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왕자들의 나라.
02.
(부제: 피 비린내)
"어,"
아침식사 후 오전 내내 창가에 걸터앉아 멍하게 창 밖을 내다보고있던 경수가
움찔하며 방 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무도 들어 오지 못하게 자물쇠를 대 여섯개쯤 달아 놓아 볼품없는 그의 방 문 틈 사이로 비릿한 냄새가 새어 들어왔다.
홀린 듯 방 문앞으로 걸어간 경수는 자물쇠를 모두 풀어내고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기 전, 경수는 한번 더 눈을 감고 숨을 깊이 들이마신다.
아까보다 더 선명하고, 짜릿하게 냄새가 올라왔다.
오랜만에 맡는 피 비린내에 경수는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방 문을 열고 계단을 따라 1층으로 내려가니 차갑게 얼어붙은 공기와 함께 조금 더 역하게 피 비린내가 난다. 상기된 표정으로 냄새의 근원을 따라 가니 백현에게 칼을 겨누고 있는 찬열이 보였다. 가득 모여있는 사람들 때문에 정작 경수가 찾는 그것은 보이지 않았다. 경수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터벅터벅 바닥의 시체로 걸어가는 경수에게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죽은거야?"
"도경수"
"에이, 벌써 죽었잖아"
"경수야"
갑자기 불쑥 나타난 경수 때문에 가장 놀란 건 준면이었다. 벽에 기대있던 몸을 일으키며 준면은 경수를 불렀다. 경수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지만.
아까 백현이 저 시녀를 콕 찝어 술을 가져오라 했을 때 부터 이상한 낌새를 느낀 준면은 그때부터 모든 상황을 다 지켜보고 있었다. 왠만하면 왕궁안의 시녀들과는 말을 섞는 일이 없는 백현이었기 때문에, 분명 다른 꿍꿍이가 있을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백현이 왼쪽 허리춤에서 칼을 꺼내들 때는 진심으로 놀랐던 준면이다. 그러나 준면은 굳이 백현을 말리지 않았다. 왕궁 전체에 퍼져나가는 피냄새가 너무 오랜만이라 준면은 잊어선 안 될 사람을 잊고 있었다.
여섯 왕자 중에서도 유난히 피에 민감한 한 사람.
경수가 시체 옆에 주저앉았다. 요즘 들어 밤에 찬열의 방을 자주 드나들던 여자였다. 그럴 줄 알았어, 하고 경수가 고개를 저었다.
경수가 바닥에 흥건하게 고인 붉은 액체에 손을 가져다 댔다. 빨간 물감을 바른 듯 붉게 물든 손바닥을 보고있던 경수가 코를 가까이 가져가 냄새를 맡는다.
그런 경수의 행동에 사람들은 경악했다. 백현과 찬열마저도 언제 분노했냐는 듯 황당한 표정으로 경수를 내려다봤다.
경수가 여자의 가슴팍에 꽂힌 백현의 칼을 보며 말했다
"다 끝난거야?"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찬열이 쥐고 있는 검을 쳐다보며 어린아이 같이 웃어보인다.
"아니면 이제 시작인거야?"
도경수는 살인(殺人)에 미쳐 있었다.
--------------------------------------------------
경수의 말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찬열은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은근슬쩍 검을 다시 집어넣었다. 준면은 도경수, 니 방으로 돌아가,하면서 주변에 모여 있는 하인들에게 경수를 데리고 가라고 지시했다. 사람들이 아무리 잡아당겨도 꿈쩍도 않는 경수를 보고 한숨을 내쉰 준면은 처음보는 경수의 모습에 넋을 놓고 있던 ㅇㅇ을 불렀다. 니가 좀 데려가. 니 말은 들을지도 몰라, 하고. ㅇㅇ은 주저했지만 절대 자신의 말을 거역하는 꼴을 못보는 준면의 성격을 알기에 조심스럽게 경수의 팔을 잡아 이끌었다.
의외로 경수는 순순히 이끌려왔다.
경수가 ㅇㅇ의 손에 이끌려 가는 동안 둘 사이에는 정적이 흘렀다.
경수의 방 문앞까지 왔는데도 방에 들어가지 않는 경수를 의아하게 보던
ㅇㅇ은 그제서야 여전히 자신이 경수의 팔목을 꼭 잡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화들짝 놀라며 손을 떼냈다.
"아, 아, 그럼, 저...는 이제 가볼게,"
"나는 니가 잘 때가 제일 좋아. 제일 예뻐"
문을 열고 들어가려던 경수가 다시 몸을 돌려 ㅇㅇ을 마주봤다. 뜬금없는 경수의 말에 ㅇㅇ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경수가 수줍게 웃는다.
"꼭 죽은 사람처럼 자거든. 숨소리도 안내고"
"네?"
당황해서 다시 되묻는 ㅇㅇ을 뒤로하고 경수는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닫힌 문을 쳐다보던 ㅇㅇ은 더듬더듬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근데, 내..가 자...는 건 언제 본,거야?"
ㅇㅇ은 유난히 잠자리에 예민했다. 아무데서나 잠들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다. 처음 이 궁전에서도 잠자리가 적응되지 않아 고생했던 ㅇㅇ이다. 이제는 익숙해져서 잠을 잘 자지만, 가끔씩 어두운 방 안이 생경한 느낌이 들때면 어김없이 밤 잠을 설쳤다.
왕궁에 오고 나서부터 단 한번도 ㅇㅇ은 그녀의 방이 아닌 공간에서 잠이 든 적이 없다. 누군가와 같이 잠든 적은 더더욱 없었다. 혼자 자는게 익숙한 그녀는 왕자들이 찾아와 관계를 맺고 난 뒤에도 그들을 그녀의 방에서 재운 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즉, 경수 뿐만이 아니라 이 성안에 사는 그 누구도 그녀가 잠든 모습을 본 적이 있을 리가 없다.
몰래 그녀의 방에 들어와, 그녀가 잠든 모습을 훔쳐보지 않는 한.
-----------------------------------------------------
경수와 ㅇㅇ이 계단을 올라가는 것 까지 확인한 준면은 사람들에게 이것 저것 지시하기 시작했다.
시체는 갖다 버리고, 피는 자국 남지 않게 깨끗히 닦아내고, 바닥에 깨진 유리조각이며 꽃 병이며 흔적없이 싹 다 치워버리라고.
그런 준면을 보던 백현이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평소에는 눈 앞에서 수십명이 죽어 나가도 눈 하나 깜빡 안하는 사람이 왠일이래?,하고 비아냥 거리는 백현에게
준면이 당연한거 아니야? 하고 대답한다.
"도경수가 한 번 정신 놓으면 어떻게 되는지 몰라서 그래?"
"알지, 존나 잘 알지"
내가 제일 잘 알껄? 백현은 큭큭대며 웃었다.
경수가 사람 피에 제대로 맛을 들인 건 백현 때문이었다.
"근데 그게 왜"
"아까 거기 ㅇㅇㅇ도 있었잖아. ㅇㅇㅇ만 없었으면 안 말렸어"
대충 방 안이 정리 되는 것을 본 준면은 방을 나선다.
옆에 딱 달라붙어서 어이구, 우리 준면이 형이 ㅇㅇ이가 도경수 손에 죽을까봐 걱정됐어요?,하고 깝죽대는 백현에게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닥쳐,하고 대답하는 준면의 귀가 살짝 붉게 물들었다.
-----------------------------------------------------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한창 왕위 싸움이 심할 때 였다.
그날따라 궁전 안이 잠잠해서 심심했던 백현은 뭐 재밌는 일 없을까, 생각하던 중 경수를 떠올렸다. 맨날 방 안에만 쳐박혀 있어. 음침한 새끼, 재수없다.하고 중얼거리던 백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백현처럼 칼을 잘 다루는 것도 아니고, 찬열이나 종인처럼 주먹질을 잘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준면이나 세훈처럼 따르는 이가 많은 것도 아니면서 경수는 늘 모든사람을 하찮게 여기는 듯한 눈빛을 갖고 있었다. 눈이 마주칠 때면 괜시리 자존심이 상해 욕지거리를 내뱉었던게 한 두번이 아니었다.
계속 그렇게 좆같이 쳐다볼 수 있는 지 두고보자,하고
백현은 몰래 성 밖으로 사람을 보냈다.
백현은 경수를 궁전 뒷 뜰에서 조금만 더 걸어가면 나오는 작은 창고로 불러냈다.
창고 안에서 경수를 기다리던 백현은 경수가 들어오자 마자 잽싸게 창고를 나와 문을 닫았다. 곧 백현이 불러 모은, 마을에서 주먹을 꽤 쓴다던 건달 여럿이 도착했다.
죽기 직전까지만, 알지? 죽이면 니들도 죽는다. 웃으며 말한 백현은 그들을 창고 안으로 들여보내고 옆에 놓인 짚단 위에 털썩 주저 앉아 담배를 물었다.
기분이 좋아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던 백현이었다.
한참이 지나, 창고 문이 열렸다.
피떡이 되어 질질 끌려 나올 경수를 예상했던 백현은 문을 열고 나오는 경수를 보고 얼어붙었다.
경수의 손에는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는 검이 들려 있었다.
왕자라면 누구나 기본적으로 옆구리에 검을 차고 다녔지만, 설마 경수가 검을 뽑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백현이었다.
단 한번도 경수가 검을 휘두르는 걸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얼굴과 손, 온 몸에 피를 덕지덕지 묻히고 나온 경수는 굳은 채 서있는 백현을 보고 입맛을 두어번 다셨다.
백현은 경수가 자신을 지나쳐 가자마자, 창고 안으로 달려갔다.
피 비린내가 진동하는 창고 안에는 차마 보기 힘들 정도로 난도질 된 시체들이 가득했다.
자신이 방금, 경수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도경수의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무엇을 자극한건지.
백현은 처음으로 경수가 무서웠다.
----------------------------------------------------------
낮에 백현과 찬열이 그 난리를 쳤던게 믿기지 않을 만큼 그날 저녁은 평화로웠다.
저녁식사를 마친 그들은 다같이 응접실에 모여있었다.
준면은 고풍스러운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고, 백현과 찬열은 언제 싸웠냐는 듯 티격태격하며 게임을 하고 있었다.
"아 씨발, 나오라고 내 차례라니까?"
"너 방금 했잖아! 이제 내가 할 차례거든?"
의외로 두 사람은 모두 체스를 좋아했다. 실력도 비슷해서, 서로 이겼다 졌다 하는게 재밌었는지 둘이 마주앉아 체스를 두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머리를 굴리며 체스판에 집중하는 두 사람과 아까 낮에 봤던 둘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쟤넨 도대체 뭐야?하는 생각에 ㅇㅇ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경수는 아까 잠깐 밖에 나왔던 뒤로 저녁도 먹지 않고 계속 방에서 나오지 않았고, 종인은 그녀 옆에 딱 달라 붙어 그녀의 머리카락을 이리 저리 꼬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백현과 찬열을 한심하게 쳐다보고 있던 ㅇㅇ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종인도 따라서 일어났다.
"어디가려고?"
"응, 바람 좀 쐬러"
ㅇㅇ의 말에 웃으며 같이가자. 하고 종인은 그녀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녀 역시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종인의 허리에 손을 두른다.
두 사람이 밖으로 나가자 마자 준면은 책을 소리나게 덮었다.
찬열은 손에 들고 있던 말을 체스판 위로 세게 던진다.
백현은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한 모금 더 깊게 빨고는, 씨발,하며 나머지 한 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
이상하게 오늘따라 밤 하늘엔 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까만 밤 하늘을 올려다보던 ㅇㅇ은 어깨에 둘러진 종인의 손을 신경질적으로 쳐냈다.
그런 그녀의 행동에 종인이 눈썹을 치켜올리자 그녀가 말한다.
"사람들 안보잖아"
"그래도 너무 딱 잘라내는거 아냐? 좀 섭섭한데"
그녀가 묶고 있던 머리를 풀어헤쳤다. 가볍게 찰랑이는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은은한 향기가 퍼져나갔다.
"그러던지"
"
차갑게 말하고는 앞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던 종인이 피식, 웃었다.
"어디서 저런 걸 구해왔을까, 나도 참.."
느긋한 발걸음으로 그녀의 뒤를 쫒아 걸어가는 종인이다.
-----------------------------------------------------
공원을 두 바뀌쯤 돌았을까, 피곤에 쩔어 방에 돌아온 그녀가 촛불을 켤 생각도 하지 않고 어두컴컴한 채로 옷을 갈아입으려는데 누군가 갑자기 뒤에서 그녀를 끌어 안는다.
문 열리는 소리 못 들었는데. 그녀를 꽉 끌어안고 놓아주지 않던 남자의 손이 점점 그녀의 허리를 타고 내려가 그녀의 치마를 들춘다.
무릎 깨에서 허벅지까지. 살살 쓸어 올리던 손이 점점 더 안쪽으로 향하는데,
갑자기 들이닥쳐 이런 짓을 할 사람은 찬열뿐이다 싶어 그녀가 남자의 손을 저지하며 말했다.
"박찬열, 또 왔어? 나 오늘은 피곤한데"
귓가에서 뜨겁게 쏟아지던 남자의 숨소리가 멎었다.
곧 남자가 그녀의 머리채를 거세게 휘어잡고 억지로 고개를 돌려 그녀와 눈을 맞춘다.
"뭐? 다시말해봐, 누구?"
-----------------------------------------------------------------
![[EXO/징어] 미친 왕자들의 나라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부제: 피 비린내)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1/c/5/1c5cc9c82c60681f1dc49996a6155a0e.jpg)
![[EXO/징어] 미친 왕자들의 나라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부제: 피 비린내)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7/9/d/79d0cdc45516f4e91525cf9d5e365f30.jpg)
![[EXO/징어] 미친 왕자들의 나라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부제: 피 비린내)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4/b/d/4bd917cf9e0a4de2d9e8caecc11724cd.jpg)
![[EXO/징어] 미친 왕자들의 나라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부제: 피 비린내)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7/5/b/75b527bc64e3b040091881d61eb1a786.jpg)
![[EXO/징어] 미친 왕자들의 나라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부제: 피 비린내)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8/c/28cda2f466a75cbd3e2cc680e2e4df8b.jpg)
![[EXO/징어] 미친 왕자들의 나라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부제: 피 비린내)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a/6/b/a6b72a405afb6c9a5f50577dd713129e.jpg)
사랑하는 내 독자님들... 나 당황....
왜 때문에 나 초록글??
격한 반응 감사합니다♥♥♥♥♥♥♥♥♥♥♥♥
암호닉은 다음글에 싹 정리해서 찾아올게요!!
사랑하는 독자님들 안녕♥
즐거운 주말 보내요!
참, 김연아 선수. 너무 고생했어요. 고맙고, 자랑스럽고, 감사하고.
스스로에게 과분함을 모르고, 오히려 당연히 여기던 그 선수는 머지 않은 날에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자만을 반성하는 날이 올거라고 생각해요.
그럼 진짜 안녕!
아
(작
ㅇㅇ
다음 글
이전 글
이 시리즈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현재글 [EXO/징어] 미친 왕자들의 나라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부제: 피 비린내) 357
11년 전공지사항


인스티즈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