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뜩 무거운 발걸음으로 걸어온 경수는 천천히 제 앞의 의자를 끌어당겼다.경수가 자리에 앉자 엉덩이가 맞닿은 의자부분은 너무나 써늘하였다.경수의 주위를 겉도는 공기들도 마찬가지였다.길게 늘어진 식탁의 끝자리엔 백현이 앉아있었다.칼을 들어올리며 달그락 소리를 내었다.백현은 새빨간 과일들로 빼곡히 장식된 생크림 케이크 위에 칼을 꽂아넣듯이 깊숙이 찔렀다.그리고 칼을 다시 수평으로 놓아 케이크를 조각내어 잘랐다.조각케이크를 빈접시에 옮겨놓았다.케이크 층층마다 검붉은 시럽이 새어나왔다.흰접시도 금방 붉게 물들였다.케이크가 담긴 접시를 경수앞에 들이밀었고,턱끝으로 가리키며 말하였다.
“ 먹어. ”
“ ... 잔인해. ”
포크에 손도 못대는 경수를 지켜보던 백현은 피식,바람빠지듯 웃음을 흘렸다.비소섞인 웃음소리는 경수의 귓전에 맴돌았다.경수는 제 마음대로 분노를 표출하지도 못해 소심스레 제 허벅지위의 주먹만을 세게 말아쥐었다.부르르 떨리고있는 어깨를 흘깃 보던 백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 진짜 잔인한게 누굴까? ”
백현은 알면서도 묻는 듯이 능청스레 얘기하였다.입꼬리가 여전히 올라가있었고,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경수에게 다가갔을땐 꽤나 걸음걸이가 여유로웠다.경수는 슬쩍 백현의 눈치를 봐가며 점점 몸이 굳어간다는 것을 느꼈다.
“ 정말 맛있을거야. 한번 먹어봐. ”
백현이 무심하게 아무렇게나 손가락끝에 붉은 색이 스며든 생크림을 묻히곤 경수의 앞에 들이대었다.경수는 끝까지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고 백현은 그를 내려다보며 눈썹을 꿈틀거렸다.나머지 한 손으로 경수의 턱을 잡고 억지로 벌려진 입 안으로 백현은 제 손가락을 쑤셔넣었다.마구 허덕이는 혀를 무겁게 짓누르고,백현의 손가락이 경수의 혀 위를 핥아내리듯 생크림을 묻혔다.
“ 삼켜. ”
경수의 눈시울을 붉히며 백현을 노려보았다.경수는 백현에게 무슨 짓이냐고 당장이라도 화내고 싶었었다.경수는 마지못해 삼켰고 미간을 찌푸렸다.그 반대로 활짝,백현의 얼굴엔 화사한 미소가 번졌다.
“ 처음 먹는 인혈(人血)은 절대 잊지못해. ”
백현은 제 혀를 길게 내밀곤 제 손가락을 다시금 핥아올렸다.여전히 손가락에 남아있던 소량의 생크림과 경수의 타액을 한꺼번에 삼켜버렸다.백현은 경수에게 시선을 떼지않은채 말을 이어나갔다.
“ 나중에도 계속 생각나게 될거야. ”
“ ... ... . ”
“ 또 먹고싶어서 환장하게 될 껄. ”
백현은 안그래도 처진 눈꼬리를 더 길게 늘어뜨리며 푸스스 웃음을 터뜨렸다.경수는 당장 자리에서 벅차고 일어났고,아직 배잡고 낄낄대고 있는 백현을 뒤로한채 화장실로 향하였다.화장실에 들어서자마자 좌변기를 붙들고 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뜨겁게 녹아내려버리고 생크림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불투명한 액을 뱉어냈지만,붉은 피는 도저히 나오질 않았다.경수는 결국 화장실 바닥에 주저내려앉듯 몸을 쓰러뜨렸고,주륵 눈물을 흘려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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