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소년기ㅡ02
“ 뭐야, 넌 또. ”
“ 뭐긴, 밥 같이 먹자고. ”
저리 안 가? 응, 안 가. 나도 앞으로 밥 같이 먹어ㅡ 나 친구 없어. 뻔뻔한 것도 정도가 있지, 빤히 웃는 얼굴로 경수가 앉은 테이블에 엉덩이를 들이민 종인이 경수의 맞은 편에 식판을 내려놓았다. 갑작스런 종인의 등장에 같이 밥을 먹던 경수의 친구들, 정확히는 오세훈을 제외한 친구들이 슬금슬금 옆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불편할 만도 한 것이, 종인은 흔히 양아치ㅡ라고 일컫는 부류 중에 한 명이었으니까. 원래 종인과 친구사이이던 세훈은 누가 오던, 말던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밥 먹는 데에만 열중했다.
경수도 신경 끄고 밥이나 먹으려 했건만, 배도 안 고픈지 수저도 들지 않은 채 생글생글 웃으며 부담스럽게시리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김종인때문에 도저히 반찬을 입에 갖다 댈 수가 없었다. 넌 배 안 고파? 예의상 물었건만, 돌아오는 대답은 역시나 김종인답다. 난 너 먹는 것만 봐도 배불러ㅡ 어울리지도 않는 꽃받침을 하고선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시선에 경수가 탁, 하고 소리 나게 수저를 내려놓았다. 짜증 나.
“ 너 왜 자꾸 나 따라다녀? ”
“ 따라다니는 거 싫으면 나랑 친구 해. ”
“ 싫어. 싫다고 몇 번 말해. ”
“ 싫어도 나랑 친구 해. ”
“ 난 너 같은 양아치 딱 싫어. ”
“ 나 양아치 아니래도? 넌 담배도 안 피고 술도 안 마시는 양아치 본 적 있어? ”
“ 양아치 같은 애들이랑 다니면 다 양아치지 뭐야. 시끄러워, 밥 먹는 데 말 걸지 마. ”
참나, 먼저 말 건 게 누군데ㅡ 따박따박 말은 잘해요 아무튼. 경수의 말빨에 혀를 내두른 종인이 그제서야 밥을 먹으려고 수저를 들었을 찰나, 누군가가 경수야ㅡ하고 부르는 다정한 음성에 경수보다 먼저 고개를 돌린 종인이다. 하얀색 명찰, 변백현. 그 옆에 같이 서있던 멀대같이 큰 인간도 도경수ㅡ하고 손을 흔든다. 고개를 돌려 경수의 얼굴을 본 순간, 종인이 입 안에 물고있던 수저를 바닥으로 툭, 떨구었다. 쨍그르르… 듣기 싫은 소리가 급실실을 울렸다. 뭐야, 시끄럽게ㅡ 경수의 말에도 종인은 한동안 넋을 놓고 있었더랜다.
웃는 도경수라ㅡ 여지껏 상상은 많이 해왔다. 분명 엄청 귀엽고 예쁘겠지, 어느정도 예상은 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정말 몰랐는데. 항상 자신이 그려왔던 웃는 도경수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훨씬ㅡ예뻤다. 자신이 본 중에 가장. 눈이 부실만큼. 물론 그 상대가 자신이 아닌 것에 대해선 조금 화가 나긴 하지만 그래도 쫄래쫄래 도경수 뒷꽁무니만 쫓아다닌 보람이 있다는거다. 한 번 반한 걸로도 충분한데, 어째 두 번 반한 것 같아 큰일이긴 해도. 밥을 먹는 내내 종인의 입꼬리는 이만치 올라가 있었다. 물론 그 덕에 경수에게 온갖 욕을 들어야 했지만. 뭘 쳐웃어ㅡ에서 시작해서 병신새끼ㅡ까지. 다른 사람이라면 벌써 종인에게 몇 대 맞고도 남았지만, 어째 욕을 들어도 방실방실, 웃기만 하는 종인이다.
근데 도경수. 왜, 또. 넌 왜 욕을 해도 귀엽냐. …진짜 미친새끼. 기어코 밥 먹던 수저로 머리를 한 대 맞고서야 웃음을 그친 종인이었다.
###
“ 자, 여기 콜라. ”
“ 뭐야, 또 무슨 수작이야. ”
“ 그런 거 없어, 그냥 마시라고. ”
경수의 옆자리에 털썩, 앉은 종인이 차디찬 콜라를 내밀었다. 어디 칭찬이라도, 아니 그것까지 안 바래도 고마워, 라는 말 한 마디는 해 줄 줄 알았건만 돌아오는 말은ㅡ 너, 여기에 약 탔지ㅡ 평생 속고만 살았는지, 의심스런 눈초리로 자신을 계속 째려보다 기어코 너 먼저 마셔봐, 하고 캔을 내미는 도경수다. 탄산이라면 질색인데, 눈 딱 감고 한 모금 마시니 그제서야 캔을 뺏어든다. 아까 그 선배한테는 잘만 웃어주더니, 자신한텐 왜이렇게 냉기만 폴폴 풍기는지. 얼음공주, 아니 얼음왕자ㅡ라는 말이 기가 막히게 어울리는 놈이다.
“ 근데…. 아까 급식실에서 인사한 사람, 누구야? ”
“ 알 바 없어ㅡ ”
“ 안 알려주면 나 너 화장실까지 쫓아다닐거야. ”
“ 하아…. 그냥 아는 형이야. ”
“ 친해? 무슨사이? ”
“ 적어도 너보단 친해. 어릴 때부터 알던 사이. ”
“ 흐음, 그래ㅡ ”
“ 됐냐, 이제. 종 쳤으니까 그만 니 자리로 가 제발ㅡ. ”
귀찮다는듯 훠이훠이, 손을 내저은 경수가 책상 서랍에서 교과서를 꺼냈다. 근데 미안해서 어쩌지ㅡ생긋 웃어보인 종인이 자신의 책상 맨 위를 손가락으로 툭툭, 쳤다. 이것 봐봐. 그에 경수가 인상을 찌푸린 채로 종인의 책상 위에 붙여진 이름표를 쳐다보았다. 김종인, 작은 종이 위에 쓰여진 세 글자에 경수가 미간을 좁혔다.
“ 야, 이 새끼야ㅡ ”
“ 세훈이한테 허락 받고 바꾼거야. 너 공부 방해 안 하고 조용히 있을게. ”
“ 그래도 싫…. ”
“ 너 공부 방해 안 하고 조용히 있을게. 내가 니 옆자리 앉으려고 저 돼지새끼한테 얼마 치를 갖다 바쳤는데ㅡ 제발 다시 가란 말만 하지마라, 응? ”
“ ……그럼 조용히 있어 제발. ”
몇 번이고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녀석의 얼굴은ㅡ 당장에라도 욕을 퍼부어주고 싶지만,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던가. 포기한 듯 고개를 저어 보인 경수가 고개를 돌려 칠판을 바라보았다. 선선한 바람이 불고 적당히 따스한 햇볕이 드는 창가 자리, 그리고 5교시. 선생님의 낮은 목소리는 조곤조곤한 자장가처럼 들린다. 절로 눈이 감기는 경수지만, 공부를 해야 한다는 집념에 제 손으로 허벅지를 꼬집고 볼을 꼬집었다. 그에 턱을 괴고 자신을 빤히 쳐다보던 종인이 놀라 뭐해, 하며 손을 내렸지만 신경 쓰지 마, 하며 종인의 손을 뿌리친 경수다. 너 같은 애는 속 편해서 좋겠다, 김종인. 손에 샤프를 꼬옥 쥔 경수가 눈에 힘을 주고 칠판을 쳐다보았다. 칠판의 글자가 조금 희미하게 보이는 것이 눈이 조금 나빠진 것 같기도 하다. 어제 밤에 책을 너무 오래 봤나ㅡ
공부, 입시, 대학ㅡ 열여덟 살의 소년이 깨닫기에는 아직 먼 현실일 수도 있다. 적어도 자신의 반 아이들만 봐도 그들이 어느 정도로 현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지는 대충 알 수 있었다. 공부? 3학년 때부터 하면 되지 뭐. 대학? 어디든 가겠지 뭐ㅡ 경수는 항상 이런 아이들을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곤 했다. 열여덟의 이 어린 소년에게는 이 현실이 잔인하고, 차갑게 다가왔기 때문에. 공부, 난 공부만 하면 돼. 남들 놀 때 난 공부만 해서 좋은 대학 가서 좋은 직장 얻으면 그만이야ㅡ 이것은 중학교 때, 다른 아이들은 공을 차며 놀고 피씨방을 다니며 게임을 할 때, 열네 살의 어린 소년이 깨달은 현실이다. 지극히 현실적인 현실. 경수에겐 공부가 전부였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ㅡ 경수에게는 자신의 어머니가 전부이자, 깨달아야 할 현실이었다. 눈에 보이던 선생님의 얼굴이 점차 희미해지고, 눈이 조금씩 감기었다.
경수야ㅡ
응, 엄마.
우리 경수는 나중에 꼭 엄마보다 예쁜 여자 만나서 결혼해야해?
치, 엄마는 맨날 그소리야ㅡ
엄마는 경수가 나중에 꼭 멋진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ㅡ 엄마가 경수 사랑하는 거 알지?
응, 알아요. 근데 엄마, 나는 세상에 엄마보다 착하고 예쁜 여자는 본적이 없어ㅡ 그러니까 나는 결혼 안 하고 돈 많이 벌어서 엄마랑 살 거야. 엄마랑 나랑, 엄마 좋아하는 꽃 잔뜩 심을 수 있는 예쁜 정원 달린 이층집에. 엄마가 맨날 이층집 살고싶다고 아빠한테 그랬잖아ㅡ 그럼 아빠가 나 칭찬해주겠지? 우리 경수 다 컸다고, 아빠 대신 엄마도 돌보고 기특하다고. 분명 하늘에서 나 칭찬해 줄거야. 그러니까 엄마…. 엄마는ㅡ 엄마는 절대ㅡ
“ 도경수ㅡ ”
“ ……엄마? ”
“ 무슨 일어나자 마자 엄마타령이야, 종 쳤어. 일어나ㅡ ”
언뜻 잠이 들었었는지, 눈을 뜨자 선생님은 온데간데없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아이들이 보인다. 꿈을 꿨던 것 같은데ㅡ 하고 기지개를 피던 경수가 옆에 있던 종인을 째려보았다. 깨우려면 진작에 깨우던가, 필기 하나도 못했잖아ㅡ 싱긋 웃은 종인이 자신의 책을 경수에게 건넸다. 내가 필기했어, 너 너무 깊숙히 자길래. 하고. 물론 종인은 자는 경수의 얼굴을 조금이라도 더 보고파서 깨우지 않았지만.
경수를 보고 엎드린 종인이 열심히 필기를 베껴대는 경수의 옆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글씨 좀 예쁘게 써라, 이게 뭐냐ㅡ 툴툴거리는 입술은 어디서 관리라도 받나, 싶을 정도로 예쁘다. 아닐세라 종인의 진득한 시선을 느낀 경수가 뭘 봐, 하고 툭 말을 건네자 장난스러운 눈빛 가득한 종인이 뭘 봐, 하고 경수의 말을 따라 했다. 뭐야, 왜 따라해ㅡ 뭐야, 왜 따라해. 지금 얘가 또 뭐하자는 건가, 피식 하고 바람빠지는 비소를 지은 경수가 종인을 쳐다보았다. 따라하지 마. 따라하지 마ㅡ
“ 따라하지 말래도? ”
“ 따라하지 말래도? ”
“ 너 진짜 싫어. ”
“ 너 진짜 좋아. ”
“ 따라하지…, 뭐? ”
너 진짜 좋다고. …뭐래, 진짜. 좋다고, 도경수. 나랑 친구 좀 해달라고. 장난스러운 미소를 띠며 경수를 쳐다보는 종인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어딘가 자신을 옭아매는 듯한 느낌에 경수가 그 눈을 빤히 바라보다가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시끄러워ㅡ 다시 펜을 붙잡은 경수가 종인의 시선을 외면한 채 글자를 써내려갔다. 삐뚤빼뚤, 모나게 쓰여지는 글자들이 어딘가 마음에 안 들었다. 펜을 쥐고 있는 오른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이상해, 왜 이러지. 아깐 안 이랬는데ㅡ 어정쩡하게 펜을 잡고 있는 경수를 보던 종인이 경수의 손에 펜을 바르게 쥐어주었다. 자신의 손을 덮는 따뜻한 느낌이 생소해,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찔해버린 경수다.
것봐, 또 이상해. 김종인 니가 이상해서, 나도 이상해. 다 너 때문이야ㅡ
안녕하세요, 리베입니다......... 오..랜만이에요...너무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ㅠㅠ 죄송해요... 반성의 의미로 3화는 빨리 가져올게요! 저번 첫화가 진짜로 생각보다 좋다고 해주시는 분들이 많으셔서 좋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고 부답스럽기도 하고..! 아무튼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ㅠㅠ 암호닉 신청해주신 분들, 신알신 해주신 분들 모두 정말 감쟈해요..! 아 그리고 찬백은 다음 화부터 나올 예정이에요....! 이번 화에서 중간에 아주 깨알... 등장했죠 찬열이와 백현이...^^ 사실 카디와 찬백을 한 편에서 같이 다룰까, 아니면 카디 한 편 찬백 한 편 이렇게 쓸까 고민 중이에요..ㅠㅠ 독자분들의 생각은 어떠신지..... 그럼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화에서 뵐게요^-^ 안녕하세요...^-^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없음

인스티즈앱
다시보는 장현승 사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