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오래전부터 편지를 쓰고 있다.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너를 생각하며 단어하나하나까지 고심하며 쓴다.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나를 행복하게 하는지, 미래를 알 수 없는 깊은 바다에서 나를 끌어당겨 주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을 것 이다.
벌써 겨울이 다 된 거 같아. 아직 날짜는 가을인데 말이지. 하늘은 높고 바람은 싸늘하고 그리고 또 어젯밤은 별이 무척 밝았어. 너도 봤니? 너는 아마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있지 않을까. 꿈을 찾는 거, 나는 정말 멋있다고 생각해. 그런데 나는 아직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어. 아무것도 즐겁지가 않아 하하. 그리고 경수야 그거 아니, 나는 우리가 중학생이던 때에 사고가 멈춰 있는 거 같아. 너무 걱정하지는 마, 지금은 괜찮으니까. 그리고 집에 좀도둑이 들었어. 일단 돈이 좀 없어졌고. 상품권 같은 게 없어진 모양이야 그 외에는 모두 그대로라서 눈치 채지 못 할 뻔 했는데. 그래도 다행인건 가족들이 집에 있을 때 들이닥치지 않았다는 것과 내게 소중한 것들은 아직 남아있다는 거야.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그런데 좀도둑이 훔쳐간 건 돈뿐만이 아니었어. 아빠는 내가 숨겨놓고 발뺌하는 거 아니냐면서 내 목을 잡고 흔들었고, 엄마는 내 가방과 옷가지를 뒤졌어. 경수야 넌 나 믿어줄꺼지? 입양된다는 게 이렇게 서러울 줄은 어릴 땐 꿈에도 생각 못했어. 좀도둑은 엄마와 아빠도 훔쳐갔고 나에 대한 엄마와 아빠의 믿음도 훔쳐갔어. 다시 쌓으려면 오래 걸릴 텐데, 아니 다시 쌓을 수나 있을까?
백현은 편지를 새하얀 봉투에 넣고 정성스레 입구를 닫았다. 편지 쓸 때만큼이나 떨리는 순간이다. 백현은 편지를 펴볼 경수를 상상하거나, 어떤 답장이 돌아올까 상상해본다. 하지만 답장은 한 번도 오지 않았다. 한번도. 하지만 제 기억안의 경수는 늘 자신에게 만큼은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무엇보다도 경수는 백현의 상황을 잘 이해해 주었다. 그 존재자체만으로도 충분했다.
사실 백현은 알고 있었다. 답장은 절대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돌아 올 수 없다는 것을.
-
“질리지도 않나, 또 왔네.”
경수는 우체통에서 흰 봉투를 꺼내어 보며 중얼거렸다. 사실 백현은 중학교 때 친구였다. 그렇다고 죽고 못살 정도로, 이렇게 편지까지 써 보낼 정도로 친한 친구는 아니었고 중3때 그냥 같이 다니는 친구였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친구의 친구라 친해지게 된 것 뿐이고 고등학교도 떨어지게 되어 함께한 시간은 1년 남짓 되는. 경수에게 있어서는 과거의 어느 한사람, 지나가버린, 지나가버려도 되는 그런 인간 중 한 사람이었다. 근데 그런 놈이 자기 전 여친 이라도 되는 마냥 편지를 써대고 그 내용은 별 중요한 내용도 아닌 백현의 일상이었다. 게다가 그 일상의 내용조차 백현은 너무 감상적으로 써 대서 경수는 이해 못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뭔데 그래?”
“내가 전에 말했던 중학교 때 알던 애가 자꾸 편지를 보낸다고, 내용인 그냥 지 일상이나 쓰고”
“답장을 써, 쓰지 말라고 그럼 되잖아, 답장도 싫으면 그냥 꺼내보질 말던가. 사실 너도 좀 즐기고 있는 거 아니냐?”
“개 같은 소리하네.
경수는 백현의 편지를 슥 훑어보고는 그대로 쓰레기통 안에 던져버렸다. 그리고는 종인의 말을 다시 곱씹어 보았다. 나는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건가? 아니 애초에 중3때의 변백현이 편지를 쓸 정도로 감상적인 사람이었나?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경수는 제 눈앞에 tv로 시선을 돌리고 생각 저편으로 잊어버렸다. 도경수에게 있어서 변백현은 딱 그 정도의 사람이었다. 그만하라고 답장하는 것조차 귀찮고, 그에 대한 관심은 5분을 채 넘기지 않는 가벼운 존재.
2.
백현은 모범생이었다. 그것도 문과에서 1~2등을 다툴 만큼 뛰어났다. 그러나 모의고사에서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아도, 친구들이 존경하듯 바라볼 때도 백현의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자신은 점점 붕괴 되어 가고 있다고, 세상과 연결된 단 하나의 끈이 점점 삭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백현은 하고 싶은 게 없었고 즐기는 것도 없었다. 단지 현재에 충실했고 미래에 대해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딜 향해 살아가는지 무슨 목적으로 살아가는지 조차 흐릿했다. 백현은 학교의 아주 예쁘고 섬세한 인형과 같은 존재였다. 모두 그를 동경하지만 그이상의 무언가로써 그를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공부를 잘한다. 꽤나 잘생겼다. 예의 바르다. 어쩌면 우리학교에서 제일 성공한 한사람이 돼 있을지 모른다. 그를 따라다니는 사람들의 평가들. 백현은 그것들을 떨쳐내고 과거로 돌아가고 싶었다. 예전에는, 예전의 자신은 어떻게 살았더라.
추억 속에는 세 사람이 살았다. 백현과 경수 그리고 찬열.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더라? 경수는 꿈을 찾아 떠나버렸다. 백현은 항상 과거의 행복을 되찾고 싶어 경수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리고 찬열이는, 찬열이는…….
-
백현과 찬열은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였다. 백현은 찬열의 큰 키도 좋았고, 쾌활한 성격과 누구에게나 다정한 모습도 좋았다. 하지만 그 마음이 자신의 모든 것을 망쳐놓을 줄은 생각지 못했다. 백현은 천천히 기억을 더듬었다. 겨울, 졸업, 고등학교, 작별, 사진, 고백. 모든 것은 변해가고 모두들 어른이 되어 가는데 감정만큼은 변할 줄을 모르고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것이 더 이상 가둬둘수 없을 만큼 백현의 몸 구석구석까지 꽉 들어찼을 때 백현은 감당할 수 없었다.
“찬열아 나 너한테 할 말이 있어”
그리고 백현은 결심했다. 오늘부터 어떤 식으로든지 자신의 세계는 부서져내리기 시작할 것이다. 부서져 새로운 것으로 다시 태어날 것인지 그대로 폭삭 주저 앉아버릴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지만 그는 부디 전자이길 바랬다.
“뭐 중요한 일이야? 어 왜 갑자기 진지해지고 그래 소름 돋게”
“찬열아”
“왜 그러는 건데?”
입을 떼기 시작했을 때 그는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부서진다. 그리고 완전히 산산 조각나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0.1%의 희망 따위는 존재 하지 않았다.
“찬열아 나 너 좋아해, 어릴 때부터 쭉. 그러니까 내말은 널 사랑한다는 말이야, 친구가 아니라.”
“.....”
“.....”
“백현아 거짓말 치지 마, 아니, 니가 뭔가 착각하는 거 일 거야. 아! 도경수가 너한테 장난치라고 시킨 거구나 그렇지?”
백현은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백현아 제발…….”
찬열은 고개 숙인 백현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그대로 뒤돌아서 떠나갔다. 정확히 말하면 도망쳤다. 추억들은 찬열이 뚫고나간 세계의 틈 사이로 균열이 일어나 점점 무너져갔다. 이미 짐작했던 일이었지만 백현은 고통스러웠다. 온몸의 피들이 요동쳤고 백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좋아한다고 말이라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계속 되뇌는 것뿐이었다.
3.
저번 주에 백현의 편지가 한통도 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 주도 거의 우편함이 빈 채로 끝나가고 있었다. 경수는 한번이라도 답장 해줄걸 그랬나 하고 내심 미안해했지만, 그와 편지를 주고받을 만큼 각별한 사이도 아니었으니 괜찮다고 합리화 시켜버렸다. 골목을 돌아 자신의 집에 도착한 경수는 그의 우편함에 꽂혀있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또 변백현 너냐 라고 중얼거리며 편지를 집어 들었을 때, 그 편지는 백현이 보냈다기에 는 너무나도 고급스러운 봉투에 있었다는 것을 알아챘다. 금박장식이 되어있는 편지를 경수는 찬찬히 뜯었다. 편지를 읽고 난 뒤 경수의 머릿속에는 편지속의 단어들이 둥둥 떠다녔다.
결혼
신랑
박찬열
오후 2시
모두들 참석
축하해주시길 바랍니다.
-
경수는 종인에게 치킨과 맥주를 사먹이고는 반 강제로 양복을 빌렸다. 그리고 택시를 탔다. 양복입고 대중교통을 타기에는 도저히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았다. 찬열의 결혼식장에 가면서 경수는 오만가지 생각을 다했다. 박찬열 평생 바람둥이처럼 여기저기 연애하다 늦게 결혼할 줄 알았더니 의외로 빨리하네, 신부는 존나 예쁘겠지, 축의금 얼마 안줬다고 삐지는 건 아닌가 모르겠네. 그리고 한사람의 인영이 떠올랐다. 변백현. 결혼식장에서 만나면 편지에 대해서 말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결혼식장의 분위기는 몹시 소란스러웠고 인맥이 넓은 찬열이기 때문에 하객들도 무척 많았다. 경수는 찬열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야 도경수!”
경수가 뒤돌아 봤을 때는, 옷을 깔끔하게 빼입고 머리도 한껏 세운 박찬열이 서있었다. 찬열은 경수가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보다 키가 무척이나 커졌고 안 그래도 잘생겼던 외모는 배우마냥 빛을 발하고 있었다.
“야, 너 몰라보겠다. 한참 찾았잖아. 그런데 왜 갑자기 결혼? 너 분명히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연애하면서 죽을 때까지 즐기다가 늘그막에 결혼하는 거 아니었냐?”
“그건 어릴 때 얘기지. 아무튼 경수야 와줘서 고맙다.”
“당연히 와야지, 그런데 백현이는? 너희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라고 나한테 자랑하지 않았냐. 그리고 나 백현이한테 할 말도 있는데.”
“백현이 안와. 아니 못 와”
“무슨 소리야 걔 나한테 몇 주 전까지 편지…….”
“백현이 죽었어. 예전에, 너 실용음악과 가려고 준비하고 나 한창 수능공부 할 때”
경수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머리가 어지러웠다. 백현이, 죽어, 뭐? 자신의 집 탁자에 어지럽게 널려져 있는 편지더미들을 생각하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근데 백현이가 나한테 편지를 보냈어! 몇 주 전까지. 원한다면 그 편지 가져다가 보여줄 수도 있어. 니가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니야?”
“그 편지들 내가 보냈어.”
“…….”
찬열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가 싶더니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백현이 어머니한테 전화가 왔어, 무슨 일인가 하고 받아보니 백현이가 죽었다더라고 그것도 자살로. 옥상에서 뛰어내렸다더라. 그리고 백현이 어머니께서 그 편지들 나한테 주셨어. 백현이 책상서랍에서 발견한 건데 보내지도 않고 쌓여져 있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내가 그 편지들 경수한테 보내겠다고 말씀 드렸지”
“…….왜?”
“…….이렇게라도 하면 백현이한테 사죄하는 기분이 들것 같아서, 백현이, 아마 나 때문에 그런 결심을 한 걸지도 몰라.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건데. 후회도 많이 했어. 그렇지만 난 혼란스러웠고. 지금도 사실, 백현이가 살아있다해도 무슨 표정을 하고 만나야 할지 잘 모르겠어.”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너네 친구잖아”
“나한테는 친구였지만 백현이한테는 아니었지. 미안해 경수야 귀찮게 해서, 백현이가 마음속으로 너 많이 의지 한거 같더라.
“.....”
“어쩔 수 없었어.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으니까,”
찬열은 쓸쓸하게 혼자 중얼거렸다. 찬열의 목소리에서 과거에 대한 회한과 그리움, 허망함이 잔뜩 묻어나왔다. 경수는 자신을 뒤로 한 채 하객들을 맞이하는 찬열을 바라보았다. 변백현, 박찬열, 결혼, 자살, 모든 것들이 그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찬열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 변백현이라는 이름 세글자는 경수를 동정과 연민이라는 감정으로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세상을 방황하다 끝내 죽음을 택했을 변백현의 모습이. 망망한 바다 위를 목적 없이 흘러 다니다가 끝내 가라앉고 마는 작은 돛단배처럼 위태로운 그가. 문득 경수는 백현이 졸업식 때 세 명 이서 사진 찍은 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경수야
나는 너랑 나랑 찬열이랑 이렇게 쭉 같이 있었으면 좋겠다. 10년 뒤에도 만나고 20년 뒤에도 만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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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그냥 기억나는 시중에 생각나서 썼습니다 내용쓰는거보다 제목쓰는게 더 힘드네요ㅎ처음 쓰는거라 이상한데도 보이고 으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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