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백]교도소 조각글
눈이라도 내렸으면 이해가 됬을련만 매섭게 바람만 부는 겨울이었다. 백현은 껴입은 옷의 앞섬을 단단히 여몄다. 목도리가 가리지 못한 귀 끝이 빨갰다. 문 앞에서도 백현은 한참을 고민했다. 며칠 전까지 제가 근무했던 곳이라 익숙했지만 낯설어서 애꿎은 땅만 노려보았다. 시게를 확인하자 점점 더 초조해졌다. 결국 결심한 듯 백현이 교도소 안으로 발을 들였다. 지독한 적막아 백현의 다리를 잡아당겼다.
집행장은 이미 꽤 바글바글했다. 사진을 찍으로 온 기자며 콧시울이 벌건 사형수들의 가족, 혹은 피해자들이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백현은 사람들을 피해 벽으로 가 등을 기대고 섰다. 집행장 앞에는 낡은 나무 의자가 놓여있고 위에 의자만큼이나 낡은 밧줄이 달려있었다. 교도관들은 사형수들의 목을 죌 준비를 하느라 분주했다.
군복무 기간 교도소 직을 맡았을 때 백현은 덜컥 겁부터 먹었었다. 범죄자들. 폭행. 강도. 살인. 살인. 그 속에서 백현은 찬열을 만났다. 선한 인상에 다른 수감자들보다 훨씬 젊었던 찬열을 백현은 유심히 봤었다. 정말이지 멀쩡하게 생겼는데. 그 호기심이 시간이 지나 그 쇳덩어리 안에 갖힌 찬열을 빼내고 싶다는 생각까지 가지게 만들줄을 백현은 몰랐다.
누군가의 이름이 호명되기 시작했다. 손이 묶인 채 나온 사람은 백현도 근무 기간에 몇 번 본 사형수였다. 결국엔 죽는구나. 죄목을 읊는 소리가 들렸다.
'당신은 왜 여기에 들어왔어요?'
'사람을 죽였대.'
'...아.'
'내가 사람을 죽였대. 나는 그 누구를 죽이지도 않았는데 말이지.'
찬열은 그 때 힘없이 웃었었다. 살짝 들치는 햇살에 떠다니는 먼지들이 또렷이 보였다.
'내가 하지도 않은 일로 갇힐만큼 나는 힘이 없는데. 누군가를 죽였다더라.'
백현은 목도리 깊숙히 얼굴을 더 파묻었다. 박찬열. 여름같은 그 이름이 장을 울렸다. 긴 앞머리 사이로 보이는 눈매가 눈물날만큼 시려워서 백현은 입술을 깨물었다. 찬열은 맨발로 걸어가 낡은 의자에 앉았다. 히터도 틀지 않았건만 백현은 땀이 나기 시작했다. 흥건히 젖은 손을 바지에 문질러 닦으면서 눈은 찬열에게로 고정시켰다. 굵은 밧줄이 목에 감겼다. 그의 죄목이 읊어졌다. 살인.
교도관이 밧줄의 상태를 한 번 더 확인했다. 백현은 추위에 밀려날 제 여름의 끝을 볼 자신이 없었다. 고개를 숙인채로 문을 향했다.
"마지막 발언 할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백현이 문 손잡이를 잡으려는 순간이었다.
"따뜻하게 입었네. 앞으로도 감기 걸리지 마."
아, 백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백현은 차마 뒤를 돌지 못했다. 찬열이 저를 보고 있을까봐. 혹시라도 눈이 마주치면 그 손을 잡고 도망치고 싶을까봐. 사랑한다고 소리를 지를 것만 같아서였다.
"그리고 나 기억하지마. 그렇게 문 열고 나가듯이 나와의 시간에서도 나가는거야."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못 하겠다."
검은 천이 찬열의 얼굴을 덮었다. 백현은 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바닥이 열리고 떨어지는 계절이 흔들렸다. 겨울 바람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느새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은 쌓이지 못하고 땅에 닿자마자 녹아버렸다. 백현의 콧잔등에 내려앉은 눈도 역시 나약했다.
박찬열.
'나 기억하지 마'.
그 겨울의 가운데에서 백현은 지독한 열대야를 느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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