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꼬리가 아홉개인 하얀 여우 이야기를 알고 있나요?
하얀 소복을 입고 붉은 입술에 쪽진 머리의 아름다운 여자가 나그네를 홀려 간을 빼어먹는다는,
백명의 간을 먹어야 인간이 된다는 그런 무섭고 슬픈 이야기 말구요.
아직도 못 들어 보셨구나
제가 지금부터 말하려는 이야기는요
어느 가을밤, 깊은 숲 속 작은 연못 위를 스치던 달님이
자기를 아주 꼭 닮은 작은 돌멩이 하나를 발견하고는 숨을 불어넣어
아홉 꼬리를 가진 하얀 여우 한마리를 만들어 냈다는 이야기지요.
자신이 만든 하얀 여우를 보고 사랑에 빠져버린 달님은
자신의 몸이 점점 서쪽 하늘로 기울고 있다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렸지 뭐예요
그리고 아직 숨을 한번 더 불어넣지 않아 여우의 눈을 띄우지도 못했다는 것두요.
아차 했을때에는 이미 늦어버렸어요, 벌써 동쪽 하늘이 환히 밝아왔거든요
허둥지둥 서쪽 하늘로 쏙 들어간 달님을 해님이 느긋이 뒤따랐어요
그리고 연못 위에 떠서 곱게 잠들어있는 여우를 보았어요.
해님은 잠들어있는 작은 여우를 본 순간 사랑에 빠져버렸어요,
하지만 너무도 멀리 있어서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고있었지요.
해님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우가 행복하기를 바랐어요
그래서 여우가 잠든 연못 주변에 온갖 싹을 틔우기 시작했어요
여우가 깨어나서 먹을 온갖 단 과일들과, 여우가 볼 작은 꽃나무들
여우가 안락하게 쉴 수 있을 포근하고 커다란 느티나무까지두요.
순식간에 자란 싹들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거대한 나무로 자라났어요
여우만을 위한 정원이 꾸며지자 해님은 천천히 여우에게 숨을 불어넣었어요
천천히 여우의 눈이 떠지자 해님은 너무도 행복했어요
여우의 두 눈동자가 자기를 꼭 닮은 황금빛이었거든요.
하지만 여우는 해님이 자신을 깨웠다는 사실도, 달님이 자신을 만들었다는 사실도 몰랐어요
왜냐하면 해님과 달님은 너무도 멀리 있기 때문에 여우와 이야기 할 수는 없었거든요
해님은 너무 안타까웠어요, 하지만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어 발을 동동 구르는 사이에
서쪽 하늘 저편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답니다.
달님 또한 마찬가지였어요 눈을 뜬 여우가 너무도 어여쁘고 사랑스러웠지만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요.
달님도 여우가 행복하기를 바랐어요
그래서 달님은 여우에게 숨을 불어넣어 약간의 요력을 선물해 주었지요.
여우는 그저 말간 눈으로 세상을 둘러보았어요
작은 발로 천천히 작은 연못의 수면 위를 걸어나와
바스락 자신의 발 아래 납작 눕는 여린 풀 위를 사뿐히 걸어보기도 했지요.
그러다 여우는 커다란 느티나무로 살며시 다가갔어요
왠지 모를 따뜻한 기운이 퍼져나오고 있었거든요.
느티나무의 가장 굵은 뿌리 아래로 살며시 드러난 작은 굴을 발견한 여우가
조심 조심 굴 안으로 들어가서는 이내 몸을 둥글게 말고 잠이 들었어요
그리고 유난히 애달프게 달빛이 쏟아지는 연못이 신기해 날아든 반딧불이들이
잠들어있는 새하얀 작은 여우를 보고는 그곳을 여우의 정원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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