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기 있는데, 너는 어느새 저만치 떨어져 있어. 나는 항상 같은 곳인데, 너는 항상 뒤돌면 저기 보이지도 않는 곳에 서 있어. 이유는 너도 나도, 아무도 몰라. 니가 멀어진 걸까 내가 멀어진 걸까. 네 마음이 변한 걸까 아니면, 내 마음이 변한 걸까. 대답해 줘, 백현아ㅡ
너와 나의 소년기ㅡ04
남고의 체육시간은 항상 그렇다하듯 시끄럽고 산만하다. 축구라면 사족을 못 쓰는 팔팔한 청춘기의 소년들인지라, 항상 체육 수업이 든 날은 1교시부터 들떠있는 아이들이다. 아직은 그리 더운 날씨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성질 급한 남학생들은 벌써부터 하복을 입기 시작했다. 그건 백현도, 찬열도 마찬가지. 휑하니 내놓은 팔뚝이 아직 어색하고 신경 쓰였지만, 그보다 더 신경이 쓰이는 건 찬열의 옆에서 훌렁훌렁 교복을 벗기 시작하는 백현이다.
“야, 변백현. 너 화장실 가서 갈아 입어.”
“미쳤냐, 내가 무슨 기집애도 아니고.”
“아오…. 좀 그냥ㅡ 그럼 뒤 돌아서 갈아 입어.”
“작작해라, 너 요즘 이상해. 알아?”
알아, 아주 잘 알아ㅡ 근데 내가 이상한 게 다 너 때문인 건 알아, 변백현? 찬열이 애꿎은 입술만 꾸욱 깨물었다. 언제부터인지 체육복을 갈아 입을 때마다 찬열은 뭐 마려운 강아지마냥 백현 주변을 서성거렸다. 백현이 교복 단추를 하나 하나 풀 때마다 괜시리 다른 남학생들이 흘끗흘끗 쳐다보는 것 같은 쓸데없는 피해망상에 젖었기 때문이다. 백현의 말대로 같은 남자끼리 무슨 상관이냐 하건만은ㅡ 그래도 넌 안돼, 변백현. 이상한 군데에서 고집이 센 찬열이다.
고집이 센 건 백현도 마찬가지, 기어코 교실 한복판에서 새하얀 속살을 다 드러낼 기세인 백현을 본 찬열이 참지 못하고 교실 뒷쪽으로 끌고갔다. 자신의 손목을 세게 잡은 찬열의 손을 뿌리친 백현이 끝끝내 화를 내었다. 아파, 이거 놔.
“진짜 왜그래, 너?”
“내가 백 번 양보한 거야. 옷을 벗든 말든 여기서 해.”
“허…. 진짜 박찬열이 미쳤나 보네. 단단히.”
“그래, 미쳤다고 치고 앞으로 옷은 뒤에서 갈아 입어.”
그래, 그러지 뭐ㅡ 하고 찬열을 비웃듯 코웃음을 친 백현이 찬열의 눈 앞에서 하복 와이셔츠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툭, 툭… 소리를 내며 느릿느릿 단추를 푸는 백현의 표정은 어딘가 승부욕에 가득 차 있다. 차마 눈을 둘 수가 없어 애써 시선을 돌린 찬열이지만, 힐끔힐끔 시선을 돌릴 때마다 보이는 백현의 속살이 하얗다. 백현의 살은 하얗고, 자신의 얼굴은 빨갛다. 귀까지 잔뜩. 정신이 혼미했다.
끝까지 찬열의 눈을 마주치며 옷을 갈아 입은 백현이 흥, 하고 자신의 교복을 찬열에게 던지다시피 건네며 교실을 나섰다. 빨리 와. 언뜻 다리가 풀리는 느낌에 찬열이 책상을 짚었다. 앞으로도 저 모습을 계속 봐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절로 머리가 지끈거렸다. 큰일났다, 진짜. 니 말대로 나 이상해. 근데 너도 이상해. 너 대체, 알고 그러는 거야 모르고 그러는 거야 변백현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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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의 매점은 항상 북적인다. 밥을 안 먹은 것도 아니고 급식 한 판을 모조리 해치워 놓고는 당연하단 듯이 바로 매점으로 뛰어가는 아이들을 보며 찬열이 혀를 내둘렀지만, 그건 자신의 팔을 잡고 전쟁터같은 매점으로 끌고가는 백현도 마찬가지이다. 그 작은 몸집에 먹는 건 어떻게 그렇게 많이 들어가는지, 몇 년을 같이 보내왔건만 그건 아직도 미스테리다. 기어코 빵을 사먹겠다고 키 큰 아이들 틈에서 낑낑거리는 백현을 보던 찬열이 결국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돈 줘, 내가 사올게.”
“어? 아 그래. 여기.”
“초코우유랑 소세지빵 사오면 되지?”
“초코우유 두 개!”
두 개? 왜 두개야? 아, 경수 가져다 주려고ㅡ 백현의 말에 찬열의 표정이 알게 모르게 굳어졌다. 경수…. 그놈의 도경수ㅡ 자신보다 한 살 어린 경수는 찬열만큼 백현과 오랫동안 알아왔던 동생이자, 가족같은 존재였다. 백현과 경수는 여러모로 비슷한 점이 많았다. 일찍이 부모님을 여윈 것과, 공부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잔뜩 움츠려 있다는 것. 둘은 알게 모르게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다. 아무래도 그 덕에 둘은 서로에게 마음을 털어놓고, 의지했다. 남들에게 쉽사리 마음을 털어놓지 않는 경수에겐 백현은 하나뿐인 소중한 존재였다.
백현만큼은 아니지만, 찬열도 경수에게는 친형같은 존재였고 찬열에게도 경수는 동생같은 존재였다. 정말 친동생만큼 아껴왔고, 지켜줬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어느정도 그 순수한 마음이 변질되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백현에 대한 우정이 미묘하게 변한 것만큼, 경수에대한 지고지순한 감정도 변해버렸다. 그건 은연중에 찬열이 깨달은 사실이다. 분명 좋은 동생이고, 착한 동생인 건 맞지만, 조금은 얄미웠다. 얄밉고, 불안했다. 혹여나 백현에게 자신보다 큰 관심을 받을까봐, 혹여나 백현이 자신보다 경수를 더 소중한 존재로 여길까 봐. 어린애같은 생각이지만, 찬열은 그랬다. 항상 백현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고 싶었고,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었다. 오직 자신만이.
“경수야ㅡ”
“어, 백현이형! 왜 왔어?”
“이거. 맨날 콜라만 마시지 말고, 우유도 마셔야지 키 크지ㅡ”
“키는 나나 형이나 똑같거든ㅡ”
곱게 눈을 접으며 웃는 경수는 찬열이 봐도 예뻤다. 오직 자신과 백현 앞에서만 무장해제하는 도경수인지라, 주위에 있던 아이들이 놀라는 게 보였다. 특히 옆에 찰싹 달라 붙어있는 시커먼 녀석은 아주 대놓고 놀란 티를 팍팍 낸다. 나는 보이지도 않지, 도경수? 장난스레 건낸 찬열의 말에 또 방긋 웃으며 찬열이형, 하고 인사를 하는 경수다. 어딜가나 예쁨 받을 아이이고, 한편으론 가여운 아이이다. 한창 다른 애들 뛰어놀 때부터 펜을 잡고 공부만 하던 경수니까. 동정ㅡ 찬열이 경수에게 갖는 감정은 동정이었다. 그럼 백현이 경수에게 갖는 감정은 무엇일까. 동정? 아니면….
“백현아.”
“응.”
“경수가 그렇게 좋냐ㅡ”
“당연한 걸 물어.”
“…나보다?”
“흐음, 글쎄ㅡ?”
모르겠는데? 하고 찬열을 약올리듯이 웃곤 앞서 걸어가는 백현이다. 진짜 나보다 좋아? 되물어도 고개만 갸우뚱 하는 백현이 얄미웠다. 성큼성큼, 큰 보폭으로 백현의 바로 뒤까지 쫓아간 찬열이 백현의 허리에 양팔을 감았다. 뒤뚱뒤뚱, 두 몸이 합쳐져서 걷는 걸음새가 영 불편했지만 찬열도, 백현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걸었다. 백현의 허리에 감긴 찬열의 큰 손 위에 백현의 작은 손이 겹쳐졌다. 찬열이 백현의 어깨에 얼굴을 기대자 자신의 볼과 귀에 닿는 찬열의 머리카락이 간지러워 푸핫, 하고 웃음을 터뜨린 백현이다.
“변백현.”
“왜ㅡ”
“아무리 경수가 좋아도….”
“응?”
“나보단 좋아하지 마ㅡ”
“왜그래, 애처럼ㅡ”
“너 경수 없으면 못 살아?”
“에이, 그 정돈 아니지.”
백현의 말에 찬열의 입꼬리가 잔뜩 올라갔다. 그럼 됐어. 뭐가? 아냐, 아무 것도ㅡ 오늘따라 이상한 말만 잔뜩 내뱉는 찬열에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뭐 이러다가 말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린 백현이다. 찬열을 약올리고 싶은 마음에 끝까지 말은 안 했지만, 백현에게 찬열은 가장 소중한 존재였다. 단순한 친구사이를 넘어선 소중한 존재. 절대 잃고싶지 않았다. 같이 있으면 편안하고, 포근하고 따뜻하다. 찬열에 대한 백현의 마음이 이렇듯 따뜻하다면, 백현에 대한 찬열의 마음은 뜨거웠다. 그것이 그 둘의 차이였다.
같으면서도 다른 둘의 미묘한 감정선이 그들의 반짝거리는 소년기에 찾아왔고, 그것이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였다. 폭풍이 몰아 닥치기 전의 하늘은 맑다고 하던가, 그들의 나날도 그저 햇살처럼 맑고 평온했다.
안녕하세요^-^ |
안녕하세요, 원래는 리베! 였다가 모니카로 필명을 바꿨답니다..! 다른 작가분과 필명이 겹친 줄도 모르고 멋대로 필명을 써버린 저는 바버에여 바버... 필명을 뭘로 바꿀까 한참을 고민하다 그냥 제 영어이름인 모니카... 네... 아무 이유 없습니다....ㅎ-ㅎ 아무래도 필명을 바꿔서 썼으니 이번 화는 신알신이 안 가겠죠?! 엉엉... 독자님들 저 여기 있어요... 음, 왜 카디를 안 쓰고 찬백을 연달아 두 편을 쓰냐고 물으신다면 여태까지 카디를 두 편 썼으니까 똑같이 찬백도 두 편을 써야겠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그러니 다음 편에는 카디가 나오겠죠? 허허허 제가 그려내고 싶었던 찬백이들의 그 미묘한 감정선이 잘 표현됬을런지 모르겠네요.. 제 필력이 이다지 부족하니 당연히 모르시겠지만 ㅠ_ㅠ 늦게 돌아와서 죄송해요! 글 처음 써보는 티 팍팍 내네요 아주 그냥.... 항상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ㅠㅠ 정말 감사해요.. 그럼 다음 5편에서 쿨내나는 경수, 능글맞은 종인이와 같이 돌아올게요! 독자님들 하.트.하.트 (혹시나 전편을 보고 싶으신 분들은 필명 '리베'를 검색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