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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유증 (The Aftermath)


W. 커피콩






***


지친 한 주, 단비와 같은 금요일에 단비와 같은 공강. 해가 중천에 뜨고 나서야 깼다. 오후에는 곧 있을 동아리 공연 연습에 참석해야 한다. 시간이 많이 남지는 않았다는 것을 직감으로 느끼며 눈을 떴다. 시야 안에 가장 크게 들어온 것은 어제 곡을 쓰다가 잠결에 덮어 아무렇게나 내 머리 곁에 놓고 잔 노트북, 그리고 바닥에서 페이지가 구겨진 채 놓인 가사 노트와 볼펜. 그 풍경을 눈을 뜨는 듯 마는 듯 꿈뻑거리며 보다가 나를 따뜻하게 덮고 있던 이불을 치웠다. 



한참이나 굵직하게 내리던 비의 소리를 들으며 의식의 흐름을 따라 선율에 음을 붙였었지. 제대로 뜨지도 못한 눈을 비비며 노트북을 열어 어젯밤의 습작을 재생하니 들리는 멜로디가 참으로 센티멘털하다. 비라는 건 요상하게 사람의 감성을 꺼내는 재주가 있다며,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던 생각을 임시적으로 머릿속에서 치워냈다. 새벽 감성에 젖어 쓴 가사는 무슨 모양을 하고 있을까. 침대에서 발을 내리고 손을 뻗어 노트를 집었다. 노트를 펼치니 금방이라도 비상할 듯 휘갈긴 글씨체로 무어라 쓰여있다. 어렵지 않게 읽어내기 시작하며 페이지를 뜯어 버리려 손을 들었다. 그런데 나는, 이번에도 같은 원인으로 멈추었다. 수도 없이 나를 멈추게 한 원인으로 인해.



분명히 어제는 친구와 간단하게 술자리를 가진 뒤 빗소리를 들으며 귀가했었다. 친구의 장단에 맞추느라 술은 몇 잔 들지도 않았었다. 그런데도 왜 내 두 손은 깊은 무의식에 잠들어 있어야 할 존재를 꺼냈을까. 내 글씨를 읽던 눈을 감고 길게 숨을 내뱉었다. 이 숙취가 무엇에서 오는지 나는 모르는 상태였다. 노트를 덮고 벽에 등을 기댔다. 어젯밤 빗소리에서 영감 아닌 영감을 받고 적어내려간 것은 날것 그대로의 감정을 미세하게 가공한 것이었다. 가사에 담은 것은 오롯이 현재의 너와 나. 하나가 아닌 둘이었고 순수하게 나 혼자만의 감정이었다. 서로의 그리움도, 서로의 사랑도, 서로의 미움도 아닌 나만의 감정. 꺼내면 도리어 내게 해가 될, 그러나 지극히 순수하고 뒤늦은 나의 감정. 마치 잊고 지내지만 무시할 수는 없는 후유증처럼 외면하기 어려운 감정.



이러한 이유로 나는 손에 쥐고 있던 노트를 놓고 일어났다. 방구석의 가방에 노트북을 넣고 빠르게 씻고 옷을 입었다. 이동 시간을 계산하며 거울 앞에 섰다. 알 수 없는 것들에 취한 모습을 조금 다듬고 마음도 가다듬어야 했다. 크게 심호흡을 했다. 뜨끈하고 갑갑한 방의 공기가 별다른 이질감 없이 폐에 안착했다. 



***



감정 없는 얼굴에 연습 삼아 미소를 띄우기도 전에 휴대폰이 먼저 울렸다. 이로써 오늘 가장 먼저 겪은 감정은 억지로 꾸민 즐거움이 아니라 갑작스러운 전화에 대한 당황이었다. 침대 이불 어딘가에 파묻힌 휴대폰을 찾아 액정을 확인했다. 발신자, '멍멍 다니엘'. 하루의 시작과는 다른 유쾌한 이름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가벼운 손짓으로 초록색 아이콘을 눌러 변하지 않는 목소리에 답했다. 사투리와 표준어가 자연스럽게 섞인 편안한 목소리였다.



"어, 다니엘. 누나 아직 안 늦었는데?"



[뉴이스트/워너원/황민현/강다니엘] 후유증 (The Aftermath) 00 | 인스티즈


- 늦는 것 때문에 전화한 거는 아닌데. 내가 그것밖에 안 되나, 누야.


"아니, 그게 아니라. 괜히 찔리잖아. 아침부터 왜?"


- 누야, 짐 오전 열한 시인데 아침이라고? 딱 보니까 아침도 안 먹었네. 어제도 일하다 잔 거 아이가.



다니엘은 나에 대한 파악이 빠르다. 연장자인 내가 이 아이에 대한 파악을 더 빨리 할 법도 한데, 다니엘은 항상 눈치가 빨랐다. 오늘도 정곡을 찌르는 질문에 머쓱하게 허허, 하고 웃고 말았다.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제법 의젓한 척을 하면서.



"아니, 뭐... 어쩌다 보니까 그렇게 됐네. 아침 거르는 것도 자주 있는 일인데 뭐, 새삼스럽게."


- 맞나. 그래도... 아이, 아무튼. 좋은 소식 하나 있다. 누야만을 위한.



누야만을 위한, 이라는 흔치 않은 수식어에 음? 하고 멍청한 소리를 내었다. 휴대폰 건너편에서 낮고 가벼운 웃음 소리가 들려온다.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따라 웃게 만드는 웃음 소리였다. 그에 따라 작게 미소를 터뜨렸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그런 엄청난 수식어와 기분 좋은 웃음까지 선사해 주는지. 그 소식보다도 그게 다니엘에게 그렇게 기쁘게 다가올 이유를 알고 싶었다.



뭔데, 대체. 혼자서 웃는 얼굴을 하고는 물음을 던졌다. 순순히 원하는 대답을 듣을 것이라는 기대는 애초에 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서프라이즈라는 짧은 단어만이 돌아왔다.



"나만을 위한 좋은 소식인데 나만 모르네. 빨리 와서 놀아 달라, 이거야?"


- 역시, 과외 선생 아니랄까 봐. 똑똑하네. 누야 아니면 누가 나 놀아 주나.



그에게는 보이지도 않을 고개를 끄덕거리고 짧게 긍정의 답을 했다. 여주 누나, 조심해서 와. 장난스럽게 표준어를 꾹꾹 눌러 말하는 그의 인사를 끝으로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을 꽤 기분이 좋아 보였다. 괜찮았다. 보기 좋았다.



한쪽 어깨에 가방을 메고는 가장 자주 신는 운동화에 발을 담았다. 오늘은 자취방의 현관문을 닿는 몸짓이 무겁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날씨는 추웠고, 내 두 볼은 금방 붉어졌다. 다만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이유도 없이 나의 모든 몸짓을 한없이 가볍게 만들었다.



***




처음 연재하는 글이네요! 연재 텀이 얼마나 길어질지는 장담을... 할 수 없지만...... 열심히 하겠습니다 허허

좋은 저녁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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