 끄집어낸 여주가 간신히 위기상황을 모면했다.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라도 대충 대화가 통했으면 싶었다. 스청은 한국어를 할 수 있다 ! 라는 말에 비해서는 정말 모자른 한국어 실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까 교무실에서 실컷 안심했던 여주는 다시 눈앞이 아득해지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쉬는시간에 스청 때문에 자리를 둘러싼 수많은 아이들의 웅성거림 때문에 귀까지 시끄러울 지경이었다. 그 중 한 여학생이 앞으로 끼어들어 스청에게 말을 걸었다.
" 스청아 ~ 학교 구경 내가 시켜줄까 ? 나 작년에 학생회도 했어서 학교 지리 진짜 잘 알아 ~ "
( 여주의 속마음 : 바보야 그렇게 어렵게 얘기하면 얘 못알아듣는단 말야 ! )
그러자 여주가 꺼낸 교과서를 똑같이 책상 위로 꺼낸 스청이 그 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 미안.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알아듣겠어. "
" 아, 여주 ~ 나가자 ! 시끄러어 ! "
갑자기 완벽하게 한국어를 구사하는 스청 때문에 당황한 것은 그 여학생 뿐만이 아니었다. 그렇게 차갑게 쏘아붙여놓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천사같은 웃음지으며 어눌하게 말을 거는 모습에 주위에 있던 모두가 어리둥절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가자는 스청의 말에 여주는 또 책임감은 있는지라 알았다는 대답을 한 후에 교실 뒷문으로 따라나갔다. 북적거리는 복도의 인파 속에서도 스청은 단연 눈에 띄었고, 그 옆에 있는 여주에게도 눈길이 쏠렸다. 하지만 여주는 지금 그런 것 따위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내가 방금 뭘 들은...? 아니 심지어 발음도 거의 정확했어... ' 미안 .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알아듣겠어. ' 라니? 여주는 방금 그 상황이 뭔지 하나도 못알아먹겠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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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할까 말까 고민 중인 글임당
새 필명으로 글잡 오랜만에 와보네요 끌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