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eet aroma-마음속의 풍경
어서오세요 ,
심야<心惹> 약국
written by. 참이슬
-마음을 이끄는 약국, 그 일곱번 째 이야기-
오늘은 답지 않게 쉬는 날 아침을 오롯이 잠에 투자하지 않고 싶었다. 어릴 적 새벽마다 배고픔에 울던 나에게 우유를 먹였다던 엄마의 말마따나, 어른이 된 지금에서도 흔히들 말하는 꿀잠을 자지 못하던 나는 왜인지 오늘따라 일찍 맞이한 아침을 그냥 보내기가 싫어졌다. 약간은 멍한 정신을 깨우기 위해 목욕을 하고 머리를 말리며 아침으로 무얼 먹을지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민형씨와 함께 갔었던 카페가 생각이 났다. 그 때 커피를 고르면서 진열장에 놓인 케이크 사이로 보이던 샌드위치가 떠올랐다. 무진장 먹고싶다! 목표가 생기니 손놀림도 분주해졌다. 추워지는 날씨에 따라 건조해지는 머릿결에 에센스를 발라주고, 민낯은 아무래도 나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생각하여 가벼운 화장을 하고 후드티에 패딩을 입었다. 나는 이상하게도 머리를 감은 날에 묶는 머리가 그렇게나 잘 어울렸다. 예쁘게 힘준 묶은 머리를 보고 머리를 안 감았냐는 질문에 상처를 받아도 거울을 보며 헐겁게 묶은 머리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만족스러움에 거울에 비친 나를 보며 싱긋 웃어보았다.
" 뽀뽀, 사고치지 말고 있어! 이번에도 소파 쿠션 뜯어놓으면 혼날줄 알어~ "
" 왈왈!! "
뽀뽀의 마중을 받으며 운동화 앞코를 콕콕 두드리며 마저 신고 에코백을 어깨에 걸쳐맨체 엘레베이터에 올라탔다. 다행히도 언덕배기는 미끄럽지 않도록 이름 모를 굵은 하얀 알갱이들이 뿌려져 있었다. 조심조심 언덕을 내려와 닫혀있는 약국을 지나쳤다. 뒤를 돌아 다시 한 번 약국을 보았다. 지금쯤 뭐하고 있을려나.. 하다가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샌드위치 생각만 해보려 노력했다. 하얀 입김을 뿜으며 카페 문을 열어 따뜻한 히터바람을 맞으니 급격한 온도 차이로 몸이 파르르 떨렸다. 모짜렐라 샌드위치 하나랑 뜨거운 아메리카노 주세요. 카드와 쿠폰을 동시에 내밀었다. 쿠폰에는 도장이 4개가 찍혀있었다. 민형씨와 왔던 날 2개. 오늘도 2개. 10개는 금방 채울 수 있을 것 같지만서도 은근히 채우기가 힘들단 말이지. 나는 창가를 마주 보고 앉을 수 있는 자리에 앉았다. 얼마 전 힐링이 절실히 필요하여 홀린 듯이 구매한 책의 앞 장을 펼쳤다. 책의 앞머리를 읽는 순간의 떨림이 독서의 묘미라 생각한다. 깔끔한 종잇장이 넘어가는 소리와 조금은 거친 촉감에 약간의 소름이 밀려오면서 기분이 간질거렸다.
먹고 싶었던 샌드위치와 함께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읽고 싶던 책까지 읽으니 오늘 하루의 만족도가 벌써부터 가득 채워졌다. 책의 반절을 읽고나서 책갈피를 끼워넣어 가방에 넣고 카페를 나와 그냥 집으로 향하기엔 아쉬운 마음에 어디로 갈지 생각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설마 종교적인 접근일까 싶어 잔뜩 경계를 하며 뒤를 돌아보았을 땐 깜짝 놀랄 사람이 서 있었다.
" 역시, 여주씨일 줄 알았어요. "
" 민형..씨. "
" 혹시 지금 바쁘세요? "
나는 살짝 주저했다. 어제 바쁘단 핑계로 민형씨와의 만남을 피했는데.. 이렇게 길가에서 마주쳐버리다니. 누가 봐도 할 일이 없어 보이는 후줄근한 옷차림에 거의 생얼이다 싶은 얼굴까지... 이러고 민형씨와... 어디를... 가도.. 괜찮지가 않을 것 같은데. 그러는 와중에 민형씨는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가방끈을 두 손으로 꼭 쥐어잡으며 민형씨의 목도리를 보며 얘기했다. 마, 마트 가려구요.
" 저도 마트 가려던 참이었는데 같이 가도 괜찮을까요? "
" 아, 네! 같이 가요.. "
" 저기 앞에 제 차 있어요. 같이 타고 가요. "
민형씨도 이제껏 봐온 옷차림 보다는 편해보였다. 긴 가디건에 남색 머플러를 맨 모습이 참 잘 어울린다. 차에 올라타고 안전벨트를 매려는데 안전벨트가 잘 나오질 않아 얼마 안가 도착할텐데 하는 마음에 그냥 포기하고 앉았다. 하지만 바로 민형씨에게 들키고 말았다. 벨트 매셔야죠. 나는 민형씨를 한 번 보고 다시 벨트를 빼보려 했지만 어딘가에 걸렸는지 꼼짝을 않았다. 애써 웃어보이며 요 앞인걸요 뭐.. 라고 했지만 민형씨는 안 된다며 단호히 답했다.
" 바로 앞이어도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걸요. 벨트가 잘 안되나요? "
" ..네... 근데 진짜 괜찮아요. 가방 앞에 이렇게 안고 타면 괜찮지..... 않을까요? "
" ...여주씨, 잠깐 실례할게요. "
민형씨는 본인의 안전벨트를 풀고 손을 뻗어 내 좌석의 안전벨트를 잡아당겼다. 이럴 수가, 민형씨가 당기자 너무나도 쉽게 풀려나오는 안전벨트에 나는 놀란 나머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가 민형씨의 정말 바로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밀고 말았다. 허, 헙. 본능적으로 입냄새가 날까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민형씨의 까만 눈동자가 내 눈을 바라보다가 멀어졌다. 심장이 떨리던 안전벨트를 드디어 매고 나서야 차가 출발했다. 라디오나 음악 하나 들리지 않는 조용한 차 안. 무슨 말이라도 꺼내야 할 것만 같아 골똘히 생각하는 와중에 민형씨가 먼저 정적을 깨고 들어왔다.
" 점심 집에서 해드시려나봐요. "
" 아아- 네, 뭐... 잘 하진 않아도 왠만하면 집밥 먹으려고 노력하는 타입이어서요. "
" 그렇구나. 저랑 똑같네요. 저도 손재주는 그닥인데 사먹는 것 보단 집에서 어떻게든 해먹는게 낫다고 생각해요. "
" 네에.. "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앞을 응시했다. 민형씨는 코너로 돌면서 핸들을 꺾었고 온 몸에 힘을 풀고 있다 무게중심을 잡기 위해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에 놓인 팔걸이를 잡으려 했지만 미처 민형씨의 손도 그곳에 있을거라 생각을 못했다. 민형씨의 손을 덮은 내 손은 코너가 끝나고 나서야 떨어졌고 나는 당황한 나머지 죄송하다고 말했다. 민형씨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죄송할 것도 아닌데 왜 사과하세요. 귀가 빨개졌을까봐 괜히 귓볼을 만지작거리며 창밖을 보며 하하하.. 웃었다. 목을 잔뜩 움츠리고 얼른 뜨거운 기운이 가시길 기다리는데, 나즈막히 민형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순간 잘못들었나 싶었지만서도, 잘못들은게 아니길 바라게 만드는 말이었다.
" 여기 코너길 더 없나.. "
어서오세요 , 심야<心惹> 약국
" 여주 누나랑 먹으니까 더 맛있는거 같다. "
" 얘도 참.. 민형씨가 요리를 잘 해서 맛있는거지. "
" 아니에요. 이 형이랑 같이 먹으면 밥을 먹는지 구박을 먹는지 모르겠는데. 누나 오니까 구박도 안당하고 좋아요 완전. "
" 이동혁 너 내가 언제 구박을 했다고..! "
" 와- 모르는척 지렸고요 "
민형씨는 밥을 먹다가 기침을 했다. 급히 물컵을 건네자 그것을 받아들곤 벌컥거리며 식탁에 탁- 소리나게 내려놓고선 언제 그랬냐며 동혁이와 투닥이는 모습이 너무 신기하고 귀여워서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여주씨, 저 그런 적 없어요. 혹여나 내가 동혁이 말을 믿을까 불안하여 자꾸만 아니라고 하는 민형씨를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처음이었다. 빨개진 민형씨의 귓볼을 본 것은. 동혁이는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그러다 아악 하는 소리와 함께 무릎을 부여잡고 소리없는 아우성을 내지르는 동혁이에 민형씨를 바라보니 민형씨는 국 따뜻할 때 얼른 드세요. 라며 내 시선을 돌렸다. 민형씨에게도 이런 모습이 있을 줄이야.
" 그런데 민형씨 원래 이렇게 일찍 일어나세요? "
" 아, 오늘은 좀 일찍 일어난거에요. 혹여나 제 걱정은 안하셔도 돼요. 영업중엔 동혁이 세워놓고 뒤에 방에서 자도 되니까. "
" 어! 그러고보니까 누나는 오늘 출근 안하는 날이에요? "
" 응? 아 응. 내일 해... 가 아니지. "
숟가락질을 하다가 그대로 멈춰버린 나와 우적우적 열심히 먹느라 정신없는 동혁이. 그리고 눈이 마주쳐버린 민형씨. 나는 입술을 달싹이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민형씨는 아마 나를 위하려는 듯 나와 눈이 마주쳐도 표정 변화 없이 고개를 돌려 젓가락질을 했다. 하.. 이대로 내 몸이 터져서 없어졌으면 좋겠다. 몸을 살짝 비틀어 마른 세수를 하는데 시한폭탄 같은 동혁이가 입을 열었다. 형, 오늘도 여자친구 만나? 그 말에 다시 고개가 번쩍 들렸다.
" 뭐? "
" 어제 왔던 그 누나. "
" 너 미쳤어? 그 사람 여자친구 아니야. "
" ...아니 미쳤다고 할 것 까지야.. "
" 말이 안 되는 소릴 하니까 그렇지. "
힝. 동혁이는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을 보내왔다. 나는 무어라 해야할지, 아니 말을 할지 말지 고민하고 있는데 민형씨가 나에게 말했다. 여주씨, 저 애인 없어요. 결백을 주장하는 듯한 강한 눈빛에 나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그러나 동혁이는 그럼 어제 왜 약국에서 그러고 있었어요? 라며 다시 한 번 터트렸고 민형씨는 이내 젓가락을 내려놓고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목이 타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밥부터 먹자. 민형씨의 말에 동혁인 그제서야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걸 깨닫고 갑자기 남은 밥을 욱여넣더니 아 배불러, 하곤 본인의 방으로 쏙 들어갔다. 나와 민형씨도 곧 식사를 마무리 짓고 그릇을 정리했다. 설거지를 누가 할지 한참을 실랑이를 벌였지만 결국 끝끝내 고무장갑은 민형씨가 꼈다. 나는 그 옆에서 물기를 닦아 건조대에 올려놓았다.
" 여주씨, 사실 어제 일 때문에 오늘 만나고 싶었었는데 과정이 어떻게 되었든간에 만나서 정말 다행이에요. "
" ....네. 민형씨 미안해요. 나쁜 맘으로 거짓말 한 건 아니었는데.. "
" 아니에요. 흠, 사실 어디서부터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는데.. 꽤 일이 복잡해요. "
식기를 닦는 민형씨의 손놀림이 조금씩 느려졌다.
" 어제 그 여자는.. "
-일곱 번째 이야기,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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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오... ㅜㅜ 이렇게 말을 남기기에도 너무 죄송한 마음 뿐입니다.
현생에 너무나도 이리저리 치이다 보니 연재텀이 한 달 가까이 늦어지게 되었어요.
앞으로는 이 이상으로 길어질 일 절대 없도록 하겠습니다.
기다려 주셔서, 다시 이렇게 보러와주셔서,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ㅠㅠ
감기 조심하세요!! 그리고 암호닉 신청은 8화까지 받도록 하겠습니다! 언제나 정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