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럽 (Celebrity)
W. 라푼젤리
BGM은 생명입니다. 꼭 틀어주세요!
셀럽. 나를 표현하기 가장 적절한 단어였다. 16살, 대형 기획사 아이돌 그룹의 막내로 데뷔해 24살, 9년차가 되어 아이돌 겸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대중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내가 SNS에 사진을 한 장 올리면 수십 개의 기사가 떴으며, 완판의 기록에 감탄한 회사들이 미친듯이 광고 러브콜을 보냈다.
두 번 정도의 공개 연애를 했는데, 한 명은 같은 회사 아이돌 그룹 멤버였고, 한 명은 인기 배우였다. 물론 그게 만난 사람의 전부는 아니다. 유명 연예 신문사에 사진이 찍혀 사실대로 불었을 뿐.
나는 적당히 철없었고, 적당히 싸가지 없었으며, 적당히 삐뚤어졌다. 가끔 인스타그램에 럽스타 게시물을 티나게 올렸다가 걸리기도 했고, 클럽과 파티를 좋아했다. 술과 사람을 좋아했지만 어느 정도 선은 지키며 논다는 자부심은 있었다, 어제까지는.
상황 파악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뜨니 낯선 침대 위였다. 내 집과 다른 짙은 회색의 이불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걸치고 있는 건 속옷과 커다란 티셔츠 하나뿐이었다. 기억을 떠올리려 애썼으나 기억나는 건 누군가의 입술이 부딪혀오는 생경한 느낌뿐이었다.
미친- 머리를 헤집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찾았다. 침대 밑에 어제 입은 크롭탑과 스커트가 멋대로 널부러져 있었다. 옷가지를 주워들고 방문으로 한 걸음 내딛는데 누군가 똑똑- 두 번 문을 두드리곤 멋대로 방문을 열었다.
“일어났어요?”
그리고 젖은 머리를 털며 들어오는 그 누군가의 모습에 입을 쩍 벌릴 수밖에 없었다.
“황민현?”
“어? 나 아나 보네요? 어제는 아무 말 없길래 설마 모르나 했는데.”
모를 수가 없었다. 요즘 누가 제일 핫해? 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게 나랑 쟤였으니까.
대형사고를 쳤구나, 미친 게 분명했다. 만약 어제 클럽에 있던 누군가가 목격담이나 인증 사진이라도 푼다면 실시간 검색어 1위가 황민현, 2위가 김여주가 될 일으니까.
“잤어요? 설마? 우리가? 그쪽이랑 나랑…?”
“기억 안나요? 어제 되게…”
잤냐고 묻는 나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능글맞게 쳐다보며 황민현이 뱉는 말들에 그 입을 틀어막아버렸다. 막막한 앞일에 일단 황민현을 질질 끌고 방 밖으로 나왔다.
“여긴 어디에요? 그 쪽 집?”
“내가 여주씨 데리고 우리집 말고 어딜 갈 수 있겠어요.”
“어제 그 쪽도 제정신 아니었어요?”
머리 옆에 손가락을 빙빙 돌려가며 묻자,
“제정신이었는데요.”
하하, 웃으며 뻔뻔히 대답하는 황민현이었다.
“제정신이었는데 나를 데리고 자기 집까지 와요?”
“진짜 기억 안나나 보네... 걱정마요. 밖에서는 아무것도 안했으니까, 사진은 안찍혔ㅇ……악!”
덤덤하게 내뱉는 말들이 얄미워 등을 퍽퍽 때리니 작은 손이 왜 이렇게 맵냐며 황민현이 투덜댔다. 진짜 뭔 생각인거야 이 양반은- 더 앞일이 막막해져 한숨이 푹푹 나왔다.
일단 씻자- 그래, 뭐라도 하자, 하는 생각에 황민현을 불러세웠다.
“샤워 어디서 해요?”
“샤워하게요? 아까 그 방 화장실 쓰면 되는데. 잠시만요, 새 칫솔이...”
-
씻을테니까 밖에서 가만히 기다려요, 엄포를 놓고 화장실 문을 잠궜다. 그렇게 옷을 벗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니 목부터 쇄골, 그리고 그 밑까지 빨간 자욱으로 덮여있었다. 한동안 파인 옷은 무리겠네. 한숨을 쉬며 위에서 떨어지는 물을 한참 맞고 있다 나가려고 보니 옷마저 성한 곳이 없었다.
스커트 트임이 아예 찢어지고 크롭탑 윗부분은… 아니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건지- 체념하고는 아침에 입혀져 있던 티셔츠를 입은 채 밖으로 나오니 식탁 위에 앉아있는 황민현이 보였다.
“어제 어떻게 된 거에요?”
그 앞에 서서 인상을 찌푸리며 묻자, 황민현이 내 손목을 그러쥐곤 내 얼굴을 마주쳤다.
“어제 새벽에 현빈이가 우리 룸 안에 여주씨를 데리고 들어왔어요.”
“거기까진 기억나요. 그 안에서 술을 더 마신 것도.”
“어…나는 현빈이 생일파티 때문에 반은 억지로 간 거였고, 원래 술을 잘 못하고, 즐기지도 않아요.”
“술을 못한단 게 무슨 소리에요? 제정신이었다면서요.”
“못하는 걸 아니까 안마셨어요. 그래서 룸 안에 멀쩡한 사람은 저밖에 없었고…”
“그래서? 나는요?”
“수습을 해야겠다 싶어서 매니저 형을 불렀고, 여주씨는 제가 데려다주려고 했어요.”
시선이 살짝 내려간 황민현이 내 어깨에 흘러내린 티셔츠를 치켜올려주며 말을 이었다.
“차에 타고 나서 여주씨한테 아무리 집을 물어도 대답이 없길래 일단 우리집으로 왔는데, 중간에 여주씨가 술이 깼다길래 그런가보다 했죠. 미안해요. 취한 줄 알았으면 그러면 안되는건데. 주차하고 나서 문을 열고 내려주려는데, 여주씨가 먼저 키스했고… ”
그 말을 뱉는 황민현의 얼굴이 점점 다가왔다.
“왜, 왜. ㅇ…..”
가까이 와요, 뱉지 못한 말이 목구멍을 지나지 못하고 삼켜졌다.
살짝 젖은 머리카락을 목 뒤로 넘겨주는 손길이 내 몸을 스쳤다. 목과 어깨선에 닿는 손에 사고회로가 살짝 정지되는 듯한 기분이었다.
“여주씨 지금 엄청 야한 거 알아요? 내가 생각보다 인내심이 그닥 좋은 편은 아닌데.”
“…”
당황한 나를 보며 황민현이 피식 웃고는 내 눈을 맞춰왔다.
“머리 말려줄까요? 에어컨 때문에 감기 걸릴까봐.”
속삭이는 목소리와 손에 묻은 약간의 다정함이 자꾸 목 뒤를 간질였다. 쓸데없이 뭐 이렇게- 투덜대면서도 자꾸 몸은 그를 따라 휘말렸다.
몇 가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황민현은 내가 여태껏 만난 남자들보다 조금 더 잘생겼으며, 조금 더 키가 크다는 것과, 조금 더 섹시하다는 것. 그리고 조금 더 다정스럽게 말한다는 것.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조금 그에게 끌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
4일이 지났다. 토요일날 황민현은 내게 옷을 입히고 모자와 마스크로 무장시킨 뒤 자신의 차에 태워 집까지 데려다 줬었다. 몸의 흔적도 가라 앉았다. 그리고 여태까지 아무 연락이 없었다. 벌써 수요일이었다.
분명 완전히 필름이 끊기기 전 드문드문 남아있는 기억 속의 나는 룸 안에서 황민현에게 번호를 줬었다. 근데 아무런 문자 메세지도, 전화도 없었다. 먼저 연락을 해볼까 했지만,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을 뿐더러 그 날 나는 번호를 찍어주기만 했지 그의 번호를 받진 않았다. 짜증과 패배감이 치밀었다.
김여주한테 넘어오질 않았어? 그렇게 굴어놓고도? 내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한두 명을 거치면 금세 번호나 소식을 캐낼 수 있을테지만, 김여주가 황민현에게 찝적대는 것 같더라, 소문이 도는 건 내 자존심이 용서치 못했다. 까오가 있지- 김여주. 결국 나는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어제 새로 찍는 광고 미팅에 가서도 핸드폰을 놓지 않았다. 화가 치밀어 오르다가도, 많이 바쁜가 싶어 다시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하기를 수십번 반복했다. 그래, 나도 스케줄 바쁠 땐 이삼일씩 폰도 제대로 못보곤 하니까- 라며 참아낼 수 있는 한도를 넘긴 듯 했다.
내 오늘은 기필코 결단을 내리라- 아침부터 황민현의 집에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주소는 아니까 네비 찍고 가면 되겠지. 어차피 옷이랑 모자도 돌려줘야 하니까, 10분 거리도 안되는 것 같던데 뭐. 스스로 합리화하며 차를 몰고 황민현의 집으로 향했다.
201동 1801호요- 호수를 대니 스르륵 열리는 문에 동 바로 밑 지하주차장에 차를 대고 모자를 푹 눌러쓴 채 내렸다. 1801호 호출을 누르고 아무리 기다려도 열리지 않는 문에 다시 시도하기를 열댓 번, 그리고 다시 차에 들어갔다 나오기를 두어번. 벌써 한시간이 넘게 지났음에도 문은 열릴 생각이 없었다.
헛걸음했다는 생각에 치밀어오르는 짜증을 꾹꾹 눌러삼키며 아파트 경비실 옆에 위치한 택배보관실을 찾았다. 201동 1801호를 찾아 택배보관함에 옷과 모자가 담긴 봉투를 넣어놓으며 종이와 펜을 빌려 꾹꾹 눌러쓴 쪽지도 잘 보이게 두었다.
`한 시간 넘게 문이 안 열리길래 집에 안계신 것 같아 그냥 두고 갑니다.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 연락을 안할거면 연락처는 왜 받으셨어요? -김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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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금요일이었다. 황민현을 만난지도 어언 일주일. 수요일 날 이후로도 연락 없는 핸드폰에 어제 친구를 집으로 불러 혼자 소주를 세 병 깠더니 몸이 말이 아니었다. 김여주, 어제 술 먹었지. 오늘 화보 촬영 있다니까 어쩌려고 그래- 아침에 나를 데리러 와서는 잔소리하는 매니저오빠에 속으로 황민현 나쁜 자식- 다 너 때문이야, 퉤퉤퉤 하며 욕을 곱씹었다.
대기실을 안내 받은 뒤 울렁거리는 속을 주체할 수 없어 쇼파에 널부러져 있는데, 문 밖에서 똑똑 하는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대충 대답하고는 다시 쇼파에 엎어졌다. 전에도 본 적 있는 잡지사 측 팀장이었다.
“저, 오늘 컨셉 설명때문에 왔는데 그 전에 말씀드릴 게 있어서... 오늘 커플화보 상대역이 교체됐는데 미리 말씀 못드려서 죄송해요. 성우씨 측에서 드라마 촬영 중에 입은 부상 때문에 스케줄을 전면 취소하셔서요."
"아...네."
"매니저님 통해서 어제 전해드리려고 했는데, 저희도 며칠 전에 펑크가 난 거라 정신이 없어서… 전달 맡은 인턴이 실수로 깜빡한 것 같아요. 근데 잡지 최종 마감일때문에 날짜를 교체하기엔 무리가 있어서 부득이하게 남자 역을 황민현씨로…”
대충 쇼파에 널부러져 흘려듣던 말들 중 한 단어가 귀에 박혔다.
“누구요?”
“아 네, 그 황민현 씨요. 얼마 전에 영화 찍으신… 저희도 급하게 섭외하느라 당연히 거절 당할 줄 알고 제일 먼저 연락드렸는데 감사하게도 흔쾌히 수락해주셔서요. 저희 입장에서는 감사한데 여주씨 측과 미리 컨택이 안된 사안이라 일단 너무 죄송…”
-
황민현.
황민현.
황민현….
이름을 들은 후부터 메이크업을 시작할 때까지 모든 말이 필터링되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지경이 되었다. 물론 화보 컨셉 설명을 들으며 `섹시`, `침대`, `스킨십` 등의 단어가 나올 때마다 움찔움찔하며 되묻긴 했다.
상대역부터 컨셉까지, 뭐됐구나- 하는 생각을 도저히 지울 수 없는 상황이었다. 김여주 진짜 왜 괜히 쪽지로 깝쳐서…
메이크업 실장님의 다 됐다- 아이 이뻐, 라는 칭찬을 끝으로 메이크업을 마치고 첫 의상을 받아 입으니 컨셉이 더더욱 와닿았다. 아주 김여주 인생에서 전무후무한 최대의 섹시 컨셉이구나, 라고 느낄 수 있었다. 기나긴 한숨과 함께 대기실을 나왔다.
“어어, 여주씨 어서와. 오늘 완전 이쁜데?”
평소에도 안면이 있던 작가님의 반가운 인사에 애써 감사합니다, 하고 쇼파 위에 앉았다.
그리고 그 옆엔, 먼저 첫 컷 설명을 듣고 있는 황민현이 앉아있었다.
“오랜만이에요.”
황민현의 인사에 떨떠름한 표정으로 답한 뒤, 첫 컷 설명을 대강 듣고 바로 촬영에 들어갔다.
그리고, 프로페셔널하게 딱 촬영만 빨리 끝내버려야지- 하는 다짐은 얼마 못가 무너져내렸다.
“그렇지- 여주씨가 탁자 위에 앉아있으면 그 앞에 민현씨가 서자. 오케이, 좀만 더 붙어서- 그치 그쪽 허벅지를 민현씨가 오른쪽 손으로 잡고…”
'찰칵-'
“민현씨 입술 쳐다보고… 잘한다- 민현씨 눈 내리깔고 반대쪽 손 여주씨 어깨에, 오케이-"
'찰칵-'
'찰칵-'
“어어 방금 입술에 손가락 올리는 거 좋았어, 그치 여주씨 손 민현씨 가슴 위에 올리고-"
'찰칵-'
딱 죽을 맛이었다. 인사만 겨우 한 나와 황민현은 지금 초밀착 상태였다. 탁자 위에 앉은 내 다리 사이로 황민현이 서있고, 그런 우리는 곧장 입이라도 맞출 듯한 모양새였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포즈를 취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황민현은 왜 이걸 한다고 했지? 내가 남긴 쪽지를 봤을까? 봤겠지? 근데 왜 연락을 안해? 미안하단 말 한마디가 어려워? 그렇게 바빴나? 설마- 얼마 전에 영화 촬영도 끝났다던데? 복잡한 머릿속을 헤집느라 내가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그 때, 포즈를 바꿔보자는 작가님의 외침에 어느새 황민현이 벽에 기댄 상태로 뒤에서 내 허리를 끌어안아왔다.
“나한테 집중해요, 딴 생각 말고-"
“…”
귀에 속삭이는 목소리에 공기가 섞여 간질거렸다. 작은 속삭임은 세트장 안의 노랫소리에 파묻혔지만 내 귀엔 미치도록 선명했다.
“미안해요, 그 날 클럽에서 핸드폰을 떨어뜨렸나 봐요. 일주일동안 스케줄이 꽉 차서 찾으러 가지도 못했어요.”
“…”
“매니저 형한테 대신 부탁해서 폰 새로 샀는데-"
“…”
“이따 연락처 좀 줄래요?”
“…”
“여주씨 번호가 내 폰에 처음 저장하는 연락처가 될 거에요-"
당황해서 살짝 황민현 쪽으로 고개를 틀자, 곧장이라도 황민현의 입술이 내 볼에 닿을 것만 같은 자세가 되었다. 당황해 표정관리가 안되는 나와 달리, 황민현은 태연했다.
포즈를 살짝 고쳐잡은 황민현은, 눈을 내리깔아 나를 바라보고 능글맞게 웃으며 한 번 더 내 귀에 속삭였다.
"이거 나랑 찍길 잘했다- 그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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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글잡은 처음이라...ㅎㅎ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어요ㅠㅠ
사실 아주 예전에 써놨던 글인데, 오랜만에 다시 읽으려니 부족한 부분이 많아 올려도 되나 싶어요...ㅠㅠ
혹시 문제 있다면 알려주시고, 조언도 마구마구 해주세욥ㅎㅎ
(1화니까 이렇게 구독료 설정 안하는거.. 맞죠...?ㅎㅎ...............(소심))
셀럽 다음 편이 있긴 한데 많이 부족한지라...ㅎㅎ 가져올진 모르겠어요!
참, 독자님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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