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이었다. 오랜만. 사 년 정도를 못 보고 지냈던 것 같다. 대학생이 되면서 멀어져서 였을까. 아니, 일방적으로 피했다. 그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내가 없는 너의 모습이 너와 더 어울려. 너도 그렇게 생각했을 거라고 믿었다.
사람은 후회의 동물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가장 후회하고 있는 한 가지.
그래, 고등학생 때 전교 회장을 했던 강지혁의 결혼식이지. 네가 올 것을 예상했어야 됐는데. 그리고 오지 말았어야 했는데. 저 멀리서 네 친구들을 보았을 때, 그 때 깨달았다. 내 눈동자는 바쁘게 움직였고 그 무리에서 네가 없는 걸 확인하자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잘 지냈지?”
“그럼.”
턱- 다시 한 번 숨이 멎는 것 같았다. 혹시나 네가 안 오지 않았을까 했지만,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오는 네 목소리에 뇌의 사고회로가 온통 정지된 느낌이었다. 친구들과 안부 인사를 나누는 너를 보지 않으려 시선을 억지로 폰에 고정시켰다.
아 얘는 왜 이렇게 안 와. 10분 전에 5분이면 도착한다던 애꿎은 연주만 원망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바람 빠진 소리를 내며 웃었다.
이미 다 지난 일인데 지금 뭐 하는 거야.
신경 쓸 필요 없잖아. 나는 더더욱.
*
‘미안한데 나 오늘 외박 한다고 전해줘’ 라는 문자에 ‘ㅇㅋ’ 하는 룸메의 간결한 답장이 온 것을 확인한 후에야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침대에 엎어지듯 누웠다. 다시 든 핸드폰에 ‘PM 8:37' 이라는 숫자를 본 후 눈을 감았다.
악질로 끝난 사이가 아닌, 정말 고심해서 쓴 문장에 가볍게 마침표를 찍듯 끝났다. 봄에 꽃이 피는 것처럼, 가을에 단풍이 드는 것처럼. 그렇게 끝났다.
사 년 동안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래도 잘하고 있었는데…….
할 수 있어. 잊을 수 있어. 아니, 잊는다는 표현이 맞긴 한가. 나는 너를 그리워하나. 아니, 아니야.
혼자 별 생각을 다 하다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사라져. 사라지라고. 결국 사라지지 못한 기억에, 그 때를 기억했다.
너와의 여름, 그리고 가을 겨울을.
*
햇빛은 직선으로 우리에게 내리 꽂혔고, 에어컨을 튼 학교에 있었음에도 그건 실내나 해당되는 얘기지 밖에서 쓰레기장 까지 쓰레기를 옮기는 내게는 해당되지 않는 얘기였다.
고3, 1차고사가 끝나고 내게 놀러 가자는 김동영의 제안을 거절하자 그는 저 혼자라도 가겠다며 ‘효도방문 찬스’를 쓰고 일본으로 날았다. 그런 그의 청소는 누가 대타를 뛰었느냐, 김동영이랑 제일 친한 나였다.
“진짜 오면 죽여 버릴 거야.”
이 새끼 노린 게 틀림없었다. 봄과 여름의 경계에 선 더운 날 나는 매 청소시간마다 김동영이 해야 할 종이류 쓰레기통 옮기기를 해야 했고, 늘 진땀을 빼야 했다.
그 날도, 눈앞에 놓인 어마어마한 종이의 양에, 한숨을 내쉬며 쓰레기통을 들었다. 그리고는 내 앞에 가는 제 몸만큼 큰 일반쓰레기통을 비우러 가는 반장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저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야.
그 날은 바람이 세게 부는 날이었다. 초여름의 바람이란 모든 학생들에게 사막 어딘가의 오아시스 같은 느낌이었다.
다른 날과 다르게 시원한 날씨에, 괜히 기분이 좋아 빨리 끝내고 쉬자는 마음으로 쓰레기장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왜 나는 늘 한 발자국 늦게 깨닫는 걸까. 종이의 양이 조금 줄어 있었다. 아마 바람 때문에 얼굴을 덮는 머리를 정리하며 몇 장 날린 것 같은데.
쓰레기통을 바닥에 내려놓고는 한숨을 쉬었다. 아 이거 또 언제 다 주우러 가. 그렇게 뒤를 도는 순간이었다.
“여기요.”
웬 남학생이 나를 보며 종이를 건네고 있었다. 그런 그를 가만히 쳐다보자,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누나가 흘린 종이요.”
아, 그제야 나는 그의 손에 들린 종이를 받았다. 그리고 “고마워.”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삼 일 동안 내 뒤에서 내가 흘리는 종이들을 받아 내게 건넸고, 그제야 그의 이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동 혁’
그의 왼쪽 가슴팍에 새겨진 이름이었다. 그게, 너와 나의 첫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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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 |
안녕하세요! 작가 니퍼입니다! 빨리 왔죠.....?...? (양심 리스) 제가 전부터 말씀드린 차기작..!!! 어, 올릴까 말까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던 글입니다! 사실상 아주 조금씩 언급이 됐던 제 차기작(?) 이고, 제가 굉장히 애정담아 쓴 애몽 후 글이라 잘 써야 한다는 부담이 좀 있더라구욧....T^T 다음 편도 이번 편에 이어서 여주와 동혁이의 과거로 갈 예정입니다! 우리 다음 화 때도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