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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만난 첫 날.
나와 너는 고작 열두 살 이었고, 모든 것이 서투를 그런 나이였다.
으레 사랑에 빠지면 그렇 듯 네 생각에 밤잠을 설치기도 하고, 친한 아이들에게 몰래 속마음을 털어놓기도 하고, 특별난 일이 없어도 내 주변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까무잡잡한 얼굴로 맑게 웃는 널 볼때면, 괜시리 좋은 마음을 숨기려 틱틱대고 더 못나게 굴었던 것 같다.
항상 쉬는 시간이면 네 자리로 쪼르르 찾아가 네 옆자리 아이에게 괜히 말을 걸곤, 힐끗 대며 보던 너의 얼굴에도 설레이고 어쩔 줄 몰라했던 나였다.
눈물이 많은 너였기에, 못된 반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널보곤 한 두번 괜찮냐고 달래 준 것이 시작이었을까.
너는 내 친구들, 그리고 나와도 가까운 사이가 되었고 자연스럽게 넌 나와 편한 관계가 되었다.
여느 날과 다름 없이 얘기를 하던 때, 그 날따라 너와 난 단 둘이서만 얘기하게 되었고 얘기를 하던 도중 물 흐르듯 툭 내뱉은 너의 말에 놀란 마음을 감추려 담담한 목소리로 내게 되물었다. 그게 누군데?
말을 꺼내놓곤 망설이는 듯한 너에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겠다며 재촉하듯 말을 내뱉는 나에 넌,
괜히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히며 내게 말했다. 혹시나 했던 마음은 역시나로 바뀌었고, 수줍어 하는 너의 모습이 야속해 입술만 잘근잘근 물어뜯었다.
네가 말한 그 아이는 나의 친구였고, 착하고 예쁜아이였다.
어린 마음에 그 아이에게 괜히 못되게도 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여렸고 어렸다.
네가 나에게 네 마음을 말해준 날, 나는 애석하게도 깊은 새벽 소리없는 울음으로 밤을 지새웠고, 내게 더욱이 모질게 굴었다.
그럼에도 너만보면 피어오르는 기분 좋은 설렘을 억지로 외면했고, 생각 하지 않으려 애썼다.
열두 살, 어린 나이에 겪은 짝사랑의 아픔은 생각보다 아프고, 슬픈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 버스에서 마주친 넌 키가 훌쩍 컸고, 내가 가장 좋아하던 너의 예쁜 눈웃음도 한층 깊어졌었다,
첫 짝사랑의 아픔은 무뎌졌으나, 너의 대한 마음은 아직까지도 남아있었던 걸까.
나는 항상 같은 시간대에 타는 너를 따라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 내릴 때 까지 네 뒷모습만 하염없이 보다 내렸었다.
그리고 그 해 겨울. 새로이 학원을 다니고자 찾아간 학원은 어색했고 낯설었다.
선생님의 말에 따라 찾아 들어간 교실에서 앞을 가리고 선 선생님이 사라지고 고개를 들자, 마주쳤던 건 바로 놀란 네 얼굴이었다.
둘 다 놀라 아무 말없이 쳐다보기만 하다, 들려오는 선생님의 목소리는 너희 둘이 아냐는 물음이었고, 대답하려던 내 말을 막은 건 너였다.
아, 그냥 예전에 알던 애요. 지금은 안 친해요. 확인 사살하듯 덧붙인 너의 말에 내 입은 굳게 다물어졌고 순간 울컥하는 마음에 너를 쳐다 봤으나, 이미 나는 안중에도 않은 채 고개를 돌려 버린 너를 허망하게 쳐다보다 가장 끝자리를 찾아 멍하니 앉아있었다.
몇 번씩이나 주의를 주는 선생님의 말에도 불편한 마음은 가시질 않아 겨우 공부를 끝내곤 돌아온 집에선 그 날, 너의 마음을 들은 날과 같이 소리없는 울음을 삼켰다.
그 날 이후, 왜 다니지 안겠냐는 엄마의 말에 대충 얼버무린 채 대꾸한 나는, 너보다 조금 더 일찍 버스를 탔고, 네 학원 앞은 얼씬도 하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겪은 짝사랑은 야속하고 아팠다면, 몇 년 뒤 겪은 같은 짝사랑의 아픔은 생각보다 빠르게 잊혀졌고, 빠르게 무뎌졌다.
모든 것이 서툴고 여렸던 내 열두 살은 너로 시작 됐으며 너로 끝맺었고, 조금 더 성숙해진 나는 아픔을 견딜 수있는 단단함이 생겼고, 감정을 다스릴 줄 알게 됐다.
지금 다시 돌이켜보면 미련하기 짝이 없는 짝사랑이지만, 나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추억이었고,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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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 하시는 분들 모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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