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수는 암암리에 마약 파티가 이루어지는 파티장 안으로 들어섰다.
여느 때와 같이 표정은 무미건조했다. 애당초 표정 변화가 없다시피 한 얼굴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만, 그것을 감안해도 그에게서 느껴지는 공기는 지독히도 습하면서 서늘한, 늪지에 가까웠다. 그는 살을 엘 만큼 차갑지도, 그렇다고 따뜻하지도 않았다. 파티는 이제 막 막바지로 들어서고 있었다. 약에 취해 파티장 내에서 그대로 쓰러져 자는 사람들도 있었고, 물담배를 피우고 있는 이들도 보였다. 아마, 이층으로 올라간다면 한창 약과 술에 취해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이 보일 것이었다. 명수는 가만히 눈을 깜박이다, 주저 없이 이층의 층계를 올랐다. 함께 따라온 주변의 만류 어린 시선에도 굴하는 바 없이 올라가는 몸짓이, 지독히도 느릿했다.
친구들은 그럼에도 명수를 따라왔다. 믿을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것에 딱히 신경을 쓰지 않은 채 명수는 이내 바지춤에서 한 대를 꺼내 물었다. 일반의 담배가 아닌, 대마초로 조제해 종이에 싸서 말아 파는 마약이었다. 얼마 전 돈과 맞바꾼 그것은 캘리포니아에서 나왔다는 대마초 말보로로라고 했다. 녹색의 담뱃갑을 응시하다 라이터로 시선을 던지자 빈 통이었다. 라이터 있어? 물어보자 친구들은 없다고 답했다. 명수는 라이터의 대용을 위해 시선을 이리 저리 던졌다. 탁한 눈동자 안에 저 가까이 보이는 의자에 놓인 성냥개비 한 통이 보였다. 명수는 주저없이 그 곳으로 다가서 심지로 불을 그으며 불을 붙였다. 그리고, 이내 한 모금을 쭉 빨았다.
누군가가 시선에 아른거렸다. 친구들인가, 시선을 돌렸으나 보이지 않는다. 친구들은 반대쪽에 있다. 정신은 말끔히 깨어 있었다. 대마의 특성이지만 명수는 계속 시선 안에 벌거벗은 채로 울부짖는 누군가가 시선 안에 아른거려 그 누군가의 정체를 잠깐 생각하다 알아냈다.
" 아, 이성열. "
내가 굳이 이 곳까지 오겠다고 한 이유.
문득 귓가에 익은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명수는 바로 앞의 방문을 발로 걷어찼다. 주변의 만류가 귓가에 들어왔지만 상관없었다. 명수는 마침내, 소파 위에서 한참 뒹굴고 있는 누군가와 성열을 찾아냈다. 마약을 줄 테니 자자는 말에 바로 순응한 모양이었다. 성열은 마약을 절대적으로 숭배하는 마약 신봉자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마약에 빠져 살았으니까. 밖과 마찬가지로 술과 대마 향이 진동하는 방 안의 얼굴은 분명한 성열이었다. 마약으로 눈이 반쯤 풀려 있었고, 환각과 같이 발가벗고 있었다. 명수의 시야에 아른거리는 환각과 현재 제 앞에 있는 성열의 얼굴이 완벽하게 일치했다.
인기척이 들리자 역시나 약에 취해있는 상대가 혀 꼬부라진 목소리로 누구냐고 욕설을 내뱉었지만 명수는 허리를 숙여 나뒹굴고 있는 술병 중 하나를 집어드는 데에 열중했다. 성열이 여전히 눈이 풀린 채로 고개를 들었다. 명수가 직접 찾아온 적은 처음이었다. 근 2년간의 연애동안 둘의 사이는 미적지근하다못해 아무 것도 없었다. 고백을 한 것은 둘 다였으나 그 직후부터 충동적으로 결합한 결과로 파멸한 건지, 아니라면 애정이 애당초 존재하지 않은 채 식어버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정확히 성열은 명수를 사랑했지만 그런 스스로를 신뢰하지 않은 채 감히 저 따위가 명수를 사랑하여 소유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명수는 이따금 여자를 끌어들여 육체적 관계를 맺었고, 성열은 약을 핑계로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에 더욱 저 자신을 낮추기 위해 다른 이들과 관계를 맺었다. 둘은 사귀되 이어지지 않는 불충분 관계였다.
- 씨발, 너 이새끼 누구야?
" 나? "
명수는 고개만 들어 상대를 보았다. 저와 같은 또래로 보이는 남자의 얼굴은 험상궂었으나 아주 형편없었다. 좆도 존나게 작네, 명수가 했던 첫 마디에 남자는 발끈해 주먹을 날렸고, 명수는 그대로 그것을 맞아주었다. 빗맞았던 탓에 아주 아프지는 않았지만(애초에 명수에게는 이것이 새발의 피였다), 그래도 제법 쓰라렸다. 벌거벗은 성열이 그 광경을 보고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는 것이 보였다. 명수의 시선은 여전히 소파 위에서 덜덜 떨고 있는 성열을 주시했다. 성열이 입모양으로 무어라 말했다.
명수야
그리고, 명수는 그때까지 손에서 거두지 않은 술병을 그대로 남자에게 휘둘렀다. 순식간에 피가 난자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다른 이들이 명수를 말렸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러나, 술병으로 그를 두들겨 깨는 와중에서도 두 눈은 성열을 향하고 있었다.
성열은 약에 취해 몽롱한 채 둘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내 잠시나마 잊고 있던, 아니 잊으려 노력했던 지난날에 다시 괴로워졌다. 성열은 명수가 이름모를 이에게 깨진 술병을 휘둘러 난자하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명수는 단 한번도 이런 적 없었는데, 생각하자 다시 머리가 아파진다. 사랑하지만, 그렇게 말하지 못하는 저에 대한 자괴감도 포함된 괴로움에 인한 두통이었다.
성열은 점점 정신이 가물가물해졌다.
그러나, 환청인지 기억인지 이년 전 명수가 저에게 했던 말이 점점 귓가를 계속 맴돌았다.
- 쓸모있어, 너.
필요해, 나한테.
눈앞이 아득해졌다. 결국, 성열은 광경을 지켜보던 도중 축 늘어졌다. 그제서야 명수는 상대의 얼굴에 깨진 술병을 쳐박는 멍청한 짓을 멈추었다. 친구들이 서둘러 성열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나갔고, 남자는 여전히 반병신이 된 채로 쓰러져 있었다.
명수는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아주 느릿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친구들이 발걸음을 재촉했으나 그럼에도 속도는 그대로였다.
그리고, 쓰러진 성열을 안아 올리는 명수의 표정은 여전히 그대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