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방탄소년단 - 크리스탈 스노우
내 나이 19살, 내 남편 전정국
W. 달감
마지막 화
뜨핡!!
12월 31일. 올해의 마지막 날. 오후 4시. 나의 결혼식이 열린다.
지금은 오전 10시 결혼식 시작 6시간 전.
이곳은 결혼식이 치러질 호텔의 신부 준비실.
오늘 이 결혼식의 신부인 나는 벽을 붙잡고 이를 악물고 있다.
어머님의 '더 조여!'라는 명령에 줄을 잡아당기는 직원이었고,
허리를 숨 막힐 듯 조여오는 코르셋에 정신은 혼미해진다.
'결혼식을 두 번 치르라고 하면 당장 관을 짜서 들어가야지'
라는 생각을 며칠 동안 계속 해왔고, 결혼식 당일 아침인 지금까지 하고 있다.
원래 결혼식 날 아침엔 설레고, 두근거리고, 싱숭생숭하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 마음 따위는 0.000001 % 도 없었다.
드라마를 보면 결혼식 전날 설레는 마음에 잠 못 들어 아침에 피곤해하던데
나는 결혼식을 위한 살인적인 스케줄로 잠 못 들어 지금 매우 매우 피곤했다.
오늘 난 새벽 5시에 일어나 샵으로 향했다.
무슨 화장과 머리를 5시간 동안 하는 건지, 무슨 나 한 사람 꾸미자고 수십 명의 사람들이 매달리는 건지 참 당황스러웠다.
잠을 못 잔 탓에 볼까지 내려온 다크서클은 완벽한 화장으로 감쪽같이 가려졌다.
어제 하루만 못 잔 거면 그나마 괜찮았을 것이다.
약 2주간 내 침대에서 편히 잔 기억이 전혀 없다.
결혼식이 가까워질수록 일정은 점점 더 바빠지기 시작했고,
상견례, 예물 및 예단 준비, 청첩장 준비, 드레스 준비, 피부 및 몸 관리 등등
이곳저곳을 어머님에게 이끌려 정말 바쁘게 돌아다녔다.
그렇다고 전처럼 어머님한테 기죽어서 지냈던 것은 아니다.
어머님에게 처음으로 내 생각을 말했던 그날 이후로 많은 것이 달라졌다.
물론 나에 대한 어머님의 태도가 달라졌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난 더 이상 어머님과 함께 있는 게 무섭고 두렵지 않았다.
어머님과 마주치는 걸 피하고 숨지 않았다.
당당하게 어머님의 얼굴을 마주 보고 말을 건넸고,
어머님이 말씀하신 것 중에 마음에 들지 않는 것 혹은 잘못된 것이 있다면 그건 아니라고 지적했다.
어머님이 타당하지 않은 이유로 우리 엄마와 날 무시하려고 하시면 하지 말라고 말씀드렸다.
이제 어머님께서 날 무시하셔도 크게 상처받지 않는다.
어머님께서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듯 대하셔도,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훨씬 많으니 말이다.
어머님이 변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변했고 성장했다.
오랜 시간이 점차 흐르다 보면 어머님의 마음도 조금씩 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난 믿는다.
하얀 웨딩드레스를 겨우 다 입었을 때 배에선 꼬르르르륵 하고 진동이 울렸다.
허리라인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드레스를 입어야 해서 다이어트를 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그 덕분에 일주일 동안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했고, 이제는 닭가슴살만 봐도 치가 떨렸다.
오늘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본가가 아닌 우리 신혼집으로 돌아가 함께 치킨을 먹기로 한 전정국과의 약속을 떠올리며 배고픔을 꾹 참았다.
마지막으로 티아라가 달린 면사포가 내 머리 위에 얹어졌고,
부케가 내 손에 쥐여지고 나서야 길고 길었던 준비가 끝났다.
어머님과 직원들이 흐뭇하게 웃으며 날 바라보고 있는 걸 보니 꽤 괜찮은 모습인가 보다.
풍성하게 퍼져 내 다리를 감싸고 있는 드레스가 바닥에 끌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들어 올리며 신부대기실로 향했다.
높은 하얀 구두 때문에 한걸음 한걸음을 조심해야 했지만,
매일 1시간씩 하이힐 신고 예쁘게 걷기를 연습한 덕분에 익숙하게 걸을 수 있었다.
"이제 곧 손님들 오시면 친절하게 대해드려야 한다.
미래에 회사 운영하는데 도움이 될 소중한 인맥들이니 소홀해서는 안돼.
특히 기자들 오고, 사진 찍을 때는 연습했던 것처럼 환하게 웃어야 해.
오늘은 네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 보여야 한다는 거 잊지 않았지?"
어머님의 걱정 섞인 당부에 내가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그떡였다.
이 결혼식에 우리 기업의 이미지가 달렸다는 걸 잘 알고 있었고,
어른들과 잘 해내겠다고 약속했으니 나도 내 역할을 잘 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곧 시작이라는 생각에 부담감과 걱정이 몰려오자 전정국이 보고 싶어졌다.
오늘 아침에 샵에서 잠깐 만나고 하루 종일 만나지 못했다.
전정국도 몇 주 동안 회사 일과 결혼식 준비를 동시에 해내며 매우 바쁘게 지냈다.
지금도 옷을 차려입고, 많은 사람들을 맞이하느라 바쁠 것이다.
그동안 나도 힘들었지만 전정국도 많이 힘들었고,
힘들었던 하루하루를 서로 응원해주고 같이 헤쳐 나갔기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
오늘도 전정국의 얼굴을 떠올리며 더 힘을 내자고 결심했다.
곧 내가 꽃을 들고 조신하게 앉아있는 신부대기실에 정말 많은 손님들이 들이닥쳤다.
내 결혼식이었지만,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사촌, 육촌, 팔촌이라고 하는 처음 보는 친척들부터
회사의 임원분들, 정치인들, 타기업 회장님들까지
심지어 티비에서 보던 유명인들이나 연예인들도 있었다.
고급스러운 한복을 차려입으신 어머님은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친한 사람들인 마냥
살가운 목소리로 정말 반갑다는 듯 그들을 맞이했다.
나도 그런 어머님을 따라 최대한 방긋방긋 웃으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몇 년같았던 몇 시간이 지나서야 마지막 손님이 신부대기실을 빠져나갔다.
몇 시간 동안 유지했던 웃는 얼굴을 풀자 얼굴에서 경련이 일어나는 줄 알았다.
이 짓을 결혼식에서 그리고 결혼식이 끝난 뒤 진행되는 연회에서 하루 종일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사립 중학교를 함께 다녔던 친구들이 왔다 가기는 했지만, 지민이가 오지 않아서 속상했다.
청첩장을 보내주긴 했지만, 아무래도 이런 자리에 오는 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겐 속상해할 시간도 없었다. 결혼식 시작이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많은 직원들과 함께 드레스를 들어 올리고 예식장 문 앞으로 향했다.
전정국은 다른 방향 문으로 입장한다고 했었기에 나와 함께 입장할 아빠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빠가 나를 보자마자 감격스러운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눈물이 그렁그렁하며 거의 울기 직전의 아빠를 보자 당황스러웠다.
"아빠 왜 그래..."
"우리 딸... 정말 예쁘구나... 언제 이렇게 커서 시집을 가는 거니?"
"이미 나 전정국이랑 혼인신고했잖아요... 새삼스럽게 왜이래?"
쑥스러운 마음에 괜히 조금 까칠하게 아빠를 대했지만
아빠가 날 사랑하는 마음을 잘 알고 있기에 아빠 손을 꼭 잡아 드렸다.
예식장 안에서 기다릴 수많은 기자들과 내빈들 때문에 아빠는 눈물을 닦고 근엄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하지만 힘이 잔뜩 들어간 아빠의 손이 딸을 시집보내는 아빠의 벅찬 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신부 입장!"
예식장 안에서 사회자의 소리와 함께
피아노, 첼로, 바이올린, 비올라의 웅장한 음악소리와 내빈들의 박수소리가 울려 퍼졌다.
문이 활짝 열리며 내 시야에 나의 결혼식장 풍경이 펼쳐졌다.
기자들의 셔터가 반짝거렸고 난 수없이 연습했던 그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꽃과 양초로 화려하게 꾸며진 긴 카펫 위를 걸을 땐 수없이 연습했던 그 품위 있는 자세를 유지했다.
나를 바라보는 수많은 사람들을 지나 카펫에 끝에 도착해서야 조금 긴장이 풀려 주위가 눈에 들어왔다.
오른쪽 신부의 가족 자리에 엄마 자리가 비어있어 마음이 아팠지만
왼쪽 신랑의 가족 자리에서 오늘만큼은 나를 보고 웃고 계시는 시어머님과
든든하게 웃어주시는 시아버님이 눈에 들어오자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이 긴 걸음의 끝에는 나의 신랑이 있었다.
흰색 와이셔츠, 검은 정장, 검은 나비넥타이, 가슴에 달린 하얀 은방울꽃.
19세 신랑 전정국이었다.
멈춰 선 나와 아빠에게 전정국이 손을 내밀었고,
아빠는 몇 초간 그 손을 바라보다가 꼭 잡고 있는 내 손을 전정국에게 건넸다.
아빠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게 느껴졌다.
"아빠 고맙습니다."
내가 아빠를 향해 작게 속삭이자 그제야 아빠가 활짝 웃었다.
그 웃음에 보답하듯 나도 살짝 미소 지은 후에 뒤돌아 전정국을 올려다보았다.
눈을 마주친 전정국이 미소 지으며 내 손을 더 꼭 붙잡았다.
그 순간만큼은 이 넓은 예식장에 나와 전정국 단둘만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뒤에 앉은 내빈들, 기자들, 가족들 모두 단 하나도 신경 쓰이지 않는 유일한 순간이었다.
이 순간을 위해서, 이렇게 멋진 전정국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 내가 며칠 동안 그렇게 고생했던 모양이다.
우리가 꼭 붙잡은 두 손엔 똑같은 반지가 끼워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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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 연주는 유명 오케스트라
사회자는 공중파 아나운서
주례는 유명 목사님
내 웨딩부케는 처음 보는 모델 출신이라는 사촌 분이 받으셨다.
오로지 보여주는 게 목적이었던 이 결혼식은
내 결혼식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는 사람들은 잘 보이지 않았다.
김석진이 축가를 하는 줄 알고 유일하게 기대하고 있었는데,
유명한 가수가 나와서 노래를 불러서 실망했다.
아무래도 어머님한테 거절당했나 보다.
위에 올라타 있는 하이힐 때문에 발이 저리고, 몸에 걸친 드레스가 너무 무거웠지만
꼭 붙잡고 있는 전정국의 손에 의지한 채 약 30분 정도의 결혼식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또다시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노래가 울려 퍼지고 나와 전정국이 박수 속에 퇴장하면서
길고 길었던 나의 결혼식은 나름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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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했어."
신부대기실로 돌아와 홀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문이 열리고 전정국이 들어왔다.
공주를 데리러 가는 백마 탄 왕자님 같은 전정국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너도 수고했어. 우리 진짜 힘들었다. 그치?"
"그러게."
"조금만 더 힘내자!! 우리 이제 연회만 잘마치면 진짜 끝이다!!"
"이제 힘 안내도 괜찮아."
"응?"
결혼식 후에 파티 형식으로 진행되는 연회가 예정되어 있었다.
연예인들의 공연을 보며, 제공되는 맛있는 술과 음식을 즐기는 형태다.
겉으로는 우리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한 파티라고 말하고 있지만
실제 목적은 오늘 온 결혼식 내빈끼리의 친목과 인맥 형성이었다.
또 얼굴도 모르는 고위층 사람들에게 인사하며 돌아다녀야 할 생각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런데 생뚱 맡게 힘을 안 내도 된다고 하는 전정국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해 보였다.
그러자 전정국이 주머니에서 정사각형 모양에 작은 종이를 꺼내 나에게 건넸다.
아기자기하면서도 귀엽게 꾸민 하늘색 종이였다.
난 그 종이에 적힌 글씨를 읽어보았다.
청첩장
신랑 전정국
신부 김탄소
"가자. 우리 진짜 결혼식."
기존에 제작되었던 청첩장이 아닌 처음 보는 새로운 청첩장이었다.
이게 뭐냐고 물어보기도 전에 전정국이 내 손을 잡고 날 이끌었다.
그 때문에 드레스를 입은 나는 전정국이 이끄는 대로 신부대기실을 나서야 했다.
"전정국 너 어디가?! 여기 연회장 가는 길 아니잖아!"
전정국이 내 손을 잡고 멈춘 곳은 연회장이 아니라 큰 도로 앞이었다.
곧 연회가 시작한다는 생각에 내가 다급하게 소리쳤지만 전정국은 손목의 시계만 들여다보았다.
나 혼자라도 연회장으로 돌아가야 하나 망설이던 그때 크게 울리는 엔진 소리에 놀란 내가 도로를 바라보았다.
도로 끝에서 파란 외제차 한 대가 이쪽을 향해 빠른 속도로 질주해오고 있었다.
그 차가 갑작스레 우리 앞에 끼익- 하고 멈춰 섰고 난 깜짝 놀라 꺄악- 하고 소리 질렀다.
웬 미친 차인가 했는데 전정국이 그 미친 차의 뒷 문을 열었다.
내가 당황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자 전정국이 어서 타라며 재촉했고 어쩔 수 없이 차에 올라탔다.
길고 무거운 드레스를 겨우 들고 차에 오른 후 전정국도 내 옆자리에 앉고 나서야 차는 다시 출발했다.
아까와 같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차 때문에 나는 손잡이를 붙잡아야 했다.
"정국아 어쩌려고 그래? 연회 곧 시작되잖아!"
"아버지한테 미리 허락 맡은 일이야. 걱정하지 마."
"우리 결혼식 연회인데 우리가 없으면 어떡해?"
"기자들 다 빠지고, 고위층 사람들만 술 마시고 인맥 쌓는 자리니깐 우리 없어도 괜찮아.
아버지가 다 잘 처리해주신다고 약속하셨어."
전정국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어 인상을 찌푸렸을 때
안 그래도 빠르게 달리던 차가 엑셀을 더 세게 밟은 탓에 몸이 앞으로 확 쏠렸다.
이렇게 차를 험하게 모는 운전자가 누군지 궁금해 운전석을 노려보았다.
앞 좌석에 앉아 있는 운전자의 뒤통수가 묘하게 낯설지가 않았다.
"아저씨?!!"
"결혼 축하한다."
핸들을 잡고 있는 사람이 민윤기라는 걸 알아채자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미친 사람처럼 질주하고 있는 상황에서
덤덤한 목소리로 결혼 축하를 하는 민윤기가 어이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차 좀 천천히 몰아요! 이러다 사고 나겠어요!"
"나도 그러고 싶은데 쥐새끼들이 들러붙어서."
"네?"
"기자들. 너네 여기 탄 거 알아채고 따라붙었나 봐."
"그럼 어떡해요?!"
"걱정하지 마. 저런 애새끼들은 눈 감고도 쫓아내니깐."
다급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민윤기는 매우 침착했다.
하지만 침착한 운전자에 비해 차는 지나치게 험악했다.
차가 큰 도로에서 벗어나 좁은 도로로 들어섰음에도 불구하고 차의 속도는 줄어들 생각이 없어 보였다.
차가 좁은 골목 사이를 몇 번이고 꺾고 꺾으며 이동했고,
지금 타고 있는 게 차인지 롤러코스터인지 헷갈릴 정도로 손잡이를 꼭 쥐고 있는 내 몸이 흔들렸다.
한 쪽 손으로는 손잡이를 붙잡고 나머지 한 쪽으로는 손을 뻗어 날 보호하는 전정국 덕분에 겨우 버틸 수 있었다.
표정변화 하나 없이 이런 좁은 골목에서 오차 없이 코너링을 하는 민윤기가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골목 사이를 요리조리 움직이던 차는 다시 큰 도로로 들어서고 나서야 속도가 조금 줄어들었다.
뒤를 돌아 쫓아오는 차가 없는 것을 확인한 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농담조로 민윤기에게 물었다.
"아저씨. 나 또 납치하러온거에요?"
"아니야. 오늘은 지켜주러 온거야."
"..."
"오늘은 나 너 경호원으로 온거라고."
내 경호원 하기 싫다고 했으면서 결혼하는 날이라고 특별히 경호원 해주는 건가?
경호원 민슈가를 생각하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한바탕 정신없이 달리고 나니 연회에 대한 걱정은 사라져버렸다.
이렇게 멀어진 이상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일이 돼버렸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민윤기가 차의 어떤 버튼을 누르자 파란 차의 뚜껑이 열리며 오픈카로 변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까만 밤하늘 위에 달을 중심으로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이제 이 차가 어디로 향하는지 딱히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저 하루 종일 답답했던 그 결혼식장에서 탈출했다는 해방감이 몰려왔다.
빠르게 달리는 차에 내 하얀 드레스와 면사포가 펄럭거렸다.
난 아무 말 없이 밤하늘을 바라보며 밤바람을 만끽하였다.
---
차가 어디로 향하는지 어느 정도 눈치챌 수 있었다.
사람들과 떨어져 외진 곳, 어둡고 쓸쓸한 곳.
슬픔, 감동, 고마움 등 여러 감정이 뒤엉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 날 알아챈 듯 전정국이 내 손을 꼭 잡아주었고 눈이 마주치자 나에게 살짝 미소 지어주었다.
전정국 너는 내 마음을 나보다 잘 알고 있구나.
민윤기가 모는 차가 엄마의 병원 안으로 들어섰다.
보통 차를 타고 엄마 병원으로 가면 주차장으로 가야 하는데, 차는 주차장을 지나쳐 병원 안으로 더 깊숙이 들어갔다.
민윤기가 주차장 위치를 몰라서 잘못가는 건가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차는 운동장으로 들어섰다.
평소에 봐왔던 텅 빈 운동장의 모습이 아닌 처음 보는 운동장의 모습에 나는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서와. 진짜 우리 결혼식."
원래 밤에는 어두워서 이용할 수 없는 운동장이었다.
오늘은 하얀 조명이 운동장을 둘러싸 운동장 뿐만 아니라 밤하늘까지 밝게 비추고 있었다.
빛나는 조명에 비친 운동장 바닥은 하얀 꽃들이 가득 채우고 있고, 그 덕분에 흙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꽃들 위에는 신랑과 신부가 입장할 하얀 카펫이 자리 잡고 있었다.
"탄소야!!! 결혼 축하해!!"
"제수씨!! 정국아!! 나 배고프다~~ 어서와라!!"
김석진과 지민이도 여기에 있었다.
민윤기가 운동장 한 바퀴를 돌고 나서 하얀 카펫 앞에 차를 세웠고
김석진과 지민이가 손을 흔들며 우리에게 달려왔다.
민윤기가 차 시동을 끈 후 차에서 내렸고, 나와 전정국도 차에서 내렸다.
멋지게 정장을 차려입은 민윤기, 김석진, 지민이를 마주했다.
오늘 하루 종일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힘들어하다가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마주하고 있으니 감격스러웠다.
내가 전정국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어떻게 병원에 이렇게 만들었어?"
"이 병원 주인이 나랑 친한 친구거든."
"병원 주인? 설마... 김태형?!"
"맞아. 김태형이 결혼 선물이라고 여기 이용하게 해줬어.
여기 있는 장식들도 전부 김태형이 보내준 거야."
"둘이 언제부터 친구였어?!"
"미국 간 뒤로 꾸준히 연락해왔어."
전정국과 김태형이 친구라니.
믿기지 않는 조합에 잠시 어리둥절하다가도 왜인지 모르게 은근히 둘이 어울린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둘 다 좋은 사람들이라는 건 확실했기에 서로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탄소야. 내가 너 결혼식 안 온 줄 알고 섭섭했지?
석진이형이랑 여기 열심히 꾸미느라 그런거였어."
"맞아!! 우리가 몇 주 전부터 어떻게 꾸밀지 둘이 엄청 고민했다고.
여기 결혼식 청첩장도 나랑 정국이랑 지민이가 직접 디자인한거다?
내가 말하고 싶어서 입이 얼마나 근질근질거렸는지~"
"둘다 진짜 고마워!! 아저씨는 어떻게 오게 된거에요?"
"아버지랑 아버님한테는 미리 이 계획 말씀드렸었거든.
아버님한테 우리 보호해줄 믿을 만한 사람 한 명 보내달라고 부탁드렸더니 민윤기씨 보내주신거야."
"원래 이런 귀찮은 일 안하는데 결혼식이라니깐 특별히 해준거야."
"고마워요!"
"나한테 고마워할 거 없어. 어쨌든 전부 니 남편이 계획하고 시작한 일이니깐."
민윤기의 말에 나는 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던 내 남편 전정국을 바라보았다.
'가자. 우리 진짜 결혼식.'
'어서 와. 진짜 우리 결혼식.'
'진짜 결혼식'이라는 전정국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전정국은 나에게 '진짜'결혼식을 하게 해주고 싶었나 보다.
모르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보여주기 위한 결혼식이 아니라
정말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오직 나와 전정국을 위한 진짜 결혼식 말이다.
정말 많이 바빴을 텐데 나를 위해 혼자 계획하고 준비했을 걸 생각하니 감동이 밀려왔다.
내가 고마움에 반짝거리는 눈으로 전정국을 올려다보자 전정국이 웃으며 내 어깨를 감쌌다.
그리고는 한 쪽 손을 들어 병원 건물을 가리켰다.
모든 창문이 블라인드로 가려져있었지만, 3층 딱 한 유리창만이 불이 켜진 채 빛나고 있었다.
"장모님 병실이야."
"..."
"나와서 보시는 건 안돼도 이렇게 보시는 거 정도는 가능하다고 해서 허락 맡았어.
아까 너한테 준 청첩장 장모님한테도 전달해드렸어.
지금 당장은 안 보고 계시지만,
우리가 여기서 결혼식 하다 보면 중간에라도 장모님이 나와서 우리 봐주실거야.
나는 그렇게 믿어."
역시 그래서 이 곳으로 온 거 였구나.
저 병실 안에 있을 엄마의 모습을 생각하니 눈물이 왈칵 차올랐다.
하지만 좋은 날인만큼 울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행복한 마음만큼 더 활짝 웃어 보였다.
이만큼 행복한 모습을 엄마가 꼭 봐줬으면 좋겠다.
엄마가 나와 전정국이 결혼하는 모습을 꼭 봐줬으면 좋겠다.
마음이 많이 불안정한 우리 엄마가 이 결혼식을 볼 용기가 생겨서 창밖을 내다봐줄지는 모르겠지만
나와 전정국을 위해 그리고 엄마를 위해 여기서 결혼식을 진행하다 보면
나와 전정국의 마음이 엄마에게 닿아서 중간에라도 엄마가 우리를 봐줄 거 라고 나 또한 믿는다.
"자!! 그럼 이제 진짜 결혼식 시작하자!!"
김석진이 외친 후에 우리는 각자의 자리로 이동했다.
신랑 전정국
신부 김탄소
주례 김석진
사회자 박지민
피아노 민윤기
엥? 피아노 민윤기?
피아노 앞에 앉은 민윤기에 내 두 눈을 의심했다.
자리가 없어서 저기에 앉은 건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민윤기의 다섯 손가락은 건반 위로 향했다.
"신랑 신부 입장!"
사회자 지민이가 외쳤고,
민윤기의 손가락이 건반에 닿기 1초전.
끼이이이익-
빨간 차 한 대가 우리 뒤로 빠르게 멈춰 섰다.
우리가 타고 온 파란 차와 대비되는 빠알간 차였다.
갑자기 등장한 차에 그곳에 있던 모두가 당황해 뒤를 돌아보았다.
차 문이 열리고 정말 오랜만에 보는 그가 등장했다.
"나 빼고 시작하려고?"
정장을 멋있게 차려입은 김태형이 선글라스를 벗으며 한 쪽 입꼬리를 올렸다.
미국에 있어야 할 김태형의 등장에 전정국이 얼굴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
"바빠서 못온다며."
"서프라이즈 몰라? Friend?"
전정국이 날카롭게 말했지만, 김태형은 익숙하다는 듯 능글맞게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런 김태형에 전정국이 더 짜증 난다는 표정을 지었고,
전정국이 짜증을 낼수록 김태형은 더 흐뭇하게 웃어 보였다.
저게 진짜 친구관계가 맞는 건지 살짝 의심되었지만
전정국에게 보이는 김태형의 웃음이 정말 편안해 보여서 그런 의심은 쉽게 거둘 수 있었다.
전정국을 보며 한참 웃던 김태형의 두 눈이 나에게로 향했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기분 좋게 눈웃음 지었다.
"오랜만이에요."
"와우 탄소야."
"네?"
"결혼식날 신부한테 키스하면 어떻게 돼?"
"니 제삿날 되는 거지."
주먹을 들어 올리는 전정국에게서 살기가 느껴졌다.
그런 전정국이 무섭지도 않은지
"농담이지~ 조크~"
하며 전정국에 옆구리를 쿡쿡 찌르는 김태형이었고
나는 저러다 한 대 맞지는 않을까 진심으로 걱정되었다.
전정국을 바라보며 한참을 싱글벙글 웃던 김태형이 다시 나와 눈을 맞추었다.
"겨우 잊고 왔더니 이렇게 예쁘면 반칙인데."
"..."
"그래도 결혼 축하해."
가짜 웃음이 아닌 진짜 웃음.
내가 좋아한다고 했던 진짜 웃음을 보여주는 김태형에 내 마음이 가득 따듯해졌다.
뒤로 김석진이 "배고프니깐 빨리하자~" 하고 재촉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김태형이 자신도 역할을 하나 맡고 싶다고 징징거리다가 바닥에 깔린 꽃을 주어왔다.
"신랑 신부 입장!"
다시 한 번 사회자 지민이의 예쁜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민윤기의 손가락이 건반에 닿음과 동시에 아름다운 신부 행진곡이 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 뒤로 김태형이 천천히 따르며 꽃을 뿌려주었다.
전정국의 팔 위에 내 손이 얹어진 채로 우리는 한 걸음 한 걸음 함께 발맞춰 나아갔다.
낮에 했던 결혼식에서의 걸음과 다르게 편안하고 자연스럽고 행복한 걸음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수록 알 수 없는 벅찬 감정이 올라왔다.
전정국도 나와 같은 마음인지 고개를 돌려 날 바라보았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함께 한껏 미소 지었다.
우리가 함께 걷는 길들을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발맞춰 웃으며 걷고 싶다.
그렇게 카펫의 끝에 도달했을 땐 주례 김석진이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우리는 주례 선생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두 손을 꼭 잡고 앞에 섰다.
"내가 결혼식을 갈 때마다 아주 화나는 건 주례가 너무 길다는 거야!!
배고파 죽겠는데!!
그래서 미래에 내가 주례를 하게 되면 무조건 짧게 하자!! 라고 다짐했었찌!!"
주례는 원래 엄숙하고 진지해야 하는 거 아닌가?
소리를 지르는 특유의 김석진의 말투로 투정을 부리듯 주례를 보는 김석진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서 딱 핵심만 할거다.
신랑 전정국! 신부 김탄소를 평생 사랑할 것을 맹세합니까?"
"네. 맹세합니다."
"신부 김탄소! 신랑 전정국을 평생 사랑할 것을 맹세합니까?"
"네 맹세해요."
"그럼 맹세의 키스하세요!!"
갑자기 키스하라는 김석진에 당황할 틈도 없이 전정국이 내 얼굴을 감싸고 쪽- 하고 입 맞추었다.
입술을 뗀 뒤 날 바라보며 눈웃음 짓는 전정국이 너무 예뻐서 내 두 볼이 붉어졌다.
김석진이 "놀리려고 해본 건데 진짜 하니깐 노잼이군요!!" 하고 소리쳤고
전정국이 주례 제대로 하라고 목덜미를 내리쳐서 모두가 또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흥겨운 분위기 속에서 결혼식은 계속되었다.
부케를 던질 차례라는 지민이의 말에 나는 두 눈을 감고 뒤로 꽃을 던졌다.
의도하지 않게 나의 손에 들려있던 꽃이 김태형의 손에 안착했다.
꽃을 든 김태형이 기분 좋은 듯 방긋방긋 웃었다.
많이 부족한 나를 아낌없이, 숨김없이 좋아해 주었던 김태형에게 마음속으로 고맙다고 전했다.
그리고 김태형이 좋은 사람인 만큼 더 좋은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기도했다.
"다음은 축가를 듣겠습니다. 축가는 김석진씨께서 수고해주시겠습니다."
지민이의 말이 끝나자 김석진이 자랑스럽게 앞으로 걸어나와서 말했다.
"저도 축하받을 일이 있습니다. 저 빅히트 오디션 합격했습니다.
미래의 월드와이드스타한테 축가 받는 걸 영광으로 아십쇼!"
그 교통정리 춤을 보고도 김석진을 합격시켰다니 그 빅히트라는 회사 어떤 회사인지 참 궁금했다.
라고 생각하다가 마이크를 잡은 김석진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김석진 목소리가 이렇게나 좋은지 처음 알았다.
노래를 부를 때만큼은 철부지 아주버님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와 쭉 함께였던 김석진이 노래로 우리의 축복을 빌어주는 진심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고 역시 김석진은 김석진이었다.
진지한 분위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고, 노래가 갑작스럽게 흥겨운 댄스 노래로 변했다.
김석진이 춤을 추기 시작했고, 흥을 참지 못한 김태형도 갑자기 일어나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러다 김석진이 지민이를 억지로 일으켜서 몸을 부비부비 했고 지민이가 웃다가 어색하게 몸을 흔들었다.
난장판처럼 춤을 추는 모습들이 너무 웃겨서 전정국과 배가 아플 때까지 한참을 웃었다.
민윤기는 피아노 의자에 앉아 두 입꼬리를 올리고 흐뭇하게 웃으며 우리를 바라보았다.
결혼식이 이렇게 즐거운 것이라면 여러 번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소중한 사람들과 다 같이 활짝 웃고 있는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한참을 웃고 있을 때 전정국이 병원 건물 3층 창문을 가리켰다.
엄마가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엄마는 전정국이 건네주었다던 청첩장을 손에 꼭 쥔 채로 웃고 있었다.
엄마 나 정말 행복해.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내 옆에 있어줘서 나 정말 행복해.
앞으로 정국이랑 이렇게 행복하게 잘 살게.
엄마도 빨리 나아서 우리랑 같이 행복하게 살자.
사랑해 엄마.
"장모님. 저 약속한 대로 탄소 잘 지키고 있어요.
앞으로도 평생 탄소랑 같이 행복하게 잘 살겠다고 약속드리겠습니다."
전정국이 내 손을 꽉 붙잡으며 말했고, 나는 그런 전정국 품에 안겼다.
다시 창문을 올려다보았을 땐 엄마는 이미 들어간 후였다.
전정국의 약속이 엄마에게 전달되었을 거라고 난 확신했다.
"신랑, 신부 퇴장."
지민이의 예쁜 음색과 함께 민윤기의 아름다운 연주가 울려퍼졌다.
카펫의 끝에서 뒤돌아 보았을 때 모두 웃으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는 파란 차에 올라탔고, 고마운 사람들에게 손 흔들며 병원을 빠져나왔다.
우리의 진짜 결혼식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
한 달 만에 오는 진짜 우리 집이었다.
이렇게나 차려입고 이 집에 돌아오게 될 줄은 몰랐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 집의 향수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결혼식의 벅찬 여운 때문이었을까.
우리는 현관문을 열자마자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서로의 입술을 맞물렸다.
높은 하이힐 덕분에 전정국의 입술이 평소보다 내 입술에 닿기 쉬웠을 것이다.
신발장에 기댄 채로 전정국이 내 허리를 감싸 안았고, 난 전정국의 얼굴을 감쌌다.
왜인지 모르게 입술을 쉽게 떼어낼 수가 없었다.
이 집도 전정국의 품도 정말 많이 그리웠었나 보다.
"아-"
숨이 가빠 나도 모르게 작은 탄식을 내뱉자 전정국이 입술을 떼고 날 내려다보았다.
천천히 깜빡이는 두 눈꺼풀 아래 촉촉한 눈빛이 내 얼굴을 훑었다.
나의 눈, 코, 입을 꼼꼼하게 자기 눈에 담아보려 하는 듯했다.
답지 않게 내 얼굴을 바라보는 전정국의 두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런 전정국이 귀엽게 느껴져 빨갛게 달아오른 두 볼을 천천히 쓰다듬어주었다.
코와 입을 지나 마지막으로 내 눈에 닿은 전정국의 눈동자가 한참을 그곳에 머물렀다.
빤히 그리고 깊이 내 눈을 바라보는 전정국의 눈은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입술보다 촉촉한 그 눈빛을 보며 전정국이 눈으로 하려는 말을 찾으려 애써 보았다.
그 말이 사랑해,라는 것을 깨달은 내가 "나도 사랑해"라고 말하며 미소지었다.
전정국이 다리를 구부리고 앉아 내 하이힐을 벗겨주었다.
전정국은 맨발이 된 나를 공주님 안기로 번쩍 들어 올렸다.
드레스가 꽤나 무거울 텐데도 전정국은 너무 쉽게 날 들어 올렸다.
아까 전정국을 보면서 공주님을 데리러 가는 백마 탄 왕자님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럼 내가 공주님인 건가.하는 생각이 들었다가 나 스스로 공주님이라 생각했다는 것이 부끄러워졌다.
하지만 너무 완벽한 전정국의 모습이 나까지 그런 착각을 들게 만들었다.
전정국은 누가 봐도 동화 속에서 나온 왕자님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현관에서 침실까지 가는 길이 평소보다 길게 느껴졌다.
모든 시간이 평소보다 느리게 가는 것처럼 느껴진 탓이었다.
전정국이 침실에 도착하자 침대 위에 나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하얀 드레스와 면사포가 침대 위를 뒤덮었고,
창문으로 스며 들어온 달빛이 내 하얀 드레스에 반사되어 날 더 빛나게 해주었다.
내 위에서 날 내려다보는 전정국의 까만 정장이 하얀 드레스 위에 포개어졌다.
달빛에 비춘 내 얼굴을 내려다보던 전정국이 내 입술에 살짝 입 맞추었다.
이 입맞춤 어딘가 낯익은 입맞춤이었다.
언제 느꼈던 촉감과 감정일지 떠올려보다가
내가 전정국에게 처음 입 맞추었던 그때와 똑같은 입맞춤인 것을 깨달았다.
내가 처음 전정국을 사랑한다고 깨달았던 소중한 순간이었다.
이 방에서, 이 침대에서, 그리고 똑같은 달빛 아래에서였다.
나도 그때를 기억한다는 의미로 그때와 똑같은 수줍음을 담아 짧게 입맞춤을 하고 떨어졌다.
그리고 전정국의 목을 끌어당겨 다시 한 번 입술을 깊게 파고들었다.
설렘, 두근거림, 수줍음을 담은 첫 입맞춤과는 다르게
더 깊고, 성숙하고, 오랜 시간의 키스였다.
그만큼 우리의 사랑도 처음보다 더 깊어지고 단단해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전정국의 입술이 내 목으로 향해 살짝살짝 입 맞추며 아래로 내려갔다.
두 볼이 스치고 전정국의 머리칼이 내 얼굴을 간지럽게 했다.
전정국의 익숙한 향기를 더 깊이 느끼고 싶어 전정국을 끌어안았다.
그런데 그 향기에 또 다른 향기가 섞여있음이 느껴졌다.
전정국 왼쪽 가슴에 달려있는 은방울꽃의 향기였다.
나는 전정국 가슴 위에 하얀 은방울꽃을 천천히 어루만졌다.
은방울꽃의 꽃말은 '틀림없이 행복해집니다.'
지금 이 순간과 참 어울리는 꽃말이었다.
이 순간에 취해 눈을 옅게 뜨고 고개를 돌려 시계를 바라보았다.
시곗바늘은 어느새 12시를 넘어가 있었다. 1월 1일 새해였다.
19살에서 20살이 되었다.
내 나이 19살, 내 남편은 전정국이었다.
오늘은 내 나이 20살이 되었고, 여전히 내 남편은 전정국이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러 우리 나이의 숫자가 계속해서 변할지라도
앞으로도 영원히 나의 남편은 전정국일 것이다.
내 나이 19살, 내 남편 전정국
W. 달감
2017. 11. 05 연재 시작.
2018. 02. 03 연재 종료.
그동안 '내 나이 19살, 내 남편 전정국'을 사랑해주신 독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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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닉 신청은 끝났습니다!*
달감
여러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한 번 절반정도가 날라가고 혼자 절규하고 울고 욕하다가 결국 다시쓰고....
지금까지 이런적없었는데.... 마지막화의 저주 같았어요...... 흑.. 너무 서러웠어요......
마지막화인만큼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이런저런 쓸데없는 얘기는 후기글에서 말씀드릴게요!
아마도 메일링은 모든 분께 해드리고
암호닉 신청해주신 분들께는 번회편을 보내드릴 예정입니다! (아직 확정은 아니에요 ㅎㅎ)
제가 인티에서 처음 글잡을 써보고, 완결도 처음이라 완결났을 때 뭘 해야할지 잘 모르겠네요오ㅠㅠㅠ
원하시는 게 있으시면 편하게 댓글로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번외편으로 보고 싶으신 이야기나 장면이 있으시다면 댓글로 말씀해주세요!
적극반영해보도록 하겠습니당!
11월부터 3달동안 열심히 달려서 여기까지왔네요오ㅠㅠㅠ
완결이 났다니 섭섭하기도 하고, 시원하기도 하고, 싱숭생숭한 마음입니다
정말 정말 소중한 경험이었고, 정말 독자님들 덕분에 완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사랑합니다♥
일주일 안에 후기글 + 메일링신청글 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