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O/징어] 당신의 바람기를 잠재워 드립니다 * 1
소개팅 중 , 남자는 나에게 직업을 물어왔다.
" 여주씨는 , 직업이 뭐에요? 회사원이라고 하지 않았나? 아아, 아닌가? "
" 끄음, 저는요. "
이, 시발시발시발. 정수정 네 이년. 이 남자는 직업에 전혀 신경 안쓴다며. 뭐야, 만나자마자 직업부터 물어보는 남자잖아.
" 혹시, 여자친구의 직업분야에 대해 신경 많이 쓰시나요? "
" 딱히 많이 쓰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알고 있어야죠. 솔직히 말해서 저는 약간 보수적이라고 해야하나. "
" 아, 그렇다면 죄송합니다. 저 먼저 일어날게요. "
" 네? 잠시만요. 제가 직업 이야기를 꺼내서 그런가요? 그렇다면 죄송해요. 실례였나봅니다. "
" 아니요, 괜찮아요. 이만 가볼게요. "
사실, 내 직업은 남에게 밝혀지면 위험하기 때문에 대충 다른 직업으로 얼버무리려고 했는데. 오늘은 이 사람의 매너가 영 아니였기 때문에 포기했다.
당황스러움 + 아쉬움이 섞인 남자의 표정이 창밖으로 비춰보인다. 힐끔 보다가 눈이 마주칠 것 같아서 대충대충 옆을 보고 걷다가.
" 으앗! "
미친, 빙판길에 뇌진탕사고 당할 뻔 했네. 내가 얼마나 귀한 머리를 가졌는데. 응? 근데 원래 넘어지면 엉덩이가 매우 아프다던가, 아프다던가. 아프다던가 하지 않나요.
무엇 때문에 내 엉덩이가 이리도 폭신폭신 말랑말랑한가. 했더니
" 괜찮으세요? "
헉, 세상에. 겁나 훈남이 나를 잡아주고 있었다.
" 네? 네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
" 괜찮으면 일어나시는 게 어때요. "
" 아, 맞다. "
뭐야, 잘생겼는데 싸가지가 없네. 방금 넘어질 뻔한 사람한테 저렇게 단호하게. 아아, 현기증.
" 안 괜찮으신거 같은데. "
맞아, 그 쪽이 잘생겨서 현기증 나잖아.
라고 말하면 분명 날 미친 여자 취급하겠지 뭘.
"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
" 네, 수고하세요. "
" 아, 근데 저기요. 제가 원래 마음에 드는 사람 보면 그냥 못 지나치거든요. "
" 그래 보여요. "
" 네? 뭐라ㄱ, 아니. 그전에 나는 그 쪽이 마음에 들었으니까, 연락주세요. "
내가 일하는 사무소의 명함을 건네자 그 남자는 끄덕거리며 ' 알았어요. ' 하며 잘가라는 의미로 손을 흔든다.
덩달아 멀어지는 남자를 향해 빙빙 격하게 손을 흔들어 준다.
뭐야, 괜찮은 남자라더니. 소개팅 완전 망했네. 그래도 이게 어디야, 소개팅 갔다오는 길에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났으니까 괜찮아.
나 자신을 위로하고 또 위로하며 천천히 (사실 땅이 꽁꽁 얼어붙어서 아까처럼 넘어질까봐) 사무실로 걸음을 뗀다.
" 아우, 사장님. 저 문옆에 저 눈사람 인형좀 치우면 안돼요? "
" 왜에, 마음에 드는데. "
저어기, 창가 자리에 누워 광합성을 하고 있는 저 사람은 우리 회사의 사장. 김종대.
무슨 남자가 나보다 더 소녀적인 것 같단 말이야.
저번에도 갑자기 저 환영하는 커어다란 눈사람 모형을 사무실 문옆에 가져오는 바람에 당황스러웠지.
지금도 봐, 사장이란 작자가 창틀에 누워서 햇빛을 쬐는 게 말이나 되나. 허허.
이젠 익숙해져서 그러려니하고 내 자리에 앉는데, 노트북 위의 포스트잇에 6시, 세모레스토랑. 이라고 적혀져있었다.
아, 진짜. 귀찮아 죽겠는데 이번 의뢰인은 또 누구냐. 한껏 그르릉 대며 짜증내고 있지만 결국 작전에 투입되면
한없이 직업정신 투철해지는 나란 여자.
" 사장님, 저 작전 투입횟수좀 줄여주세요. 무슨 작전이 있을때마다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으니까, 회사 직원들은 놀기만 하잖아요. "
" 왜에에엥에. 여주씨가 일을 잘하니까 그렇지! "
" 됐어요, 됐어요. 보너스나 더 챙겨주세요. "
더 이상 이 사무실에 있으면 나까지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릴 것 같아 간단히 옷을 입고 작전에 필요한 자료가 들어있는 가방을
들쳐매고 사무실을 나왔다. 아우, 저 인형 진짜. 발로 차버릴까.
작전 투입시간 까지는 아직 3시간이나 남았다. 아까 소개팅 때 그 남자가 매너없이 직업을 묻는 바람에.
점심도 못 먹고 그냥 나와서 지금 허기가 매우 지다. 그렇다고 뭘 좀 맛있는 걸 먹으려고 하면 작전 시간에 늦을까봐 안된다.
1분이라도 늦으면 그 소녀감성 종대사장님이 찡찡 거리실게 분명하니까.
그 찡찡댐을 견디기엔 내가 많이 여린가보오. 후후.
그래서, 결정한 곳은. 세모레스토랑의 맞은 편에 있는 카페. 배를 채우기엔 그렇지만 딱히 주변에 먹을게 없었으므로
생과일 주스나 케잌 정도로 배를 채워 놓으면 되니까. 너무 배부르게 먹으면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먹지 못하게 되니까, 이것도 작전에 어긋난다.
여튼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카페로 들어서는데, 메뉴판을 멍하게 보고 있다가 주문을 시키는 도중에 알아챘다.
미친, 여기가 아니잖아.
분명 아까까지 카페 앞 이었던 것 같은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보니 서점에 들어와버렸다. 아니, 나는 왜 눈치채지 못했는가.
하얀것은 배경이요 검은 것은 글씨로다. 하는 책으로 도배된 이 곳을. 으아아.
벌써 직원은 나를 ' 이 여자는 미쳤다. ' 하는 눈빛으로 스캔하고 있다. 나 이상한 사람 아닌데.
" 저, 저기. 죄송해요. 여러 생각을 하다보니까 카페 인줄 알고 …. "
" 하하, 그럴수도 있죠. 하지만 카페랑은 너무 다르게 생겼는데요? "
남자는 호탕하게 웃으며 나에게 책 한권을 포장해 준다.
" 어, 저 책 주문한적 없는데. 아니, 제가 무의식중에 구매한다고 했나요? "
" 아뇨, 그냥 드리고 싶어서요. 시간 날때 한번 읽어보세요. "
" 아, 감사합니다! "
일단 무료로 주는거라니까, 받아서 나쁠게 없지. 꾸벅 고개로 인사를 하고 난뒤 나오니
눈이 오고 있다. 아, 우산 없는데. 하긴 눈을 맞는것도 낭만스러움에 꽤 포인트를 얻겠구나.
종대 사장님은 어째. 광합성 한창중인데 눈 온다고 욕하지 않으시려나.
밖을 쳐다보며 소리치는 사장님의 모습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난다.
아, 근데. 이 책 뭐지?
아까 계획한대로 카페에 들어가 주문을 한뒤 자리에 앉아 책을 꺼내보니 표지에는
' 그대를 사랑하는 100가지 이유 '
라고 적혀져있다. 이거 잘보니 허접하게 직접 만든 핸드메이드 북이네. 그 남자가 만든건가?
안을 한장한장 펴보니 1. 그대는 웃음이 매력적이에요. 등등
오글거리는 별 시답지않은 멘트들이 줄을 잇는다. 56번째를 볼때 쯔음 너무 지루해져서 책을 닫아버렸다.
이 사람, 최고다. 남을 잠재우는데 최고의 능력이 있어.
이런 진부한 방법으로 여자를 꼬시는 남자도 아직 있구나.
아직 세상은 순수하네 뭐. 책을 대충 가방에 넣어놓고 시계를 확인하니 벌써 5시 반이 지나가고 있다. 어, 벌써 시간이 이러네.
아니 무슨 56번째를 읽는데 2시간 30분이 걸리는 책이 어딨나.
일찍 가봤자 그 레스토랑, 분위기가 장난 아니기 때문에 위압감만 느껴지므로 최대한 시간에 맞게 들어가야한다.
카페에서 더 있다가는 외로운 솔로라는 도장이 찍힐 것 같았으므로 일단은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눈은 그 새 그쳤네. 카페에서 나와 주위를 둘러보니 아까 그 남자가 있던 서점이 생각이 나
남자를 골려줄까? 하는 생각으로 다시 서점으로 들어갔다.
근데, 그 남자는 온데 간데 없고 책을 사러온 손님들과 평범하게 생긴 여자 직원밖에 없었다.
순간 두리번 거리다가 더 있으면 여자 직원이 다가와 ' 찾으시는게 있으세요? ' 라고 물어볼까봐 관뒀다.
뭐지, 아까 그 남자. 알바 시간이 바뀐거겠지?
주변을 정처없이 떠돌다 작전 투입 시간 10분전에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몇 번 와본 곳이지만 작전에는 정말 안맞는 장소라고, 사장님은 이 레스토랑을 굉장히 좋아하신다.
지극한 자기 주관이다. 나는 이 곳에서 작전을 잡지 말아달라고 몇번이나 말했는데. 에라이.
예약석에 자리를 잡아 고상한 척 앉아있어야한다.
아, 지금은 5시 59분 37초. 아직 작전 시간이 아니니까 괜찮아.
38, 39, 40.
" …. "
저 멀리 입구에서 누군가 들어옴을 알리는 자동문 소리가 난다. 드디어 온건가?
처음부터 얼굴을 보면 신비감을 잃게 되므로 주의. 그러므로 난 남자가 나를 확인하러 올 때까지 고고히 와인잔 혹은
작전을 위해 구입한 예산에서 (많이) 벗어나는 시계를 보거나. 혹은 테이블보를 보고 있어야한다.
그런데, 그 남자는 평범한 남자와 달랐다. ' 김여주씨 맞으세요? ' 라고 할 줄 알았는데.
내가 쳐다보고 있는 밑쪽에 무릎을 숙이고 내 얼굴에 눈을 맞춘다.
순간 놀라서 흠칫 했지만, 놀란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 고단수일 수도 있으니까.
" 예쁘네요. "
뭐야, 첫마디가 그거야? 진부하네.
여기서 감사하다고 하면 칭찬을 넙죽 받는 꼴이 되므로 고고한 자태를 유지하며 살짝 입꼬리를 올려 웃은 후 고개를 살짝 숙였다 핀다.
" 뭐 시킬래요. "
" 저는, 아무거나 좋습니다. "
" 말투가 너무 딱딱하시네요. "
평소에 이런 반응은 없었는데, 솔직히 많이 당황스럽다. 뭐라고 반응을 할 지 몰라 약간 놀란 눈으로 남자를 응시했더니,
그 남자는 태연하게 메뉴판을 보며 넘긴다.
" 여주씨는, 뭐 좋아하시려나. "
" 딱히 좋아하는 건 없어요. "
" 스파게티, 좋아하시나? "
" 네, 가리지는 않아요. "
" 가리지는 않는다. "
남자는 내 말을 메아리 치듯이 반복하며 메뉴를 골라냈다.
메뉴가 나올 동안 나는 절대 틈을 보이지 않기 위해 다소곳이 앉아있었다.
" 저 하나 물어봐도 됩니까? "
" 네, 곤란한 질문이 아니라면. "
" 곤란할텐데. "
" 그렇다면 사양할게요. "
뭐지, 이 남자.
" 아뇨, 꼭 물어보고 싶어요. 여주씨는 , 원래 그렇게. "
뭐, 무슨 말을 하려고.
" 도도한 척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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