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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 연애관

첫 번째







"개새끼. 민윤기 개새끼!"





쾅. 굉음이 들리면서 테이블 아래에 있던 쓰레기통이 쓰러졌다. 아, 얘 술버릇 진짜 미치겠네! 어린 알바생이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나타날 때 까지도 여주는 반쯤 놓아버린 정신으로 열심히 윤기를 씹고 있었다. 변해써어…. 변해도 너어무 변해써어. 발로 찬 쓰레기통이 쓰러질 때 보다 더 큰 소음을 내며 이내 테이블에 이마를 찍어버린다. 야야, 일어나. 잠은 집에 가서 자. 유나가 여주의 등을 붙잡고 세차게 흔들어댔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 깡소주 3병을 혼자서 때려박았으니, 정신이 온전할 리가 있나.





"얘 집 어딘지 아는 사람."





왁자지껄한 식당 내부에서 3번 테이블에만 정적이 흘렀다. 쟤 맨날 취하면 민윤기가 데리러 왔었잖아. 민윤기한테 전화해, 그럼. 방금 못 들었어? 개새끼라잖아. 그렇다. 누가 봐도 '나 남친이랑 쫑나게 생겼어요-'하고 하루종일 말하고 다니듯 했는데 멋대로 윤기를 호출했다간 후폭풍이 두렵다.





"자취하는 사람."





방법은 하나다. 아무리 술자리에서 개뼈따구같이 진상을 부려도 같은 과 동기를 길바닥에 버려두고 갈 수는 없는 법. 스무 명은 족히 넘어보이는 사람들 가운데 4명이 눈치를 보며 반쯤 손을 들어올렸다.





"어, 상준이! 너네 집 여기서 제일 가깝잖아.
네가 오늘만 얘 좀 어떻게 처리해라."

"야, 나 민윤기한테 맞아죽어."





질색팔색을 하며 자기는 도저히 못 하겠다고 고개를 젓는다. 옆에 앉아있던 귀여운 여자 후배에게 인자한 미소를 지어보였더니 자기는 룸메가 하도 까탈스러워서 안 된단다. 누가 명문대 학생들 아니랄까봐, 어째 둘러대는 핑계들이 하나같이 다 그럴듯하다. 유나는 여주를 내려다 보며 쓴 소주를 한 잔 더 들이켰다. 우리집은 부모님 있어서 안 되는데…. 진짜 그냥 길바닥에 버리고 가버려?!





"제가 데려갈게요."





다들 저 골칫덩어리를 처리할 방법을 연구하면서 흘렀던 적막을 누군가 깼다. 유나는 입을 쩍 벌리고 지민을 바라보았다.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입생이었다. 게다가 아무리 뭘 모를 것 같은 저 순진한 얼굴을 했어도, 남자는 남자다. 상준은 3년동안 여주와 끈질기게 붙어다니며 서로 남자로, 여자로 느낄 수 없는 관계라지만 지민은 달랐다. 둘이 말 한 번 섞는 걸 본 적이 없는데.





"저희 집 여기서 가까워요. 역 근처 오피스텔에서 자취해요, 저."





아, 그래? 유나는 찝찝한 느낌을 감출 수 없다는 얼굴로 지민을 관찰했다. 애가 여태 행실로 봐선 이상한 짓 할 애는 아닌 것 같긴 한데…. 모르지. 남자의 본능이란.


유나의 표정을 읽은건지 다른 뜻 전혀 없으니 걱정말라며 싱긋 웃는 지민이다. 모두의 침묵을 긍정의 표시로 받아들인건지 지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맞은편에서 여전히 머리를 박고 기절해있는 여주에게 다가갔다. 조심스럽게 어깨를 짚고선 상체를 들어올린다. 선배, 정신 좀 차려봐요.





"으으응…. 뭐야아."





아이처럼 칭얼거리며 여주는 감겼던 눈을 반쯤 떴다. 본인 의지와는 관계없이 자꾸만 뒤로 꺾이는 목을 누군가 단단히 받쳐주었다. 그 누군가가 지금 저의 희미한 시야로 들어오는 남자라는 건 만취가 된 상태에서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사실이었다. 가만보자, 얘가 누구….





"이, 이…."

"정신 들어요? 걸어갈 수 있겠어요?"





다정하게 허리를 숙이고서 묻는 지민을 동기들은 걱정스레 쳐다봤다. 술만 마시면 개가 되는 김여주를 먼저 건드린다는 건 악어가 이를 내밀고 있는 강에 제 발로 들어가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그 걱정은 현실로 다가왔다. 지민은 갑자기 조여오는 자신의 목을 두 손으로 붙잡고 켁켁거렸다. 이 개새끼야! 민윤기 개자식! 여주가 지민의 목에 둘러진 빨간 목도리를 힘껏 잡아당기며 울부짖었다. 





"야, 미쳤어? 이게 이젠 술버릇으로 살인까지 하게 생겼네!"





동기들이 하나같이 들러붙어 여주와 지민을 떼어놓았다. 흐어어엉….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래애. 끝까지 윤기의 이름은 빠지지 않고 들려왔다. 그놈의 민윤기, 민윤기. 유나는 치가 떨린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진짜 괜찮겠어? 이제 보니 여주의 순결이 아니라 지민의 목숨을 걱정해야 할 것 같다. 한참동안 켁켁거리기만 하던 지민은 이제야 좀 안정이 된 건지 고개를 두어번 끄덕였다. 


또 다시 잠에 취한 여주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지민은 무릎을 꿇고 여주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이 상태에서 두 발로 걸어가는 건 무리인 듯 싶다. 얇은 가디건을 벗어 여주의 허리에 그것을 둘러주며 지민은 힘없이 늘어진 여주를 업었다. 그 전에 여주의 볼에 번진 눈물자국을 닦아주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낭만적 연애관












 뜨거운 커피잔을 내려놓은 지민은 턱을 괴고 앞을 응시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소파에 길게 뻗어있는 저 여자. 아니아니, 저 선배. 오는 내내 저의 등에 업혀 다른 남자의 이름을 웅얼거리는 걸 듣고서야 후회했다. 아, 또 넘었구나. 넘어선 안될 선. 


 좋아하는 여자와의 하룻밤은 어떨까, 매번 혼자 망상으로 부풀리기만했던 일이 이런식으로 찾아올 줄 몰랐다. 이렇게 개거지같은 기분일 줄 몰랐지. 고깃집에서 저를 윤기로 착각하던 여주의 모습. 속상할 일은 아닌데, 그렇다고 좋아해야할 일은 절대 아니란거지. 


 그래, 다 내 잘못이지 뭐. 임자있는 여자를 기어코 내 집까지 업어모셔온 내가 미친놈이지. 그렇게 생각하며 지민은 커피잔을 들고 거실 탁자로 걸어갔다. 살짝 벌어진 입술이 이따금 뻐끔거리는 걸 보고 있던 지민은 탁자에 커피잔을 내려놓고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얼마 뒤 제 몸만한 이불을 끙차끙차 들고 나왔다. 덮여진 이불에 낯선 느낌이 들었는지 몸을 뒤척이는 여주를 내려다보다가 지민은 방금 전까지 마시던 커피잔을 다시 들었다.





"깨,깼어요?"





한 모금을 채 들이키기도 전에 반쯤 풀린 눈을 한 여주와 눈을 마주친 지민. 하마터면 사례가 들 뻔 했다. 


끔뻑끔뻑. 조용히 눈을 감았다 떴다를 반복하던 여주는 지민과 눈이 마주치더니 이내 인상을 팍! 찌푸린다. 이 시발놈…. 어째 하룻밤 동침의 소감치고는 꽤 과격한 탓에 지민은 당황스러운 눈동자를 감출 수 없었다. 아직도 저를 윤기로 착각하는 듯 했다. 


아니 나는 윤기형이 아니라,
그제서야 해명을 해보지만 이미 정신이 안드로메다에 가 있는 사람과 말이 통할리가 있나. 그것은 독백과도 같았다. 이씨,이씨. 계속해서 짜증을 표출하던 여주가 끝끝내 몸을 일으키더니 지민에게 다가가려했다. 한 대, 아니 죽지 않을 정도로만 팰 것 같은 포스로.





"나 민윤기 아니라니까요…."





다급한 지민의 말이 끝나자마자 '아악!' 하고 짧은 비명소리가 아늑한 거실에 울려퍼졌다. 


헐. 선배, 미안해요. 괜찮아요?
지민이 들고 있던 커피잔에서 흘러나온 뜨거운 액체가 여주의 티셔츠를 물들이고 있었다. 그대로 다시 주저앉은 여주는 괴로워하며 휴지로 저의 옷을 닦아내는 지민의 손길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너…. 너 진짜 나한테 왜이래애.
이윽고 이슬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여주의 모습에 지민은 당황함이 두 배가 되었다. 미안, 미안해요. 뜨거운 커피때문에 우는 것이 아니다. 입고 있는 티셔츠가 명품 브랜드 옷인 것이 안타까워서 흘리는 눈물이 아니라는 것 쯤은 지민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미안하다는 말 밖엔 더 할 말이 없는걸.





"…미안?"

"…."





서럽게 울던 여주의 눈빛이 매섭게 변했다. 그것을 알아차린 지민이 휴지로 닦아내던 행동을 멈추고 쭈그려앉은 상태에서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방금 미안하다고 했냐? 미안하긴 해?
점점 커지는 목소리에 지민은 눈치를 보며 입술을 깨물기만을 반복했다.


움직이지 마.
단호한 여주의 말투에 꼼지락거리던 지민의 두 발이 얌전해졌다.





"그대로 있어…."

"…."

"나한테 미안하면, 가만히 있어 민윤기."





가만히 있으라는데 별 수 있나. 모든 행동을 멈춘 지민은 눈조차 깜빡이지 않았다. 그 뒤로 시계 초침소리만 나던 거실에는 여전히 침묵이 흘렀다. 마스카라가 다 번진 얼굴이 저에게 다가오는 걸 차마 피할 수 없던 지민은 그대로 굳어있었다. 이윽고 입술에 닿는 말캉한 느낌에 눈을 크게 뜨며 숨을 들이켰다. 이 순간만큼은 그는 성실하고 착한 신입생 박지민이 아닌, 사귄 지 몇 년째 한 여자를 수없이 울게 만드는 쓰레기 민윤기였다.












낭만적 연애관












"내가 어제 실수한 거… 없었니?"





 조촐한 아침밥상을 앞에 두고 대뜸 물었다. 진짜 미친거지. 얼마나 처마셨으면 생전 말 한 번 안 섞어본 남자 후배 집에서 잠을 자냐고! 불편해서 눈치보기 바쁜 나와 달리 지민이는 꿀떡꿀떡 밥을 목구멍으로 잘만 넘기더라. 딱히요? 다 식은 북엇국을 떠마시며 말하는 지민이는 나랑은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아오, 신입생한테 이게 무슨 망신이냐. 개진상녀로 소문 쫙 나게 생겼네(이미 난 상태).


 평소와 달리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흰색 천장에 잠이 확 깨더라. 상황 파악을 하던 와중에 화장실에서 칫솔을 입에 물고 나오던 박지민은 '일어났어요?' 이 말을 아침인사로 했다. 원래대로라면 딱딱한 자취방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술 좀 작작 마시라는 민윤기의 잔소리를 듣고 있어야 할 때, 나는 낯선 남자 후배에게 깊은 사죄의 말을 전했다.


 밥은 도저히 안 넘어가서 국만 몇 숟갈 떠마시고 있었다. 적당히 간이 된 국의 맛에 열심히 먹기만 하고 있는 지민이의 얼굴을 쳐다봤다. 어린놈이 요리는 누구한테 배웠대? 더럽게 맛있네.


식탁에 엎어져있던 핸드폰을 집어들어 잠금을 풀었다. 역시. 고요한 최근 통화목록을 보며 이를 갈았다. 민윤기 네가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저 한 30분 뒤에 나가봐야 하는데."





혹시라도 민윤기를 만나면 무슨 욕부터 해줘야할지 곰곰히 생각하고 있는데 나긋나긋한 말투에 저절로 박지민에게 시선이 갔다. 아, 그래…! 나도 이것만 먹고 가려고. 눈칫밥도 이런 눈칫밥이 없다. 내가 신입생 때 과 선배랑 단둘이 점심을 같이 했을 때보다 더 불편하다. 어젯밤 별다른 큰 일은 없었다고 하니 다행이긴 한데,





"윤기 형이랑 싸웠어요?"

"응? 너 민윤기 알아?"





동아리 같이 해요.
마지막 한 숟갈까지 깔끔하게 털어넣는 박지민이 무심하게 대답했다. 아, 존나 재수가 없어도 너무 없다. 하필이면 또 민윤기랑 아는 놈일 게 뭐람.





"어제 많이 울던데."

"아…."





실수가 없긴 개뿔, 또 민윤기 욕 존나게 해댔나보네. 먼저 저런 말 꺼내는 거 보면. 이 자식 설마… 민윤기한테 다 일러바치는 건 아니겠지? 


걱정마요. 어제 일은 윤기형한테 얘기 안 할게요.
나를 안심시키는 부드러운 목소리에 마음이 놓였다. 설령 자기랑 아는 후배라고 해도 다른 남자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냈다는 걸 알면 민윤기는 절대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그 성격에, 나한테 또 장난아니게 지랄하겠지. 그러는 지는, 시발….





밥을 다 먹고 설거지는 내가 하겠다고 해도 박지민은 내 손에 들린 고무장갑을 뺏어들며 한사코 거절했다. 집주인이 불편하다는데, 억지로 할 필요 뭐 있나 싶어 그냥 외투를 걸치고 박지민을 따라 집을 나왔다.


재워줘서 고마웠다는 짧은 인사에 박지민은 눈이 접히게 웃으며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이런 천사같은 애가 민윤기같은 새끼랑 연을 맺다니, 제발 물들지 말아라 아가야.


이른 시간에 강의가 있는건지 박지민 역시 학교로 향했고 우리 둘은 나란히 캠퍼스에 들어섰다. 경영대학 건물쪽으로 가봐야한다는 내 말에 지민이는 잠시 멈칫하더니 목을 까딱이며 인사를 했다. 멀어지는 지민이의 뒷모습을 살피다가 뒤돌았을 때, 멀쩡하던 내 두 눈동자가 흔들렸다.





"..."





허, 저게 지금 날 쌩깐다 이거야? 보자 보자 하니까 진짜 내가 보자기로 보이나 봐.





"야."





화를 꾹꾹 눌러담은 목소리로 과잠을 입고 있는 등 뒤에서 목소리를 냈더니 발걸음을 뚝 멈춘다. 그리고 천천히 뒤돌아본다. 이름도 안 불렀는데 알아듣는 거 보면 내가 자기를 먼저 부를거란 걸 알고 있었던거다. 존나 개밥맛 새끼.





"왜 나 보고도 모른척해?"





한 발자국씩 민윤기에게 가까워지면서 처음부터 따지고 들었다. 귀찮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는 민윤기의 얼굴이 심장을 후벼파는 것 같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나랑 진짜 한 번 해보자는거지?





"나 아침에 존나 저기압인 거 알지. 지금 너랑 싸울 힘 없다."

"내가 싸우는 것까지 네 사정 봐가면서 해야 해?"





민윤기의 깊은 한숨에 난 기가 차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네가 한숨을 왜 쉬어, 왜 네가 나한테 짜증 난다는 얼굴을 하고 서있냐고. 차갑게 식어버린 민윤기의 두 눈동자는 결국 나를 울렸다. 뿌옇게 흐려진 시야로 꼿꼿이 서있는 민윤기가 들어왔다. 이씨, 쪽팔리게. 


울고 있는 나를 보고있기만 한 민윤기가 밉다.
개자식. 울지 말라는 따뜻한 말 같은 건 바라지도 않았어. 그냥, 그냥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가 그렇게 어려워? 자존심만 더럽게 센 나쁜놈.


4년이면 꽤 오래 만났다고 생각한다.
서로 알 거 다 알고, 적어도 상대가 뭘 싫어하고 어떤 행동에 실망하는지 정도는 알고있어야 할 사이다. 그런데도 날 끝까지 실망시키는 사람과 내가 인연의 실을 계속 이어가야 할 이유가 있을까?





"그만하자, 우리."





그리고 그 실을 먼저 잘라버린건, 나였다.


















〓〓〓〓





연재텀이 일정하지 길 수 있어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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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글 [방탄소년단/민윤기/박지민] 낭만적 연애관 01  3
7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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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ㅠㅠㅠㅠㅠㅠ엉엉 무슨 사정으로 여주와 윤기가 다투는걸까요ㅠㅠㅠㅠㅠ얼른 그 내막을 알고싶네요ㅠㅠㅠㅠㅠ
7년 전
대표 사진
독자2
신알신하고 갈게요! 잘 읽고 갑니다:)
7년 전
대표 사진
독자3
신알신 누르고 갑니다!!
7년 전
비회원도 댓글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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