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맞으며 모두가 서 있었다.
4월 2일. 거짓말 같았던 어제가 지나고, 한동안 기승을 부리던 미세먼지가 간만에 내리는 비로 씻겨 내려가는 날이었다. 이제 막 따뜻해져 가는 땅을 다시 차게 식혀주는 서늘한 봄비였고, 숨죽여 울고 있는 누군가의 얼굴을 숨겨주는 고마운 봄비였다.
제법 많은 비가 내리고 있었으나 운동장에 모여있는 많은 인원들 중 우산을 쓰고 있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듬성듬성 뭉쳐있는 인파를 피해 구석자리에 신 형사가 차를 댔다. 시동을 채 끄기도 전에 먼저 내린 내 머리 위로 기다렸다는 듯 가랑비가 주룩주룩 떨어진다. 저 멀리서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서 있던 중년의 남성이 슬쩍 우리를 쳐다보더니 이내 힘없는 걸음으로 다가온다.
“형사님들 되시죠?”
다 쉬고 갈라져 힘이 없는 목소리로 그가 묻는다. 예. 뒤따라 내린 신 형사가 입을 다물고 있는 날 대신해서 대답해준다. 휴우, 중년의 남성이 한숨을 쉰다. 땅이 언제 꺼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지독히 깊은 날숨 한 조각이다.
“이 학교 교장입니다.”
교장선생님!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 등 뒤로 젊은 남자가 허겁지겁 뛰어온다. 마치 우연의 일치로 이루어진 대본 같은 등장이었다. 젖은 흙을 바지자락에 다 튀기면서 과하게 드라마틱한 남자는 마치 뮤지컬의 배우처럼 굴었다.
“어서 오게, 정 선생. 형사님들 오셨네.”
“아이고! 먼저 인사들 나누고 계셨군요. 안녕하십니까. 정현규라고 합니다.”
멋쩍은 표정으로 악수를 청하는 그의 손을 맞잡아주었다. 형사 김석진입니다.
“피해자 담임선생님 되시죠?”
“예? 예. 맞습니다. 제가……. 제가, 아미 담임입니다.”
네. 덤덤히 대답한 나와 다르게 선생의 표정은 하얘졌다 파래졌다, 웃었다 굳어졌다를 반복한다. 그러셨구나. 그가 비에 젖은 머리칼을 넘기며 멋쩍게 답한다. 사건현장으로 이동했으면 하는데요. 신 형사가 먼저 조심스레 선수를 친다.
“아, 그럼요! 이쪽입니다.”
“정 선생, 형사님들은 내가 모시고 가겠네. 자넨 애들 통제 좀 부탁하네.”
“아이고, 네, 네! 그럼 말씀들 나누세요.”
선생이 부산스러운 움직임과 함께 일행을 떠나 저 편에 있는 학생들 무리 쪽으로 멀어져 갔다. 따라오시죠, 교장이 천천히 걸음을 뗀다. 그 뒤를 나와 신 형사가 잇는다. 느린 교장에 걸음에 재촉을 할 법도 하다만 둘 중 누구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차라리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어서 아예 도착하지 못하길 바랬다.
“그, 발견된 장소가…… 수영장입니다.”
“……”
“선생들한테 정말 예쁨도 많이 받고, 공부도 잘했던 아이였어요. 정말,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교장이 말끝을 흐린다.
“그거 다행이었군요.”
“예?”
“아니, 아닙니다.”
생각만 하던 것이 입 밖으로 튀어나온 걸 보니 나도 제정신은 아닌 게 확실하군. 신 형사가 옆에서 내 눈치를 본다. 여깁니다. 교장이 발걸음을 멈추고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낸다. 깨끗했던 본교 건물과 너무 비교되는 낡은 철문은 일반 성인 남자가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야 할 정도였다. 몇 번 뻑뻑한 열쇠를 이리저리 돌린 끝에 철컥,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무거운 문을 힘겹게 당기자 쇠가 마찰하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났다.
여깁니다. 교장의 말이 두어 번 울려 퍼졌다. 수영장은 지은 지 얼마 안 되었다고 알려진 학교 건물과는 정반대로, 오래된 건물 특유의 을씨년스러움과 눅눅한 습기로 가득했다. 옛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듯싶은 것이, 벽 곳곳에 거무튀튀한 곰팡이가 피어있었다. 축축한 공기가 차가웠다. 수영장 바닥을 내려다 볼 자신이 없었다. 눈을 감고 싶었다.
“김 형사님.”
멍해지는 뇌를 신 형사의 목소리가 깨웠다. 아, 예. 그가 미심쩍은 눈초리로 날 쳐다보았다. 밤을 새고 나와서 그런지 힘에 부치네요. 냉소를 지었다. 딱딱하게, 로봇같이. 스스로가 스스로의 부자연스러움을 인식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럼…… 안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부터는 교직관계자 여러분의 출입도 금지하겠습니다. 신 형사님, 안내해 드리세요.”
가시죠. 신 형사의 떠미는 손길에 따라 그들이 밀려나간다. 자, 잘 부탁 드립니다. 연신 고개를 굽실거리는 그들에게 슬쩍 고갯짓으로 인사를 건넸다. 다시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철문이 열렸다 닫혔다. 이곳에 나를 혼자 남겨두고.
어떡하지. 내 날숨에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제 어떡할까? 가득 찬 수영장이 넘실거렸다. 밖으로 조금씩 물이 넘쳐흘러 주변부를 조금씩 적셨다. 배수구를 타고 흐르는 물소리만이 들렸다. 누군가 죽었다고는 믿기 힘든 고요와 안정이었다.
……겨우 18살, 한 여고생이 오늘 이곳에 빠져 죽었다.
“아이고, 형사님들! 어떻게, 조사는 잘 되어가시는지……!”
“……큼, 글쎄요. 아직 초기이니 뭐라 말씀 드리기 어렵네요.”
아이고, 그럼요 그럼요. 얼마나 고되십니까! 과도하게 굽실대는 담임은 눈썹을 한껏 내림과 동시에 이를 보이며 웃는 미묘한 표정을 연신 지어 보였다. 필요한 게 있다면 뭐든지 말씀해주십쇼! 어쩐지 그의 말투는 점점 콩트가 되어간다.
“……한 가지 말씀 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만.”
“예! 말씀만 하십쇼!”
“학생들을 조금 인터뷰해도 될까요?”
“학생들이요?”
“피해자의 주변 인물들을 조사하는 것도 중요한 과정입니다.”
아이고, 그럼요. 큰 일이죠. 그가 고개를 주억거리면서도 눈을 조심스레 치켜 뜬다. 혹시, 저희 학생들을 의심하시는 건……
“……우선 피해자에 대해 알아야, 자살인지 타살인지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군요.”
“아, 예 예! 당연히 그렇겠죠. 부디, 잘 좀 부탁 드립니다. 저희도 모쪼록 사건이 잘 해결되길 빌고 있습니다.”
……죽어도 확답으로는 허락하지 않겠다, 이건가. 상관없다. 어차피 이들은 어떻게는 이 일이 조용히 묻혀지길 바라는 사람들이니까. 그럼, 수고하세요. 고갯짓으로 슬쩍 인사를 나누고 큰 걸음으로 그에게서 멀어졌다.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피해자는 18살의 여고생. 자살인지 타살인지는 아직 불명확함. 자살이라면 그 원인을 밝혀야 하고, 타살이라면…… 용의자를 밝혀야 한다.
무엇이, 또는 누가, 그 아이를 죽음으로 몰아넣었을까.
- 4월 2일, 음성 녹음_001
안녕하세요. 학생들, 혹시 괜찮다면 잠깐 얘기 가능할까요?
“……누구신데요?”
서에서 나왔습니다. 김석진 형사라고 합니다. 자, 여기 명함……
“아, 네……”
……저는 김아미 학생 관련해서 조사 중입니다. 혹시 아세요?
“아, 혹시 그 죽은……”
맞아요, 그 죽은 학생.
“아, 그…….죄송해요.”
아뇨, 죄송하다고 하지 마세요…… 음, 아미 학생을 알아요, 두 분?
“그 언니 공부 잘하기로 유명했어요, 맨날 전교 일등하고. 선생님들도 다 예뻐하고.
“그리고 그 누나 존나 예뻤었…… 아, 욕하면 안돼요?”
아니, 괜찮아요. 자료 아니고 제 참고용이니까. 아, 이거 녹음 중인데, 괜찮나요?
“네, 네! 괜찮아요.”
그럼…… 조금 더 말해줄래요? 아미 학생에 관해 아는 거 전부.
“……그 언니 예뻐서 인기 많았어요. 성격도 좋다고 했는데, 거기까진 잘……”
“학교 되게 열심히 다녔어요. 학생회도 하고, 수영부인가? 거기 매니저도 했을 걸요?”
“막 무슨 대회 같은 거 다 나가고…… 여하튼 그냥 유명했어요.”
그랬군요. 고마워요…… 특별히 뭐, 싸웠다거나 사고를 쳤다거나 그런 학생은 아니었단 말이죠?
“네. 절대 그런 누나 아니었는데.”
“아, 근데…… 좀 별로인 사람들이랑도 친했대요.
“엥? 누구?”
“그 있잖아, 3학년에 개일진.”
“아, 민윤기?”
“맞아. 그 새ㄲ...... 그 사람이 그 언니 좋아했었음. 유명했는데?”
“헐, 진짜?”
민윤기? 그게 누구죠?
“3학년에 있는 사람인데, 되게, 뭐랄까…… 질 낮은 사람?”
“일진이죠, 일진.”
“막 머리 노랗고 파랗고…… 개무섭게 생겼어요. 선생님들도 다 포기했어요.”
“그 형 사람 때려서였나? 소년원 갔다 왔어요. 그래서 유급해서 지금 20살이에요.
“미친, 진짜? 나 처음 들음.”
……유명한 사람이군요. 근데 아미 학생이 그 학생과 친하게 지냈어요?
“친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는데…… 근데 그 사람이 그 언니 좋아한다고 다들 알고 있어요.”
“둘이 같이 밥도 먹고 그랬다는데…… 근데 그 누나 예뻐서 솔직히 좋아할만함.”
……협조 감사합니다. 수고했어요.
“……근데요. 그 누나 자살한 거 아니고 누가 죽인 거에요?”
“야, 왜 그딴 걸 물어봐.”
……글쎄요. 어떻게 된 걸까요. 이만 녹음 종료하겠습니다.
- 4월 2일, 음성 녹음_002
“그, 그냥 말하면 돼요?”
음, 자기소개 먼저 해줄래요?
“아…… 안녕하세요. 수영부 한세진이라고 합니다.”
반번호도.
“아! 1학년 7반입니다.”
좋아요. 세진 학생, 4월 2일 아침 9시경, 뭘 하고 있었는지 최대한 자세하게 말해주세요.
“저, 저는 아침 8시 50분쯤에 학교 수영장에 갔습니다.”
왜 수영장에 갔죠?
“다다음주가 유소년 대회라, 수영부 출전선수들은 모두 1,2교시를 연습시간으로 조퇴하기로 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8시 반쯤에 학교에 와서 종례를 듣고, 끝나자마자 바로 수영장으로 갔었습니다……”
그 때 혼자 있었나요?
“아, 아뇨. 다른 부 애들이랑 같이……”
총 몇 명이었죠?
“중간중간 만나서 간 거라…… 한 6명? 정도……”
그래서, 수영장에 갔더니 뭐가 있었죠?
“……”
세진 학생. 아침에 뭘 봤죠?
“……수, 수영장에 갔더니, 갔더니…… 아미 누나가 죽어있었어요.”
……어떻게요?
“……풀에 떠있었어요.”
자세하게, 아주 자세하게 설명해주세요. 세진 학생은 최초 목격자 중 한 명이에요. 지금 발언이 정말 중요합니다.
“……풀에 물이 가득 차있었고, 레인이 설치가 안 되어있었어요. 누나는 한 가운데에……”
떠 있었군요.
“엎드려서, 있었어요. 처음엔 장난치는 줄 알았어요. 근데 장난이 아니란 걸 다들 알아챘어요. 누나는…… 누나는 수영을 못하거든요.”
아미 학생은 수영부인데도 수영을 못했어요?
“누나는 매니저였어요. 별로 못해도 상관은……”
……그랬군요. 또 다른 점은 없었나요?
“……체육복을 입고 있었어요.”
네…… 그 날 수영장에 달리 이상했던 점은 없었나요?
“그, 그런 걸 알아챌 정신이 없었어요. 누나를 보자마자 정국이가 뛰어들어 건져냈거든요. 그러고 119랑 경찰 부르고……”
수영장에 선생님께서는 안 계셨나요?
“아침엔 수업하시느라 원래 안 오세요. 저희가 한참 후에 불러서 오셨어요.”
네…… 아미 학생을 건져낸 게 정국이라고요?
“네. 전정국이라고, 1학년 애 있어요.”
그랬군요. 말해주느라 수고했어요. 이제 가봐도 좋아요. 혹시 또 생각나는 게 있으면 이쪽으로 연락주세요.
“네, 네……”
저희 쪽에서 또 연락 드릴 수도 있어요. 양해해주세요.
“……저기.”
네?
“……저는, 막 다른 조사 같은 거 안 받아도 되는 거죠……?”
……글쎄요. 어떨까요. 수고했어요. 녹음 종료하겠습니다.
“……김 형사님, 어느 학생부터 부를까요?”
“……민윤기. 민윤기부터 불러주세요.”
끔찍한 내가 아름다운 너를 사랑해서.
인어공주잔혹사
다음 화, 민윤기 (1)
*
본격 시작부터 나는 없고 애들끼리 잘생긴 이야기.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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