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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l 외국어 l 해외거주 l 해외드라마



저 신궁 아닌데요 





숲에서 나오는 동안 여주는 쉬지 않고 질문을 퍼부었다. 왜 한복을 입고 있는지, 아까 그 괴생물체는 무엇인지, 혹시 훈련장으로 돌아가는 길을 알고 있는지, 그리고 ‘귀인’이라는 호칭은 무슨 뜻인지. 석진은 한결같이 공손한 태도로 답했다. ‘이곳’에서는 다 이런 의복을 입는다. 요괴의 이름은 주충귀이며 양림에서 서식하는 요괴이다. 아마 이 근처에 여주가 말하는 ‘훈련장’은 없을 것이다. 이곳은 요괴와 귀신들의 세계. 요계, 혹은 귀계라고 불리는 세계이다. 그리고 여주는 계시 속에 나오는 귀인이다. 설명을 듣던 여주의 걸음이 느려지자 석진의 걸음도 덩달아 느려진다.

 



“그러니까, 여기가 요괴랑 귀신들이 진짜, 뻥이 아니라, 진짜로 존재하는 세상이라고요?”

“예, 그렇습니다.”

“그럼 그쪽도 인간이 아니에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석진은 지금까지 그래 왔듯 예의 반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여주는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누가 봐도 그냥 평범한 사람처럼 생겨 놓고서는 사람이 아니라니. 솔직히 이제까지 들은 설명도 믿지 못하고 있었다. 요즘 사이비 종교의 영업 방식인가, 싶다가도 제가 직접 쏴 죽인 요괴가 눈앞에 아른거려서 듣고 있기는 했는데... 진짜라니. 영화와 드라마, 애니메이션 속 요괴의 이미지들이 차르륵 지나간다. 여주가 부르르 어깨를 떨었다. 미쳤다, 미쳤어.



 

“저, 전 제가 살던 곳으로 돌아갈래요. 어떻게 가요?”

“불가합니다.”



 

제자리에 우뚝 선 여주가 눈을 깜빡였다. 들어오는 건 되는데 나가는 건 왜 안돼? 내가 오고 싶어서 온 것도 아니고. 석진이 조곤조곤 말을 이었다.



 

“귀계에서 인세(人世)로 가는 길을 여는 건 오직 상제님이 허하셔야 가능합니다. 이 세계의 주인이신 귀왕께서도 마음대로 하실 수 없는, 천계의 영역이지요.”

“혹시 제가 귀인인가 뭔가 하는 거라 안 보내주는 건 아니죠?”

“여주님이 가고 싶으시다면 당연히 보내드려야지요. 다만 허가가 떨어지기 전까지는 저희도 달리 방도가 없습니다.”




귀계 안에서는 귀왕의 권한이 더 클지 몰라도 모든 세계를 총괄하고 관리하는 건 천계. 제아무리 상제와 맞먹는 귀왕이더라도 절차와 법도를 지키는 게 순례이다. 애초에 귀왕은 인세에 관심조차 없을 테지만.



 

“저 못 돌아가요?”

“궐에 가는 대로 천계에 연락은 해보겠으나 확답은 못 드립니다. 천계에 있는 이들은 굉장히 게으른 편이라서요.”

“…”

“몇 달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몇 달이라니. 저쪽에서 보면 나는 산에서 양궁 훈련을 하다가 갑자기 사라진 셈이다. 말 그대로 행방불명. 부모님, 코치님, 친구들도 걱정 많이 할텐데. 가을에 있을 선발전도 큰 문제였다. 무엇보다 괴물들이 있는 이런 곳에선 하루도 있고 싶지 않았고. 분명 괴물들한테 죽고 말거야… 반쯤 메인 목소리를 내며 여주가 석진의 소매를 간절하게 잡았다.




“저는 가족이 있어요… 죽기 싫어요… 곧 중요한 경기도 있고요… 얼른 돌아가야 해요…”

“귀계는 인계보다 시간이 빠릅니다. 몇 달이라고 하나 인계에서는 하루가 채 되지않지요. 그러니 걱정 마십시오.”



 

그건 다행이긴 한데요… 지금 내 목숨에 대해선 묘하게 말을 돌린 것 같은데… 여주가 빤히 쳐다봤지만 석진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래도 일단 저쪽 세상 문제는 해결됐으니 마음은 한결 놓인다.




“그럼 문이 열릴 동안 저는 그동안 어디서 지내는데요?”

“왕이 허해주신다면 궐에서 지내게 되실 겁니다.”




헐. 궐이래. 대박. 우울해 있을 땐 언제고 궐이라는 말에 호기심이 든다. 궐이면 음식도 맛있고 집도 되게 좋을 려나. 어느새 여주의 발걸음은 살짝 가벼워져 있었다.

 

 




***





 울창했던 나무들이 사라지자 드넓은 들판이 나타났다.





[방탄소년단] 저 신궁 아닌데요 二 | 인스티즈

“거의 도착했습니다.”



 

여주가 쏟아지는 햇빛에 실처럼 얇게 눈을 떴다. 귀계라더니 음침하긴커녕 사방이 환하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무릉도원인 줄 알겠네.




“이쪽 길은 후원을 가로지르는 길입니다.”




흐드러지게 핀 꽃들 너머로 거대한 고궁이 보였다. 홀린 듯 걸어가던 여주가 찰박거리는 물 소리에 멈춰 섰다. 앗 차가. 젖은 운동화 코끝 아래로 물이 흐르고 있었다. 제법 넓은 강이 숲과 들판을 구분하고 있다.  석진이 돌길 위에 올라 선 뒤 여주에게 손을 내밀었다. 어색하게 웃은 여주가 석진의 손을 잡고 돌길에 발을 디뎠다. 




멀리서도 충분히 드넓었던 고궁은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더 거대해졌다. 석진이 가볍게 손을 얹자 집채같이 커다란 문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여기가 뒷문이면 정문은 얼마나 크다는 걸까. 인간의 머리로는 상상할 수도 없었다.



 

여주가 궐에 도착한 날. 도착한 지 몇 시진이 되기도 전에, 석진이 귀인을 데리고 왔다는 소문은 파다하게 퍼져 나갔다. 이야기를 전해 들은 이들은 계시가 사실이란 점에 1차 충격을 받았고, 귀인이 사람이라는 점에 2차 충격을 받았다. 귀계에 인간이 나타난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놀라운 소식이었다. 간혹 백귀야행때 인간들이 홀려 넘어오는 경우가 있었으나, 상제가 세계를 철저히 분리한 이후로는 여주가 처음이었다. 아마 못해도 몇백 년. 귀계에서 나고 자란 젊은 요괴들은 아예 인간을 본 적이 없었다.



 

장지문이 열리자 석진의 얼굴 위로 독한 풀냄새가 확 쏟아졌다. 부유하는 뿌연 연기는 어두운 방 안을 초현실적으로 공간처럼 보이게 했다. 동그란 창문으로 달빛이 쏟아진다. 천장에 매달려 커튼 역할을 하는 얇은 오색천들, 벽을 따라 방을 둥글게 둘러싸고 있는 촛불들. 바닥에 닿을 듯 말듯 내리어진 색색의 천들 너머로는 비단옷의 앞섶을 풀어헤친 남자가 턱을 괴고 모로 누워있었다. 남자의 뒤로 옅은 그림자가 비친다. 몽연한 빛에 따라오는 그림자가 흐리다. 나른한 공기 속에 숨겨져 있는 살기.

 





[방탄소년단] 저 신궁 아닌데요 二 | 인스티즈

"인간 계집을 주워 왔다고.”

“예. 하지만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셔서 일단 천계에 문을 열어달라는 서신을 보냈습니다.”



 

태형이 곰방대를 깊이 빨았다가 입을 살짝 벌렸다.입술 사이로 연기가 자오록하게 피어올랐다.




“재상이 아무래도 한가한 모양이야.”

“…”

“쓸데없는 일에 그리 신경 쓰는 걸 보니.”

 



석진에게 하루에 쏟아지는 무시무시한 업무량을 태형이 모를 리가 없었다. 재상이 되기 전부터 석진은 맡아 하는 일이 많았다. 그중 남의 업무가 반, 석진의 업무가 반이었다. 일 부자가 된 데에는 남을 돕기 좋아하는 성격도 한몫했지만 뛰어난 업무 처리 능력도 큰 역할을 했다. 신입 관리 5명이 붙어 이틀 밤을 새워 겨우 해내는 업무를 석진은 혼자서 몇시간 안에 척척 해냈다. 일 처리도 깔끔하고 흠잡을 데 없으니 같은 관리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태형의 비아냥이 억울할 만도 하지만, 석진은 말없이 이마를 바닥에 더욱 바짝 붙였다. 




저 여우 같은 놈. 기민한 석진이 태형의 의중을 못 알아차렸을 리가 없다. 결국 태형이 직접 묻고 난 뒤에야 석진은 입을 열었다.



 

“무슨 생각으로 궐에 들인 거지?”[방탄소년단] 저 신궁 아닌데요 二 | 인스티즈

“잠시간이긴 하지만 귀인이시니 어느 곳보다도 궐에서 지내시는 편이 나을 듯하여,”

“언제부터 인간이 귀계에서 귀인이었나.”




귀계 내 인간의 평판은 좋지 못했다. 인간을 좋아하는 이들도 더러 있었지만, 대부분의 의식 저변에는 있는 인간은 부정적인 이미지였다. 인간의 영혼에서 비롯된 귀신들도 제 근원을 망각하고 인간을 우습게 여겼다. 사물에서 탄생한 정백은 더하면 더했지 덜 할 리 없었고. 인간에 대한 한을 품고 있는 자들이 곳곳에 즐비했다. 




“궐 밖으로 내보내.”




태형이 인간에 대한 간특한 마음이 있는 건 아니었다. 다만 귀찮은 것이 딱 질색이었을 뿐. 궐내에 인간을 들였다가 무슨 일이 터질지도 몰랐다. 하오나… 재청하려는 석진의 말을 태형이 잘라낸다.



[방탄소년단] 저 신궁 아닌데요 二 | 인스티즈

“재상.”

“…예.”

“청유가 아닌 명령이다.”



 

여주가 계시에 나온 귀인이라는 건 태형도 이미 알고 있을 테니 다시 들먹여봤자 역정만 낼 게 뻔했다. 석진이 눈을 내리깔자 기다란 속눈썹이 그림자를 만들어 냈다. 잠시간의 침묵 뒤에 석진은 다른 카드를 꺼냈다.



 

“활을 잘 쏘십니다.”

“….”

“미천한 소신의 눈에도 가히 신궁과 같은 솜씨셨습니다.”



 

태형이 눈썹을 까딱였다. 신궁이라. 입꼬리가 뒤틀리듯 올라간다. 귀인이라더니 용병으로 써달라는 건가. 지난 전쟁 이후로 병력부족은 고질적인 문제였다. 끝끝내 제 뜻을 관철하려는 고집에 괘씸했다가도 석진이 감싸고 도는 인간 계집에 대한 생경한 흥미가 돌았다. 문이 열리면 금방 돌아갈 인간이 아니냐, 흠을 잡을 수도 있었다. 또한 별안간 갑자기 나타난 인간을 어찌 믿고 궐에 들일 수 있냐, 문책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대신에 왕은 사특하게 웃었다.







[방탄소년단] 저 신궁 아닌데요 二 | 인스티즈

“재상이 직접 천거한 인재라니 내칠 수가 없군.”

“황송합니다.”

“...좋다. 재상의 뜻대로 하도록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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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와...대박..글진짜잘쓰세요ㅜㅜ
7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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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
아 진짜 넘모 재밋습니다ㅠ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ㅡ신궁이라니 넘 독특하구 동양판타지에 무던한 여주 취향저격이 탕탕탕....
7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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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217.202
너무재밌어요ㅠㅠ
7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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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3
와 진짜 대박이에요ㅠㅠ
7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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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4
와 작가님 진짜 너무 재밌습니다ㅜㅜㅜㅜ
7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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