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동거
"사랑하면 안 될 사람을 품었다."
오늘도 고요한 집 내 방 안에서, 느즈막히 눈을 떴다. 부스스한 머리를 대충 정리하고 머리를 올려 묶었다. 목이 말라 텀블러를 들고 방 밖으로 나가니, 역시나 거실 빼고는 불이 켜 있는 곳이 한 군데도 없다. 나 혼자 살기엔 조금 큰 이 집에서,
"..일어났어요?"
저 남자와 함께 살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나는 감금된 것이지만.
#
"그는 나를 납치했다."
나는 평범하고 평범한 대학생이다. 아니, 대학생이었다. 이학년, 스물 한살의 나이에도 장래희망도 생각해본 적이 없이 그냥 살았다. 그러니까, 태어났으니 살아간다. 뭐 그런거. 성적도 평균, 체력도 평균, 꿈은 없음. 어쩌면 내 또래중에 가장 흔한 유형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는 2학년 2학기를 마치고 자취방을 빼 본가로 돌아왔다. 아빠가 있는 본가는 항상 조용했다. 엄마도 없고, 형제도 없으니 나와 아빠 둘 사이에 집이 시끄러워질 일은 없었다.
"친구들은 안 만나냐?"
"친구 없는데요."
1월이 되어서도 집 밖으로 나가질 않는 내 모습에 아빠가 전혀 다정하지 않은 말투로 물었다. 태생부터 집순이 체질에, 밖에서 굳이 만날 친구도 없었기 때문에 내가 애써 외출을 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덤덤한 내 반응에 오히려 아빠가 헛기침을 하더니 오늘도 '까만 정장'을 입고 현관으로 향한다.
"다녀오마."
"네."
성격이 아빠와 똑 닮아서, 나에게 토끼같은 자식의 모습은 전혀 없었다. 그냥 조용하고 평범한 가정이었다.
그렇게 보통의 날들을 보내던 와중에, 아침마다 마시던 생수가 떨어져 집 앞 슈퍼에 잠깐 가야 할 일이 생겼다. 1월의 한파, 정말 뛰어들고 싶지 않은 날씨였지만 건조해 따끔거리는 목 상태에 롱패딩을 걸치고 마스크까지 끼고서 집을 나섰다. 쌩 하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세개 부는 바람에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아 추워, 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저기요."
"..."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아빠처럼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 둘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비록 아침이기는 했지만 충분히 위협이 될 만한 덩치에 겁을 먹을만도 한데, 맨날 보는 게 덩치 좋은 아빠의 검은 정장이니. 저 사람들은 안 춥나.. 하는 쓸데없는 생각부터 들었다.
"혹시 성이름씨?"
"..."
저 사람들은 뭔데 내 이름을 알고 있지? 그 때 남자들 뒤로 슬금슬금 움직이는 스타렉스 차 한대가 눈에 들어왔다. 아, 나 납치 당하는 건가. 다짜고짜 내 이름을 부르는 남자들을 대답없이 바라보았다. 아무리 어떻게 살아도 상관 없다 마인드였지만, 이렇게 범죄에 노출되는 건 겁이 났다. 내 생활이 편하지는 않을 것이니까. 뒷걸음질 치려고 뒤로 한발짝 내딛자 마자 내 양 옆으로 달려온 남자들은, 내 입을 막고 나를 가뿐히도 차에 태운다. 뭐 흔한 영화처럼, 잠시 정신을 잃었다.
"..저기요."
얼마 안 되어서 눈을 떴다. 축 늘어져 있는 내 팔을 양 옆에서 얼마나 세게 잡고 있는지, 정신을 차리니 아릴 정도였다. 약 기운에 힘 없는 목소리로 남자들을 부르자, 대답 없이 나를 쳐다본다. 이거 팔, 아픈데.. 내 말에 양 옆의 남자가 잠시 눈빛을 주고받더니 팔에 힘을 조금 푼다. 덜컹거리던 차가 곧 멈춰서고, 나는 힘없이 이끌려 내려졌다. 주위를 둘러보니 내가 살던 곳은 아닌 것 같고, 조금 큰 주택 대문에 누가 기대어 서 있다.
"..하."
양 쪽으로 남자에게 붙잡혀 있는 내 모습을 보고도 전혀 당황한 기색 없이 짧게 한숨을 내쉬는 남자의 모습에, 저 남자가 사주한 일이구나 생각했다. 곧 그 남자가 집 안으로 들어갔고, 나도 남자들에게 이끌려 집 안으로 들어갔다. 나를 거실의 쇼파에 앉힌 남자들은, 팔짱을 낀 채로 벽에 기대어 서 있는 남자에게 꾸벅 인사를 하곤 사라졌다.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거지. 저 남자가 나를 해코지 할 것이라는 생각에 몸에 힘은 없어도 정신은 꾹 잡고 있었다.
"..씻어요."
"..."
"방은, 저 쪽."
내 예상과 달리 남자는 나에게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 수건 두 개를 내 옆에 내려놓곤, 내 방이라고 가리킨 맞은 편 방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내가 다 씻고 방에 들어가 남아있는 약 기운에 기절같은 잠에 들 때까지.
그렇게, 이 남자와의 수상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납치를 당했음에도 동거라고 생각되는 이유는, 남자의 태도였다. 그는 나에게 어떠한 접촉도 하지 않았다. 폭력은 물론이고, 말로 위협을 가하지도, 성적인 희롱을 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주방에는 항상 먹을 것이 가득 있었다. 남자는 주방을 마음대로 써도 된다는 말을 하기도 했었고, 항상 존댓말을 했다. 그런 남자가 단 한 가지 금지하는 것은,
"외출은,"
"..."
"절대 안 됩니다."
외출이었다. 외출은 절대 안 된다고 얼마나 단호하게 이야기 하는지, 나를 압도하는 눈빛이 보통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아빠가 나를 찾든 말든 상관없었다. 내가 없다고 신경쓸 사람도 아니니.
뭐 그래서, 납치도 맞고 감금도 맞다. 하지만 애초에 집을 좋아하는 나는 그냥저냥 살아갔다. 이 상황에서 그냥저냥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이상했지만.
같이 산 지도 이 주가 훌쩍 지났다. 그 짧지 않은 시간동안, 나는 이 집에 익숙해져 갔고, 남자는 여전히 나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
이 남자는 아빠처럼 검은 정장을 입고 일을 나갔다. 고로 힘 꽤나 쓰는 일을 한다는 소린데, 밤에는 절대 나가지 않고 항상 집에 있었다. 게다가 낮에도 잘 나가지 않았다. 가끔 나갈 때에도 무조건 낮에 나가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왔다. 아빠는 거의 밤에 일을 했는데, 이 남자는 왜 낮에 나가는 걸까. 게다가, 일을 저렇게 안 하는데 이 큰 집에 어떻게 사는거지?
두 번째 의문이야 부모님이 부유하실 수도 있다고 치고, 저 남자가 조직 일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하지만 대낮에 팔에 피를 흘리며 들어온 모습을 보고 확신했다.
"팔 줘봐요."
"..."
아빠가 심하게 다쳐올 때에 비하면 정말 약과였으므로, 아무렇지 않게 구급 상자에서 치료도구를 꺼내 상처를 소독했다. 갑자기 다가온 내 행동에 잠시 당황한 듯 보이던 남자도 나에게 가만히 팔을 맡긴다. 같이 살면서 이렇게 가까이 있는 건, 아마 처음이다.
"..익숙해 보이는데."
"네, 뭐. 아빠도 맨날 다치고 들어와서."
"아버지랑 많이 친합니까."
뜬금없는 물음에 오히려 내가 엥, 하는 표정으로 남자를 쳐다봤다. 내 이름까지 알고 납치했으면 우리 아빠도 당연히 알 텐데. 팔만 보고 있던 내 시선이 얼굴로 향하자, 남자는 나를 힐끗 보고서 자신의 팔로 시선을 내렸다. 나도 다시 치료를 마무리하며 대답했다.
"딱히요. 나 없어졌는데도 안 찾는 거 보면 뭐."
"..."
내가 더이상 말 없이 구급상자를 정리하자, 남자도 치료하느라 걷었던 셔츠 소매를 내린다. 다시 찾아온 적막에 내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으로 향하려다, 물어볼 것이 생각나 뒤를 돌았다.
"저기,"
"네."
"저 핸드폰 못..쓰겠죠?"
"..네."
단호하기도 하셔라. 뭔가 머쓱해져 안될 줄 알았어요, 하고 대답하곤 방으로 들어갔다. 혼자 집에만 있다 보니 심심해져 핸드폰 게임이나 할까 싶었는데. 이런 여유로운 생각이나 하고 있는 걸 보면, 나도 아예 이 집에 마음을 푹 놓고 있나 보다. 그러다 문득 궁금한 것이 떠올라서 방금 닫힌 방문을 다시 열었다.
"저기요."
"..."
"저 몇살인지 아세요?"
"..스물 둘."
"근데 저는 그쪽 이름도 모르고, 나이도 모르고,"
굳이 따지자면 모르는 게 정상이었다. 손가락까지 하나씩 접어가며 납치범의 신상을 묻고 있는 꼴이라니. 내가 생각해도 어이없었다. 내 물음에 남자는 당황한 기색도 없이 그냥 방으로 들어가버린다. 뭐야, 사람이 물어보는 데 대답도 안 하고. 건방진 행동이라는 건 알지만, 뭐라도 알아야겠다 싶어 벌컥 남자의 방 문을 열었다.
"왜 대답 안 해ㅇ,"
방문이 열리는 소리에 뒤를 돈 남자는, 셔츠를 반쯤 벗고 있었다. 잔근육이 잘 자리잡고 있는 몸 곳곳에 상처가 자리잡고 있었다. 남자의 벗은 몸은 처음 본 거라, 멍청하게 서 있다 방문을 재빨리 쾅 하고 닫았다.
"박지민 입니다."
잠시 뒤 옷을 갈아 입고 나온 남자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박지민 입니다. 하곤 태연하게 물을 마시더니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아, 쪽팔려..
박지민은 말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게 냉담하고 까칠한 성격도 아닌 듯 했다. 내가 어지럽혀 놓은 거실도 내가 모르는 사이에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고, 잠시 미뤄놓은 설거지도 금세 사라져 있기 일쑤였다. 오늘은, 느긋하게 일어나 밥을 차려 먹으려고 하던 중에, 외출을 하려는지 정장을 차려입은 박지민과 마주쳤다.
"..밥 했는데, 드실래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아, 네."
별 생각 없이 인사치레로 물어본 것이었고, 같이 밥을 먹기에 조금 어색하기도 해서 그렇구나 하고 넘겼다. 물을 마시고 한 입 크게 떠먹으려는 찰나, 현관으로 가던 박지민이 다시 주방에 고개를 내밀었다.
"..싫은 게 아니고,"
"...?"
"급해서 그렇습니다."
"..네.."
조금 소심한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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