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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진이 힘없이 용상에 앉았다. 석진의 앞으로 대신들이 줄지어 몸을 숙였다. 오늘의 정사는 얼마 전 났던 소문을 황제에게 추궁하기 위해 그와 관련된 말이 거론될 것일 만큼 남준이 참여했다. 남준이 내관의 옆에 서서 대신들을 바라봤다. 한 자리가 비어있었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예, 폐하.”



 석진이 억지로 입을 떼었고, 대신들은 입을 모아 대답했다. 폐하의 질문이니 잘 지내지 못했대도 잘 지냈다고 해야 하는 것이 실상이긴 하였다. 석진이 풀린 눈으로 상소에 손을 뻗었다. 나랏일도 나랏일이었으나 요즘 들어 동생 걱정에 잠을 잘 못 이뤘다. 석진이 상소를 느리게 폈다. 교정전 내부는 사람이 가득 차있었음에도 말 한 마디 없이 고요했다.



 “…허.”



 석진이 상소를 읽어 내려가다 헛웃음을 치며 상소를 던져두었다. 황녀의 행방을 물으며 만 백성에게 이유를 말해달라고 요구했다. 구불구불한 글씨가 농민임을 짐작케 했다. 분명 상소를 쓰겠다고 대필을 구하다 실패하여 따라 쓴 것이겠지. 황녀는 백성에게 전혀 해가 될 요소가 없음에도 이상하게 난리들이었다. 석진이 이마를 짚었다. 대신 중 한 명이 눈치를 보다 입을 열었다.



 “폐하.”



 석진이 손을 떼어내고 그를 바라봤다. 눈빛이 매서워졌다. 그들은 그것에 개의치 않았다.



 “수학관 장이 보이지 않사옵니다.”



 의도는 황제를 추궁하고 힐난하는 것이었으나 석진은 표정변화 없이 무덤덤한 태도로 일관했다.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그의 딸인 수아가 황녀의 행방을 밝힌 것이 자명해 연좌제에 의해 파면됐으니 정사에 참석하지 못한 것일 뿐.



 “파면시켰습니다.”

 “…….”

 “이의 있습니까?”



 이의가 있으면 상소를 올리시지요. 그들은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들이 황제와 함께 국가를 다스리는 것과 다름없었으나 황제의 권력은 절대적이었다. 석진이 황제가 되었을 때부터 그러했다. 날카로운 면모를 가지고 정치에 참여하려드니 대신들로선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



 “황녀가 있다는 건 진정이옵니까.”



 직설적인 어투였다. 석진의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며칠 간 황녀인 동생을 찾으러 한 번도 간 적이 없건만, 곳곳에서 제 동생에 대한 이야기를 자신에게 물었다. 석진이 미간을 구겼다. 얼굴이 조금 일그러졌다.



 “그걸 왜 물으십니까?”

 “진정이라면 만 백성을 속인 것일뿐더러 민국에게도 불충이 아닐까 사료되옵니다.”

 “…민국에게 불충이라.”



 과연 다들 민국의 사대국가인 입장이 행복한가. 석진이 작게 웃으며 생각했다.



 “진실을 밝혀주시옵소서, 폐하!”

 “밝혀주시옵소서, 폐하!”



 한 명이 소리를 내자 모든 대신이 입을 모아 소리쳤다. 고요한 교정전이 잠시나마 소란스러워졌다. 내관과 함께 서있던 남준이 얼굴을 작게 구겼다. 황녀가 있어봤자 저 늙은이들한텐 황족의 직계 혈통이 하나 더 느는 것뿐일 텐데 뭐가 문제라고 이렇게 성화들인지.



 “진실은 모두가 알고 있지 않습니까.”

 “…….”

 “황녀는, 선(先)황후께서 돌아가셨을 때 죽었습니다.”

 “…폐하. 모든 궁을 대신들에게 개방해 주시옵소서.”

 “황녀는 죽었다고 방금 일렀는데, 왜 그래야 합니까?”



 옛말에 아니 땐 굴뚝에는 연기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것이 아니 땐 굴뚝이었는지 아닌지는 확인해보면 알 터. 소문이 사실이라면 거짓을 고한 것을 빌미 삼아 황제의 지위를 조금이라도 실추시킬 작정이었다. 석진은 부러 캐묻지 않았다. 진실을 말하지 않는 선에서 선을 지켰을 뿐. 과한 반응은 오해를 불러일으킴을 알고 있는 탓이었다. 말을 꺼낸 대신 한 명이 석진의 질문에 하얗게 샌 눈썹을 찡긋거렸다.



 “거짓은 악행(惡行)으로 간주될뿐더러, 진실을 탐하는 학인(學人)의 자세란 이러한 것이 아니겠사옵니까.”

 “그대를 학인이라고 치기엔…, 많이 늙었습니다.”

 “…….”

 “또한, 제가 그 악행을 저질렀으면 이 자리에서 내치시렵니까?”



 모두가 입을 꾹 다물었다. 한 마디도 지는 법이 없는 황제였다. 석진의 말을 자꾸 물고 늘어지니 조금 예민해지는 탓도 있었다.



 “더 할 얘기도 없는 것 같으니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

 “이렇게 죽은 아이를 가지고 늘어지는 게 보기 좋지도 않고요.”



 석진이 용상에서 일어나 대신들에게서 멀어졌다. 내관과 남준이 그런 석진을 따랐다. 살아있어 더 애틋한 동생을 ‘죽은 아이’로 칭해야만 하는 것. 그것이 못내 석진의 마음에 걸렸다.








[방탄소년단/김태형] 황녀(皇女) 17 | 인스티즈


황녀(皇女)


十七






 한 사내가 청색 술잔에 조심스럽게 술을 따랐다. 마주앉은 남자의 표정이 근엄해서, 몸이 더욱 위축되는 것 같았다. 사내가 사람 좋게 웃었다. 웃어야 할 상황이므로 웃는 것이 아닌, 비위를 맞추기 위해 웃는 것에 가까웠다. 얼마 전 말이 많은 죄인 구설(口舌)에 해당되어 수학관 장의 자리에서 파면당한 윤 씨였다.



 “오늘 파면 당했다는 이야길 듣고 많이 놀랐습니다.”

 “그리 되었습니다. 허나, 죄가 있는 것이 아니라……,”

 “대충 알고 있습니다.”



 엄밀히 따지자면 구설에 해당하는 죄인은 제 딸인 수아였다. 연좌제에 의한 파면일 뿐. 윤 씨는 그 사실을 마주앉은 남자에게 인식시켜 주기 위해 꽤나 노력했다. 윤 씨의 앞에 앉은 남자가 조용히 술잔을 꺾었다. 태형의 아비이자 사법부 대사인 김 씨였다.



 “…헌데,”

 “…….”

 “제 딸애와 아드님의 혼사는…,”



 김 씨가 술잔을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말을 멎었지만 무슨 말을 할 것인지 알았다. 얼마 전, 제 아들인 태형이 혼인 서약서에 지장을 찍으라고 궐에 보내놨더니 그러지 못하고 돌아왔다고 전했다. 김 씨가 잠시 생각에 빠졌다. 일전과 달리 퍽 기가 꺾인 윤 씨의 모습이 처량했다.



 “없던 걸로 하지요.”

 “…사돈!”

 “…누가 사돈이랍니까?”



 윤 씨가 입을 다물고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김 씨를 바라봤다. 김 씨가 묘하게 웃으며 제 잔에 술을 따라 마셨다. 애써 술에 맞는 요깃거리를 내왔으나 손도 대지 않은 채였다.



 “고위 인사와의 혼담이 아니었습니까.”

 “…….”

 “이제 인사가 아니니 혼담을 나눌 필요도 없어지지 않았습니까.”



 윤 씨가 큼-하고 목을 가다듬었다. 혼사를 거절할 명목은 반박할 이유가 없이 명확했다. 김 씨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또, 죄명이 뭐였지요.



 “죄명이 구설 아닙니까.”

 “…….”

 “죄인의 지아비로는 과거는 치루지 못할뿐더러, 나중에 혼인을 하면 제 아들이 구설에 올라 앞길이 막히게 될까 걱정입니다.”



 사대부이기는 하나, 저는 황제의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김 씨가 대답을 듣지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도포가 김 씨의 움직임을 따라 흩날렸다. 김 씨가 나간 문 틈새로 불어오는 바람이 시렸다. 윤 씨가 앞에 놓인 상을 엎고 이마를 짚었다. 생각에 빠지려는 찰나였다.



 “윤 가(家) 수아!”



 제 딸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집 안에 울려 퍼졌다. 윤 씨가 급하게 나와 대문으로 향했다. 그의 집에 거하는 머슴이 대문을 조금 열었다. 조그만 틈 사이로 궐의 사람임을 증명하는 복색이 눈에 띄었다.



 “윤 가(家) 수아는 황명을 받들라!”



 구설의 죄로 방에서 자숙하던 수아가 제 이름을 듣고 고개를 내밀었다. 궐에서 온 황제의 전갈이었다.











[방탄소년단/김태형] 황녀(皇女) 17 | 인스티즈



 “여기가 무슨 보호소인 줄 알아?”



 윤기가 장난스럽게, 혹은 짜증스럽게 말했다. 윤기의 방에 제 방처럼 누워있는 태형을 두고 한 소리였다. 태형의 표정이 이상할 만큼 공허해서 쫓아내지도 못했다. 이러던 애가 아니었는데. 윤기의 말에 태형은 구태여 대답을 하지 않았다.



 “놀고 싶으면 기생집엘 가.”

 “…….”

 “왜 갈 데가 없으면 다 나한테 와?”

 “나 말고 누가 또 왔어?”

 “……어?”



 태형이 물었고, 윤기는 당황한 기색을 띄었다. 아니, 근데 왜 여태 대답도 없다가 거기에만 대답하는 건데? 윤기는 반문하지 못하고 손사래를 쳤다. 태형은 윤기를 한 번 바라봤다가 다시 텅 빈 천장을 응시했다.



 “아, 아냐. 아무도 안 왔어.”

 “…그럼 여기 계속 있는다?”



 윤기는 주변의 성화가 못마땅했다. 나이가 차고 있는데 여태 급제도, 혼인도 하려고 들지 않는다며 윤기에게 괜한 오지랖을 부렸다. 혼인이야 제 방에 누워있는 저 녀석 때문에 늦어지고 있는 거고, 급제야 내가 하고 싫어서 안 하는가. 한 번 떨어졌는데 어떡하라고. 그리 여기려 했으나 그들은 점점 윤기를 귀찮게 굴었다. 그래서 과거 공부에 다시금 몰두해볼까 했더니 이젠 태형이 제 방을 차지하고 누웠다. 친한 동생이라고 쳐도 이전 같으면 벌써 쫓아냈겠지만 이상하게 태형의 표정이 좋지 않아서 그러지 못했다. 윤기가 한숨을 내쉬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태형은 그런 무언의 대답을 보긴 한 건지 천장에서 눈을 뗄 줄을 몰랐다.



 “…형.”



 태형이 나지막이 윤기를 불렀다. 윤기는 책장을 넘기며 무심하게 대답했다. 왜.



 “나 형 말대로 미안하다고 했다.”

 “…….”

 “…좋아한다고도 했어.”



 성령제 때 은행나무 밑에서 공주에게 우발적으로 입을 맞추고 한 번 찾아온 뒤론 처음 찾는 윤기의 집이었다. 윤기는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대답했다. 응. 태형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근데 이제 못 만나.”

 “…….”

 “…못 찾아 가겠어.”



 태형이 한탄하듯 중얼거렸다. 내가 처음 본 그 날 거기 있지만 않았으면 공주는 알려지지 않았을까. 공주를 보고도 연민을 가지지 않고 혼인에만 몰두했다면 공주는 도성 땅 누군가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았을까. 퍼지는 소문과 이어지는 후회는 막을 길이 없었다. 이미 벌어진 일은 되돌릴 수 없지만,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공주를 만나기 전으로 돌리고 싶었다.



 “왜?”



 윤기가 방에 누워있는 태형을 흘끔 쳐다보며 물었다. 태형의 머릿속을 가득 메운 대상을 온전히 ‘수아’로만 알고 있는 듯한 질문이었다.



 “…잘못 했어, 걔한테.”

 “또?”



 일전 찾아와 큰 사고를 쳤다며 호들갑이던 태형을 떠올렸다. 근데 이제 와서 그러면 뭐 새로울 줄 아나. 윤기는 태형에게 큰 관심을 쏟지 않았다.



 “또 미안하다고 해.”

 “…….”

 “김태형 많이 변했네. 잘못했다고 빼기나 하고.”



 수학관 다닐 때 박사님 방 들어가서 빼앗긴 책 훔치고 왔던 게 누구였더라. 윤기가 조그맣게 웃었다. 얼마 전 태형의 결혼 상대자 일가가 파면 혹은 자중한다는 소리를 듣긴 했으나 태형이 그런 것에 연연할 인사가 아닌 것쯤은 잘 알았다. 자중 정도의 처벌이면 결혼해서 조용히 살면 되지.



 “잘못했다고 덜컥 연 끊는 것도 잘못이야. 상대방 생각은 해야지.”

 “…….”

 “서로 힘들어지기 전에 용서받으러 가.”



 윤기가 말을 멈추곤 책의 검은 글자들에 집중했다. 태형이 몸을 일으켜 윤기를 바라봤다.


 공주의 궐에서 관군을 마주하고 돌아선 것이 수십 번이었다. 의미 없이 저잣거리를 걷다 보면 대궐 문 앞에 당도했다. 입궐 허가자에 이름이 지워지지 않아 도화궁 앞까지는 가 봤으나 만나지는 못하고 돌아왔다. 자신 때문에 세상에 알려졌다는 사실을 이겨내지 못할까봐. 그걸 알면 자신 때문에 공연히 힘들어할까봐. 그런데, 그러길 바라며 했던 모든 행동이 결국은 공주를 위한 일이 아니었나. 태형은 아직 너무 미숙하고 서툴렀다.


 태형이 누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윤기는 미동이 없었다. 태형을 보고도 눈짓을 하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형, 나 갈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공주를 만나고 싶었다.


 사실 난, 네가 날 싫어할까봐 많이 겁났어. 그래도 여전히 네가 좋아.


















 시간은 슬픔을 점차 잠식시켜갔고, 눈물은 멎었다. 김태형은 그 이후 한 번도 오지 않았다. 이미 혼인을 해서 잘 살 거라고, 그리 예상만 할 뿐이었다. 오라버니가 그때 김태형의 혼인이 머지않았다고 전했으니.


 해가 져버려 온통 암흑인 연못을 멍하니 바라봤다. 다시금 도화궁 연못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하루의 일과가 됐다. 이전엔 김태형이 언제 올까 그 생각뿐이었는데. 김태형은 지금 새신랑이 되어서 나는 생각할 겨를이 없겠지. 그래서 한 번도 내 눈 앞에 띄지 않는 거겠지.



[방탄소년단/김태형] 황녀(皇女) 17 | 인스티즈

 “…마마, 어디 계십니까!”



 멀찍이서 나를 찾는 불빛 하나가 서성였다. 밤이 깊었으니 방으로 들어가자고 말할 게 뻔해서, 굳이 알은체를 하지 않고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멀리 있던 빛이 여기까지 도달했는지 나를 향해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여기서 뭐하십니까?”

 “…….”



 환한 등이 눈앞까지 들이밀어졌다. 어느새 내 앞까지 온 정국이가 몸을 숙여 바닥에 앉아있는 나와 눈을 맞췄다. 말투에 조금의 안도가 심겼다.



 “밤이 너무 늦었습니다.”

 “…안 들어가.”



 너나 가. 다섯 살짜리 꼬마 아이가 고집을 부리듯 삐딱하게 말했다. 정국이는 다시 걱정을 담은 표정을 보였다. 그걸 무시할 만큼 매정하게 키워지지 않아서, 정국이의 눈을 피해 무릎으로 고개를 파묻었다. 아무리 걱정해도 난 들어가기 싫어.



 “그런 말 안 했습니다.”

 “…….”

 “헌데, 고뿔드시면 누가 책임집니까.”



 고집은 공주 마마가 부리셨는데 저희가 혼나야 해요? 그리 말하며 등을 내려놓고 옆에 털썩 앉았다. 등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은 꼴이 됐다. 차가운 흙바닥에 의해 정국이의 고운 비단이 조금 구겨졌다. 무릎에 파묻은 고개를 들고 입술을 삐죽댔다. 결국 들어가라는 말 맞잖아….



 “난 그런 거 없어.”

 “저번에 물에 빠져서 고뿔 드셨잖아요.”

 “그건 물에 빠져서 그런 거야. 안 빠지면 그런 거 없어.”

 “…안 추우십니까?”



 정국이는 김태형이 오지 않은 이후 말수가 조금 늘었다. 어쩌면 그동안 나를 달래는 데에 도가 텄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환한 등불과 밤하늘의 별빛에 의지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눈가가 시큰했다. 하얀 입김을 내며 질문 아닌 질문에 대답했다.



 “하나도 안 추워.”

 “…….”

 “…….”

 “거짓말은 여전히 못하시네요.”



 귓가에 흘러드는 조곤한 목소리에 약간의 웃음이 섞였다. 조금 올라간 입 꼬리를 바라보며 이를 바득 갈았다. 다들 거짓말만 하면 거짓말이래. 괜한 오기 때문에 고집을 조금 더 섞었다.



 “거짓말 아니야.”

 “전 추운데요. 바닥도 차갑고.”

 “넌 추운데 난 안 추워.”

 “그런 게 어딨습니까.”

 “나 추운 거 좋아해!”

 “알겠으니까, 이런 덴 앉지 마세요.”



 별안간 앉은 몸이 붕 떴다 착지했다.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선 정국이가 나를 옮긴 탓이었다. 추위를 막기 위한 비단옷이 나에 의해 바닥에 짓눌렸다. 나 때문에 굳이 이렇게까지 할 건 뭐야. 부러 뾰로통하게 말문을 열었다.



 “이거 비싼 옷인데.”

 “…….”

 “침방에서 일부러 제작해준 건데.”

 “…허면, 공주 마마 옷은 나무에서 열린답니까?”

 “…….”

 “덮을 거라도 들고 오겠습니다.”



 겉옷을 바닥에 던져두어 얇은 차림을 한 정국이가 도화궁으로 난 문을 지났다. 또 다시 고요함이 연못에 찾아들었다. 정국이가 갖다 놓은 등이 있어 조금은 밝아진 채였다. 추위를 이기지 못한 연못은 얼음이 조금 서렸다. 그리고 찾아온 고요는, 다시금 지난 과거를 끌고 왔다.



 ‘너 나보다 어리잖아.’

 ‘그거 핑계 안 되는데. 내 나이 알아요?’

 ‘내가 왜 몰라, 열여덟 공주야.’



 물에 빠진 것도 깨닫지 못하고 그런 대화를 했었지, 조금 언 저 연못 안에서. 그 후엔 도화궁에 들어가서 이야기를 나누고, 고뿔이 들어서 고생하고, 바깥세상까지 구경해 보고. 회상은 잠식된 슬픔을 조금씩 수면 위에 펼쳐 놓았다. 정국이와 대화할 때마다 잠시 잊고 있었던 이름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시린 눈가는 점차 눈물을 만들어냈다.



 ‘왜? 난 너 만나서 재밌는데.’



 이미 혼인을 해서 잘 살 거라고, 새신랑이 되어서 나는 생각할 겨를이 없을 거라고. 그리 생각했고, 잊고자 마음까지 먹었다. 근데…,



 ‘다섯 셀 때까지 나 안 보면,’

 ‘…….’

 ‘또 뽀뽀한다.’



 사실 난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 혼인을 해서 잘 살지도, 새신랑이 되어 행복하지도 않았으면 좋겠어. 어째서 그 상대가 내가 아니냐고, 나 자신을 원망하기까지 했다. 조금씩 눈가에 차오르는 것은 소매를 축축하게 적셨다. 멎은 눈물이 멎지 않고 터졌다.



 “…여기 있을 거 같았어.”

 “…….”

 “나쁜 공주가 이젠 월담까지 하게 만든다.”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에 안착했다. 소리가 난 쪽을 향해 앉은 몸을 돌렸다. 참, 미운 목소리였다. 이제 못 들을 거라고 생각했던, 미운, 그래도 너무 보고 싶었던 목소리. 한 이름으로 가득 채워진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졌다. 도화궁 담을 넘어 땅에 내려온 해맑은 얼굴에 웃음이 걸렸다.



 “보고 싶었어.”



 김태형이었다.














[방탄소년단/김태형] 황녀(皇女) 17 | 인스티즈



 “왜 왔어요?”



 축축해진 소매로 시린 눈가를 벅벅 문지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김태형을 향해 돌아간 몸은 다시 연못을 향한 채였다. 차가운 바닥을 조금이나마 따뜻하게 해준 정국이의 옷을 집어 들어 툭툭 털며 발을 옮겼다. 대답은 처음부터 들을 생각이 없었다. 새신랑이 되어서 다른 여인과 행복할 김태형의 모습을 더 이상 상상하는 게 싫어서.



 “…늦어서 미안.”

 “…얼른 다시 가요.”

 “화났어?”



 터져 나온 울음을 애써 삼켰다.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이라도 하지 않으면 나를 잡고 또 괜한 기대를 심게 하겠지. 고개를 숙이며 연못가를 가로질러 도화궁으로 향했다.



 “공주야, 어디가.”

 “…….”

 “…울었어?”



 그리고 애써 빨리 했던 걸음은 허무하게도 도화궁에 채 닿지도 못한 채 멈췄다. 팔이 김태형에 의해 쉽게도 잡힌 까닭이었다. 손에 든 옷을 꾹 쥐었다. 김태형은 내 팔을 잡고 참 집요하게도 대답을 요구했다.



 “울었어?”

 “…….”

 “누가 울렸어. 내가 울렸어?”

 “……다면서요.”



 슬픔을 힘겹게 잠재우며 말했다. 알아듣지 않길 바랐다.



 “어?”

 “…결혼 한다면서요!”



 김태형과 등진 몸을 돌렸다. 놀란 눈이 조금 커졌다. 참았던 슬픔이 조금씩 새다 터졌다.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울음을 쏟아 냈다. 울음소리에 먹혀들어간 원망의 말은 형태가 온전치 않았다. 손등으로 차디찬 얼굴을 문질렀다. 김태형은 잡은 팔을 놓고선 당황한 기색을 여실히 드러냈다.



 “…공주야.”

 “…그러니까 이제…, 여기 오지 마요.”



 김태형이 몸을 낮추어 나와 눈높이를 같게 했다. 큼직한 손이 얼굴을 감싸던 손바닥을 잡아 떼어냈다. 우는 얼굴이 김태형에게 그대로 드러났다. 큼직하고 따뜻한 손은 볼가를 적신 눈물을 느리게 닦았다. 슬픔에 섞여 헐떡이는 숨을 천천히 들이쉬었다.



 “그것 때문에 울었어?”

 “…….”

 “내가 울렸구나.”



 괜히 팔을 쳐내며 마주 앉은 김태형을 밀어냈다. 내가 좋아하는 김태형이 나를 또 헷갈리게 만든대도, 김태형과 결혼한 새신부가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아무리 도화궁에 얽매여 있다고 한들 나는 누구든 신경도 쓰지 않고 무시할 만큼 뻔뻔하지도, 매정하지도 않았다. 김태형은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내쳐낸 팔을 다시 내 어깨 위로 올렸다.



 “…얼른 가요.”

 “너 우는 거 보고 내가 어떻게 가.”

 “그럼 부인은요!”

 “일단 일어나자, 옷 더러워져.”



 김태형이 몸을 일으키며 내 눈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눈가를 닦아내며 부러 김태형의 손을 잡지 않고 일어섰다. 치맛단과 주저앉는 바람에 바닥에 끌린 정국이의 옷을 손으로 툭툭 털었다. 긴 한숨을 내쉬며 혼란스러운 마음을 다잡았다.



 “그게 걱정이었어?”

 “…….”

 “내가 널 두고 어떻게 혼인을 해.”



 그런 거 안 해. 은은한 미소를 담은 얼굴이 내 어깨를 제 품으로 끌어 당겼다. 따스한 손이 등을 토닥거렸다. 다잡은 마음이 흐트러졌다. 눈물이 마르지 않고 흘렀다. 그리웠던 목소리가 참 따뜻하게도 귓가에 닿았다. 손을 꾹 쥐며 김태형의 어깨를 아프지 않게 쳤다. 참 고요하고 긴 밤이었다.





*        *        *        *


목표 : 개강까지 완결



☞   현국 공주님들 91분♥ ㅎㅁ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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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38.26
1등 처음해봐요♥ 선댓후감상♥♥♥
6년 전
비회원 댓글
널 두고 어떻게 혼인을 해 ㅠㅠㅠㅠㅠㅜ 꺅 ㅠㅠㅠㅠㅠㅠ 좋아유..♥ 개강까지 완결이라니... 전 금공강 할 거라서 5일이 개강인데 5일까지라는 거죠?? 2일 아니죠? ㅠㅠㅠㅠㅠㅜ 황녀 못잃어 ㅠㅠㅠㅠㅠㅠㅜ
6년 전
독자1
먀ㅏ하아아아아 16화가 나왔을때 정주행따다다닥 달렸었는데에ㅔㅠㅠㅠㅠㅠ오늘 딱 게시글 발견하자마자 달랴왔어여ㅠㅠㅠㅠㅠ엉엉 작가님 혹시 지금 암호닉신청 가능할까요?ㅠㅠㅠ[사용불가]로 가능하면 신청하고싶어요!!!!ㅠㅠㅠㅠ 막 이제 폭풍처럼 몰아칠 것 같아서 아직도 걱정이.한ㄱ가득이에오ㅠㅠㅠㅠ
6년 전
선바람
안녕하세요, 독자님! 암호닉은 신청해주신대로 받고 있습니다만 신청해주신 암호닉은 15화에 누군가 신청해주셔서 암호닉 목록에 이미 올려 놨답니다ㅠㅁㅠ 확인해 주시고, 15화 댓글이 독자님이 아니시라면 변경 부탁드려도 될까요:)?
6년 전
독자4
앗 제가 15화에서도 신청했었네여..(헤)(머쓱) 헤헤헿헤헤헤헤 죄송합니아 자까님...♥
6년 전
독자2
순향입니다! 결국 혼사는 깨졌군요... 여주랑 이어졌으면 좋겠는데 과연 공주임을 들키지 않을지 걱정입니다. 이대로 살수도 없을텐데 너무 안타깝구요ㅠㅠㅜ 이번편도 너무 흥미진진했어요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6년 전
독자3
핫초코입니당
오예 결혼안한다~
이미 공주가 살아있다는 것이 퍼졌는데 아닌척 하는 것도 한계인데 어떻게 밝힐것인지도 궁금하굼

6년 전
독자5
호비에요!!!
흐허후ㅠㅜㅜㅠ 태형이가 어떻게 왔는지는 모르지만..ㅜㅠ
여주랑 태형이가 드디어 만났네요ㅜㅠㅠㅜㅠ 여주가 살아있는게 어떻게 밝혀질지 모르겠지만...ㅜㅠ 수아가 이대로 안나오는게 좀 섭섭한거 같아요.. 재미있게 읽고가요 작가님!!

6년 전
독자6
지금까지 정주행 했네요 ㅠㅠㅠ사극물 굉장히 좋아하는데 [모찌민]으로 암호닉 신청 하고 갈께여!!!
6년 전
독자7
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감삼다... 수아가 벌받고 과연 가만히 있을까 싶기도 하고ㅠㅠㅠ 신하들이 점점 기를 쓰고 달려들것 같은데 어쩌죠ㅠㅠㅠ
6년 전
비회원192.210
와 오늘 정주행했습니다.... 이거슨 대작...!! ㅠㅠㅠㅠ 암호닉 [승댕]으로 신청하고싶어요 ㅎㅡㅎ 앞으로 자주뵈요 'ㅁ'♡ 항상 응원합니다 작가님♡♡
6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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