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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루민] 또라이같은 과학선생님 루한 X 순딩순딩 순두부 김민석 2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3/3/e/33e5031d58e9fe0b085cca7ac87031e3.jpg)
"어이쿠. 이거 부작용 얘기를 깜빡했네."
"......"
"간혹 부작용으로 어지럼증, 구토유발, 고열, 빈혈증세 뭐 이딴 것들이 있는데. 별 거 아니니까 신경쓰지 마."
루한의 목소리가 까마득히 먼 곳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핑핑 도는 머리를 제 힘으로 가눌 수가 없어, 루한이 몸을 받치고 쇼파로 옮길 때까지 민석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설명이 필요했다. 지끈거리는 머리에 눈살이 찌푸려진 민석을 가뿐히 들어 옮긴 루한은 어디선가 차트를 들고 오더니 가운에 꽂혀있던 펜으로 빠르게 무언갈 적어 내려갔다. 그 광경을 힘겹게 올려다보던 민석의 잇새로 끙끙 앓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놀란 민석이 뒤늦게 입을 합 다물었지만, 이미 모든 것을 듣고 있던 루한이 적는 것을 끝내고 펜을 주머니에 찔러넣었다. 그러고선 휙휙 민석의 눈 앞에 손바닥을 흔들어댔다. 의식은 있구만. 한마디 내뱉은 루한이 차트를 옆구리에 끼고 휙 몸을 돌려 연구실로 들어갔다. 서서히 정신이 맑아지던 민석은 몇 번 눈을 꿈뻑이고선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아으, 머리야. 민석의 귓속에서는 방송이 끝난 티비에서 나오는 라음이 울리는 듯 했다. 머리를 움켜쥐고 차분해질 때까지 기다리던 민석의 무릎위로 무언가 쑤욱 튀어나왔다. 꼬질꼬질 때가 잔뜩 낀 머그컵은 이미 원래의 색을 알아볼 수 조차 없을 정도로 끔찍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머그컵 안에 담긴 코코아가 진한 향기를 뿜으며 민석을 유혹하고 있었다. 자. 어서 날 마셔요.
"뭐해. 안 마시고."
아슬아슬하게 머그컵을 받아 든 민석은 이젠 아무것도 믿을 수 없다는 듯 코코아를 노려보았다. 이런 코코아 따위. 깔끔하게 안 마셔주겠어. 흥.
"안 마시면 후회할껄."
"먹고 죽는 것 보단 나아요."
"어허. 아직도 날 의심하고 있구먼."
"뭐에요. 그 할아버지 같은 목소리는."
"마셔두는 게 좋을 거다."
진통 효과가 있거든. 씩 웃으며 민석과 같은 머그잔을 들어보인 루한이 그것을 단숨에 마셔버렸다. 캬아- 역시 아플 땐 코코아야. 말도 안되는 소리를 나불대는 루한의 모습에 기가 차서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뭔가에 홀리고 있는 기분이었다. 홀려도 단단히 홀렸어. 그것도 돌팔이같은 과학 선생한테. 민석은 궁시렁 거리면서 결국 코코아를 한 입에 털어넣었다. 따끈한 코코아가 몸 속으로 서서히 퍼졌고, 몸 구석구석이 간질간질한 기분이었다. 왠지 머리가 덜 아픈 것 같기도 하고. 쩝. 머그잔을 쇼파 밑에 내려놓은 민석이 구석을 뒹굴고 있는 먼지쌓인 담요를 덮어썼다. 으으. 그나저나 여긴 왜 이렇게 추워. 히터도 안 트나.
"먹었으면 이제 가봐."
"네?'
"실험 종료. 실험대상은 집에 가도 좋다."
"아니 지금..."
"니가 과학실 문 잠그고 갈래?"
"저, 저기요."
뿌연 담요와 함께 복도로 내팽겨쳐진 민석이 어벙벙한 표정으로 루한을 올려다보자, 싱긋 웃더니 하얀 손을 팔랑팔랑 흔들어주고는 쾅 소리와 함께 과학실 문을 닫아버렸다. 바람과 함께 먼지들이 풀풀 휘날려 마른 기침을 몇 번 내뱉은 민석이 담요를 곱게 접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해하려고 할수록 더 지끈거리는 머리에 아예 생각하지 않는 쪽으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래. 그냥 생각을 하지 말자. 죽지는 않는다잖아. 그럼 된거지, 뭐.
"그래, 김민석. 집에나 가자."
담요를 문 앞에 고이 내려놓은 민석은 평소보다 더 어둡고 긴 복도를 걷고 또 걸었다. 집에 온 민석을 반기는 것은 텅 빈 거실과 엄마의 쪽지 한 장 이었다.
"사랑하는 아들 민석이 보아라. 엄마랑 아빠 이번에 부부동반 여행 상품권에 당첨되서 여행을 좀 다녀오ㄹ... 에라이."
뭐 인생이 이렇게 설상가상이냐. 쪽지를 들고 한숨만 푹푹 쉬던 민석은 엄마가 남기고 간 하찮은 액수의 돈봉투를 들고 터덜터덜 방으로 들어갔다. 대충 교복을 갈아입고 책상에 앉아 책을 폈지만 단 한 글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아, 한 장도 넘기지 못한 채 책을 덮었다. 내 성적 떨어지면 다 선생님 탓이에요. 괴로움에 몸부림치던 민석이 체념하고 침대에 벌렁 드러누웠다. 아까 먹은 코코아 때문인지 몸이 자꾸만 축축 처지는 게, 침대에 누우니 그제서야 피로가 물밀듯 밀려온다. 천근만근 무거워진 눈꺼풀을 살포시 감은 민석의 눈 앞에 하얀 가운이 아른아른 거렸다.
이상하다.
"저기... 3학년 김민석 오빠 맞죠."
"어, 맞는데."
"이, 이거..."
"응? 뭐야, 이게."
"제가 직접 구운 쿠킨데... 오빠 단 거 좋아하신다면서요."
"으에엑??"
정말 이상해.
"끄응. 왜 이렇게 무거워."
"어, 민석아. 그거 이리줘. 내가 들어줄께!"
"뭐, 뭐야."
"아냐. 내가 들어줄께! 김종대 넌 저리 빠져."
"김종인. 너나 빠져있어. 민석아, 내가 들어줄께. 이거 창고에 넣으면 되지?"
"어..."
"김종대 너 진짜 왜이래. 내가 갖다 놓는다고."
"그럼 넌 배구공 들어. 난 축구공 들테니까."
"넌 그늘에서 쉬고 있어. 민석아!"
진짜 이상해.
"민석이. 요즘 많이 피곤하니?"
"어, 쌤! 안녕하세요."
"어제 종례도 못 올 정도로 아팠단 말이야? 병원은 갔어?"
"네? 아, 그럼요. 그냥 감기였어요. 독감 같은 거. 하하."
"겨울철 감기가 진짜 무서운거야. 옷 따뜻하게 입고 다녀."
"헤헤, 감사합니다."
"자, 이거. 쌤이 민석이만 몰래 주는 거다."
"네?"
"교무실에 있던 핫팩인데 몰래 하나 빼왔어. 감기 걸리면 안된다!"
"...감사합니다.
뭔가 잘못되고 있어.
"숙제 안 해온 애는 민석이 밖에 없니?"
"......"
"1명만 안 해왔으면 벌 주는 것도 의미가 없지. 그냥 앉아라."
"네?"
"자. 시험진도 빡세게 나갈꺼니까 집중해라!"
이게 대체 뭐냐고.
"응. 그랬어."
"갑자기 제 급식판을 대신 받아주지를 않나. 가방을 들어주지를 않나."
"그랬구나. 으응."
"친하지도 않던 선생님들이 시험문제를 막 찝어주지를 않나. 얼굴도 모르던 후배들이 찾아오기도 하고."
"민석이 당황스러웠어. 그랬어."
"몰라. 이상해. 다 이상해."
이젠 거의 울상이 되어버린 민석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던 루한이 무표정한 얼굴로 창밖을 쳐다보았다. 점심시간의 하늘은 눈이 부시도록 새파란 빛을 띄었다.
"인생은 원래 그런 법이야."
"무슨 소리에요, 또."
"조용히 살던 찌질이가 학교의 스타가 될 수도 있는거고. 멍청하게 생긴 청소담당이 실험대상이 될 수도 있는거고. 인생이 다 그렇다."
"전혀 이해가 안가는데요."
"굳이 이해하려 하지마. 머리 아파."
루한은 점심시간이나 하교시간이나 상관없이 언제나 과학실을 지키고 있었다. 1학년 과학 담당인 루한이 민석의 수업에 들어올 수가 없었기 때문에 루한과 만나려면 직접 과학실로 찾아오는 수밖에 없었다. 분명히 약을 먹기 시작한 날부터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어. 아주 명백하게 말이야. 소년탐정 김민석이 쪼끄만 머리를 팽팽 굴리며 추리를 한 결과, 원인은 약에게 있는 것으로 판단이 났다. 아니, 그런데 사람들이 나한테 잘해주는 거랑 약이랑 대체 무슨 상관이지. 진짜 미치겠네. 깊은 고민에 빠진 민석은 청소시간이 되자 약을 건네는 루한의 손을 의식적으로 피했다. 덩그러니 허공에 떠있는 손을 멀뚱멀뚱 보고있던 루한이 몸을 돌려 걸레질을 하고 있는 민석에게 다가갔다.
"뭐하는거지?"
"청소 중인데요."
"반항하는거야?"
"쌤한테는 청소하는 게 반항하는 걸로 보여요?"
"약 먹을 시간이다. 아가야."
"...싫어요."
"오호."
"그거 먹고 나서부터 사람들이 이상해지고 있단 말이에요."
"이상해지고 있는게 사람들이 아니라 너라고는 생각 안 해 봤고?"
"전 정상이에요."
"아니. 넌 비정상이야."
"정상이에요."
"비정상."
"그렇게 말하는 쌤이 더 비정상 같아요."
"어머. 지금 알았어, 자기?"
민석의 걸레자루를 빼앗은 루한이 민석에게 천천히 가까워져왔다. 슬금슬금 뒷걸음 치던 민석의 등 뒤로 딱딱한 연구실 책상이 닿았다. 이미 흡족한 미소를 띄고있는 루한을 보고 절망에 빠진 민석이 빠져나갈 궁리를 하며 눈을 데굴데굴 굴려봤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확 제껴진 민석의 몸이 차가운 연구실 책상 위로 넘어갔다. 하얀 알약을 엄지와 검지로 집어든 루한이 그것을 형광등에 비춰보며 감탄을 자아냈다. 누가 만든진 모르겠지만 자알 만들었네, 아주. 고개를 끄덕이며 알약을 몇 번 뒤집어보던 루한이 민석에게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아아- 하세요. 필사적으로 입을 다문 채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던 민석의 몸 위를 가뿐하게 올라 탄 루한이 그의 목덜미를 잡아 제 얼굴 앞으로 갖다댔다. 순식간에 가까워진 두 사람의 거리는 서로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였다. 반쯤 몸을 일으킨 채 루한의 밑에 깔린 민석은 자신을 눌러오는 무게감에 낑낑대며 몸부림쳤다. 흥미롭다는 듯 민석의 행동을 구경하고 있던 루한은 긴 손가락으로 민석의 볼을 쓰다듬더니 그대로 꾸욱 눌러버렸다.
"우웁!!"
붕어처럼 뻐끔대는 민석을 보며 웃음을 참던 루한이 입 안으로 쑤욱 알약을 들이밀었다. 혀 위에서 알싸하게 녹아가는 알약을 어쩔 수 없이 삼킨 민석의 몸이 책상 위로 축 늘어졌다. 가볍게 책상에서 내려온 루한이 손을 탁탁 털며 만족스럽다는 듯 웃었다. 거봐. 어차피 먹을 거면서.
"사기야..."
"인생은 원래 한편의 사기극이지."
"무슨 과학교사가 이렇게 힘이 세."
"과학교사가 약해야 한다는 편견은 어디에서 나온거야. 니 그 짱돌머리?"
"이 실험의 목적이 뭐에요, 진짜."
"귀여운 제자와의 오붓한 시간을 갖는데에 그 목적이 있지."
시원하게 웃던 루한은 차트를 꺼내 또 엄청난 속도로 무언갈 적고 있었다. 민석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절망과 괴로움속에 빠졌다. 또 먹었다. 또 먹고 말았어. 난 왜 그 날 약을 먹어버린 거지? 아니, 그보다 난 왜 과학실에 청소배정을 받은거야. 제일 이해가 안되는 건, 내가 왜 저 돌팔이 선생의 말대로 고분고분 움직이고 있는 거냐고. 이러니까 내가 정말 실험체라도 된 것 같잖아. 민석은 시리도록 차가운 책상에 머리라도 박고 싶은 심정이었다. 루한의 알약을 먹은지도 어느 덧 일주일이 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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