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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금 같이 들어주시면 공부 안 해도 만점 맞고 일 안 해도 돈이 들어오고 가만히 앉아서 숨만 쉬었는데 얼떨결에 성공하실 거예요.







양연예술고등학교라 하면 장차 한국의 각 예술 분야를 이끌어 갈 수재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재능 있고 빽 있는 온갖 학생들이 판치는 이곳에서, 화는 음악과에 전체 수석으로 입학했다. 콧대 높은 학교는 혼란에 빠졌다. 사교계에서 한 번도 모습을 보이지 않던 정체 모를 여자애가 과 수석도 아닌 전체 수석을 차지했으니, 학교가 뒤집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예전이라면 감히 넘볼 생각도 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저를 시기하고 질투할 때마다, 화는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행복에 숨이 막히는 듯했다. 아니, 그런 듯했었다.




화는 신경질적으로 악보를 집어던졌다. La cathédrale engloutie. 멋들어진 글자로 쓰인 제목이 형편없이 구겨졌다. 표현이 난해한 편이기는 하나 화가 평소에 연습하던 곡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쉬운 곡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화는 첫 음 조차 제대로 누를 수 없었다. 하루아침에 두 귀가 먹통이 되어버린 까닭이었다.




멀쩡하던 청력이 급작스레 사라진지 벌써 2주 가까이 지났다. 이상한 점은 음악과 끝자락에 위치한 이 연습실에서만 희미하게나마 건반의 진동이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장소를 가리는 청력이라니. 화는 귀가 아니라 제 정신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이 현상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씨발. 내가 무슨 베토벤도 아니고."




화는 절망적인 표정으로 건반에 얼굴을 묻었다. 듣기 싫은 불협화음이 희미하게 두 귀를 자극했다. 그동안은 화려한 테크닉이 주가 되는 곡으로 여러 수행들을 무마했다지만, 이런 식으로 가다간 곧 들통날 것이 뻔했다. 저는 더 이상 피아노와의 교감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화라는 이름 따라 화류계 진출 따위를 고민하던 밑바닥 인생에서 지금의 위치까지 그녀를 끌어올린 것은 순전히 피아노에 대한 재능 하나였다. 난방은 꿈도 꾸지 못하는 판잣집에서 온몸을 떨며 추운 밤을 지새우던 나날들. 고작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학교에 등교하던 저에게 쏟아진 멸시 어린 시선들. 화는 의도하지 않아도 저절로 되짚어지는 과거에 치가 떨렸다. 한 번 행복을 맛본 사람은 절대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그녀는 그 진리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다.




화는 바닥에 볼품없이 떨어진 악보를 다시 화려한 조각이 장식된 받침대 위로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 스트레스를 잔뜩 받아 굳어버린 몸으로 연습을 강행한 탓에 어깨와 손목 같은 곳이 아릿하게 아파왔다. 피아노를 치는 사람한텐 치명적인 통증이었다. 이러다가 영영 피아노와 멀어지진 않을까. 화는 침울한 눈으로 잠시 나무로 된 차가운 표면을 매만지다가, 이내 억지로 정신을 차리고 악보를 노려보았다. 물러서기엔 너무 멀리까지 와버렸다. 여기서 추락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천재여야 하고,
실제로도 그렇다.




이미 수천 번을 되뇌었고 앞으로도 그리할 문장이 다시금 화의 머릿속을 부유한다.












민윤기 × 도 화
건반 위의 시인.
w.민냐











화의 주변에는 그녀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 난 사람들 밖에 없었다. 그들에게 제 증상을 털어놓고 조언을 요청하는 것은 미친 짓에 가까웠다. 후원자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치료를 받아볼까 생각했지만 그것도 이내 화의 고개를 젓게 만들었다. 사람 좋은 척하는 후원자도 따지고 보면 제 재능에 빌붙어 이득을 취해보려는 사람에 불과했다. 청력을 잃은 것이 들킨다면 손쓸 틈도 없이 버려질 것이 뻔했다. 결국 모든 것은 제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늘 혼자였기에 새삼스럽지는 않았지만, 여태까지와 차원이 다르게 성가신 일임은 분명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있다면, 그동안 학교를 미친 듯이 돌아다니면서 모종의 수확을 얻어냈다는 점이다.




-미술과 건물에 가까워질수록 청력이 살아난다.




화는 빈 악보에 제가 직접 적어놓은 글자들을 한참이고 바라보았다. 주제를 모르고 날뛰다 드디어 미쳐버린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지만, 그 문장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음악과가 사용하는 A동 건물의 가장 외진 연습실에서만 건반의 진동이 느껴지는 이유 또한, 그곳이 미술과와 제일 가까운 장소인 까닭이었다. 생각은 조금 더 근원적인 곳으로 흘러갔다. 그럼 그 둘의 상관관계는 대체 뭔데.




-..화..




옆자리에 앉은 여학생이 화의 팔을 툭툭 건드렸다. 화는 잡념에서 퍼뜩 깨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수십 개의 시선이 화를 직시했다. 화는 그제서야 지금이 평가 중임을 상기해 냈다. 화는 눈을 찡그려 선생의 입모양을 확인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제 이름을 부르는 듯싶었다. 화는 눈치껏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더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보폭을 크게 하여 연단 위에 올라섰다. 막 연주를 마친 제 전 순번이 아직 피아노에 앉아있었다. 조금 기다리면 알아서 가겠거니, 하고 가만히 서 있던 화는 도무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 몸뚱아리에 결국 고개를 치켜들었다. 한쪽 귀에 피어싱을 한 남학생이었다. 박지민이라고 새겨진 명찰이 조명을 받아 반짝거렸다.




"뭐 해, 비켜."




한껏 싸가지 없게 내뱉은 말이지만 치열한 고민 끝에 나온 말이기도 했다. 주변의 소음이 들리지 않는 것처럼 제 목소리 또한 들을 수 없으니 숨소리조차 조심해서 내야 했기 때문이다. 뭐야, 쟤네 왜 저래. 귀는 먹었지만 학생들이 이상한 표정으로 웅성거리는 것을 볼 순 있었다. 여전히 반응이 없는 상대방에 화는 속이 타기 시작했지만 계속해서 무표정을 고수했다. 안 그래도 얄쌍한 지민의 눈이 더욱 가늘어졌다. 눈동자가 흡사 뱀의 그것과 닮았다. 눈치 빠르고 영리한 화는 거기서 남들보다 조금 더 농염한 색의 질투를 읽었다. 어쩐지 낯이 익다 했더니 차석으로 입학한 놈이었다. 저라는 변수가 없었더라면 예정대로 한국 최고의 예고에 수석으로 당당히 입학해 온갖 대우를 받으며 탄탄대로를 걸어갔을,




-귀에 문제가 생겼나.




그렇기에 남들보다 저를 조금 더 미워할. 지민의 입술이 오묘한 선을 그리며 움직인다.





-재밌네.









그리고 화의 안일함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 예쁘고 간사한 입꼬리가 그림처럼 말려 올라갔다.











화는 다급해졌다.












***











마지막 음을 누르고, 호흡을 가다듬고. 화가 연주를 끝마치자 학생들이 동요했다. 쟤 지금 실수한 거야? 화는 그제서야 건반 위에 올려진 제 손가락이 악보와 다른 음을 짚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체 어디서부터 실수한 거야. 대체..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화는 아무것도 가늠할 수 없었다. 순간 울컥 치밀어 오르는 토기에 그녀는 자리에서 급하게 일어섰다. 교수님, 제가 몸이 좀 안 좋아서 오늘 수업은 못 들을 것 같아요. 창백해진 얼굴로 식은땀을 흘리며 한 자 한 자를 힘겹게 내뱉는 화에 교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화는 어수선한 분위기를 뒤로하고 도망치듯 강당을 벗어났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목에서 비릿한 피 맛이 감돌았다. 화는 그늘진 잔디밭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의 등 뒤로 차갑고 거대한 벽이 닿았다. 심장이 제멋대로 날뛰었고 호흡을 가다듬는 것이 불가능했다. 화는 확신에 찬 지민의 눈동자를 떠올렸다. 뱀이 대가리를 쳐드는 것과 흡사한 안광. 여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두려움이 엄습했다. 화는 달달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를 뒤졌다. 담배.. 담배 어디 갔어. 아무리 손으로 밑을 헤집어도 잡히지 않는 담배 개비에 화는 짧은 머리카락을 마구 헤집었다. 눈에 잔뜩 맺힌 눈물이 기어코 떨어지려는 찰나, 누군가가 화의 입술에 무언가를 물렸다. 느껴지는 인기척이 아무것도 없었기에 화는 놀라서 헛숨을 들이켰다.






[방탄소년단/민윤기] 건반 위의 시인 00 | 인스티즈



"살다 살다 담배 못 태운다고 우는 애는 또 처음 봤네."






상당히 튀는 염색에 라이더 재킷. 나 불량해요,라는 문장을 이마에 써 붙이고 다니는 듯한 남자가 화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화는 다급하게 손으로 눈을 벅벅 문질렀다. 남에게 초라한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뭐라고 변명이라도 하려 입을 떼는데 남자가 물린 사탕이 그것을 방해했다. 혀 뒤쪽에서 짜릿한 단맛이 느껴졌다. 단물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아.






화는 조용히 탄식했다.





"몸에 안 좋으니까 웬만하면 끊어."





몸에 안 좋으니까. 화는 소리 없이 그 말을 읊조렸다. 그제서야 화는 깨달았다. 멀리서 새 지저귀는 소리가, 작은 풀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꽉 움켜쥔 제 교복 셔츠의 소맷자락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남자의 목소리가. 제게 훅-하고 다가왔다는 것을. 남자는 멍한 표정으로 제가 한 말을 똑같이 오물거리는 화를 향해 고개를 갸웃해 보였다. 화는 그 모습마저도 사랑스러울 지경이었다. 이 남자로 인해,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제 목줄을 쥐고 있는 주인이 그라는 것을, 화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담배 피우려던 거 아니었어요."





화는 설득력 없는 변명을 내뱉었다. 상대가 믿든 아니든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오랜만에 들어본 제 목소리는 낯설다. 화는 제 목을 매만지며, 남자의 눈을 마주 보았다. 순간 불어온 바람에 남자의 앞머리가 부드럽게 흔들렸다. 화의 눈동자도 그에 따라 같이 흔들렸다. 저만 아는 비밀스러운 휴식처에서 웬 꼬마 애 하나가 서러운 표정으로 눌러붙어 있기에 적당히 회유해 돌려보낼 생각이었던 남자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잔뜩 비벼서 붉어진 눈가가 꽤나 색정적이었기 때문이다. 본인은 잘 숨긴다고 생각하겠지만, 제 몸짓 하나에 시시각각 경악으로 물드는 표정이 귀엽기도 했다. 우리 학교 2학년 수석이 이렇게 매력적이라는 소리는 못 들어봤는데. 남자는 여러 물감이 섞여 기괴한 빛으로 얼룩진 장갑을 벗었다.





"일어나."




화는 홀린 듯이 제 앞에 내밀어진 하얀 손을 향해 팔을 뻗었다. 마침내 서로의 맨 살갗이 닿고, 그간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감각이 화의 혈관을 타고 흘러들어갔다. 그녀는 그 황홀함에 정신을 놓아버릴 것만 같았다.





"이름이 뭐야?"
"......"
"대답을 안 해주네. 그래도 괜찮아. 이미 알고 있거든."






도 화. 맞지?






[방탄소년단/민윤기] 건반 위의 시인 00 | 인스티즈




"내 이름은 윤기야. 민윤기."






그가 발음하는 이름 석자는 짙은 회색빛을 띄었다. 화는 정체 모를 오싹함을 느끼면서도, 맞잡은 손을 끊어낼 수 없었다. 그가 물린 사탕이 달았고, 그가 짓는 네모난 웃음은 그것보다도 훨씬 끈적했기 때문에.













-






센티넬 버스를 참고했습니다. 윤기가 가이드고 여주인공 화가 센티넬입니다. 비중 있게 다룬 부분이 아니니 모르고 넘어가셔도 무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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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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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75.221
여주랑 윤기랑 딱 만나는 지점에서 브금 분위기 바껴서 현실 소름,,, 글 분위기가 미쳤어요 ㅠㅠㅠㅠㅠ 지금 완전 대작 발견한 기분이라 넘 설레요 ㅠㅠ소재도 완전 독특하고,,, 혹시 암호닉 받으시면 [민개]로 신청합니다 ㅠㅠㅠㅠㅠ
7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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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251.241
오 대박 저 댓글처음다는데 진짜 재밌을거같아요 부디 중간에 사라지지만 않아주세요!!!
재밌게 읽고 갑니당♡

7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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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헐 센티넬버스였다니 반전이네요 신알신하고 갈게요!
7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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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179.98
대박대박 ㅠㅠㅠ 대박대박 ㅠㅠ 센티넬이라니 ㅠㅠ 여주가 완벽하게 다시 연주할 수 있길 ㅠㅠ
7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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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3
신알신 하고 가요!!! 재미있을 것 같아요
7년 전
비회원도 댓글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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