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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슨 전체글ll조회 510

"좋은소식은 네 일주일 당직이 나랑 완벽하게 겹쳤다는거."


마지막 말을 남기고 지호가 뚜벅뚜벅 휴게실 문을 열고 나갔다. 엄마 난 이제 어떡하죠? 하며 민혁을 쳐다봐도 같이 한숨을 쉬어주는것 밖에는 해줄 수 있는게 없다. 거기다 방금 헥헥거리며 휴게실로 쿵쾅쿵쾅 들어와 웃으며 저지방 바나나우유를 건네는 표지훈은 센스없게 하얀 빨대를 가져왔는걸.
어차피 경이 일을 하고 있는 동안 띵가띵가 놀고 있을 여유로운 영상의학과 민혁 엄마가 알아서 표지훈을 때찌때찌 해주실테니 엎드려서 바나나우유를 쪽쪽거리며 먹다가 스케줄표를 확인하면... 수술이 하루평균 세건. 이 미친듯한 스케줄표를 누가 짰는지 확인해보면 역시 김유권. 자신한테 원한이 있는건지 따지러 가면 항상 헤실헤실 웃는 얼굴에 홀려 밥은 먹었어요? 하는 시시콜콜한 질문에 대답을 해주고 따지려던 스케줄은 까먹고 돌아와 버리게 된다.


"엄마 나 밥먹으러 가요."


지금 김유권 선생보다 중요한건 경의 배고픔이었다. 타고난 먹성이 좋은 편이지만 하루에 수술 세건을 감당하다보면 아무리 의사라도 입맛이 똑 떨어지기 마련이라 경은 수술이 시작되기 전에 구내 카페라도 가볼까 하고 일어섰다.
특이한 케이스로 자신의 천재적인 머리를 감당하지 못하고 17살에 의대에 입학해 인턴기간도 건너뛰고 약한 몸덕분에 군대도 면제 받은 경은 스물넷. 어린나이에 전공의 이름표를 달았다. 따라서 카페로 가는길에 나이로써는 경의 친구인 의대생들에게 보기좋게 웃으며 인사를 하는 경이다.
경이 병원이란걸 잊은건가 싶을 정도로 큰소리로 친구들의 이름을 불러 인사를 받아내는 도중에 다른곳을 보며 걷다보니 벽에 부딫히고 말았다. 벽치곤 좀 따듯하고, 말랑말랑... 잠깐만, 벽이 말도 하던가?


"박경군?"


기껏 카페 앞까지 다 와서는 경이 또 천적을 만나버렸다. 벽이 아니라 우지호였다. 경은 그 좋은 머리를 빠르게 굴리기 시작했다. 애교작전은 상황을 더 악화시키니 패스, 죄송하다고 해봤자 당직이 늘어날테니 패스. 열심히 생각하는 경을 보고있던 지호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자꾸 눈에 띄네."
"에?"
"박경군, 혹시 나 좋아해?"
"에엑?"
"아님 말고."


아침부터 말도 안되는 소리를 들은 경이 에엑? 하고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질렀다. 팔을 엑스자로 만들어 방어태세를 취한 경이 우지호선생을 올려다 봤다. 허어어어어얼 어떻게 저런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할 수가 있어? 미친놈이 분명해. 라고 생각하며 경은 걸음을 재촉해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언제 또 우지호를 마주칠지 불안한 경은 '드시고 가시겠어요?' 라는 점원의 말에 테이크 아웃을 요청했다. 민혁이 좋아하는 허니브레드 하나, 표지훈이 좋아하는 도넛도 서너개, 그리고 경 자신이 먹을 빵을 여러개 골라 봉지를 손에 들고는 조심조심해서 -우지호선생을 피해서- 휴게실로 올라갔다.
휴게실에 도착해서 봉지를 성의없게 테이블 위에 툭 떨어뜨리고는 민혁이 뜯어 손에 쥐어준 빵을 우물우물-. 그렇게 좋아죽는 빵을 무표정으로 씹고 있는 경에게 보다못한 민혁이 말을 걸어왔다.


"무슨 일 있나?"
"...엄마! 나 우지호 얼굴 어떻게 보지?!"
"무슨일 있나? 니 수술 어시하는거 절반이 우지호 수술인데 우째."
"우지호가 나보고 자기 좋아하녜"


민혁이 앞뒤는 다 잘라먹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 경을 멍하니 쳐다봤다. 아기새가 왜 또 이러실까. 친절히 냅킨으로 입을 닦아주며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면 꽤 놀라운 대답을 순순히 다 뱉어버리는게 경이다. 우지호 그 양반이 우리 경이를 잡아갈라 카는구만. 민혁이 지훈에게만 들리도록 이야기했다.


"그럼 니 내가리 우째 볼까 고민해야 되는 건 우지호 아이가? 니 우지호 좋아하나?"
"아닛!"
"그럼 된거 아이가."


우지호를 좋아하냐는 말에 소리를 빽 질러버린다. 경이 그 소신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할텐데, 걱정하며 한숨을 내쉬는 민혁의 모습이 진짜 엄마같이 보여 지훈은 도넛을 집어먹으며 오오- 하는 감탄사를 뱉었다.


"지훈아, 경이 잘 지켜라. 경이 저거 잡아갈라꼬 기를 쓰는 놈들이 천지삐까리다."
"옙!"
"매 주제에 우리 아기새 데려가면 잡아 먹기밖에 더하겠나. 나이먹고 그라믄 못쓰제."


쯧쯧- 하고 혀를 찬 민혁이 경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엄마형이 지켜줄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면 안된다 아그야. 먹여서 키웠더니 왠 사내놈을 데려와서 결혼하게 해주세요. 라고 말하는 딸들의 아버지가 이런 기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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