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DIGO
인디고, 남색, 쪽빛 그리고 초능력자들
김종인 도경수
박찬열 변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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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들려오기 시작한 낯선 남자의 웃음소리와 낡은 구두굽소리. 구두굽 소리가 듣기 좋다며 꺄르르 웃으면 같이 웃었던 어머니는 희미해지기 시작하고 이유없이 경수를 때리며 발작하다가도 이내 경수를 껴안으며 오열하던 어머니. 경수는 휙휙 스쳐지나가는 장면들을 쳐다보며 생각했다. 어머니는 정상이었다고. 어머니가 경수를 때리며 모진 말을 해도 상관없었다. 경수는 어머니를 사랑했으니까. 발작하듯 몸을 떤 경수가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경수의 몸이 바르작 떨렸다.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땀방울에 경수가 팔을 들어 땀을 닦아냈다. 그러고보니 어느새 옷이 다 젖어있었다. 경수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푸른 서랍을 열었다. 언제나 계속되는 어머니의 악몽은 경수를 괴롭혔다. 과거 속에서 절대 꺼내주지 않겠다는듯. 그것은 가엾게 죽은 제 어미가 자신을 기억해달라며 발작하는것과 다름이 없었기에 경수는 아무런 불평도, 원망도 할 수가 없었다. 경수는 천천히 몸을 움직여 창가에 다가섰다. 노랗다 못해 시린 하얀빛을 내뿜는 보름달이 동그랗게 자리잡고 있었다. 유난히 별이 많이 보였다. 하늘은 완연한 남색빛을 띄우고 있었다. 경수가 몸을 파르르 떨었다. 추워서가 아니었다. 유난히 시리게 빛나는 달이 경수의 하얀 살갗을 저미고 스며들었다. 경수는 잡히지 않는 달을 향해 손을 뻗었다. 더 이상 가까워지지 않음을 알면서도 경수는 달과 가까워지고 싶어했다. 자세히 말하자면 그와 함께있는 짙은 남색빛의 하늘을.
"도경수." 남자아이 하나가 경수의 발걸음을 잡아챘다. 경수는 의아한 얼굴로 자리에서 돌았다. 익숙한 목소리라고 생각했는데 한참 아이들의 중심에서 신나게 떠들던 남자아이였다.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경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응.왜?' 경수의 대답에 남자아이는 고민하나 싶더니 청소년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피시방가자.' 경수를 기어코 피시방까지 끌고 온 남자아이 덕에 경수만 아이들 사이에 껴 불편한 눈초리를 받게 되었다. 아이들은 경수의 뒤에서 수근거렸다. '야, 너 쟤랑 안 친하잖아.' 그 수근거림은 이내 경수의 귀에까지 닿았다. 경수는 그 자리가 너무나도 불편했다. 남에게 받는 관심은 어렸을 적부터 받아 본적이 없는 덕분인지 경수는 다른 아이들보다 유난히 그 시선을 거북해했다. 중간에 선 아이는 핫하하!하고 크게 웃음을 터트리더니 이내 개의치 않고 경수의 어깨를 잡아챘다. 경수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힘없이 죽 끌려오는 어깨가 아이들의 수근거림 덕분이라는 것을 알아챈 남자아이가 주위를 노려보며 연신 조용히 시켰다.
"너 뭐해?"
"야동이라도 봤냐?" 그들의 목적은 알 수 없으며 왜 이런 일을 벌이는지에 대한 이유도 알 수 없다. 경수가 보는 기사의 내용은 그것이 다였다. 그런데에도 경수는 그것이 마치 중요한 것인양 읽고 또 읽었다. 종래에는 이상하게 느낀 남자아이가 경수의 어깨를 어색하게 건드릴 때까지, 경수는 그렇게 모니터에 집중하고 있었다.
아무도 없고 썰렁하다못해 냉기가 느껴지는 집. 그 집이 경수는 자신의 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빛이 켜지지 않아 어두움만 오롯이 방 안을 잠식했지만 경수는 그 포근함이 좋았다. 덧칠하고 덧대어진 기억의 문이 삐그덕거렸다. 어머니가, 너무나도 보고 싶었다. 경수는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연속적인 시계음. 그것이 마치 자신의 높낮이 없는 생활을 나타내는 것만 같아서 경수는 몸을 바르르 떨었다.
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
제법 굵직한 목소리에 종인이 고개를 쳐들었다. 하는 것이 없어 맨 끝 강력반으로 밀려나 이제는 잡일을 도맡아 하느라고 잔뜩 피곤한 정신 덕분인지 눈이 빨갛고 뻑뻑했다. 그런 종인의 앞에 종인과 다르게 귀티가 줄줄 흐르는 얼굴로 크리스가 섰다. 종인은 보지 못 한 사람인양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비록, 컴퓨터가 빠르진 않지만, 그렇지만..
"씨발."
이적하고싶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단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은 자신 알아서 헤쳐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종인은 어렸을 적, 아버지를 잃었다. 종인의 아버지는 종인과 같은 남색이었다. 그 피는 진하게 이어져 종인의 피와 핏줄을 이루고 뼈가되고 살이되어 종인을 만들어냈다. 속박같지 않은 속박이었다. 이내 그 피는 아가리를 쩍 벌려 종인을 으득으득 씹어먹었다. 물리적인 씹어먹음이 아니었다. 종인을 이루고 있고 지탱하고 있는 모든것이었다. 아버지를 삼켰고 어머니를 삼켰다. 그렇게 종인의 모든것을 남색은 씹어먹었다. 아버지는 실종되었다는 소리를 듣기 며칠 전 마지막 임무를 나간 날 종인의 머리에 손을 올리며 이야기했다. 다녀올게, 엄마랑 손잡고 기다리고 있어. 알았지? 종인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을 남긴 아버지의 소식이 돌아왔을 때는 실종이라는 희망없는 말이었다. 종인은 비교적 그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어렸음에도 불구하고 종인에게 다가오는 두려움의 수치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아버지가 싫었던 것이 아니라 막연하게 다가오는 아버지의 실종이 실감이 나질 않았다고 하는게 맞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종인은 그저 그것이 다라고 생각했다. 그게 다가 아니었음이 문제였지만.
혐오스러운 남색 아가리는 종인의 아버지를 으적으적 씹어먹은 것으로 부족해 아직도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 다음 차례는 종인의 어머니였다. 종인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실종 소식을 들은 직후 나날히 신경이 쇠약해졌다. 종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종인은 말 없이 어둠속에서 버둥거리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조금이나마 어머니를 일으키기 위해서. 자신 때문에 가지도 못하는 어머니를 어떻게 해서든 일으키기 위해. 종인은 어두움 안에서 소용돌이 치는 남색의 어떤것을 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 저것이 더 이상 밖으로 빠져나가서는 안 됐다. 종인의 안에 잠들어 있는 그 어떤것. 그 어떤것은 비밀스럽고도 은밀한 것이어서 그 누군가가 알아서는 안 됐다.
" 이거, 사람이 하나도 없는데요, 잡혀가도 아무도 모르겠어요. "
다른 지하철역과 다르지 않게 넓었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낡고 사람하나 보이지 않았다. 종인은 주위를 쳐다봤다. 그 사이에 몇 사람이 더 다녀갔는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종인의 머리가 지끈거렸다. 사람 없는 지하철역에 저런 플랜카드를 걸어봤자 목격자가 옳다구나 하고 나올 리가 없었다. 종인은 주위를 좀 더 살폈다. 역시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그나저나, L사의 딸은 어떤 이유로 이 곳엘 왔던 것일까. 사람도 하나 없고, 볼 것도 없는 이런 곳에. 지하철 내는 이따금 바람만 술렁였다.
" 어? 저기! "
종인과 같이 온 동료의 호들갑스러움에 종인이 마지못해 고개를 치들었다. 동료가 가리킨 곳에는 작은 cctv하나가 달려 있었다. 오래되고 낡아서 제대로 작동이 되는지 안 되는지도 모르는데다가 위조품일수도 있었다. 저렇게 꼼꼼히 숨겨놨으니 강력팀이 발견하질 못했지. 속으로 혀를 두어번 찬 종인이 움직였다. 뒤에서 어? 어디가세요? 하는 물음에 관리실. 하고 짤막하게 대답한 종인이 얼마 떨어지지 않은곳에 있는 관리실 문을 열어젖혔다. 관리실은 방금 전까지 사람이 있었다는 것만 증명해주듯 약간의 온기를 제외하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뒤에서 들리는 연륜묻은 목소리에 종인이 성급히 뒤로 돌았다. 종인보다 키 작은 나이드신 노인이 모자에 경비원 특유의 까만모자를 쓴 채 눈을 꿈벅거리고 있었다. 종인은 멋쩍은듯 미소지었다. 요새들어 계속 이런저런일이 겹치다 보니 신경쓰지 않아도 될 것에까지 신경을 쓰는 바람에 잔뜩 날 선 신경이 종인도 모르게 움직였다.
" 저는 이런사람입니다. " " 경찰? "
종인이 안주머니를 뒤져 지갑을 꺼내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노인의 눈에 의구심이 어렸다. 사람도 하나 없는 이런 데에 경찰이 다닐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종인은 난처한듯 머리를 긁으며 그렇게 됐습니다. 능청스레 대답했고 할아버지는 어찌됐든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종인과 그의 동료는 본채만채 경비실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밀려오는 당혹스러움에 종인이 자리에 멈춰서 경비실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어떻게, 쉽게 해결 될 것 같지 않았다. 종인이 관리실 문을 열었다. 노인은 원하는게 뭐유? 하며 퉁명스레 대답했을 뿐이었다.
" 며칠 전, 이 곳에서 실종사건이 일어났습니다. " " 이런 한적한 곳이라면 사람 한, 둘 사라져도 이상할게 없지. " " 어떻게 그렇게 태연하십니까? " " 이상하지 않나? 주위를 잘 둘러봐. 이 곳은 아파트가 아예 없는 곳이 아니야. 사람들도 있지. 지나가는 지하철만 봐도 사람들이 많다는 건 한 눈에 알 수 있는데 유독 이 지하철역만 내리는 사람이 없단말일세. 마치 이곳이 꺼리는 곳이라도 되는양 말이지. "
우스갯소리임이 분명하다. 종인은 노인의 얼굴을 훑었다. 절대, 우스갯소리따위가 아니다. 노인의 표정은 더없이 진지했다. 그래서, 뭘 원하는건가? 노인의 물음에 종인이 대답했다.
" 그랬지. " " 테이프를 좀 가져가도 되겠습니까? " " 그러던지. "
예상외로 순순히 허락하는 노인의 말에 안심한 종인이 노인의 손에서 테이프를 받아들었다. 감사합니다. 쓰고 돌려드리겠습니다. 하는 종인의 말에 손을 설레설레 휘젓던 노인이 무심코 이야기했다.
" 자네에게선 위험한 냄새가 나네. 곧 안 좋은 일에 휘말릴게야. 며칠 전, 빛과 함께 사라진 청년을 봤어. 어떤 소녀와 함께였지…. "
끌끌끌 거리며 회상하듯 말하는 노인에게 종인의 동료가 덤벼들듯 으르렁거렸다. 다 알고 있다는 소리임이 분명했다. 그러나 노인은 재빠르게 문을 닫은 채 혼자서 무어라고 중얼중얼거렸다. 종인은 테이프를 쥔 손을 가볍게 움직였다. 남색. 짙은 남색이 종인의 손을 잠식했다. 종인은 누가 볼 새라 남색을 털기 위해 손을 휘저었다. 남색은, 종인의 손을 떠나지 않았다. 끔찍했다. 자신의 모든것을 잡아먹고 태어난 괴물같은 이것이. 어리고 우활한 사람. 그것이 자신을 지칭하는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이것을 떼어낼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죽는순간까지 가지고 있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언젠간, 이 길고 긴 악연의 사슬을 끊어내리라 다짐했다.
택시가 매끄럽게 경찰청 안으로 들어섰다. 종인은 주머니를 뒤져 꾸깃한 지폐를 건네주곤 경찰청 앞에 내렸다. 투명한 유리문 앞에 서 있던 크리스가 종인을 기다렸다는듯 밝은 손짓으로 인사했다. 종인은 크리스를 신경쓰지 않은채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테이프를 들었다. 크리스는 끈질기게도 종인의 옆에 와 종인의 보폭에 맞게 걸었다. 종인은 말없이 제 머리를 쓸었다. 어느때에나 사람에게 필요없는 까만 정장을 아래위로 빼입은 크리스의 단정한 옷차림도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무엇보다도 서양인 같은 유들유들한 얼굴로 종인을 쳐다보며 종인을 설득하려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종인은 크리스의 말을 무시한채 강력팀으로 걸음을 옮겼다. 강력팀 안은 이미 종인의 연락을 받은 형사들이 종인이 가져온 테이프를 보기 위해 준비를 해 놓은 상태였다. 걔 중 몇은, 그런다고 범인이 잡혔으면 진작에 잡혔겠죠. 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이 테이프가 사건에서 실마리를 잡기 위해선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었다. 종인은 테이프를 기계 안에 집어넣었다. 연속적인 소음을 내던 기계가 멈추는 소리를 내더니 컴퓨터에 화면을 띄워냈다. 주위에서 작게 탄식이 일었다.
" 넘겨, 사건 있었던 날로. "
종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남자가 테이프를 돌렸다. 한참동안 테이프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며 쥐죽은듯 화면을 응시하는 형사에게 종인이 말했다. 멈춰 봐. 그제서야 멈춘 화면을 천천히 살피던 종인이 남자가 들고 있던 키보드를 들고와 두어번 두드렸다. 키보드를 누르는 특유의 잡음소리가 들리고, 컴퓨터 화면이 돌아가더니 이내 평소의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왠 남자가 내리는데요? 휴대폰 막 던지네. 모자로 가려서 얼굴은 못 알아보겠는…, 어어? 이거 L사 딸 아닙니까?! "
동료의 경악어린 소리지름에 주위 동료들도 경악한듯 화면을 응시했다. 없어진 날 그대로의 차림과 똑같았다. 화면의 남자는 L사의 딸과 무어라고 중얼거리더니 이내 안되겠다며 고개를 저었다가 다시 L사의 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무슨 생각이지? 눈을 가늘게 하며 모자를 쓴 남자를 쳐다보는데 제 모자를 깊게 눌러쓰더니 L사딸아이의 뒷목을 세게 내려쳤다. 순간 경찰청 내 사람들이 숨을 들이쉬었다. 무슨짓을 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모니터속의 남자는 여자아이를 들춰맸다. 이내 컴퓨터 안이 하얗게 변했다. 모든것을 불태워버릴듯. 형사들이 두 눈을 크게 뜨고 모니터를 다시 응시했을 땐, 이미 둘은 사라지고 없는 뒤였다. 종인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제발, 이 사건엔 인디고가 끼지 않았으면 했다. 어떻게든 인디고와 엮이는 것은 사절이었다. 이 사건에 인디고가 끼지 않음으로 인해 평범한 실종사건이라는 것을 입증하고 범인을 잡아 크리스의 코를 납작하게 해 주려고 했다. 그런데, 종인의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골치아프다는듯 미간을 문지르는 종인의 뒤로 누군가가 가까이 다가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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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E C R E T C O D E |
1차 데스티니님 딸기밀크님 2차 오미자차님 동초님 배또님 아이폰님 상꼬맹이님 감다팁님 아버지님 내남성김성규님 이랴님 여수방바닥님 프레즐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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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닉 남겨주신 여러분 모두모두 감사드립니다!!
격주연재가 될 것 같아요! 댓글 남겨주신 분들, 암호닉 남겨주신분들 너무너무 감사드려요 ㅠㅠ!
진심입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이렇게 조회수가 늘었음 좋겠네요 ㅠㅠ 열심히 쓴다고 두 작가가 열심히 쓰고 있으니까 재밌게 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