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rt Signal
"이름이..."
"......"
"아, 성이름."
성인 남자의 기에 눌린 건지 나를 조롱하던 같은 반의 아이가 당황한 듯 골목의 반대편 방향으로 도망쳤다. 그에 비해 남자는 한없이 태연했고 더 나아가 뜬금없이 교복에 달려진 명찰을 힐끗 보고는 나의 이름 석자를 내뱉었다. 그가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낯선 감정의 파도가 나를 덮쳐온 건, 뭘까.
"볼 때 마다 왜 이렇게 위태로워 보이냐."
"저요?"
"그럼 너지, 누구겠어."
남자가 나를 위태롭다고 느끼는 요소들이 꽤나 많기야 한 것 같다.
첫 만남 때 불안함에 찌들어 영어 단어를 외우면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 두 번째 보았을 땐 괜한 고집 때문에 버스에서 크게 휘청였던 모습, 금방, 같은 반 남아이한테 우롱 당한 모습까지.
당연지사, 별로 보이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었다.
"그러게, 누가 위태로울 때만 찾아오시네요."
"그거 나한테 하는 말이야?"
"그럼 그쪽이지, 누구겠어요."
고작 세 번 봤다고 말문이 트인다. 극도로 낯을 많이 가리는 나이기에 이제 제법 질문도, 대답도 곧 잘하는 내 자신이 신기하기만 했다.
남자는 마른 세수를 함과 동시에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래서.... 밥은 먹었고?"
......뭐 이 정도면, 뜬금없음이 거의 인생의 모토인 사람 아닌가?
__
"고 삼?"
"네."
"야, 힘들겠네, 힘들겠어."
짧은 시간 동안 남자를 파헤쳐 본 결과, 그는 말을 두 번씩 반복적으로 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고 전공 책에 악보를 섞어 가지고 다니는 것으로 보아 대충 음악과 관련된 학과에 재학하는 사람 같았다.
그건 그렇고, 제일 중요한 이름을 모른다는 게 무언가 찝찝했다.
구태여 남자와 늦은 저녁을 먹으러 온 이유를 나도 잘 모르겠다. 밥을 먹었냐는 그의 질문에 굳이 굳이 먹지 않았다는 대답을 한 이유 또한.
......저녁은 이미 먹은 지 오래였는데.
"우연찮게 세 번이나 마주치니까 신기하긴 하네."
"......."
"담배는 아직도 피는 것 같은데."
"......."
"혹시 지금, 불편한 건 아니지?"
"......이름이 뭐예요?"
아차, 속에 있던 말을 그대로 뱉고 말았다. 남자는 뭐가 그렇게 웃긴 건지 끅끅댔고 나는 얼굴이 붉어지는 느낌이 들어 그대로 시선을 땅바닥에 쳐박았다. 뭐, 조금 후련한 거 같기도 하고.
"재환, 김재환이야."
"......아,"
"으, 이거 뭔가 민망한데."
Heart Signal
누구는 밥이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인데, 재환은 묵묵하게 밥을 먹고 있을 뿐이었다. 호원대 실용음악학과면 노래 잘하겠네. 머릿속에는 온통 그로 가득 찼다. 이런 호의들을 받아보는 게 굉장히 오랜만이라서 그런가.
"무작정 데리고 와서 미안해."
"아니요, 저도 배고팠었는데 감사합니다."
"가자, 데려다줄게."
데려주겠다는 재환의 말에 혼자 가도 괜찮다는 말을 하곤 발걸음을 옮겼다. 아니, 옮기려고 했다. 그가 내 팔목만 잡지 않았으면.
"야, 야, 이 어두운데 혼자 어딜 가."
"......."
"그리고 가급적이면 골목 쪽으로 다니지 마."
식사를 같이 하면서 가볍게 오고 간 이야기에 재환이 조금은 편해진 건 사실이었다.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마찰을 일으키지도 않았지만, 주변인들의 자격지심으로 피해를 받는 것은 나였기에, 그동안 인간관계에 대해서 괜히 나 스스로 소홀히 생각하기 바빴었던 것 같다.
신기하게도, 방금 식사를 같이 하면서 남자와 서로의 이야기를 했을 때만큼은 그런 감정들과 자연스레 멀어진 느낌이 들었다.
편안함이 초조함으로 가득 찼던 내 마음을 감싸 안았다.
"담배, 아직도 많이 펴?"
"네, 뭐......"
"사정이 있어서 피는 거겠지만, 그래도 좀 줄여서 나쁠 건 없지."
"......"
"몸에 좋은 건 아니니까."
남자가 나에게 건넨 말을 걱정이라고 내 마음대로 치부해버렸다. 아마 다른 사람이었으면 비난의 눈초리로 나를 바라볼게 눈에 훤했지만, 재환은 아니었다. 또 한 번 편안함이 나를 감싸왔다.
그나저나, 이야기에 나만 해당되는 건 분명 아닐 텐데.
"그런데, 그쪽도 담배 피우지 않아요?"
"난 간혹가다 피는 건,"
"노래하는 사람한테 흡연은 치명타라고 하던데 줄여서 나쁠 건 없죠."
"......"
"목에 좋은 건 아니니까요."
웃음이 많은 건지 쓸데없이 헤픈 건지 모르겠다. 기분 나쁜 소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말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미소를 흘린 재환이었다. 알다가도 모를 성격이라니까.
"그쪽 말고, 김재환."
"네?"
"그쪽은 너무 정 없어 보이지 않나."
집에 다달아 자동적으로 발걸음을 멈췄고, 나를 따라 남자도 발걸음을 멈추었다. 어색한 호칭을 지적해오는 그에 나는 도저히 입을 뗄 수 없었다. 다음 만남이 언제가 될지 미지했으니까.
"언제 다시 보게 될지도 모르는데 무슨...."
".....속히 말해 운명이면 다시 만나기야 하겠지."
"......"
그가 꺼낸 운명이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오글거리지 않게 들려왔다.
"뭐, 안경 안 낀 게 더 예쁜 거 같기도 하고."
"......."
"다 온 것 같네, 조심히 들어가."
어쩌면, 나는 그와의 만남을 원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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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절 올리겠습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직 몇 편 나오지 않은 글인데 암호닉 신청이 은근 많아서 놀랬어요ㅠㅠㅠㅠㅠㅠ 기다려주시는 분들이 적지 않으신 만큼 더 자주자주 글을 들고 와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ㅠㅠㅠㅠㅠㅠ 항상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댓글로 같이 합시다❤
그런데 여러분 신알신 해주신 분들 중 절반이 사라졌습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무슨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 신알신 잘 가는 거 맞겠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