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iangle
11
눈을 떠보니 거실이었다. 어제 입은 옷 그대로 그냥 이곳에서 잔 듯 싶었다. 덮여져 있는 담요를 옆에 두고는 벌떡 일어서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편하게 드러누웠다. 어제 그렇게 울며 집에 들어와서 머리가 지끈거리길래 그대로 탁자에 엎드렸고 잠이 들랑말랑 했던 거 같다.
달칵 문이 열리는 소리에 민형이가 나오겠구나 싶어서 다시 눈을 꽉 감았고 옆에서 기척이 느껴지길래 내 옆에 앉았구나 싶었다.
나는 잠에 들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잠에 들지 못 했다.
"누나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어제 민형이가 했던 말이 자꾸만 머리를 어지럽혔다. 나는 민형이랑 있으면 편한데, 민형이는 아닌가? 라는 그런 개념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럼 이건 고백인가? 고백이라고 하기에도 딱히 애매했다. 누나 좋아해요! 도 아니고 내가 편하지 않다는 건 무슨 뜻이었을까. 침대에 일어나 방문을 벌컥 열었다. 평일 오전이었으니까 민형이는 학교에 있겠네. 라고 생각했다. 나도 얼른 준비하고 학교나 가야겠다. 학교에 가면 도영을 볼 텐데.
아…… 학교 가기 싫다.
"눈이 왜 그 모양이야."
"내 눈이 왜?"
"울었어?"
"안 울었어."
가린다고 가린 건데 유타에겐 숨길 수 없는 모양이다. 우리는 강의실에 나란히 앉아 교수님이 들어오시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기다리는 교수님은 안 들어오고… 마주치면 피하고 싶은 사람, 정재현이 들어왔다. 가만 보면 쟤도 나랑 은근 수업 많이 겹친단 말이야? 정재현은 강의실 안에 있던 나를 발견하고는 손을 크게 흔든다. 흔들지 마라… 다 쳐다보잖아. 갑자기 쏠리는 이목에 창피해져 고개를 푹 숙였다. 옆에서 킥킥거리는 유타의 웃음소리가 귀를 콕콕 찔렀다. 지금 웃음이 나와? 킥킥거리는 유타의 멱살을 잡고 짤짤거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안녕."
"어… 안녕."
인사 정도야 뭐… 이제 불편했던 정재현도 차츰 사이가 풀어지는 거 같았다. 날 괴롭혔다고 순순히 인정도 했고 사과도 했으니까 우리 사이에 껄끄러운 건 없어진 거 맞잖아. 근데 난 왜 이렇게 눈치를 봐야 되는 걸까. 내가 생각해도 나는 참 찌질한 인간이었다.
그렇게 오늘도 눈치를 보며 수업을 듣고 수업이 끝나자마자 서둘러 짐을 챙기는데 난데없이 등장하는 이건 뭐…?
"이거."
"응?"
"먹어."
초콜릿?
정재현은 작지도 크지도 않은 초콜릿 하나를 내 앞에 턱 두고선 먼저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지금 시민이가 정재현한테 초콜릿 받은 거야? 뭐야? 왜?
내 앞에 앉아 있던 여자애들 무리가 저들끼리 수근덕거렸다. 모두 하나 같이 크게 놀란 시선을 하고서 말이다. 그러게 말이다. 왜 줬을까 나도 궁금했다.
옆에 있던 유타는 어깨를 툭툭 쳤다.
"단 거 먹으면 기분 좀 풀리잖아. 잘 됐네."
항상 정재현한테는 무언가를 받기만 하는 듯한 느낌에 약간 마음이 무거웠다. 그래도 받은 건데 어떡해. 버리고 갈 수도 없고. 나는 재현이 준 초콜릿을 가방에 넣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가면서도 재현이랑 무슨 사이냐는 질문만 수도 없이 받은 거 같다. 그렇게 물어본 애들마다 아무 사이도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렇게 겨우 힘겹게 강의실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너도 참 고생이네. 등을 토닥이는 유타의 손길이 느껴졌다. 그러게 내가 어쩌다 이 고생일까. 내가 한 거라곤 과파티 때 정재현이랑 우연찮게 눈이 마주친 것 밖에 없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
"어? 도영!"
뭐? 도영? 김도영? 잘 가던 걸음을 뚝 멈췄다.
유타가 손을 흔들며 반갑게 인사하는 그 사람이 정말 김도영이 아니었으면 했다. 우리 학교에 김도영이라는 이름을 가진 또 다른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지금은 정재현보다 김도영이 더 불편했으니까. 그런데 아닌 게 아니었다.
"안녕. 밥 먹으러 가?"
"안 먹었으면 같이 먹을래?"
당장이라도 유타의 입을 꽉 잡아버리고 싶었다. 나는 고개를 옆으로 돌린 채 입술만 잘근잘근 씹었다. 혹시 같이 먹자고 하면 어떡하지? 불편해서 어떡해… 난 따로 먹어야 되나? 하는 내 걱정과 달리 김도영은
"친구랑 만나기로 해서. 맛있게 먹어."
그렇게 말하며 멋쩍은 듯 뒷목을 매만졌다. 난감해하는 눈치였다. 다행이다. 그래도 불편한 상황은 피했으니까. 김도영은 어색하게 웃으며 나를 지나쳤다.
뭐야? 그게 끝이야? 집에서부터 걱정했던 내 생각과는 달리 김도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 뿐만 아니라 오늘 하루 김도영을 마주치지도 않았다. 먼저 피하는 걸까? 그렇다면 왜? 아니 내가 왜 이걸 신경 써? 피하든 말든 아니야? 내 쪽에서 먼저 안 피해도 되고 오히려 잘 된 거지 뭐. 그렇게 생각하고 넘어가려는데 뭐라도 걸린 듯 가슴이 답답했다. 이유를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그렇게 유타와 점심을 먹고 교수님의 사정으로 오늘 수업이 휴강 되었다. 벤치에 앉아 축구 동아리인 아이들이 공을 차러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을 넋 놓고 보다 갑자기 훅 들어오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휙 돌렸다. 재현이었다.
"여기서 뭐해?"
"어?"
"또 그 표정."
응? 그 표정? 나는 갑자기 나타난 재현의 얼굴에 놀라기도 잠시 뜬금없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만 보면 이런 표정 지어 너."
정재현은 그런 말을 하며 눈알을 도르르 굴려가며 눈치를 보는 척했다. 그게 꼭 재현의 앞에서 눈치를 보는 내 얼굴과도 같아서 나도 모르게 풉하고 웃어버렸다. 재현은 그런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 저도 따라 작게 웃었다. 웃을 때마다 푹 패인 보조개가 역시 눈에 띄었다. 수업 없어? 아직 웃음기가 가지 않은 얼굴로 내게 물었다. 나는 그에 고개를 세로로 끄덕였다. 내 대답을 알아들은 재현은 고개를 돌려 운동장에서 뛰어 다니는 사람들을 보다가도 그대로 고개를 쭉 들어 하늘을 바라보곤 했다. 나도 그에 따라 시선을 옮기고 또 옮겼다. 왠지 모르게 누군가가 우리 머리 위에 잔잔한 분위기를 끼얹은 듯 했다.
"기분 좀 풀렸어?"
"응. 풀렸다."
"다행이다."
잠시 날 바라보던 고개를 다시 틀어 운동장을 바라보는 재현이었다. 나는 거짓말을 못 한다. 감정이 바로바로 얼굴에 드러나기 때문이었다. 언제 한 번 유타는 그랬다. 넌 다른 사람을 속일 생각일랑 하지 말라고 너는 남들한테 속으면 속았지 속일 사람은 못된다고. 그땐 유타의 말에 괜히 심통을 부려댔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틀린 말 하나 없었다. 기분이 이상했고 또 좋지 않았다. 오늘 하루 종일 그랬던 거 같다. 유타도 아까 정재현한테 초콜릿을 받을 때 기분 좀 풀린다는 말을 했었고 지금 옆에 있는 재현 또한 그랬다. 그나마 다행인 건 둘 다 이유를 묻지 않은 것이다. 왜 기분이 안 좋은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그 둘을 묻지 않았다.
Triangle
〈sub>〈/sub>〈sup>〈/sup>
"안녕."
"내가 좀 늦었지."
저번에 조별 과제도 그렇고 지각 자주 하는 편인가 보네. 작게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따라 자연스럽게 보조개가 패인다.
우리는 지금 지하철 역 앞에서 만났다. 우연히 만난 게 아니라 미리 잡은 약속이었다. 그 이유인 즉슨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는데 반납하러 같이 가주지 않겠냐고 먼저 말한 재현의 덕분이었다. 그때 안 좋았던 기분이 재현 덕분에 풀렸었고 초콜릿도 줬었고 여러모로 고마운 점이 많아 알았다며 긍정의 대답을 건넸다. 그런데 도서관이 이렇게 멀 줄은 그땐 몰랐다. 나는 끽해야 동네 도서관이겠지 했는데 지하철을 타고서 한 시간을 꼬박 달려야 하는 거리였다. 장소를 뒤늦게 알고 당황한 표정을 짓는 나를 보는 재현의 표정은 몰래 카메라를 성공한 사람 마냥 뿌듯한 표정을 얼굴에 달고 있었다. 하마터면 그대로 재현의 머리통을 때릴 뻔했다니까.
아무튼 벌어진 일은 그러했다. 우리는 나란히 지하철에 앉았고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생각했던 것보다 지하철 안은 사람 한 명 없었다. 상체를 쭉 빼 옆 칸을 살펴보니 그쪽엔 네 명 정도 탄 듯 보였다. 나는 이런 조용한 분위기를 좋아했다.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시시각각 변하는 배경을 한참 동안 넋 놓고 보고 있었다. 어깨에 무언가 닿는 느낌이 들어 밖을 보던 시선을 그쪽으로 내리니 언제 잠이 든 건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 곤히 잠에 빠진 재현의 얼굴이 보인다. 매일 아래에서 쳐다보기만 했었지 이렇게 위에서 쳐다보니까 또 색다른 느낌이었다. 감은 눈꺼풀에 촘촘히 박힌 속눈썹이 유난히 가늘고 길다.
덜컹 -
덜컹 거리는 지하철 소리를 그리고 색색거리는 누군가의 숨소리를 귀에 담으며 나도 따라 눈을 감았다.
어니언의 말
안녕하세요 독자님들 저번 글이 저번 달 10일에 올렸으니까 거의 한 달 만에 뵙는 거 같네요.
저는 그동안 수시를 비롯해 모든 걸 다 끝냈어요. 그리고 그동안 생각을 조금 깊게 했던 거 같아요.
글을 언제 써야 하나 그리고 언제 올려야 하나 또 올리면 독자님들이 읽어주실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다른 분들에 비해 아직 글솜씨도 많이 부족하고 표현 또한 많이 작잖아요.
그래서 그 부분에서도 많은 생각이 들었고 처음엔 신경 쓰지 말아야지 했던 조회수에 비해 적은 댓글도 어느새 많이 신경을 쓰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냥 글을 쓰지 말까 이런 생각도 들었었는데 그러기엔 글 쓰는 게 너무 좋고 또 독자님들도 뵙고 싶더라고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그리고 항상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