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19살, 내 남편 전정국
W. 달감
21
옥상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센 바람이 내 교복치마를 펄럭이게 만들었다.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을 대충 귀 뒤로 넘기고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바람을 타고 오는 담배냄새에 난 얼굴을 찌푸리며, 그 냄새를 따라갔다.
예상했던 대로 김태형이 난간 앞에 앉아 담배를 손에 쥐고 있었다.
내가 온 것도 모르고 어딘가를 공허히 바라보고 있는 김태형이었고,
내가 뒤에서 다가가 담배를 뺐고 나서야, 김태형은 고개를 돌려 날 올려다보았다.
"학교는 금연구역이거든요?"
"종쳤는데."
"그리고 지금까지 꼴초였으면 속이 엄청 썩었겠네요.
담배 끊어요, 그러다 일찍 죽어요."
"수업 시작했는데."
"그니깐 온거에요. 그래야 전정국한테 오빠 만나는 거 안들키니깐."
내 말에 김태형이 피식 웃었고, 내 손에 들린 담배를 뺐어가
"손에 냄새 배면 안돼" 라며 담배를 껐다.
나는 김태형 옆에 가서 털썩 앉아 김태형이 바라보고 있던 하늘을 같이 올려다보았다.
"교무실 갔다가 우연히 미국 간다는 거 들었어요."
"..."
"작별인사는 하고 싶어서요."
"아버지가 몇 달전부터 미국으로 오길 바라셨었는데,
너랑 이 학교 다니고 싶어서 버티고 있던 거거든.
이제는, 가야지."
"..."
"어제는 미안해. 그런 짓 저질러버려서."
이제 너랑은 정말 끝이구나 싶어서 나도 모르게 오기를 부렸나봐."
"잘못이긴 했지만, 전정국한테 맞았으니깐 퉁쳐요."
내 말에 김태형은 재밌다는 듯 예쁘게 미소지었고,
나는 내가 좋아했던 그 미소가 보이는 듯 해서 기분이 좋아졌다.
"나도 어제 미안했어요."
"뭐가?"
"생각해보니 어제 나 오빠한테 조금 낯가린 것 같아서요.
근데 오빠가 너무 다른 사람처럼 구니깐 조금 놀라서 그랬던 거에요."
내 말에 김태형은 살짝은 슬픈 얼굴로 내 얼굴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사람들은 다 날 무서워해."
"..."
"이해해. 우리 아버지가 의원으로 활동하고여러 사업을 하면서
많은 조폭조직과 함께 일했고, 더러운 업적도 많이 남겼던 건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으니깐."
"..."
"근데 탄소 너는 날 무서워하지않고 항상 있는 그대로 대해줘서 너무 고마웠어.
나도 모르고 있던 날 알게 된 느낌이었달까.
그래서 나는 널 좋아해."
내 눈을 바라보며 베시시 웃는 김태형이 안쓰럽기도 하다가
그 웃음이 너무 예뻐서 나도 모르게 함께 미소짓게 되었다.
나는 손가락을 하나 펴서 그 웃음을 가리키며 말했다.
"진짜 웃음 나왔다아-"
"진짜 웃음?"
"어제는 계속 웃고 있었는데도 가짜로 웃는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근데 이건 진짜 웃음이에요.
난 이 웃음 진짜 좋아해."
내 웃음에 김태형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귀여워' 라고 작게 중얼거리더니 말을 이어갔다.
"어릴 때부터 모든 사람들이 날 피하니깐 그게 싫어서 일부로 막 웃었거든.
근데 그것조차 무서워하더라고.
그러다보니 웃는게 진심이 아니게 되버려서 항상 웃긴 웃는데 이상한 웃음이 된 것같다고 느꼈어."
근데 너랑 있으면 그 웃음이 진짜가 되나봐."
"저는 이 모습이 진짜 오빠같은걸요?
어제의 오빠는 너무 무섭고 차가웠어요.
지금 오빠가 저는 훨씬 좋아요."
"내가 좋아?"
"아니, 친구로서요"
"하핫, 여전히 매정하네"
"진심이에요, 저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오빠를 친구로서 많이 좋아하고 있었어요."
바람이 기분 좋게 우리를 스쳐지나갔고, 시계가 눈에 들어온 나는 일어났다.
"이제 진짜 가야겠어요."
"우리 다음에 만나면 친구는 되는거지?"
"전정국이 허락하면요!
그리고요 다른 사람들한테도 꼭 그 웃음보여줘요. 약속해요."
"약속할게."
"잘가요, 오빠."
탄소가 나가고 태형은 여전히 기분좋은 미소를 지으며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담배를 한참 지켜보던 태형은 피식 웃더니 담배를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태형은 하늘을 올려다 보며 탄소를 처음 만났던 16살의 그 날을 떠올렸다.
아버지가 소유하고 있는 병원에 가서 하루종일 아버지를 따라다니고 난 뒤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
아버지와 태형의 뒤에는 많은 의사들과 직원들이 뒤따랐고,
무겁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태형은 깊은 피곤함을 느끼고 있었다.
태형의 아버지의 눈에 병원정문 앞에 주저앉아 덜덜 떨고 있는 여자아이가 들어왔다.
"저 여자애는 누군가?"
"아... 그게 탄탄그룹 아가씨이십니다.
탄탄그룹 사모님은 면회가 불가능한 상태이신데 만나게 해줄 때까지 절대 저기서 안가시겠다고 고집을 부리셔서...
탄탄그룹 아가씨라서 함부로 내쫓을 수도 없고..."
"쯧쯧, 부잣집 딸래미가 교양없이... 그냥 냅두게"
태형의 아버지가 혀를 끌끌 차고 그대로 지나쳤고,
태형 또한 스치듯 탄소를 보고 지나쳤다.
주차장에 도착해 차에 오르기 전 아버지가 전화를 오랫동안 받느라 출발이 지연되었고,
태형은 담배생각이 심해져 아버지 눈치를 보며 몰래 주차장을 빠져나와 정문으로 향했다.
아버지의 눈치를 보며 일을 배우는 일은 익숙하면서도 여전히 힘든일이었기에,
태형은 담배를 깊게 들이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때 태형의 눈에 아까 봤던 탄소가 들어왔다.
정문 앞에 쭈구려 앉아 있는 탄소는 많이 추운 듯 얼굴과 귀가 새빨개져있었다.
잠이 든 듯 눈을 감고 미동도 않는 탄소를 보며 태형은 한심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얼어죽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괜히 발로 툭툭 건들여보았다.
하지만 탄소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아무 반응이 없었다.
태형은 호기심에 한 손에 담배를 든 채로 탄소 앞에 가서 쭈구려 앉았다.
목도리에 묻혀있던 새빨간 두 볼이 새하얀 얼굴이 태형의 두 눈에 들어왔다.
부잣집 아가씨라고 하더니 꾀나 귀엽게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눈 아래 있는 작은 눈물을 발견했고, 태형은 그것을 닦아주고싶어 손을 들던 참이었다.
갑자기 눈을 번쩍 뜬 탄소에 태형은 깜짝 놀라 그대로 굳어버렸다.
"죽고싶냐?"
갑작스레 날카롭게 죽고싶냐는 탄소의 말에 태형은 정말 깜짝놀랐다.
'죽고싶냐' 라는 말을 해본 적은 있지만, 듣는 건 처음이었다.
"너도 병원 놈들이랑 한패지?"
"..."
"안가, 안간다고!!
왜 우리 아빠는 면회시켜주는데 나만 안된다고 하는데?!
오늘 우리 엄마 생일이니깐 나 얼어죽어도 여기서 절대 안가!!"
마지막 말을 끝으로 탄소는 강하게 태형을 밀쳤고,
태형은 뒤로 털썩 넘어졌다.
때문에 손에 들렸던 담배가 떨어졌고, 탄소는 '나 담배가 세상에서 제일 싫거든?' 라고 하며 담배를 마구 밟았다.
씩씩거리며 자신을 정말 죽일듯이 노려보는 탄소에 태형은 당황해서 그대로 달아나버렸다.
달아나고나서도 참 어이가 없었다.
갑자기 자기가 무슨 일을 당한건지 돌아가서 되갚아줘야하는건지 생각도 들었다.
한편으로는 참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자기에게 이런식으로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태형은 아리송한 기분에 저멀리에서 뒤를 돌아보았고
어떠한 남자아이가 탄소에게 다가왔다.
자세히 보니 전에 어떤 행사에 따라갔다가 봤던 JK그룹 아들 전정국이었다.
그 애가 담요를 덮어주고 몇마디를 나누더니, 탄소가 자리에서 일어나 정국을 따라갔다.
자기한텐 발악을 하더니만, 정국의 몇마디에 저렇게 따라나서는게 조금 어이가없었다.
태형은 태어나서 처음 느끼는 이상한 감정에 고개를 기웃거리며 아버지가 있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
시간이 2년 정도 흘렀고, 태형은 아버지따라 미국을 왔다갔다하다보니 복학을 하게되었다.
따분한 학교생활을 할 생각에 첫날부터 태형은 한숨을 쉬며 담배를 떠올렸다.
그 때 교실로 한 여자아이가 들어왔다.
낯선 느낌이다가도 익숙한 느낌에 태형은 그 여자애를 한 번에 알아보았다.
문론, 그 여자애는 태형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2년간 태형은 그 애를 간간히, 아니 자주 생각했었다.
그 여자를 보자마자 2년 전 태형이 느꼈던 이상한 감정을 다시한 번 느꼈고
태형은 왜인지 모르게 자신에게 함부로 대했던 그 애를 보면서 미소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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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미국에 갈 태형이 짐을 대충 정돈하고는 거실소파에 앉아있었다.
그 때 딩동- 딩동- 하며 벨이 울렸고, 올 사람이 없는 걸 알기에 태형은 기웃거렸다.
그리고 인터폰을 확인하고는 살짝 놀라 현관문을 열었다.
"얘기 좀 하자."
정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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