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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바람이 창문을 넘어와 불어 코끝을 간지럽힌다. 일주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밖에 나갔다 온 후로 엄마는 집에 가만히 좀 있으라며 내게 꾸짖었다. 집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그마저도 혼나서 십분전 방으로 올라와 침대에 누워버렸다. 밖에서 잔디를 깎는지 풀내음이 바람을 타고 넘어와 몇시간 째 방안을 어지럽혔다. 여닫이 창문을 닫고는 얇은 코튼 커튼을 확- 쳤다 그리고 다시 침대에 풀썩 누우니 맞은편의 책장이 눈에 띄었다 내가 아끼는 대여섯권의 시집과 엄마가 내게 물려준 책 여러권이 두서없이 꽂혀 있었다. 이참에 책이나 읽어볼까 나는 그앞으로 고개를 반쯤 숙여 기어가 구석에 있던 책 하나를 꺼내들었다 얼마나 오래 됐는지 표지가 바래어 제목도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첫 단어는 어슴푸레 보아하니 'INTO' 라고 적혀있었다 뭘 들어간다는 내용인가
목차는 어김없이 찢겨지고 없었다 하긴 내가 뭐 언제부터 목차를 보고 책을 봤다고. 베개를 고쳐 눕혀 놓곤 그 위에 풀썩 머리를 두고 누웠다. 창가를 등지고 있으니 커튼 사이로 비춰오는 햇빛이 책 반절을 따스이 덮었다 그런데 읽다 도중에 목이 말라 물 한 잔을 마시다 손이 미끄러져 컵을 놓쳐버렸다 다행히 재빨리 컵을 잡아 많이 젖은건 아니었지만 책의 페이지 열 장 정도가 흠뻑 젖어 물이 뚝뚝 흘렀다 나는 씩씩대며 급한대로 입고 있던 잠옷 소매로 닦아내었다. 얼마 안남았으니까 다 읽고 닦아야지 하고 다시 옆으로 누워 책을 읽어갔고 하늘이 어둑어둑 해가 지기 시작하자 내 눈꺼풀도 서서히 감기기 시작했다 피곤하다 좀만 자고 일어나야지 일어나면 봐야겠다 싶어 새끼손가락을 책 사이에 넣어놓은 채 책을 덮어 두곤 눈을 감았다
눈을 떴다 잠에서 깬지 한 두어시간이 지난것 같은데 아직도 하늘이 어둑어둑했다 잠을 푹 잔것 같은데 왜지 하며 잠이 덜 깬 상태로 방 안을 둘러보다 기지개를 폈고 내 옆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 ..누구세요? "
" 일어나 너 너무 많이 잤어 "
" 네? 아니 누구세요? 여기 제 방.. "
처음보는 남자애는 내가 자고 있던 걸 처음부터 끝까지 본 것 마냥 무미건조하게 한마디 뱉고는 내가 있던 방을 나가 1층 계단으로 내려갔다 나는 당황해 정신을 차리고는 방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내 물건이라고는 요만큼도 없었고 심지어 모르는 사람이 브이를 하고 있는 사진과 학교에서 받은 상들이 벽에 마구 걸려있었다. 설마 지금 내가 있는 이 방 주인이 쟤인가? 나는 재빨리 침대에서 내려와 방을 나와서는 그 남자애가 내려간 계단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내려가는 와중에도 벽에 걸려있던 사진들이 내가 처음보는 것들 이었고 아는 사람인가 싶어 사진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보니 얼굴에 안개가 자욱해지는듯 형상을 알아볼 수 가 없었다 하지만 신기한건 방금 내가 본 그 남자애의 얼굴만은 정확히 알아볼 수 있었다 사진과 실물이 똑같은 그 상태 그대로.
나는 1층으로 내려가 그 남자애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고개를 돌아보며 눈으로 거실을 훑었다 그때 마침 부엌 쪽에서 소리가 났고 나는 거기로 천천히 걸어갔다 남자애는 식사를 준비하려는지 팬에 기름을 두르며 내게 의자에 앉으라 손짓했다 이 아이는 내 또래와 비슷해 보이는 듯 싶었지만 어쩐지 좀 어려보이기도 했다 그래봤자 한두살? 흑갈색의 머리가 군데 군데 삐죽 솟아있었고 눈썹이 동그랬다 신기한건 내가 이런 느낌을 어디서 또 받아본 것 같은데 기억이 안난다는 거지. 대체 내가 어디서 봤을까 아님 누가 내게 이야기를 해줬거나.
" 넌 누구야? "
내 말에 요동없이 그저 요리만 하던 그는 요리를 다 끝냈는지 접시에 담아 그릇을 그대로 내 앞으로 밀었다 포크를 건네주는것 또한 잊지않고
" 누구야 너? 네가 말하기 전까진 나 안먹어 "
" 다 먹으면 말해줄게 일단 먹어 저녁시간 지났어 "
무섭게 깜깜한 창밖을 보고나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구나 아까는 해가 막 지던 것 같더니 시간이 왠지 빠르게 가는 기분이다. 나는 포크를 들어 한 입 작게 먹기 시작했고 어느새 그릇을 다 비워갔다. 이 아이도 배가 고팠는지 나보다 더 빨리 먹어치우고는 한쪽 팔로는 턱을 괴며 또 다른 한 손으로는 그릇에 있던 올리브 서너개를 포크로 콕콕 찔러댔다
" 올리브 싫어해? 편식하면 안되는데 "
" 난 까만거 싫어해 "
" 그럼 콜라는? "
" 싫어해 "
" 왜? "
" 다 먹었으면 그릇 줘 "
꼬리에 꼬리를 무는 내 질문이 재미가 다소 없었는지 은근히 말을 돌리며 내 접시를 가져갔다 그래도 내가 왜 여기있는지는 알려줘
" 뭐? "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책 보다 잠든 게 이유라니 나는 그냥 책 보다가 졸아서 잔건데 그게 이유라니? 그럼 책 보다가 잠 들어서 벌 받은거야? 그럼 진작 벌을 줬어야지 왜 이제와서 이러는거야? 내 억울하디 억울한 눈빛을 본 그는 말을 이어나갔다
" 여긴 네가 읽던 책 안이야 그러니까 하와이 주에 있는 한 작은 마을 "
" 그럼 니가 마크야? 금발의 꼬마아이? "
" 응 "
" 근데 왜 지금 금발이 아니야? 분명 달보다 밝은 금발 이랬는데. 꼬마도 아닌것 같애 "
" 이 책은 만들어진지 50년이 돼가 주인공도 변해야지 "
" 아.. 아맞다 나 아까 책에 물 흘렀는데 "
" 응 아까 창고에서 물이 새더라 이젠 괜찮아 다 닦아냈어 "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이 세계에 대해 어느정도 이해가 갔고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묻자 글쎄.. 라는 의문 섞인 말만 남겼다. 근데 내가 생각이 어린건지 아니면 정말 아무 걱정 없어도 될 일인건지는 몰라도 이 상황이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그리고 다행인건 좋은 친구를 만나서 더 좋았다는거야. 마크 너와 이야기를 하다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저쪽 세계가 전혀 생각이 안났어 너도 나와 같았을까 마크
* *
집에만 있기에는 심심해 나와 마크는 밖을 나와 거리를 걸었다 새볔녘 아무도 없는 거리를 걷다보니 무섭기도 했거니와 그 고요함이 낮게 가라앉아 나를 삼키는 것만 같았다 마크는 무언갈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쪽으로 가보자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 하고는 내 손을 잡아 이끌었다 가로등 한 두개 있는 곳을 지나쳐 뛰어가보니 아까와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불빛이 환하게 빛났고 햇볕이 머리 위에서 쨍 하고 비추어 냈으며 구름은 솜사탕 처럼 뭉게뭉게 피어나 있었다 한마디로 처음보는 광경이었다 마크는 계속해서 내 손을 잡고선 어디론가 뛰어갔다. 도착해보니 큰 아이스크림 가게 앞. 고개를 돌아 마크 너를 쳐다보니 웃으며 넌 내게 말했다 먹자 이거 사주고 싶었어
그 아이크스림을 스타트로 넌 계속해서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 구경을 시켜줬다 다른 말로 하자면 넌 나랑 시간을 보내줬지. 행복했다. 햇빛이 뜨거워 아이스크림이 다 녹아 손에 다 흘러내릴때도 넌 예쁘게 웃으며 네 아이스크림을 대신 건네주고 내 손목을 닦아줬다. 그 손 마디조차 예뻐서 난 순간 귀가 살짝 빨개졌어 넌 아마 몰랐을거야 이건 죽을때까지 나만 알고 있으려고. 부끄럽잖아 네가 알면 분명 또 예쁘게 웃어줄테니까. 우린 만난지 24시간도 채 안되었지만 손을 잡고 돌아다니며 구경을 했다 친구들이랑 시티를 돌아다닐때도 이렇게 신이 난 적은 없었는데 그냥 마크 너랑 있어서 그런것 같았다
* * *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2층으로 올라가 방으로 들어갔다 낮밤을 시간의 흐름에 상관없이 왔다갔다 하니 몸이 평소보다 더 피곤했다. 그런 나를 알았는지 마크는 내게 침대에 누우라며 자리를 양보했다 거절할 기운도 없이 침대에 털썩 누워 무거운 눈꺼풀을 느리게 깜빡였다 그 와중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잠들면 난 다시 원래 세계로 돌아가려나 그럼 너무 아쉬울텐데 그래서 마크에게 물어봤다 혹시 나 잠들면 다시 돌아가?
" 아니 그러지는 않아 "
" 다행이다 지금 떠나면 무척 아쉬울것 같았어서"
" 나도 "
" 너도? "
" 난 슬플 것 같아 "
" 그럼 안되는데.. 네가 슬프면 나도 슬플 것 같은데 "
" 이 시간이 아까워 모든 흘러가는 시간들이 "
" 괜찮아 지금은 같이 있잖아 "
" 내가 떠나버리면? "
" 걱정하지마 우리의 사랑엔 시간초과는 없어 "
잠결에 뱉은 우리의 대화들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두둥실 날아다니며 나를 간지럽혔다 너도 나랑 같은 마음이었구나 우리 둘은 사랑이었구나 마크야
이 편은 上下 ( I / II ) 로 나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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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새로운 이야기를 들고왔습니당 아쉽게도 이건 2부작이라 다음 화에 끝날것같아요 혹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주었으면 하는 멤버가 있으시다면 댓글 남겨주세요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댓글 항상 감사합니다 여러분 더위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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