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이 정말 저의 유서가 된다면 아마, 전 스물이 조금 안되는 저의 삶에 권태를 느꼈거나, 불의의 사고로 죽었거나 등등, 수많은 경우의 수 중 하나겠지요. 허나 제명에 늙어 죽어 이 글이 유서가 되는 일은 없을 듯 합니다. 굳이 유서를 여기에 적느냐에 대한 변명을 늘어 놓자면 용기가 나지 않아서, 라고 하겠습니다. 종이 위로 저의 필적을 남기며 제 삶의 끝을 가늠하기가 전 아직 무섭습니다. 아마 이 글이 저의 마지막 말이 된다면, 그당시의 전,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남은 생이 무거웠을 것입니다. 한치 앞도 보이질 않는 어둠 속 같은 앞날이, 물 먹은 솜마냥 저의 가슴팍을 짓누르고, 저의 좁디 좁은 어깨에 눈처럼 쌓여, 두 다리를 무너뜨렸을 것입니다. 세상은 너무 날카롭습니다. 그러기에 저 또한 온 몸에 한껏 가시를 세운 채 새끼를 빼앗긴 어미 고슴도치마냥 굴었습니다. 허나 속까진 가시를 세울 수 없었습니다. 저도 모르는 새, 겉으로만 가시를 세우는 사이, 속은 썩어 문드러져가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전, 두 다리가 무너져가고, 가슴팍이 짓눌려 올 때쯤, 그때쯤에야 뼈 저리게 알게 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누군가가 저란 사람에 대하여 묻는다면,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었다고 말 해주십시오. 제가 만약 죽는다면, 가루로 태워 해바라기 밑에 묻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장대한 해바라기 밭이어도 좋고, 담벼락 밑 한송이의 해바라기라도 좋습니다. 그것 하나라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죽음의 구체적 이유도 알려하지 말아주십시오. 단지 칠흑같은 여생이 부담스러웠다는 것만 알아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이 보편적 이유 외에는, 아마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너무 큰 행복을 좇다가 더 큰 절망을 만나서 였을까요. 아님, 무언의 압박에 숨이 막혀서 였을까요.가기 전엔 모든 것을 내려놓은 채 갈 것입니다. 모든 것들을. 모든 것들을. 그러니 부디 그것들을 잘 챙겨 남은 생 열심히 살다가 오실 때 쯤, 저에게 건네 주십시오. 전 그 길목에 서있겠습니다. 조금은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이만 글을 끝내겠습니다.

인스티즈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