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ㅇㅇ, 내일이 우리 약혼식이야.""… ….""기자 회견 때 네 표정, 아니, 그 몇 십분 동안 행복한척 하면서 웃는 게 그렇게 어려워? ""… …너 같으면 웃을 수 있니?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려고 강물에 뛰어 들었는데 웃을 수 있냐고!"우리 나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재벌 그룹의 3세인 그와 대기업으로의 비약적인 성장을 하고 있는 기업의 3세인 나는 집안의 교류로 어린 시절부터 함께하는 일이 많았다. 그와 나는 특별한 모임 자리가 있을 때 마다 붙어 있어야 했으며 집 안 어른들의 따분한 말을 들어야만 했다. 종인군 같은 사위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ㅇㅇ양 같은 며느리가 있으면 세상을 다가진 것 같을거에요. 같은 학교를 다녔으며 음악 레슨도 함께 받았었다. 그렇게 마냥 어렸던 그와 내가 서른을 앞두고 경영을 책임져야할 나이가 되자 집안에서 혼사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오고갔다. 나는 근 십여년 간 사귀어온 남자친구가 있었기에 그와의 결혼을 완강히 거부하였지만 내 의견은 처참히 묵살되어 버리고 말았다. 경영진의 각종 비리와 그룹 회장인 아버지의 건강 악화로 기업의 뼈대가 처참히 무너져 내려갔다. 위태로운 우리 기업을 일으킬 수 있는 방법은 결혼뿐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기업의 상태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나빠져 그의 그룹과 합병하지 않으면 부도 위기까지 처해질지도 모르는 실정이었다. 오랜 고심 끝에 끝에 나는 그와 결혼을 결심했다. 세훈에 대한 마음도 깔끔히 정리한듯 했다. 그렇게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새로운 시작을 하려고 마음 먹었다. 그러다가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세훈이 자살 시도를 했다. 그러고 나는 깨달았다, 이 약혼을 할 수 없다는 것을.화가 난 표정을 하고 넥타이를 풀어헤치는 그를 향해 이름 모를 꽃 한줄기가 담겨있는 유리잔을 집어 던졌다. 유리잔이 그의 발 밑에서 와장창 깨지고 갸냘픈 꽃 한줄기가 유리 조각에 베이고 쓸려 꺾어지고야 말았다. 너는 저 꽃처럼 나를 꺾어 버렸어, 내 영혼 그리고 내 마음까지. 당장이라도 그를 밀치고 세훈에게 달려 가고 싶었다. 나 결혼 같은 거 안 한다고, 그러니까 죽지 말라고, 이제 행복하게 살자고. 그렇게 말하며 세훈의 품에 안기고 싶었다. 그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한숨을 내쉰다. 오세훈 그 새끼는 왜 죽는다고 지랄을 해서. 그의 몰상식한 태도에 분노가 치밀어 올라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가 나에게로 다가 온다. 나는 깨진 유리 조각을 집어들었다."오세훈 얘기 듣기 싫으니까 그만 해.""오지 마.""그 걸로 한 번 찔러 봐."" … ….""저 유리조각에 백 번 찔려도 너를 사랑하면서 얻은 상처 하나만 못해. 너희 사이에 있는 내 마음이 어떨지 ㅇㅇㅇ,넌 알기나 해?"그가 벌벌 떨리는 내 손에서 깨진 유리 조각을 빼앗았다. 그러고는 그가 유리 조각을 그러쥔다. 그의 손에서 선홍빛 피가 뚝뚝 떨어진다. 그리고 그의 눈에서 투명한 눈물이 뚝뚝 흘러내린다. 그의 광기 어린 눈빛에서 슬픔이 서려 있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 슬픔을, 이해해주고 보듬어줄 마음의 여유가 나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냥 그의 슬픔 자체를 부정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나는. 피가 바닥을 흥건히 적시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 게 아닌데. 꽉 쥔 그의 손가락을 하나씩 펴냈다. 갈라진 살 틈 사이로 붉은색 피가 꿀렁이며 새어나왔다. 티슈 수십장을 꺼내 그의 손의 피를 닦아냈다. 하얀색 티슈가 온통 붉은색으로 적셔질 때까지 피는 멈추지 않았다. 종인아, 미안해, 미안해. 나는 그의 손을 흥건히 적신 피를 닦아내며 10년 전 그날로 돌아갔다.10년 전 태풍이 불어닥치는 무더운 여름날, 그 때도 그의 손에서는 붉은 피가 철철 흘러내렸었다, 나 때문에."종인아, 미안해, 미안해 … ….""됐으니까 그만 울어."유난히 강한 바람이 부는 날이었다. 청소 당번이었던 그와 나는 화단에서 우수수 떨어진 이파리들을 쓸어 담으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 때였다.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3층에서 투명한 창문 파편이 사방으로 튀기며 무서운 속도로 떨어졌다. 나는 사태 파악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위쪽만 바라볼뿐이었다. 곧이어 여러 개의 비명 소리가 귓가에 꽂혔고 그가 그 짧은 순간에 자신쪽으로 나를 끌어당겼다. 그러고는 한 손으로는 내 머리를 감싸고 다른 손으로 내 눈을 가렸다.ㅇㅇ아, 괜찮아.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그가 많이 다쳤다."나 때문에 … ….""근데 오세훈은 코빼기도 안 보이네. 남자친구 맞아?"보건실에서 거즈로 그의 손등에 흐르는 피를 닦아냈다. 닦아도 닦아도 피가 자꾸 흐르자 나는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그 때는 너무 무서웠다, 피가 영영 멈추지 않을 것만 같아서, 나 때문에 큰 상처를 하나 남길까봐. 종인아, 흉터 남으면 어떡하지? 큰 흉터 남으면 어떡해 … …. 울고 있는 나를 보고는 그가 내 눈물을 닦아줬다. 그리고 손바닥으로 내 눈을 감쌌다."ㅇㅇ아, 괜찮아."뜨거운 그의 숨결이, 따뜻한 그의 입술이 내 입술에 닿았다, 그리고 나는 그를 밀쳐냈다. 이러지 마. 고개를 돌리는데 열린 문틈 사이에 익숙한 인영이 보였다. 그렇다.우리의 지독한 싸움은 그 때부터 시작 되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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