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전정국] 오메가 전쟁 A+B | 인스티즈](http://file3.instiz.net/data/file3/2018/02/13/a/c/3/ac307617b47155a51d51bb610334bbd8.gif)
정유정 - 종의 기원.
01.
"어디서 오메가 향 나지 않냐?"
쿵- 심장이 아래로 내려앉았다. 설마, 오늘 약 세 알이나 삼키고 왔는데. 나를 가리키는 건 아닌가 싶어 마른침을 삼키고 태연한 척 눈을 돌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목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았다. 다행히 나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 것 같았다. 복도에서 삐딱한 자세를 취한 채 옆으로 지나가려는오메가 앞을 막고 저들끼리 낄낄 거리는 더러운 알파들 무리가 보였다. 저 아이는, 얼마 전 책가방에서 호르몬 억제제 약들이 담긴 통을 들키고 오메가로 낙인이 찍혀 알파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정수인이었다. 수인, 수인... 알파들이 저들끼리 몰려 있을 때마다 한 번도 빼지 않고 부르는 이름들이라 나마저 기억하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기가 베타라면서 알파들을 노려보고, 어깨에 힘을 당당히 주고 다녔던 여자아이가 알파들 앞에서 자존감이 무너지게 되는 오메가라니 그들 사이에서는 흥미로운 주제가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약통이 발견되자마자 흘러나온 달콤한 페로몬에 반항도 채 하지 못하고 알파들에게 끌려가 끔찍한 시간을 보낸 그녀는 그 이후 학교에서 공식적인 오메가로 찍히게 되었고 저렇게 지나갈 때마다 성적인 농담을 받아야만 했다.
"아, 존나 여기까지 나네 단내가"
"약 챙기고 다녀, 씨발"
"약, 먹었는데"
약 먹어도, 향이 나지 않아도 저 알파들이 난다고 하면 나는 것이다. 무슨 개좆같은 논리냐고 물을 수도 없다 세상은 자연과 알파, 이렇게 나누어져 있으니깐. 전 세계인들이 믿는 종교라고 말을 하면 이해가 쉬우려나. 마치 이 지구를 만든 사람들이 지금 복도에서 큰소리로 희롱을 하는 알파들인 것 마냥 그들을 신격화하고 그들 앞에서는 세계에서 그렇게 중요시했던 인권이 없어진다. 아니 없어질 수밖에 없다. 그들이 내뿜는 페로몬을 맡으면 저절로 무릎을 꿇게 되는데. 도대체 이런 좆같은 신체적 계급을 왜 만든 것일까 하늘에 대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오메가들이 지나가면 저들끼리 저급한 말을 흘리며 페로몬을 내뿜고 페로몬에 반응하는 오메가가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면 창고로 끌고 가는 그들이 바로 우성알파였다. 그 좆같은 유전자가 뭐라고, 천재성과 장악력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 하나로 그들은 '우성 알파'라 불리며 전세계 알파 외 모든 사람들을 희롱했다. 살인을 저질러도 이유가 있을 것이라 믿고 정당성을 부여하는 꼴을 보며 구역질이 날 것만 같은데도 다들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이상하다고 말을 하는 아이를 단두대에 세워 목을 자를 생각을 할 뿐. 이런 세상 속에서 권력을 잡은 우성알파들은 얼마나 살 판이 났겠는가. 자신들이 하는 일이 전부 범죄라는 것을 전혀 인지하지 않고 자신들이 하는 행동에 모두 정당성을 부여하는 그들은 이미 세상이 손 안에 있다 생각하는 부류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두 가지 부류로 나뉘어야만 했다. 권력을 맛보는 알파던가, 아무 페로몬도 못 느껴 위협의 대상이 되지 않는 베타던가. 이 두 부류에 속하지 않는 나같은 오메가들은 가짜로 베타가 되어 부류에 억지로 껴야만 했다. 그러니깐 쉽게 말을 하자면 호르몬을 억제하는 약을 복용해야 했다. 그래야만 이 학교에서 적응할 수 있었고 조금이나마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었다. 오메가들에게는 인권이라는 단어가 생소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발정이 나서 아무에게나 다리를 벌리는 종족들, 이라 깊게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그들은 배울 권리, 먹을 권리, 기본적인 권리들이 박탈당한 상태였다. 이상하게 나라에서 오메가 수치는 정말 적은데 길거리를 나가면 오메가들이 수두룩했다. 바로 발현을 할 때 신고를 하지 않는 오메가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었다.
아직도 떨리는 심장에 혀를 세워 마른 아랫입술을 축였다. 아직도 쿵쾅쿵쾅 울리는 심장을 잠재우고 다시 책을 펼치는데 문득 나에게 닿는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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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정국.
복도를 향해 우르륻 달려가는 바보같은 알파들과 달리 복도에 먹음직스러운 오메가가 있는데도 아무 반응을 하지 않는 우리 '별난' 우성알파.
소매가 깨끗한 단정한 교복, 높은 콧대에 걸쳐진 동그란 안경. 이마를 덮은 새카만 머리와 새하얀 피부. 무슨 책을 읽는 건지 한 눈에 봐도 머리가 아픈 두꺼운 책을 넘기던 전정국이 뭔가 마음에 들지 않다는 듯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왜 나를 바라보는 거지. 마치 눈치를 주는 것과도 같은 그의 날카로운 눈동자에 기가 죽을 것 같았지만 애써 참고 침을 삼킨 채 착각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애써 돌렸다. ... 종의 기원. 전정국이 읽고 있던 책이었다. 고고전혀 우성알파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알파들은 머리가 좋아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상위권을 차지할 수 있어 교실에서 공부를 하는 알파를 찾는 것은 드물었다. 아마 전정국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하지만, 다른 베타들이나 오메가들처럼 평범하게 행동을 해도 고결하고 위압감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오메가가 옆에 있어도 눈길조차 주지 않는 그는 우성알파가 맞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모범적인 모습을 보이곤 했는데 주위에서 고자라고 놀릴 법도 했지만
"적당히 해"
교실 안에 퍼지는 잔잔한 목소리는 무시해도 될 정도로 크지도 작지도 않았지만 그가 안경을 벗고 책상 위에 올려놓는 순간 알싸하게 퍼지는 페로몬에 모두 일체 동작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나 조차도. 저 말이 끝까지 오메가임을 숨기고 억제제를 먹는 나에게 향하는 건지 복도에서 오메가를 희롱하고 있는 알파들에게 말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긴장한 채 입술을 꾹 깨물고 연필을 움직이는데 코끝을 스치는 페로몬에 그대로 손을 멈췄다. 그 어떤 우성알파 보다도 강하고, 날카로운 페로몬. 주위에 있던 알파들마저 몸을 경직했다. 전정국과 가까운 자리에 앉아있던 나마저 숨이 턱 막혀와 나도 모르게 코와 입을 막았다. 베타들은 아무것도 몰라 그저 저들끼리 떠들지 바빴지만 이 반에서 유일하게 오메가인 나는 반응할 수밖에 없어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손수건을 꺼내 코와 입을 막았다. 가슴을 심하게 압박하는 페로몬에 머리까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복도까지 알싸하게 퍼지는 페로몬에 지나가던 알파들 모두 발걸음을 멈추게 되었다. 마치 동물의 왕국에서 사자가 거칠게 울부짖은 상황을 보는 것만 같았다.
전정국은, 우성알파 중에서도 최상위 층에 속하는 부류였다. 페로몬만으로 전세계를 휘어잡을 수 있을 것만 같은데, 실제로도 그러지 않을까. 안경알을 소매에 문지르며 귀찮다는 듯 미간을 찌푸린 전정국이 페로몬을 거두고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눈을 느리게 감고 뜬 전정국이 책 표지를 만지며 얇은 입술을 열었다.
"발정이 났으면 알아서 혼자 해결하던가"
뭐가 그렇게 거슬린 건지 혀를 한 번 찬 전정국이 습관처럼 소매 단추를 푸르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가 움직이기만 해도 주변 베타들마저 긴장을 했다. 위협을 하지 않아도 상대방을 충분히 위축시키는 저 태도는 이 좆같은 왕국을 군림하기에 적합했다. 끼익, 바닥 소리가 들릴 정도로 침묵이 이어졌고 그것을 즐기는 건지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 전정국이 눈을 한 번 찡그리고 복도로 나왔다. 넥타이를 풀거나 단추 서너 개 풀러 위험성을 조정하는 알파들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조심스레 고개를 돌려 저들끼리 겁을 먹은 건지 침을 삼키는 알파들 앞에 천천히 다가가는 전정국의 조각같은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
전정국의 날카로운 페로몬을 맡고 본능적으로 덜덜 떨고 있는 오메가에게 다가간 전정국이 미간을 찌푸리고 그녀의 손목을 잡아당겨 목덜미에 고개를 박았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주위 사람들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냄새를 맡는 건지 숨을 한 번 들이마쉰 전정국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여자아이의 턱을 간지럽혔다. 곧, 얼마 가지 않아 알파의 스킨쉽에오메가 여자아이의 얼굴이 불에 타는 고구마처럼 빨갛게 물들여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병신. 자신들의 욕구해소용으로만 쓰는 알파들에게 뜨겁게 데었으면서 우성알파가 몸을 만지니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하는 오메가를 보니 욕이 저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고귀하게도 발정이 나 이성을 잃기 전의 오메가들을 직접적으로 만지는 것을 굉장히 꺼려하는 알파들이기도 했다.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그들의 태도와 다르게 전정국은 오메가들을 정말 안중에도 신경쓰지 않고 저렇게, 과감하게 만지기까지 했다.
"얘한테서 나는 냄새 아니야"
여자아이에게서 벗어난 전정국이 여자아이의 손목을 탁 놓았다. 정말, 할 일이 다 끝났다는 태도. 여자아이가 아쉽다는 듯 잠시 머뭇거리는 것이 보였다. 정말 냄새만 맡을 용도였다는 건지 단 일말의 아쉬움도 없이 자리로 돌아가는 전정국을 바라보는 알파들은 그저 입맛만 다시며 발걸음을 다시 옮길 뿐이었다.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제 갈 길을 가는 알파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다시 교실로 들어가던 전정국의 눈동자가 나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될 때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소매 단추를 잠구며 천천히, 사냥감을 잡아먹기 전 맹수처럼 나에게 다가온 전정국에 심장이 크게 울리기 시작했다. 왜 갑자기 오는 거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전정국이 나에게 오기만 하면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시선을 아래로 내려 언제 잡아먹힐 지 궁리를 하며 종이를 매만지는 것 뿐이었다. 땀이 차기 시작했다.
"너한테서"
"..."
"발정기 냄새 나"
곧 나의 손등을 느릿하게 쓸고 지나가며 나직하게 속삭이는 전정국에 몸이 굳어졌다. 입술을 세게 깨문 채 시선을 위로 올려 곧은 발걸음으로 자리를 향해 돌아가는 전정국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위험했다.
*
"억제제"
"... 먹었어"
"근데 그 좆같은 페로몬이 교실 안을 떠돌더라"
주먹을 꽉 쥔 채 어금니를 깨물고 내 앞에서 담배를 입에 문 채 나를 내려다보는 전정국을 살짝 올려봤다. 교실에서와 전혀 다른 모습. 아릿하게 퍼지는 허리의 고통에 이를 악물고 내가 잠에 빠져든 사이에 어느새 다 교복을 입은 이질적인 전정국의 '실제' 모습을 바라보았다. 두 어개 푸른 단추 사이로 보이는 하얀 목덜미와 목을 조여오던 넥타이를 풀고 안경을 벗어던진 채 하얀 막대기를 입에 문 전정국은 알파, 그 자체였다. 아 한 가지 알려주지 않은 게 있었는가. 나와 전정국은 서로 갈증이 날 때 해소를 시켜주는 평범한 알파와 오메가의 관계였다. 알파는 지독히도 소유욕이 심해서 자신이 가지고 놀 오메가라도 자신의 것이라 생각해서 집착이 심했다. 물론 광기에 가까운 것이었다.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목을 조르는 알파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깐. 자신의 곁에 머물지 않을 심보라면 살지 말라는 그들의 고약한 생각이었다. 애초에 그 누구보다 뛰어난 유전자를 가진 우성알파에게 오메가라는 것을 숨긴다는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었기에 아마 난 지금 내 앞에서 연기를 내뿜는 전정국에게 쉽게 굴복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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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이 생긴 건가봐"
"..."
"몸 간수 왜 그렇게 못해"
"히트사이클이라 그랬던 거야"
그러다가 복도에서 다른 알파들한테 잡아먹히면 어쩌려고. 들키는 것보다 다른 알파들의 손이 탈까봐 걱정하는 전정국의 태도에 헛웃음이 나왔다. 우리 사이를 어떻게 정의를 내려야 할까. 사귀는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그럴 수가 없었다. 애초에 알파와 오메가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학교에 내가 오메가라는 사실이 밝혀지지 않다는 전제 하에 그저 전정국이 부르면 나오고, 입을 맞추라고 하면 입을 맞추고 인형처럼 옷을 벗으라고 하면 옷을 벗는 것이 우리의 관계였다. 평범한 알파와 오메가의 관계. 아마 이런 관계성을 가진 알파와 오메가들은 수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을 것이다, 아니 우리 학교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미 많다는 것을.
우리 사이에 할 말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서로 갈증이 날 때 해소하는 관계 사이에 무슨 대화가 그렇게 많이 필요한가. 나는 히트사이클이 올 때 전정국에게 가면 되는 거고, 전정국 또한 학교에서 오메가를 건들지 않는 대신 나에게 찾아와 갈증을 해소하는 것이었다. 행위가 끝나면 이제 서로 말을 아낀 채 옷을 갈아입고 전정국이 잡아 준 방을 나서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었다. 이불을 턱 끝까지 덮은 채 숨을 색색 내쉬는데 나에게 천천히 다가온 전정국이 소매 단추를 잠구며 내 옆에 앉았다. 그에게 희미한 담배냄새와 묘한 알파 페로몬 향기가 났다. 나는 여기서 남은 채 잠을 청하려는데 그런 나의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손길이 있었다.
"조심해"
"..."
"히트사이클이 아니더라도 그 페로몬이 나면"
"..."
"내가 어떻게 조치를 취할 지 모르니깐"
전정국이 요구한 것은 두 가지였다. 다른 알파들이 조금이라도 의심을 흘리지 않게 페로몬을 의도적은 물론 내성이라는 이유 하나로 내뿜지 말 것, 학교 내에서 철저하게 고립된 채 생활을 할 것. 하지만, 약을 하루에 다섯 알씩 삼켜서 그런 건지 조금이라도 긴장을 놓치면 페로몬이 조금씩 새어나올 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전정국의 날카로운 시선이 나를 향하게 되었다. 결국은 오메가라는 것을 숨기는 것은 물론 이 학교에서 영원히 고립자로 남길 바라는 전정국이었다. 관계가 끝났으면 바로 갈 것이지 왜 이렇게 사람 불안하게 하는 발언을 남기는 건지. 눈썹을 찌푸린 채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나를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내려다본 전정국이 긴 손가락으로 나의 턱을 쥐며 천천히 고개를 가까이 했다. 서로 코끝이 닿았다. 너무나도 가까운 얼굴의 거리는 맨정신으로 감당하기에 조금 힘든 것이라 나도 모르게 시선을 피했다.
"너가 왜 그렇게 나의 페로몬을 신경쓰는 지 잘... 모르겠어"
사실이기도 했다. 내가 다른 우월한 오메가들처럼 예쁘지도, 남몰래 마음을 갖고 있는 여자들이 수두룩할 정도로 아름다운 피사체의 그 자체인 전정국에게 이런 관심을 받을 정도로 매력이 있지도 않았다. 소설 속에 나오는 말괄량이도 아닐 뿐더러 이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고 싶은 마음에 조용히 반에서 있을 뿐이었는데. 그저 나의 약통을 전정국이 발견한 것일 뿐. 그것도 조금 이상한 게, 분명히 책가방 안의 보조 주머니에 꽁꽁 숨겨놓았던 약통이 왜 전정국의 손 안에 있었냐는 것이다. 이 사실을 따지기에는 전정국의 눈빛이 너무 날카로웠고 그때의 나는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들였던 때라 그에게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았다. 곱씹을 수록 전정국과 나의 관계는 모순 그 자체였다. 눈동자만 데구르르 굴리는데 그런 나의 표정을 하나하나 새기듯 뚫어져라 바라본 전정국의 달큰한 페로몬이 코끝에 스치자 나도 모르게 발끝을 오므리게 되었다.
"넌,"
"..."
"너의 페로몬이 얼마나 달콤하고 위험한 지 몰라"
목덜미에 새겨진 자국을 만지며 낮게 읊조린 전정국의 목소리가 낮아 나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게 되었다. 나의 턱선부터 쇄골 밑까지, 손가락을 천천히 내려 아직도 뜨거운 피부를 매만진 전정국 때문에 머릿속이 다시 새하얗게 물들여졌다. 시선을 살짝 아래로 내려 조끼 위에 선명히 박힌 궁서체의 '전정국' 명찰을 바라보았다. 너무 이질적이고, 다른 사람이라 적응하기 힘들기도 했다. 생각이 많은 나의 상태를 알아차린 건지 입술을 톡톡 건드린 전정국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곧 고개를 가까이 해 천천히 나의 아랫입술을 머금는 전정국에 평소와 같이 입을 벌리자 조소를 터뜨린 전정국이 보였다. 집에 가려고 입었던 두꺼운 마이를 다시 벗어 이불 위에 올려놓은 전정국이 다시 나의 턱을 잡아 고개를 옆으로 돌려 입을 맞췄다. 뜨거운 살덩이가 나의 입 안에 들어와 치열을 고르게 훑었다. 그런 살덩이를 살짝 건드리며 나 또한 전정국의 아랫입술을 느리게 핥고 깨물었다. 느리면서도 짧은 키스였다. 오메가와 알파 사이에 이런 입맞춤이 존재하나 싶었지만 역시 전정국이니 생각을 더 하지 않기로 했다. 오메가들과 신체적 접촉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그니깐. 입술을 떼고 나의 코끝에 입을 맞춘 전정국이 자리에서 일어서 마이를 다시 입었다.
"많이 늘었네, 저번에는 깨물기만 해서 피 봤잖아"
"..."
"억제제 부족하면 말 해 오늘처럼 교실에서 가만히 있지 말고. 도와주는 것도 한계가 있어"
복잡하게 휘말리기 싫다는 단순한 이유와 회사 자리를 물려받아야 한다는 이유 하나로 학교에서만 얌전하게 구는 전정국은, 그 누구보다도 문란한 사람이었다.
*
A편밖에 없었지만... 엎었습니다 저번에 쓴 건 너무 허접 그 자체라서요.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ㅜ
잘 부탁드립니다.
+ 저번에 쓴 암호닉 모두 옮겨놨습니다, 암호닉 받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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