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세계 01
겨울은 마치 새하얀 사막같소 -piano poem
"흐하,.."
영하 십도의 강추위에 마을 전체가 꽁꽁 얼어 붙었다. 귀는 떨어져 나갈듯이 아팠고, 사지는 각목마냥 뻣뻣했다. 움츠린 어깨와 주머니에 푹 들어간 손, 구부정한 자세로 종종걸음을 한 지호는 가로등도 없는 어두운 거리에 자리잡은 허름한 포장마차 앞에 섰다. 은은한 주황빛 조명을 보니 벌써부터 얼어붙은 몸이 녹는 듯했다. 비닐카바를 넘기며 들어간 지호는 서글서글한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아- 춥다. 아줌마, 여기 우동 한 그릇만 주세요!"
포장마차안은 제 생각처럼 아늑하고 따스웠다. 강추위를 뚫고 이곳까지 온 보람이 있었다. 추운 날 임에도 불구하고 포장마차 안은 평소처럼 붐볐다. 하여간 아줌마 장사하난 끝내주게 잘한다니까.
"하이고, 지호총각! 추운데 오느라 수고 많았어. 아줌마가 얼른 우동 한 사발 맛있게 말아줄께!"
부산스럽게 저를 맞이해 주신 아주머님은 마치 제가 친아들인 마냥 잘 대해주셨다. 그 덕에 생각 날때마다 자주 오곤 한다. 이게 마케팅 전략이라면 단번에 쏙 넘어가 버린거겠지. 우동이 나오는 동안 주위를 돌아보던 중 정비소에서 일을 하시는 차씨 아저씨와 그 옆에 마주보며 앉아있는 쓸대없이 정의감만 깊어 새로온 여직원을 성추행 하던 직장 상사를 모든 직원들이 보는 가운데 주먹다짐을 해 결국 짤린 박아저씨가 보였다. 본인만은 그 일에 대해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부인 아주머님은 그게 아니셨나보다. 그 뒤로 좋은 직장하나 구하지 못해서 백수나 다름없는 아저씨를 허구한날 밖에 내보내니, 오늘같이 추운날은 좀 참아주시지..
잘됬다 싶어 아저씨들이 있는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청승맞게 혼자 먹는것보다 여렷이 있는게 더 좋지 아니한가.
"이런데서도 다 보내요, 아저씨! 합석해도 되죠?"
"지호아이가? 허이고, 니가 여기도 다 오고 벌써 그리 커브른 기가?"
"욤마 이제 장가 가브러야 것어?"
"아니, 이 아저씨들이 앞길 창창한 총각 하나 망칠생각 있나, 아직 장가 갈려면 훨 멀었지! 요즘 시대가 어느 시댄데."
우동그릇을 테이블에 내려 놓으시면서 아주머님께서 큰소리 치셨다. 혹여나 아저씨들이 손이라도 댈까 싶어, 제 앞으로 바짝 놓인 김이 모락모락 나는 푸짐한 우동에 절로 침이 고였다. 전엔 안 보이던 꼬불이 어묵 까지 두개나 들어가 있었다. 역시 아줌마, 짱좋아.
"뭐 어때, 힘좋을때 후딱가면 색시도좋고 저도 좋제"
음흉한 미소를 내보이며 차씨 아저씨가 나를 보았다. 저리도 나를 빨리 장가보내고 싶은 이유가 뭘까 싶다.
"아- , 저도 빨리 가고는 싶은데 그럴만한 색시가 아직 안보이네요 참."
멋 쩍게 웃어보이며 말을 건네기가 무섭게 차씨 아저씨께서 점퍼 주머니를 뒤지더니, 사진 한장을 꺼내보였다.
"그럴줄 알고 내가 다 준비혔지! 어때 요만한 색시감도 어디없어! 내가 너 생각 나가지구 하나 구해 놨구만!"
이유가 여기있었네. 이런건 또 언제 준비해놓은 건지 대뜸 사진을 제 앞으로 내보이며 뿌듯한 미소를 지으셨다. 옆에 있던 박아저씨는 사진을 슬쩍 보시더니 다시 제자리로 가시곤 소주잔만 홀짝이셨다.
"거 참 주첵이야..."
구해줘요 아저씨!!
"하...하하..고맙긴 한데요, 전 아직 공부할것도 많고 군대도 가야하잖아요. 그 아가씨한테 신경 많이 못 써줘요.. 미안해서라도 못 만날것 같아요 죄송해요 아저씨.."
죄송하다며 멋쩍게 웃어보이자, 내내 싱글벙글이신 아저씨께서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으셨다.
"뭐...지호 니가 그렇다면 어쩔수 없는거지 뭐.."
제 앞에 놓인 사진을 도로 가져가시는 아저씨의 손가락 마저 쓸쓸해 보이는건 기분탓이라 여기며 앞에 놓인 우동 그릇을 젓가락으로 휘휘 저었다. 꼬불이는 막대를 뽑고 우동과 같이 먹는게 정석!! 김가루와 같은 각종 양념을 젓가락으로 잘 저은 뒤, 우동그릇을 두 손으로 들었다. 국물로 데워진 그릇에 맞닿은 손바닥 온도가 온몸으로 퍼지는 기분이 들었다. 일단 국물부터 먹어볼까. 그릇 앞쪽 국물을 후후- 몇번 불고는 바짝 입을 대었다. 후릅- 하고 입안 가득 들어온 짭쪼름한 국물 맛은 일품이였다. 언제 먹어도 질리지 않는게 신기할 따름이다.
- 오늘 새벽 4시20분경 00주택가에서 화재가 일어났습니다. 이 불로 집 안에서 자고있던 일가족 4명이 모두 숨져 주위에 안타까움을 주고 있습니다. 소방당국은 추운 날씨로 인한 열선 사고로 보고 있었으나 방화사고를 더 유력하게 보고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에이 저런 써글놈의 것들"
우동을 먹던 도중 저도 모르게 집중하면서 들었던 라디오 소식에 박아저씨께서 성을 내셨다.
"귀신들은 저런것들 안 잡아가고 뭣들한다냐, 허구한날 힘들게 사는 사람들만 죽어 쌋코 잘 돌아가지, 아주 저런놈들은 그냥 죽지도 못하게 만들어야되 아주!!"
박아저씨가 화를 내시는 모습 참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았다.
"혈압도 있으신데 고정하세요 아저씨."
제 말에 성난 숨을 내뱉으시던 아저씬 착잡한 얼굴로 저를 보더니 고갤 돌리시곤 다시 소주를 들이키셨다. 아직 까지도 사고에 대해서 보도를 하는 뉴스가 도중 갑자기 노랫 소리로 바뀌여 라디오를 쳐다봤다. 그 쪽에 아주머니께서 서 계신걸로 보아 다른 주파수로 돌리신 듯 했다. 에이..쓸데없이..
저를 걱정스런 눈빛으로 쳐다보시는 아주머니께 보답으로 활짝 웃어 보였다. 제 의도완 다르게 아주머니 표정은 풀리시지 않았다. 거 참...안그래도 된다니깐..
"요새 저런 사건이 자주 일어나네요 참.. 나라가 어떻게 될라나."
조크스러운 어투로 말을 하곤 젓가락으로 우동면발을 입에 넣었다.오동통통 쫄깃한게 참 맛있구려. 날 쳐다본 셋은 그제서야 얼굴을 푸는 듯 했다. 그 모습에 킥킥 대며 본격적으로 우동을 먹기 시작했다.
"그러게 말이에요. 요새들어 이런 사건이 많이 일어나네요."
뒷통수 쪽에 들리는 저음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 보았다. 뒷 테이블에는 이 동네에서 처음 보는 듯한 남자가 있었다. 그것도 젊었다. 제가 이 동네에 살고 있는지도 어언 21년, 지나가는 황구도 나 좋다고 따라오는 마당에 내가 이 동네에서 모르는 사람은 있을수가 없었다. 혹시 여행객인가 했지만 누가 미치지 않고서야 말끔히 정장 차림으로 여행을 다닐까 싶다. 저 차림으로 포장마차에, 그것도 혼자서 온 것도 이상했다. 그냥 저 사람 자체가 이상했다. 저와 눈이 마주친 남자는 빙긋 웃어 보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이쪽으로 걸어 왔다. 순간 위압감에 어깨가 움츠러 들었다. 얼굴이 작아 어림 잡아서 176쯤 될줄 알았는데 일어서니 180은 훨쩍 넘는 키였다. 제 키와 뒤지지 않을 것 같앗다. 뭐지 저 남잔. 의심 많은 눈초리로 쳐다보자, 제 옆으로 의자를 끌어다 앉은 남자는 다시 한번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 , 잠시 드라이브겸 돌던 중에 출출해서, 요 앞 포장마차가 보여서 들어왔었어요. 그런데 아무도 신경 안 쓰시길래 그냥 앉아 있었거든요."
"어머, 내 정신이야.. 미안해서 어쩌나 총각..."
"아닙니다. 아주머니 여기 오댕탕 하나만 가져다 주세요."
흐응- 그런거였구나. 괜히 오바친게 민망하기도 싶고, 우동이나 마저 먹기 시작했다. 후릅- 쩝쩝쩝,후릅- 쩝쩝쩝, 미간에 땀까지 흘리면서 먹던 중, 국물을 마시려 그릇을 들어 올리려다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민망해서 눈을 바로 돌리고 마시려는데 뭔가 이상하다 싶어 남자를 쳐다보았다. 다시 마주치는 눈.
"남 먹는거 보는게 취미에요?"
약간 날이 선 듯한 질문에도 남자는 표정하나 바뀌지 않았다.
"되게 잘 드시길래요."
"복 스럽게 먹는단 말 많이 들어봤습니다. 칭찬 고맙습니다."
"칭찬하는 말은 아니였는데."
국물을 다시 마시려다 멈췄다. 뭐지 저 사람은? 그냥 뒷 테이블에서 조용히 먹고나 가지, 왜, 내 옆자리에 끼고 앉아서는 내 심기를 건드리는 걸까.
"요 주위에 못 보던 잘생긴 총각이다 싶었는디, 역시 타 지역 사람이구마, 저기 저 서울에서 왔는가?"
"네, 일이 잘 안풀려서 머리도 식힐겸 기분전환으로 드라이빙하다, 여기까지 왔네요. 하핫-"
차씨 아저씨와 능청스레 얘기하는 낮짝이 꼴베기 싫어 우동에 얼굴을 박았다. 빨리 먹어치우고 나갈 심상이였다.
"나는 우리 지호가 제일 미남인줄 알았구만 여기 한명 더 있었네, 서울 총각들은 그렇게 다 미남이가?"
"거, 참 서울 사람들이 잘생기믄 을마나 잘생겼다고, 우리 지호가 제일 잘났제."
에이, 아저씨들도 참, 부끄럽게.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양 볼, 터질듯한 우동 면발을 자랑하며 웃어보였다.
"서울이라고 다 잘생긴 사람들이 있는건 아니에요. 오히려 지방 사람들이 더 미모가 출중하던걸요?"
"그라제 그라제, 우리 지호만께롱 훤한 인물 없제?"
"암 그럼요!"
내 외모로 이러쿵 저러쿵 하며, 하하호호 거리는 것은 마음에 안들었지만, 사교성 하난 끝내주게 좋은 사람인 것은 틀림 없었다. 특히 저 아저씨들은 친해지기 진짜 어려운 분들이신데.
"후아- 잘 먹었다, 아주머니 잘 먹었습니다. 나중에 또 올게요!"
마지막 국물까지 남김없이 먹어치운 깨끗한 그릇을 자랑스레 아줌마께 내보이며 계산을 했다.
"오늘 많이 춥다. 일찍 들어가고 나중에 또와? 아줌마가 맛있는거 만들어 줄께."
"당연하죠! 아저씨! 저 이만 가볼께요!"
"그래그래, 위험한데 조심히 들어가그라."
"나중에 이 아저씨랑 술 한번 묵고 그래이?"
네-, 마지막 까지도 배웅해주시는 모습이 부담스러우면서도 그 따뜻한 마음을 알기에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 마음씨 좋은 이웃분들이 있는것 만으로도 엄청 행복한 일일 것이다.
*
"우윽-,욱-"
결국 얼마 버티지 못하고 다 게워내 버렸다. 안 넘어가는 우동을 억지로 꾸역꾸역 넘겨 먹은걸 다시 게워내는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였다. 머리까지 핑 도는 것 같아 맞은 편 벽에 기대서 숨을 크게 내뱉었다. 그래도 아저씨들과 아줌마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우동 한 그릇을 말끔히 비워낸 자신이 대견스러워 숨을 헐떡이는 와중에도 비실비실 웃었다. 잘했어 우지호.
"그 많던 걸 억지로 드신거에요?"
저 혼자라고 생각했던 골목에 순간 낮선 사람의 목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주위를 둘러 보았다. 저 만치 가로등에 검게 비치는 인영이 보였다.
"체하신거에요?...아니면 다른 이유라도?"
아-, 멍청하다 싶은 탄성이였다. 저 목소리 기억난다. 아까 포장마차에 있던 그 남자였다. 그런데 왜 여기 있는거지? 지금 오뎅탕 먹고있어야 하는거 아닌가? 안먹고 나왔나? 아줌마 엄청 서운해 하실텐데..여러가지 잡생각에 잠겨있는데,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남자는 어두워서 잘은 보이지 않지만 웃는 얼굴을 하고있었다.
"저한테 무슨 용건이라도 있는건가요?"
"용건..용건이라, 네, 있죠 있구말구요."
벽에 구부정하게 기대어 있는 제 키에 맞춰, 고개를 숙여 좀 더 얼굴을 가까이한 남자는 그리 말했다. 그의 말 끝에는 웃음이 걸려 있었다. 그게 기분 나빴다.
"요즘 들어 일어나는 화재사건에 대해 궁굼해서 말이죠."
"화재?"
"네, 우지호씨라면 왠지 알 것 같아서요."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미아, 미슥거리는 속과 핑도는 머리만 해도 짜증나 죽겠는 상황이였다. 제 화를 돋우는 것 만 같아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제가 그걸 알면 신이게요?"
그런 제 말에 남자는 푸흐흣-, 거리며 웃었다. 비웃는건가? 기분 나쁘다, 기분 나쁜 사람이다. 머리까지 숙이며 웃어제끼는 모습에 남자의 뒷통수를 한대 갈기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렇죠, 알면 신이겠죠? "
"..사람 놀리니 재밌으십니까? "
"하하-, 놀릴 생각은 없었는데 그렇게 되버렸네요 기분 나쁘셨으면 죄송합니다. 그런데 재밌네요 지호씨 반응이."
변탠가? 이 남자와 말해봐야 저만 당하는 꼴이다. 얼른 이곳을 벗어나 집에가는게 나을 것 같았다. 내일 알바도 가야하는 상황에 감기라도 걸려버리면 제 손해였다. 벌써부터 목이 따끔거리는게 심상치 않았다.
"시간도 늦었는데 그만 가세요 서울이면 여기서 두시간도 넘게 걸리지 않습니까."
"그런건 아무래도 상관 없습니다."
"하-, 그럼 여기서 죽던 말든 있으세요. 전 내일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가봐야 하거든요."
"그건 곤란하겠는데요? 아직 질문에 답도 듣지 못했고, 할 말도 남아서 말이죠."
"이 봐요!...하, 뭐가 또 남았는데요. 빨리 말하세요 집에 가게 좀! "
화가 나 따지려들다, 싸우면 더 길어질 것 만 같아서 그냥 쿵짝 한번 맞춰주고 가는게 났겠다 싶었다.
"요새 나는 화재들 이상하단 생각 못 들었습니까?"
"그런 생각 한번도 못 들었습니다."
"그 화재가 지호씨 주위에만 일어나는 것도요?"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화재가 제 주위에서만 나다니요. 꼭 제가 방화범인 것 처럼 말하시네요."
"네, 맞습니다. 이렇게 자수해 주시다니 고마울 따름이네요."
에? 뭐요??, 멍청하게 되묻는 사이 남자는 제 손목을 잡았다.
"우지호씨. 당신을 연쇄 방화범으로 체포하겠습니다."
뭐라 할 세도 없이 체워지는 수갑에 당황함을 감출수 없었다. 도데체 뭐가 어떻게 된거지? 이 사람 정체는 뭐고 내가 왜 방화범인데?!!!
"잠깐만..잠깐만요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가 있으며, 법정에서 유리한 진술을 할수 있고, 변호사를 선임할수 있습니다."
"잠깐만이라고 했잖아!!!"
"자세한 이야긴 서에가서 하시죠."
* *
블독방에 올렸다가 가져왔어요. 처음쓰는 글이라 많이 부족합니다. 연재를 원하시길래.. 한번 해보려구요 부족하지만 그만큼 배워가겠습니다. 사랑해주세요.
그런데 불마크는 수위 있을때 붙이는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