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O/세종] 차가운 숨 07
w. 발발
"오랜만이다, 아들."
"오느라 고생했겠네-"
"늘상 있는 일인데 뭐. 얼굴 좋아졌다, 아들. 요즘 컨디션 괜찮아?"
"엉, 요즘 좀 좋네."
한 번 안아보자, 우리아들-
세훈의 엄마는 여전히 늘씬한 몸으로 이젠 저보다 훌쩍 큰 세훈을 꼬옥 끌어안았다.
제가 닮은 차가운 인상의 엄마는 제게 관심없어 보이지만, 이렇게 만나 저를 안아줄 때 터질 듯이 뛰는 엄마의 심장을 느끼면 저에 대한 애정의 깊이를 알 수 있었다.
뭔지 모를 애틋함.
모든 부모가 자식들에게 그러하겠지만, 그런 애틋함에 세훈은 아픈 저를 두고 일에만 매진하는 엄마를 미워할 수 없었다.
"아빠랑은, 통화했어?"
"안했어, 관심도 없을걸-"
이제 다 컸다고 아들 앞에서 막 말하네-
아무렇지 않게 내뱉지만 말꼬리에 서운함이 붙어있는 엄마의 대답에, 세훈은 짐짓 혼내는 투로 말했다.
그런 아들의 모습에 대견하다는 듯 세훈의 머리를 쓰다듬은 엄마가 말을 잇는다.
"엄마 피곤하다, 아들. 선물하고 먹을 거 사왔으니까 꺼내봐, 엄마 좀 씻고 올게."
말을 마치고 방으로 들어가는 엄마를 향해 고개를 한 번 끄덕인 세훈이 트렁크를 열어 제 선물꾸러미를 찾았다.
세훈이 즐겨쓰는 브랜드의 새로 나온 한정판 바디워시패키지.
두 개였다.
엄마는 항상 선물을 살 때 두 개를 사곤 했다.
"아들, 일 년만에 재회한 기념으로 근사한 데 가서 저녁이나 먹을까?"
샤워를 마치고 거실 쇼파에 나란히 앉아 책을 읽는 세훈을 지그시 바라보던 엄마는, 저녁 때가 다 되가는 시계를 확인하고 세훈에게 물었다.
엄마는 항상 세훈을 아들이라 지칭했다.
그래, 나 칼질하고 싶어-
오케이- 옷 입고 기다려, 엄마도 옷 좀 갈아입자.
연 중 행사 꼴로 부모님과 함께 찾는 A호텔 레스토랑 스테이크는 명성과 가격에 보답하듯 육질이 아주 좋았다.
적당히 익혀서 피가 비치는 속살과, 한 입 씹었을 때 나오는 풍성한 육즙은 없던 입맛도 돋구었다.
한창 먹을 때인 세훈은 2인분을 주문해, 벌써 한 접시를 해치운 상태였다.
그 동안의 얘기를 두런두런 나누며 식사를 하던 엄마가 와인을 마시며 혼잣말처럼 내뱉었다.
"아들이 스무 살이 다 되어가는구나.."
"세월빠르지, 엄마."
"그러게... 슬퍼진다.."
왜, 내가 커가서?
세훈의 반문에 엄마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깊이 들여다본 엄마의 눈에 슬픔이 어려있는 듯도 했다.
세훈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 고개를 옆으로 까딱인 후 제 몫인 무알콜 샴페인 잔을 들었다.
"엄마, 나 뭐 하나 물어봐도 돼?"
"그럼~"
"...왜 그렇게 아빠랑 사이가 안 좋아? 살면서 그런게 아니라 나 아주 어릴 때부터 그랬잖아-"
"그랬나.."
"뭐 정략결혼이라도 한거야?"
두 집안 다 풍족하다 해도 뭐 재벌 2세들도 아니고.
샴페인을 홀짝이며 대답을 기다리는 세훈에게 엄마는 짧게 한숨쉬며 입을 열 듯 말 듯 달싹였다.
세훈은 재촉하지 않고 엄마를 기다렸다.
"니네아빠가 꼭 필요한 순간에 엄마 곁에 없었어.. 그래서 엄마는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고.. 그래서 그래.."
말을 마친 엄마가 자조적으로 웃었다.
아마도 일에 관한 사건이였겠지..
병적인 워커홀릭인 제 부모를 떠올리며 생각보다 단순한 문제였군- 하며 대수롭지 않게 치부해버리면서도, 그 웃음이 슬퍼 세훈은 잔을 들고 있는 엄마의 손을 감쌌다.
"당신은 꼭 부정적으로만 생각해! 시도도 안 해보고 왜 단정지어?"
늦게 까지 다운받은 영화를 보다가 이제야 옅게 잠들었던 세훈이 시끄러운 소리에 눈을 떴다.
"항상 이런 식이지.. 매번 나만의 잘못인 양 추궁하기 급급하잖아!"
어리고 아픈 아들에 대한 그나마의 배려였는지, 세훈의 부모님은 항상 세훈이 집에 없을 때만 싸웠다.
그래서 집안 분위기 상 싸움이 잦다는 것은 뻔히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그 내용을 접하는 것은 처음이였다.
세훈은 살며시 닫혀있던 제 방문을 조금 열었다.
"됐다, 그만 하자. 당신하곤 말이 안 통한다는 걸 내가 잊고 있었어. 끊어."
아쉽게도 끝나버린 싸움에 세훈은 입맛을 다시며 방문을 닫았다.
기억이 존재하는 대여섯 살때부터 지금까지 싸움의 패턴을 보면 분명 한 가지 일로 싸우는 듯 했다.
무엇이 제 부모님을 십 여년 간 냉정상태로 만들었는지 궁금해지는 세훈이였다.
"엄마오니까 좋지?"
"그렇긴 한데, 전화로 싸워대서 시끄러워 죽겠다, 아주."
"대박.. 거의 이십 년을 살았으면 무뎌질만도 할텐데.. 니네 부모님은 진짜 정열적이시다."
함께 공부하러 집 근처 카페에서 만난 종인과 세훈의 관심은 세훈의 부모님에게로 향했다.
분명 일적인 부분으로 싸우는 거 같아. 사내커플이잖아. 근데 그런거라면 진짜 병적인거지.
먼 곳을 쳐다보며 읖조린 세훈이 이제 생각났다는 듯 비스듬하게 앉아있던 자세를 바로 하고 제 가방을 뒤져 엄마가 사준 바디워시시리즈 패키지를 꺼냈다.
"가져, 엄마가 사왔더라. 이거 한정판이래."
"엥? 나 또 줘?"
"우리 엄마 맨날 똑같은 선물을 두 개씩 사오잖아. 하난 쓰고 하난 장식하라고 그러는 거 같은데, 난 그런건 취미없으니까."
"올- 고마워, 자기? 이거 너가 좋아하는 데 꺼네?"
생각지도 못한 선물에 장난스럽게 고마움을 표하는 종인이다.
이제 이틀밖에 안되었는데도 함께 있고 싶어 죽겠다는 듯 마주 본 서로를 놓치지 않고 쳐다보는 둘이였다.
테이블 위로 펴져있는 제 희고 차가운 손을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훑는 종인에 간지러운 느낌이였다.
종인의 손은 언제나 따뜻했다.
종인이 저를 만지면, 그 온기가 저에게 전달되는 것 같았다.
손톱 잘라야겠다, 여자 손 같애.
이렇게 마디굵은 여자봤냐?
마디가 툭 불거진 전형적인 남자 손인 제 손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종인이 비웃었다.
그냥 이뻐, 넌.
종인의 비웃음에도 굴하지 않고 진지하게 주장하는 세훈에 시원한 카페임에도 이마에 식은땀이 나는 것 같은 종인이었다.
이제 공부하자-
쑥스러운 이 상황을 회피하려는 듯한 종인의 말에, 세훈은 언제그랬냐는 듯 교재속으로 빠져들었다.
그 모습을 약간 붉어진 얼굴로 쳐다보던 종인도 이내 책을 폈다.
항상 시간은 빨리 흐르지만, 일 년에 두,세 차례 부모님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의 시간은 이루말할 수 없이 빨랐다.
일주일이란 짧은 만남으로 아쉬움을 달랜 채 엄마는 또다시 트렁크를 채우고 있었다.
어제 낮, 정기내원일은 아니지만 본인이 직접 의사선생님과 면담해야겠다며 세훈을 끌고 병원을 갔다 온 엄마의 눈시울이 붉었었다.
아들.. 엄마가 미안해..
점점 호전되어 가긴 하지만 여전히 건강하지는 못한 세훈을 떼어놓고 떠난다는 것이 못내 마음쓰이는 엄마였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일을 관두고 세훈을 보살필 생각은 없는 커리어우먼이였다.
이럴 때보면 진짜로 엄마에게 있어서 자식이 중요한지, 일이 중요한지 따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아빠와의 비호적인 관계에서 일만이 엄마의 유일한 탈출구라는 것을 잘 아는 세훈이기에, 매번 떠나는 엄마를 붙잡지 못했다.
거실에서 짐을 챙기는 엄마의 손이 답지 않게 더뎠다.
이번 출국은 유달리 감정적이라고 생각한 세훈이 엄마의 등을 끌어안았다.
"엄마 왜이렇게 약해졌어.."
세훈의 위로에 복받쳤던 미안함이 터진건지 엄마는 끝내 눈물을 보였다.
처음보는 엄마의 눈물이였다.
세훈은 미세하게 들썩이는 엄마의 등을 한 번 더 꼬옥 끌어안고는 조용히 제 방으로 들어갔다.
엄마는 자존심이 강해서 약한 모습보이는 걸 싫어한 탓이였다.
"어, 내일 아침 비행기야. 세훈이 상태도 그나마 좋아지고 있대."
내일 아침이면 또 언제 볼 지 모르는 생이별에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던 세훈의 귓가에 흐릿하게 엄마의 통화소리가 들렸다.
아빠와의 통화인 듯 해 방문을 살짝 연 세훈이 문지방에 올라서서 열린 틈 사이로 귀를 기울였다.
"사나흘가지고 뭘 찾았겠어.. 어.. 연락처 남겼어. 여보,! 좀!"
잠잠히 대화한다 싶었더니 그새 소리가 커진다.
세훈은 뭘 바랬나 싶어 문고리를 잡아 당겼다.
"내가 왜 세훈이를 세훈이라고 부르지 못하는지 당신이 알아?!"
엄마의 입에서 나온 제 이름에 문을 닫던 세훈이 멈칫한다.
기억 속에 엄마는 저를 세훈아-하며 불러본 적이 없었다.
항상 아들, 내 새끼 라고 지칭했다.
그 동안은 엄마의 버릇이려니 생각했는데, 이유가 있었다니.
세훈은 혀를 내어 입술을 축이고는 닫으려던 문을 멈추었다.
"세훈이를... 세훈이를 보고 이름을 부르면.. 꼭.. 흐읍.."
알 수없는 말을 하며 울음을 터트리는 엄마다.
이렇게 무너지는 엄마는 처음이었다.
세훈은 왠지 모르게 미친듯이 뛰는 가슴을 쥐고 방을 나와 조심스럽게 부모님의 침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집 안은 칠흙같이 어두웠고, 그 흔한 시곗바늘소리도 없이 오직 엄마의 흐느낌만이 존재했다.
"흐흑... 세훈이한테 내가 얼마나 미안한 줄 당신이 아냐고! 난 세훈이를 볼 때마다 그 애가 생각나서 차마 세훈이 이름을 부를 수 없어... 흐윽.. 아픈 세훈이를 보면서 그 애도 세훈이처럼 아픈 건 아닐까... 흐흑.. 내 앞에 있는 건 세훈인데! ..많이 아픈 건 세훈인데!.. 그런 세훈일 보면서 죽었을지도 모르는 아이 생각하는 내가 끔찍하다고!! 아흑... 흑흑.."
가까이 가서 듣는다고 울부짖는 엄마의 말이 이해가는 것은 아니였다.
세훈은 지끈거리는 머리에 인상을 쓰며 뒷목을 잡았다.
무슨 일인지, 아마 제가 관련된 일 같은데도 전혀 갈피를 못 잡겠다.
세훈은 고개를 떨구며 눈을 세게 감았다 떴다.
"흐흑... 당신이 그 때 같이 있었으면 좋았잖아! 그랬으면 우리 넷이 지금 행복했을 거 아냐... 내가 이거 들고 이렇게 그 애 생각하는 일도 없잖아!! 흑..."
니네아빠가 꼭 필요한 순간에 엄마 곁에 없었어.. 그래서 엄마는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고.. 그래서 그래..
며칠 전 엄마의 말이 생각났다.
지금 이 말은 그 때의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세훈은 머릿 속으로 엄마의 말을 곱씹었다.
우리 넷...
저는 외동아들이다.
키우는 애완동물도 없다.
분명 셋이지 넷이 될 순 없다.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해 세훈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구르고 있었다.
세훈은 말라가는듯한 입술을 꽉 물었다.
"당신만 있었다면 그렇게 허무하게 잃어버리지 않았을거야...!! 당신만 욕심버리고 와줬다면! 흑흑... 지금쯤 나랑.. 흐읍.. 당신이랑..흐흑... 훈이랑...아흑흑..."
준이랑... 흑흑...
안 데려다줘도 괜찮다는 엄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세훈은 부드럽지만 단호한 표정으로 엄마를 따라나섰다.
공항에 도착해 간단한 아침식사를 하고 마지막 인사를 나눈 후, 게이트로 나가는 엄마를 배웅하는 세훈의 얼굴이 유달리 안좋아보였다.
어제 보인 제 눈물때문인가.. 엄마는 마음쓰면서 떠났다.
엄마가 탄 비행기가 이륙하는 것까지 지켜본 세훈이 발걸음을 옮겼다.
세훈의 얼굴은 싸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세훈은 제가 태어난 산부인과에 가볼 참이였다.
세훈의 바지 뒷주머니는 지난 밤 엄마가 손에 꼭 쥐고 잠든 물건으로 불룩해져 있었다.
제가 잘 못 들은건지, 잘 못 본건지, 아니면 엄마가 헛소릴 한건지, 당장 확인하지 않으면 정말로 미쳐버릴 것 같았다.
어릴 적 언젠가, 백화점가는 길에 지나친 병원을 가리키며 아빠는 여기서 세훈이 태어났다고 했었다.
공항을 빠져나온 세훈은 주저하지 않고 택시를 잡았다.
"출생기록을 확인하고 싶으시다구요?"
"..네."
"본인확인만 되시고, 직계가족분들은 등본이나 가족증명서 지참해서야 되요. 본인이세요?"
"..네."
"신분증 확인하겠습니다-"
세훈은 바지 뒷주머니에 꽃혀있던 지갑을 내어 주민등록증을 꺼내보였다.
안 그래도 하얀 세훈의 얼굴은 긴장감으로 핏기가 사라져 하얗다 못해 푸른 빛이 돌았다.
"어머님 성함과 출생일이 어떻게 되시죠?"
"이유진, 199X년 8월 XX일이요..."
"한 삼십분 정도 걸리니까 조금만 기다려주시겠어요?"
그러고보니 생일도 얼마 남지 않은 세훈이다.
언젠가 제 진짜 생일도 8월의 어느 날 즈음이라고 말하던 씁쓸한 목소리가 생각났다.
무언가 퍼즐처럼 맞춰지는 기분에 심장이 조여왔다.
시원한 병원 공기 속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몇 분이나 흘렀나 손목을 확인하니, 겨우 4분이 지났다.
"오세훈님-"
차라리 눈을 감고 있자 싶어 눈을 감고 있었는데, 어젯밤 잠을 못 잔 탓인지 깜빡 졸았나보다.
..
세훈은 극도의 긴장감으로 나오지도 않는 대답을 속으로만 하며 데스크로 향했다.
"오세훈님, 이유진님께서 199X년 8월 XX일 오전 3시 11분에 출산하셨네요.
이란성쌍둥이신데, 오세준님은 같이 안 오셨나요? 오세준님이 3시 정각에 나오셨고, 오세훈님이 11분에 출생하셨네요.
궁금하신 점 더 있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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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의 끝을 보여드릴게여:) 막장이니까 욕하는 댓글이라도 달아만 주신다면 감사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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