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1시. 그러니까, 약속시간 2시간 전. 평소라면 지금쯤 침대에서 기어나와 아침을 먹을 시간인데 오늘은 좀 다르다. 아침부터 일어나 난리를 치며 화장하고 옷도 입고 모든 준비를 다 했는데도 시간은 한참이나 남았다. 괜히 긴장이 돼서 핸드폰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전화가 왔다. -"일어났냐?" -"지금 한 시거든." -"그래서 하는 말인데." -"죽고 싶지." 물론 발신인은 김재환. 오늘 나의 약속 상대이자, 은근히 사람 기빨리게 하는 저 놈. 김재환은 처음부터 무서운 속도로 나한테 달려들었다. 처음 만난 술자리에서부터 날 뚫어질 듯 쳐다보고, 서슴없이 말을 걸었다. 시도때도 없이 실실거리기만 할 것 같았던 그 순진한 얼굴로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사람을 관통하는 느낌이라, 처음엔 정말 힘들었었다. 도통 익숙해지지 않는 대화랄까. 뭐, 얼마 지나지 않아 장난인듯, 진심인듯 필터링 없이 툭툭 튀어나오던 나에 대한 말들은 물론이고 저런 기분 나쁘지 않은 수준의 사소한 놀려먹음도 슬슬 일상이 되어가긴 했지만. 그때마다 틱틱거리며 장난스레 눈을 흘기는 날 애 다루듯 아 알았어, 하고 웃으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김재환에 적지 않게 설레기도 했고. 여자들은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훅, 치고 들어오는 남자들의 멘트에 반한다고 한다. 문제가 있다면 김재환이 내게 불도저같이 달려드는 모먼트가 지나치게 많다는 사실 정도. 평소엔 흘러넘치던 장난기가 딱 사라지고, 진지해지는 김재환의 눈빛을 마주하는 순간. 어제가 딱 그랬다. 우리 주말에 만날까, 하고 툭 뱉어버린 김재환의 말에 간신히 붙잡고 있던 정신줄을 놓고 아직까지도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 관심 없는 척 신경 안쓰는 척 다 했지만, 사실 지금 존나게 떨린다는 거다. -"성이름." -"왜." -"이따 봐." 전화라서 그런지 평소보다 목소리가 낮은 것 같아 이름만 불러도 기분이 이상했다. 얼굴이 확 붉어지는게, 오늘도 내가 진 것만 같다. 〈이 능글남을 어떡하면 좋을까요 02> 자기 마음대로 내 커피까지 주문하고 와선 내 앞에는 카페모카를 두고, 자기는 아메리카노를 홀짝인다. 그러면서 나한테는 왠지 달달한 걸 먹이고 싶었다며 흐흐 웃는다. 평소에 단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인데도, 저렇게 말하는 김재환을 보니 괜히 더 맛있는 것 같기도 하고. 깔끔한 흰 셔츠에 슬랙스, 메탈 시계에 어떤 여자라도 쉽게 거절 못할 훈훈한 페이스까지 장착한 김재환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우리가 갈 장소를 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우리 뭐할까." "너 나랑 갈 데 있어." 확신에 차서 뿌듯해보이기까지 하는 김재환은, 도착할 때까지 말해주지 않겠다며 또 실실 웃는다. 오늘따라 유난히 기분이 좋아보이는 김재환에 나도 덩달아 좋아서 쳐다보니 한쪽 눈이 감기도록 웃어보인다. 대학생 남자애한텐 보통 잘 쓰지 않는 말인, '사랑스럽다'는게 쟤 앞에선 절로 나온다.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카페에서 나와 김재환을 따라가 도착한 곳은 우리 둘 다 너무 잘 아는 곳. 같이 산책하다가 가끔 왔던 공원이다. 예쁘게 깔린 잔디도 많고, 형형색색의 물줄기를 내뿜는 분수대도 있는 건 알겠는데. 벌써 어둑어둑해져서 주변이 흐릿하게 보이는 이 시간에 왜 공원을 온건지. 의아해하는 내 표정을 보고선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김재환은 얘기한다. "오늘이잖아." "뭐가?" "네가 보고 싶다던 거." 내가? 너 말고 나? 기억이 도통 나지 않아 답답해하는 내게 잘 생각해보라는 말만을 되풀이하더니 내 손목을 잡아 이끌고선 옆에 있는 벤치에 앉는다. 주위를 둘러보니 원래는 한적해야할 공원에 유난히 사람이 많다. 아, 이제 생각나네. 얼마 전, 스쳐 지나가듯 말한, 내가 보고 싶다고 한 불꽃놀이. 진짜 별 뜻 없이 말한 건데, 그걸 기억하고 있었냐. "야...." "감동받은 거 보니까, 생각 난 눈친데." 또 또 저놈의 광대가 올라간다. 적당히 시원한 날씨에, 가로등 몇개만 켜져있는 공원. 이곳에서의 불꽃놀이라는 완벽한 타이밍을 맞추기 위한 김재환의 노력이 대견하기도 하면서, 좋아할 내 모습을 생각하며 하루종일 뿌듯해져있었을 김재환이 지나치게 귀여웠다. 어느새 불꽃놀이는 시작됐고, 보기에 예쁜 걸 넘어서서 행복해지기까지 했다. 화려하게 터지는 불꽃은 마음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고, 왜 불꽃놀이는 유독 커플들이 많이 보는지 알 것 같았다. 이 이상야릇한 분위기. 거기에 더해 아까 마신 커피 때문인지, 내 옆에 앉아서 묵묵히 이 광경을 쳐다보고 있는 너 때문인지, 떨리기도 했고. "성이름." 조용히 날 부르는 김재환에, 이 숨막힐 듯 어색하면서도 두근거리는 공기에, 괜히 멋쩍어 고개를 떨군 채 대답했다. "응." "나 봐봐." "왜.... 싫어." "너 내가 보게 만든다." 이게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이젠 좀 익숙해져서 네가 웬만한 말 해도 별로 안떨리거든. 머리 위에선 불꽃이 터지고, 옆에선 연인들의 달콤한 속삭임이 들리니, 차마 김재환을 당당하게 못쳐다보겠다. 이게 내가 김재환한테 반했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혼란스러워하는 나를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는 김재환의 시선이 느껴진다. "뚫어지겠네, 진짜." 몇 시간 같은 몇 초가 지나고, 결국 고개를 돌리며 불평섞인 어조로 툭 내뱉는 순간, 김재환이 내 뒷목을 감싸고 입을 맞춰왔다. 너무 급하지 않게, 살며시 맞닿는 입술에 온몸의 긴장이 풀려, 어색하게 김재환에 허리에 손을 올려놓으니 김재환은 내 손을 부드럽게 잡아 허리를 완전히 감싸도록 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입맞춤이 끝나고 김재환은 흔들리는 눈으로 내 입술을 바라보더니 시선을 눈으로 옮긴채 나지막이 말했다. "우리 사귈까." "원래 이 말을 먼저 했어야되는 거 아니냐." 장난스레 웃으면서 자신을 바라본 나를 보고는 미소를 짓더니, 뒷목에 있던 자기 손을 내 머리 위로 가져가더니 그 어느 때보다도 다정하게 쓰다듬어 준다. 이거, 진짜 사랑받는 기분이긴 하네. 그리고는, "내가 좀 급해서." 슬며시 깍지를 끼며 말하는 김재환이다. - 이게... 아무리 빨리 써도 마음에 들 때까지 수정하는게 꽤 걸리네요 ㅠㅠ 부족하지만 꾸준히 봐주시고 응원해주시는 분들 덕분에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재환이도 많이 사랑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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