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Hanako Oku - 변하지않는것
내 나이 19살, 내 남편 전정국
W. 달감
29
"정국아 바다야!!!"
"어린애도 아니고"
파랗게 펼쳐진 바다가 눈에 들어오자 두근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하얀색 모래바닥을 밟자마자 신이나서 동동거렸더니
전정국이 어린애같다고 핀잔을 주면서도 예쁘게 웃어보였다.
문득 그 미소가 참 이 바다와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몇발자국 더 뒤로 물러나서 전정국과 바다를 함께 눈에 담아보았다.
전정국, 너는 참 바다와 어울리는 사람이었구나.
"우와 정국아 너 바다랑 있으니깐 너무 예뻐. 이건 찍어야해."
내가 급한 걸음으로 다가가 전정국이 메고 있는 가방을 열어 카메라를 꺼냈다.
카메라에 전정국과 바다를 함께 담아보았다.
전정국은 카메라가 어색하다며 가만히 서있기만 했지만, 바다와 전정국. 그것만으로 이미 사진은 작품이었다.
내가 열정을 담아 작품을 만들고 있는데, 전정국이 사진기를 뺐어들었다.
그리고는 나를 향해 카메라를 들어보이길래 나는 열심히 여러 포즈를 지어보였다.
전정국은 사진작가 마냥 정말 열심히 사진을 찍었고, 나중에는 포즈까지 요구했다.
그 모습이 내가 처음에 전정국을 열심히 찍어대던 모습과 똑같다는 생각이들었다.
좋아하는 사람의 모습을 카메라에 마음껏 담아두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똑같은가보다.
"이제 같이 찍자! 정국아 하트하자 하트!"
"유치하게 무슨 하트야?"
"쳇 그럼 귀여운 토끼포즈??"
"그것도 유치해. 그냥 가만히 찍어."
포즈짓는게 어색한지 나의 요구를 거절하는 전정국에 나는 기분이 상해 입을 삐쭉 내밀었다.
전정국은 그런 내 입을 보며 '삐돌이' 하곤 피식 웃더니 삼각대를 설치해 타이머를 맞추었다.
예쁘게 찰랑거리는 파도 앞에 우리가 나란히 섰고, 난 기분이 상했지만 사진을 찍기 위해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
오, 사, 삼, 이, 일.
카메라의 셔터가 반짝거릴 때 전정국이 날 잡아당긴 후 손으로 내 얼굴을 감싸 입술을 맞추었다.
나는 깜짝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전정국을 바라보았다.
"이 정도 포즈면 마음에 들지?"
5초전까지 삐져있었으면서 전정국 뽀뽀 한방에 마음이 사르르 녹아버리다니
내가 생각해도 너무 단순하지만 그래도 전정국이 좋은건 어쩔 수 없나보다.
나는 삐쭉 나왔던 입술을 풀어 베시시 웃어보이곤 바로 카메라로 달려갔다.
사진 속 우리는
파란 하늘 아래 투명한 바다를 뒤에 두고 하얀 백사장 위에서 입을 맞추고 있었다.
우리 둘이 찍은 사진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이다.
나는 이 사진을 크게 인화해서 반드시 우리 신혼집에 붙여놓으리라고 다짐했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디카를 집어넣고,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전정국을 감싸안고 팔을 멀리 뻗어 카메라 버튼을 꾹 눌렀다.
곧 나와 전정국의 얼굴이 꽉 찬 사진이 한 장 나왔고, 나는 팬을 꺼내들어 사진 뒤에 적었다.
[ 20**년 12월 정국이랑 일본 오키나와 ♡ ]
여기는 일본 오키나와!
바다가 보고싶다는 나의 바램에 따라 우리는 오키나와로 왔다.
전정국은 기왕가는거 더 멀리 더 좋은 곳으로 가기를 바랬지만,
결혼식을 서둘러야하는 상황이 되어버려서 겨우 우리에게 허락된 곳이 가까운 일본이었다.
결혼식을 준비하느라 매우 바빠질 것과,
결혼식 후에 성인이 되면 회사일을 본격적으로 배우느라 더 바빠질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전정국은 그 전에 신혼여행을 다녀오게 해달라고 양가 부모님께 부탁했고 허락을 받아냈다.
비록 급하게 받아낸 허락이라 2박 3일이라는 짧은 여행이 되어버렸지만,
여기가 어디이든 얼마간의 시간이든
어쨌든 우리가 이렇게 함께 여행을 왔다는 것 자체가 나한테는 너무나 의미있는 일이었다.
"회사에서 전화왔다. 잠깐만 걷고 있어."
"응!"
우리 상황을 회사에서 계속 확인했기 때문에 여행을 와서도 회사와의 연락이 잦았다.
귀찮기는 했지만 여행을 허락해줬으니 어느정도 감안해야할 일이었다.
나는 홀로 천천히 걸으며 풍경을 눈에 담아보았다.
파란 바다 위에 파란 하늘이 내 마음을 파랗게 물들였다.
내게 불어오는 이 찬 바람이 눈에 보인다면 파란색일거야.
기분좋은 파란색을 느끼며 기분좋은 미소를 띄울 때
내 눈에 지금 이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검정색이 들어왔다.
검은색 정장을 빼입곤 담배에 불을 붙이는 남자.
이 예쁜 파란 풍경과는 참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 사람이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 게 잘못은 아니지만,
완벽한 퍼즐에 맞지 않는 한 조각을 본 듯한 느낌에
나는 나도 모르게 얼굴을 살짝 찌푸리며 한발자국씩 나아갔다.
유감스럽게도 지금 내 시야엔 이 검은 사람과 나밖에 없었고,
괜한 불길한 느낌에 나는 가디건을 잡아당기며 그 사람 옆을 지나쳤다.
내 발걸음이 그 사람 뒤를 지나고 있을 때
그 사람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고, 서로의 두 눈이 마주쳤다.
눈조차도 검은 사람.
참 바다와 안어울리는 사람이야.
"기분 나빠"
"..."
"그렇게 인상쓰고 쳐다보면."
내가 화들짝 놀란 건
오키나와 해변 위에서 들려온 한국말 때문이 아니라
목소리가 품고있는 그 사람의 검은 분위기 때문이었다.
----
"왜 그렇게 허겁지겁와?"
"정국아, 나 이상한 사람봤어"
"응?"
"검은 양복을 입은 한국인데... 왜 여기 한국인이 있는거지?"
"관광객이겠지. 여기 한국인많아."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허겁지겁 전정국이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뒤를 돌아 그 사람이 있는 자리를 바라보았지만, 그 사람은 사라져있었다.
전정국 말에 내가 괜히 처음보는 사람을 마음대로 오해해버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스스로도 괜히 너무 예민하게 군 것 같아서 그 사람에 대해 그만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나쁜 기분을 훌훌 털어버리고 전정국의 손을 꼭 잡았다.
---
가장 번화한 거리인 국제거리에서 시간을 보내다보니 어느덧 해가 저물었다.
선물도 사고, 밥도 먹고, 디저트도 먹고, 그 와중에 사진도 왕창 찍었다.
정신없이 바쁘게 지낸 하루였지만 매 순간순간이 즐겁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호텔로 돌아와 하루종일 열심히 돌아다니느라 생긴 피로를 덜기 위해 온천으로 향했다.
우리는 온천용 유카타로 갈아입고 야외온천으로 나갔다.
밤 하늘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에 살짝 가려져있었지만, 다행히 반짝거리는 별은 잘보였다.
온천에 몸을 담그자 순식간에 뜨거운 물이 내 몸을 감싸며 쌓여있던 피로를 치유해주는 듯 했다.
물 밖으로는 찬 새벽공기가, 물 안으로는 뜨거운 물의 온도가 내 피부에 닿았지만 그 차이가 최고의 상태를 만들어냈다.
"사람이 아무도 없네?"
"여기 빌렸으니깐."
"진짜?"
"응. 우리 둘밖에 없어."
"그럼 여기 앉아야겠다"
나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전정국 무릎에 앉아 전정국을 꼭 끌어안았다.
맞닿은 살결이 물 때문에 더 찰싹 달라붙는 느낌이들었다.
물과 섞인 살의 촉감이 부드러우면서도 야시시한 느낌이 들어서 난 얼굴을 붉혔다.
"왜 너가 앉아놓고 너 혼자 얼굴이 빨개지는거야?"
"여기가 너무 더워서 그런거야!"
"그랬구나~"
전정국이 안믿는다는 듯 웃으며 말하자 나는 전정국을 장난스럽게 째려보고 내려와앉으려고했다.
그러자 전정국이 내가 내려가지 못하게 내 허리를 감싸안았다.
그 때문에 나는 전정국에게 더 깊이 와락 안겨버렸고, 내 얼굴은 더 붉어졌다.
"내려가라곤 안했어."
"..."
"그거 알아?"
"뭘?"
"너랑 여행와서 정말 행복해."
전정국의 행복하다는 말이 마치 고백같이 들려서 심장이 두근거렸다.
진심이 한껏 묻어난 전정국의 행복하단 말이 나까지 한껏 행복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 행복함에 미소지으며 전정국 어깨에 얼굴을 묻으며 와락 안겼다.
이 온천의 새벽향기와 전정국의 향기가 한껏 어우러져 예쁜 향이 났다.
그 향에 취해 살짝 몽롱해지며 평생 이 행복한 순간이 영원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 마음을 전정국에게 전달하고 싶어 나는 작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아주 가끔은 문득 무서워.
너가 내 옆에서 사라져버릴까봐.
너가 너무 좋은만큼, 딱 그만큼 무서워."
"..."
"평생 내 옆에 있을거지?"
내 말이 끝나자 전정국은 내가 고개를 들어 전정국을 바라보게 했다.
뜨거운 물 때문에 전정국의 볼이 붉어져있었지만, 그 위 눈동자는 언제나처럼 반짝거렸다.
그 눈동자가 나에게 다가왔고, 전정국은 대답대신 내 입술에 입맞추었다.
무섭다고 어리광 부렸던 나를 달래주 듯 전정국은 어느 때보다 부드럽게 내 입술을 다루었다.
그 입술의 움직임이 평생 내 옆에 있겠다고, 약속한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그 순간 전정국을 향한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나 커져서 나도 모르게 눈에 눈물이 고여갔다.
행복해서 눈물이 나는게 이런건가보다.
행복하다는 말 말고는 지금 이 순간을 표현할 다른 말이 없다.
띠리리리리- 띠리리리리리-
그 때, 야속한 전화가 저 멀리서 울려왔다.
밖에 탈의실에 놓여있는 전정국의 전화였다.
회사에서 전화가 오면 반드시 받아야했기에 우리는 입술을 떼어야했다.
내가 아쉽다는 듯 바라보자 전정국은 '금방 올게' 하며 쪽- 하고 뽀뽀해주었다.
나는 그 뽀뽀에 미소 지어보였고, 전정국은 전화를 받으러 온천을 빠져나갔다.
전정국이 나가고 나는 물의 따듯한 온도를 느끼기 위해 눈을 감았다.
온 몸이 따듯함으로 감싸져 나를 편안하게 만들었다.
그 편안함에 취해서 숨을 들이 마시니 밤 공기가 몸 안까지 정화해주는 것같았다.
이래서 일본 온천이 좋다는 거구나, 하고 나도 모르게 푸근한 미소를 지어버렸다.
그 때 누군가가 내 맞은 편에 몸을 담갔다.
전정국이라면 내 옆에 앉았을텐데, 누가 들어온걸까?
하고 눈을 뜨고 마주한 그 사람은 순식간에 날 숨막히게 만들었다.
"그렇게 쳐다보면 기분나쁘다고 말했을텐데?"
남자의 검은 목소리를 끝으로 나는 온천 위 모락모락 피어나는 연기 속에서 정신을 잃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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