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 거지 같은 바닥의 화두에 오른 것이라면, 씁쓸한 커피를 넘기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미세한 신경이 다 곤두서는 느낌과 더불어 너무도 억울한 치욕감에 사로잡혔다. 아직 질질 새어나와 신문을 적시는 피를 보니 듣기 싫은 소음과 함께 산산조각이 났던 유리컵 알맹이들이 여전히 그의 손아귀에 머무르고 있는 듯했다. 그의 옆에서 부들부들 온몸을 떨던 까만 머리통들이 그의 눈길로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몸을 굳혔다. 두, 세 번 딸깍이던 라이터 소리와 타들어 가는 담배 연기가 방 안을 맴돈다.
"크리스."
크리스로 칭해진 짙은 눈썹의 남자는 대답의 의미로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박찬열, 잡아 와. 크리스의 흔들리는 동공을 보며 그는 담배를 지져 껐다. 아직 절반도 채 태워지지 못했다. 산 채로 내 앞에 가져다 놔. 혀로 입술을 축인 그는 고개를 까딱이며 왼쪽 다리를 꼬았다. 상처 없이. 짙은 쌍꺼풀의 눈을 느릿하게 껌뻑였다. 발 밑에선 아까부터 낑낑 거리던 러시안 블루, 그의 미간은 찌푸려졌다.
"물론 뒷구멍도 잘 챙겨와."
"..."
침을 꼴깍 삼키며 크리스는 허리를 숙였다. 그는 가식적인 미소를 피우며 기지개를 켰다. 나가 봐. 축 쳐진 어깨와 달리 뚜벅거리던 구두 소리가 멈추고 끼익, 천천히 닫히는 문소리에 그는 흡족한 표정으로 문을 바라본다. 집행유예는 없어야 해, 그렇지? 예, 형님! 입 맞추어 걸걸한 목소리들을 합창하는 머리통들에게 바람 빠진 비웃음을 날린다. 벙어리 새끼. 한참동안 축축한 손을 만지작 거리며 고개를 까딱이자 부산스럽게 까만 무리들이 빠져나간다. 병신들. 그는 낮은 목소리로 읊조린다. 부질 없다. 그치, 잭? 그의 발치에 있던 러시안 블루의 이름은 잭인듯 했다. 잭을 안아들었다. 이제 곧 박찬열이 도망 칠 거야. 벙어리 새끼가 숨기려고 안달이니까. 잭은 그의 가슴께에 얼굴을 부비적 거렸다.
문 밖을 나서자 이질적인 느낌에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그가 다 알아챘다. 아니,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항상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의 목을 조여온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구실은 간단했다. 이 세계로 끌어당기고, 자신을 은인이라 했다. 자신이 아니었으면 퀘퀘한 밀실에서 평생을 썩혔을 거라 했다. 그러면 난 또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어린 시절 나와 비슷한 체구의 그 소년 또한 나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박찬열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결국엔 그를 어길 수 없을 것이다.
집에 있어. 어짜피 이렇게 말하지 않아도 그는 두 말 않고 내가 도착할 때까지 집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명령을 했다. 그 이, 알았지? 그도 그 이유를 알고 있는 것이다. 조급한지 계속해서 문자를 보내왔다. 다치진 않았지?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이 눈 앞에 아른거렸다. 속도를 올렸다. 문이 열리자마자 불안감에 휩싸여 내게 안겨올 박찬열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뒷골이 무지막지하게 당겨지는 느낌이다. 몽롱한 두 눈은 모든 걸 알고 있다. 이번엔 어디로? 해외로 보내기엔 너무 시간이 빠듯하다. 진작에 준비 해뒀어야 했는데. 이로 입술을 물어 뜯었다. 곧, 그는 확인 사살을 할 것이다.
3,
2,
1,
기본 벨소리가 차 안을 울린다. 액정에는 그의 이름이 떠있었다. 항상 이렇다. 통화 버튼을 풀었다. 크리스. 한참의 정적이 시작된다. 고민을 하고 있다. 진정 고민일까? 아니면.. 또 다른 이유일까. 항상 날 망설이게 만든다. 내가 파악했다 싶다가도 머리 위에서 꼭두각시마냥 날 굴리는 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폭군. 정체성이 드러나지 않은 무차별적인 군주. 암흑의 세계에서 뱀파이어나 다름 없는 생물체.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 항상 반전을 논하는가. 도대체 왜? 눈을 지그시 감는다. 이 골목만 지나면 그의 구속을 뼈져리게 느낄 것이다. 반전은 논리가 될 수 없다. 당연한 섭리일 것이다. 박찬열이 그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도 당연한 섭리일 수 밖에 없는 것.
"크리스."
"우리 떠나요, 크리스. 네?"
그런 섭리에 어긋나는 일은 끔찍한 방도에 의해 소멸되는 것, 허용되는 피에타는 존재치도 않는 것. 그리고 알면서도 경계 태세도 갖추지 못하고 부스려버리는,
"우리 떠나요."
나와 다를 것 없는 초조함에 입술만 집어 뜯는 피앙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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