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O/도경수] 몰래 사내연애했던 구남친이랑 같은 부서 발령받은 얘기 1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9/f/5/9f51dc101399f5fdeedb6c9fe652b71c.jpg)
"ㅇ대리."
"…예?"
"이거, 변팀장님이 기획안 다시 해오라십니다."
"아…예."
무표정한 얼굴의 도대리가 내게 서류철을 건넨다. 나는 얼떨떨한 얼굴로 그것을 받아들었다. 이게 얼마만의 대화더라. 할 일이 끝난 도대리, 도경수는 아주 잠시동안 멍청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그 얼굴을 싹 지우고서는 뚜벅뚜벅 제 자리로 돌아갔다. 저 너머 파티션에 가려지다 만 둥그런 머리통이 보인다. 도경수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방금의 그 철저히 사무적인 대화가 그 날 이후로 우리의 첫 대화라는 것을, 너는 알고 있을까. 나는 한참동안 그 머리통만 바라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
도대리, 도경수는 내 남자친구였다.
물론 그건 지금으로부터 딱 한달 전까지만 해당되는 이야기다. 그래, 우리는 헤어진 사이다. 도경수와 나는 아주 우연히 사랑에 빠져서 똑같은 반지를 나눠끼웠었고, 어쩌다 사내에서 마주치면 사랑스러운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며, 주말이 되면 데이트를 했다. 정말로 행복한 순간들의 나날이었지. 나는 그 순간이 눈물나도록 사랑스러워서 우리가 당연히 결혼을 할 것이라는, 바보같은 생각을 했었다.
도경수가 동료 여직원이랑 키스하는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
"어제 인사발령 공고 붙은거 봤어? 자기 이번에 기획팀으로 가드라?"
몰래한 사내연애라 헤어진 후에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어차피 그 일을 아는 사람은 도경수와 도경수와 키스했던 그 여직원, 나 밖에는 없었으니까. 시작도, 끝도 조용했던 연애. 게다가 일하는 부서도 달라서 마음만 먹으면 서로 마주칠 일도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헤어지고 나서도 불편하게 서로의 얼굴을 대면할 일도 없었다. 그야말로 그 전의 일상으로 아무렇지 않게 복귀하기에는 정말 완벽한 조건이었는데. 정말 그랬는데 말이다.
"맨날 대리대리 하더니만, 드디어 대리 달았네. 축하해."
"하하…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요번에 기획팀 작정하고 사람 뽑았나봐. 보니까 사내에서 일 잘한다고 소문난 사람들은 다 거기로 갔데."
"그, 그래요? 전 잘 모르겠는데."
"아냐 아냐, 그 저기 부서 도경수씨도 이번에 대리 달고 기획팀 가던데? 여기 변대리도 팀장자리 받아서 거기로 발령나구. "
"……."
"어우, 나는 언제 쯤 승진하려나~"
이렇게 뒤통수를 맞을줄 누가 알았겠냐고.
김대리의 말처럼, 그토록 기다렸던 승진인데 난 전혀 기뻐할 수 없었다. 그건 당연한 거였다. 전 남자친구와 헤어진지 삼 주가 다 되어가는 찰나였고, 그 끔찍하고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 채 잊혀지기도 전에 얼굴을 마주하게 생겼으니. 왜 하필이면 그 많은 팀들 중에 도경수랑 같은 팀이냐고, 씨발.김대리가 혼자 떠들거나 말거나나는 속으로 쌍자음이 가득한 육두문자를 내뱉는 것과 함께 앞으로 매일마다 펼쳐질 어색한 상황들을 머릿 속으로 떠올리며 그저 허탈하게 웃기만 했다. 사표를 낼 배짱과 여유도 되지 않는 힘 없는 월급쟁이가 그 상황에서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뿐이었다.
그 날 저녁에는 부서 내 막내였던 나의 승진을 축하하는 회식이 있었지만, 정작 그 주인공인 나는 말도 안되는 핑계를 대고선 내 좁디 좁은 원룸으로 달려가 혼자서 눈물의 깡소주를 깠다. 8평짜리 허름한 원룸에서 혼자 마신 술은 정말로 끔찍할만큼 쓴 맛이 났다. 그래도 난 꿋꿋하게 자작을 하고 그것을 입에 털어넣기를 반복했다. 그 와중에도, 빌어먹게 잘생긴 그 얼굴이 눈 앞에 어른거려서 나는 혼자 도경수 욕을 하다가 술기운을 핑계삼아서 펑펑 울었다. 참 우습지도 않지. 더 웃긴 건, 그 난리를 피우고서 꾼 꿈에서 본 얼굴도 도경수였다는거였다.
*
헤어진지 삼주만에 만난 얼굴은 그리 좋아보이지도, 나빠보이지도 않는 얼굴이었다.
새 팀에 발령 받은 첫 날, 여전한 덩치로 언제나 즐겨입던 푸른 셔츠를 몸에 걸친 도경수는 사무실 안에 들어오는 나를 발견하곤 제 입술을 꾹 깨물었다. 나는 그것이 도경수의 심기에 거슬리는 일이 있을 때마다 나오는 못된 버릇이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다른 여자와 키스를 하고 헤어진 전 여자친구를 마주한 채 입술을 깨무는 도경수. 거지같이 헤어진 후에도 여전히 전 남자친구의 버릇을 꿰고있는 나.
둘 다 별꼴이었다.
*
"자자, 오늘도 다들 화이팅해서 일합시다!"
오늘도 어김없이 변팀장의 힘찬 목소리가 노곤한 팀원들의 정신을 깨운다. 새 팀에 발령받은지도 벌써 일주일이나 지났다. 그리고 그 말은 곧 도경수와 헤어진지도 한 달이 다 되어간다는 얘기도 됐다. 우리는 일주일이 지날 동안 서로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어쩌다 한번 눈이 마주칠 법도 했지만, 첫 날 이후론 우리 사이엔 아무런 접점이 없었다. 도경수는 도경수대로, 나는 나대로 새로운 직급과 업무에 적응한 채 꾸역꾸역 일만 했다. 그 덕분에 사내에선 이번에 새로 꾸린 기획팀에 대리 두 명 대신 일하는 기계 두 개가 들어왔다는 웃기지도 않은 농담도 한 번 돌았다. 그만큼 우리 둘은 철저하게 서로를 외면하면서 지냈다.
도경수가 건네고 간 서류철을 뒤적거리면서, 기획안을 어떻게 수정할까 고민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내 어깨를 치는게 느껴졌다. 슬쩍 뒤를 돌아보니 커피를 든 변팀장이 보였다. 왜그러세요? 조용히 입모양으로 물으니 변팀장은 말없이 씩 웃으면서 손에 들고있던 커피를 내게 슥 내밀고 말했다.
"그냥, 많이 피곤해보이셔서."
"……."
"힘내시라는 의미에서 드리는거예요."
"네? 아,"
"그거, 어차피 기한은 내일 오후까지니깐 천천히 하시고."
"아…감사합니다."
"그럼 열심히 해요."
나는 얼떨결에 커피를 받아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만족스럽다는 듯 변팀장이 웃으면서 제 자리로 발걸음을 옮긴다. 괜히 한번 컵을 감싸잡는데 바로 사와서 올라온 듯 테이크아웃 컵에 끼워진 종이홀더가 다 따끈따끈했다. 나만 이거 이렇게 받아도 되나? 기획안 빠꾸낸거 미안해서 준건가. 대충 주변을 둘러보니까 다들 조용히 일만 하는게 여기서 변팀장한테 커피를 받은건 나 밖에 없는 것 같았다. 홀짝, 한모금을 들이키니 온 입 안에 단 맛이 퍼졌다. 적당히 따듯하고 적당히 단 맛. 누군가가 그런 나를 쳐다보는게 느껴졌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받은 커피를 한번에 쭉 들이킨 후 다시 모니터 안 화면에 집중했다. 아니, 집중하는 척 애를 썼다. 그 누군가가, 파티션 너머로 느껴지는 그 시선은, 도경수였기 때문에.
![[EXO/도경수] 몰래 사내연애했던 구남친이랑 같은 부서 발령받은 얘기 1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4/d/7/4d7851ac7269e44b86eb14c9d4e17105.jpg)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덧 점심시간이었다. 딱히 밥생각이 없어서 같이 식사하러 가자는 제안도 모두 거절하고 꿋꿋이 앉아있었더니 사무실 안엔 금세 정적이 찾아왔다. 나는 나 말고 누가 또 사무실에 있나 싶어서 내 책상 파티션 너머로 빼꼼, 눈만 내밀고 사무실 안을 두리번거리다가 그 너머로 모니터를 쳐다보던 도경수랑 눈이 마주쳤다.
"……."
"……."
그래, 우리 사이에 무슨 말을 더 하겠어. 먼저 눈을 피한건 나였다. 그냥 밥 먹으러 나갈 걸. 사무실 안에 남아있는 사람은 나랑 도경수 뿐이었다. 갑자기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왔다. 아, 빌어먹을. 도경수가 다른 여자랑 키스를 하고, 우리가 헤어진지는 이제 고작 한 달 밖에 되지 않았는데. 숨막히는 어색함을 애써 떨쳐내고자 모니터에 떠있는 엑셀창을 쳐다봤지만, 내 머릿속은 이미 이 어색한 상황에 대한 생각들로 가득해서 나는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타닥, 타닥, 타닥,
파티션 너머의 도경수가 타자를 치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여전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온통 그 소리에만 집중을 했다. 파티션 위로 동그랗게 솟아올라와 있는 도경수의 머리통은 어떠한 미동도 없었다. 이럴수록 나만 더 등신이 된다는 걸 알면서도 도경수가 타자 치는 것을 그만둘 때 까지, 사고회로가 멈춘 사람처럼, 난 계속 그렇게 앉아만 있었다.
일정한 속도로 나던 고요한 소음이 어느 순간에 멎어진다. 타자를 치던 것을 멈춘 도경수는 한동안 침묵을 유지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내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발소리가 가까워질수록, 내 심장이 두근거리는 속도도 점점 빨라진다. 마침내 내가 앉아있는 책상 바로 옆까지 다가온 도경수가 옮기던 발걸음을 멈추고, 나는 책상 밑에 있는 나의 두 손을 꽉 맞잡았다. 맞물린 손바닥 새로 식은땀이 흘렀다. 내 머리 위에서, 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도경수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
"ㅇ대리."
"……."
"ㅇㅇㅇ."
"……."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
"이왕 이렇게 된거 불편하게 회사 생활 하지는 말자. 서로."
"……."
"…좀 늦었는데."
"……."
"잘, 부탁해."
그렇게 말한 도경수는 잠시 머뭇거리다 내 어깨 위로 손을 한번 올려놓더니, 이내 사무실 밖을 빠져나갔다. 나는 책상 위에 머리를 그대로 박았다. 불편하게 회사 생활 하지는 말자. 잘 부탁해. 방금까지 도경수가 내뱉고 간 말이 조각 조각 흩어져 내 귓전에 맴맴, 멤도는 것 같았다. 덤덤했던 도경수의 목소리. 멍청이처럼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가슴 속이 뭔가로 꽉 막힌 것처럼 답답했다.
인정하기 싫었다.
나는 아직도 도경수를 좋아한다.
***
한 두 달전에 올렸었던 글인데 갑자기 막 이게 쓰고 싶더라구요 허허 그래서 다시 올려봅니당
읽어보면 중간중간 어색한 문장 천지에 글 흐름이 막 뚝뚝 끊기고 그러는데 이걸 어떻게 수습을...^^;;;
대충 수정은 했는데...하긴 했는데....더 이상은......(먼산)
어쨌든 끌고 갈 수 있는데까진 끌고가보고 싶어요....
모쪼록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들 감사합니닷 쌩유!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없음

인스티즈앱
[단독] "주사이모는, 링거왕"…박나래, 불법의료 증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